소설리스트

마법소녀 최면물-131화 (131/299)

< 131화 > 124번 (4)

“더 강해졌나…?”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날개와 꼬리가 생긴  모습을 보고 전과 변한 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변화가 에스더의 내면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최면에 걸기도 전에 저항한다니…이런 건 영상 속에서 애쉬가 하는 것밖에는 본 적이 없다.

점점 머리 위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강해지며 빛이 고리 형태를 만들기 위해 서서히 모여간다.

시간이 없다.

에스더가 의식을 되찾기 전에 최면을 마쳐야 한다.

나는 다급한 와중에도 두통이 생길 정도로 머리를 굴려 어떤 최면을 걸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최면을 몇 가지나 걸 수 있을지 몰라도 벌써부터 저항하고 있으니 많이 걸 수는 없을 게 분명하다.

여러 가지 최면을 쌓아올려 행동을 제한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을 유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가장 급한 최면, 가장 필요한 최면 순서로 단순하게 걸어야 한다.

“일단…후우, 나를 공격할 수 없다.”

제일 먼저 가장 중요한 최면부터 걸어둔다.

걸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그레이프도 최면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레이프보다 더 저항력이 강해 보이는 에스더라면…제대로 하나하나 쌓아올리지 않은 이런 단편적인 최면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에스더를 구속하거나 조종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갑자기 퀴즈를 내기 시작했으니 시간을 벌만 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다른 최면을 걸 필요는 없다.

이번 퀴즈는 이전의 에스더 퀴즈와는 뭔가가 다르다.

나도 헷갈리는 내용이 처음부터 나온 걸로 봐서는 난이도가 훨씬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런 퀴즈를 맞히기 쉽게, 퀴즈를 내가 하나도 틀리지 않게끔 하려면 어떤 최면을 걸어야 하지?

지금까지 최면을 걸며 쌓아올린 경험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자신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 제어, 생각의 구조와 방향성을 변화시키는 상식 개변, 행동이나 감각을 어지럽히는 조종.

단순하게, 간결하게 건다.

“객관식 문제를 낼 때 정답 번호와 동일한 횟수로 꼬리를 크게 흔든다.”

지금처럼 객관식 문제로 낸다면 이 최면만으로 모든 정답을 알 수 있게 된다.

1번이라면 꼬리를 한 번, 2번이라면 두 번.

하지만 문제를 객관식이 아닌 것으로 낸다면 이 최면은 통하지 않는다.

“앞으로 모든 퀴즈는 객관식으로만 낸다…윽?!”

그러니까, 퀴즈를 객관식으로만 내도록 행동을 제한한다.

곧바로 다음으로 걸 최면을 입 밖으로 꺼내려는 순간 에스더의 머리 위의 빛의 고리에서 파직파직 하고 번개가 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가시처럼 삐쭉해진 고리가 바닥에 튀며 갈기갈기 찢어져 깨진다.

겨우 세 번 만에 최면 상태가 끝나버렸다.

“하아…검색이든 뭐든 빨리해줄래?”

정신을 차린 에스더는 자신이 잠시 의식을 잃었던 것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갔다.

잠시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이마에 살짝 손을 대 보기만 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다행이긴 한데…이상한 반응이다.

“아뇨, 그만두죠…그냥 조금 기억이 안 나서 옛날 일을 좀 되짚어보고 싶었는데…생각났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침을 삼키고 자신 있게 비전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대로 입가를 가리고 헛기침을 한번 한 뒤 실소하는 에스더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문제 좀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감염된 이유가 아닌 것. 1번은 애쉬가 날 일부러 구출하지 않아서, 2번은 래피드와 애쉬에게 악의를 품고 적이 되기 위해 스스로 감염, 3번은 마인드 컨트롤러의 세뇌에 패배해서.”

“아까랑은 답이 조금 다른데요? 뭐…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문제의 답이 살짝 변하거나 자세해진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에스더의 꼬리가 몇 번 흔들리는가다.

에스더의 꼬리가 위아래로 크게 채찍질하듯 움직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에스더가 감염된 이유가 아닌 건…3번이다.

…3번이라고?

그 얘기는, 1번과 2번이 에스더가 타락한 이유가 된다는 얘기다.

대체 왜 3번이지…?

세간에 알려진 것과 에스더가 생각하는 감염의 이유가 다르다.

에스더의 말 대로라면 에스더는 마인드 컨트롤러의 세뇌에 패배해서 감염당한 게 아니다.

마인드 컨트롤러에게 패배해서 끌려간 건 맞지만…세뇌 당한 건 아니라는 얘기인가?

세뇌와 감염은 별개인가?

“10, 9, 8, 7….”

“…3번입니다.”

의문밖에 들지 않는 답안이었다.

하지만 에스더는 그 의문에 대해서 길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제한시간이라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곧바로 답을 얘기하자 에스더의 입이 다물어지고, 흔들리던 꼬리가 멈춘다.

“…왜 그렇게 생각해?”

“왜라뇨?”

“3번이 답이라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 지금 넌 최강의 마법소녀가 동료를 버렸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왜 3번을 골랐냐고 물어봐도 이유 같은 건 모른다.

에스더가 가르쳐 줬으니 3번이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124번, 지금 내 편을 드는 척이라도 할 셈이야? 정답을 맞힐 생각은 없고 그냥 내 입장에서 마음에 들만 한 답이 뭔지 생각해보겠다?”

“왜 정답이 아니죠…? 이게 정답인데.”

지금이라면 바꿀 기회를 주겠다는 듯 떠보는 것처럼 하는 말에 당당하게 반박하자 에스더의 말이 멈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노려본다.

이게 혹시라도 정답이 아닐까 봐 불안해할 필요도 없어 심장도 빠르게 뛰지 않고 숨소리도 차분해진다.

문제를 낸 본인이 가르쳐준 정답이니 틀릴 리가 없다.

“…두 번째 문제. 네거티브가 된 뒤 내가 가장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역시나, 당연하게도 정답이다.

에스더는 두 손을 허리춤에 얹고 어딘가 언짢은 사람처럼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며 다음 문제를 냈다.

아무 말 없이 두 번째 문제를 내기 시작한 에스더의 모습을 보고 어떤 문제를 내든 다 맞춰줄 테니 얼마든지 내보라는 태도로 당당하게 팔짱을 낀 나는 문제를 들으며 에스더의 꼬리를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1번, 절망. 2번, 고통. 3번, 쾌락. 4번, 분노.”

꼬리는…흔들리지 않는다.

검은 하트모양의 꼬리 끝이 빳빳하게 세워져 가만히 멈춰선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문제가 이상한데요?”

“하, 모르나 본데? 난 예전의 마법소녀 에스더가 아니야. 외견은 이래도 인간들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추악한 괴물, 네거티브의 간부, 질투의 마녀…내가 먹는 건 음식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이것도 모르는 거야?”

“아뇨, 네거티브가 감정을 먹는다는 건…아는데….”

말하면서도 뭔가 이상해 말이 멈춘다.

나는 왜 감정을 먹는다고 표현하고 있는 걸까?

뉴스에서는 감정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감정을 먹는다는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은 이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정말로 정답 있는 거 맞아요? 없는 것 같은데?”

“…뭐?”

“에스더가 먹고 싶은 건…혹시 케이크당의 레드벨벳 딸기 케이크 아니에요?”

“자, 잠깐…어떻게 아는 거야?”

말해주지도 않은 정답을 맞히자 눈을 크게 뜬 에스더가 앞으로 다가와 내 멱살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이건 최면과 별개로 정말로 내가 혼자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혹시나 해서 찍어봤는데, 정답일 줄은 몰랐다.

정답이 하나도 없는 함정 문제를 내다니…악랄하다.

“그냥 그거일 것 같아서…그, 마지막 방송 때 래피드가 사둬서 갔다 오면 먹을 거라고….”

“그, 거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둬서 먹는다는 얘기만 했잖아!”

“예전에 방송할 때 래피드가 사오는 케이크들 중에 그게 제일 마음에 든다는 얘기한 적 있죠…?”

가까이에서 마주친 에스더의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린다.

감염되기 전에는 양쪽 다 붉은색이었던 눈의 한쪽이 네거티브가 된 영향인지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멱살을 잡고 있던 에스더의 손이 천천히 풀렸다.

에스더는 내게서 손을 떼고 몸을 옆으로 휙 돌리더니 다시 팔짱을 낀 채 얼굴이 내게 보이지 않게끔 고개를 돌렸다.

“세 번째 문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아, 새우요.”

이건 최면의 힘이 없어도 알고 있다.

에스더는 새우 알러지가 있다.

해산물이나 갑각류는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새우에만 반응하는 알러지다.

다행히 세 번째는 서비스 문제였다.

“자, 잠깐…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선택지를 말하기도 전에 정답을 맞혀서 그런지 에스더가 당황하며 내 얼굴을 바라봤다.

이렇게 어두운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져 있다.

나는 내가 너무 성급하게 대답한 건가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어…? 새우 알러지 있죠? 혹시 지금은 없어요?”

“아직도 있…기는 할 텐데, 그치만 그건…방송에서 정말로 한 번도 말 한 적 없는 거….”

방송에서 한 번도 새우 먹은 적 없는데?”

“방송에서 말한 적은 없지만 래피드가 새우칩 먹고 있을 때 악수도 안 했잖아요. 다가오지 말라고 하고. 그거 보고 나중에 보니까 새우가 나오는 음식은 하나도 시킨 적이 없더라고요?”

“너, 너 뭐야?”

뭐냐고 물어도 이건 내게 별로 어렵지도 않은 문제였어서 딱히 할 말이 없다.

매일같이 방송을 보고 말하는 것 하나하나 확인해 래피드에 대한 정보를 주워 먹어 왔던 내게 이런 건 사소한 건 파고들기 좋은 사소한 정보에 불과했다.

그냥 좀 열심히 보다 보니 혹시 그런 건가 하고 의심하다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뿐이다.

“네 번째 문제! 네거티브가 된 뒤 생긴 내 버릇! 1번, 꼬리를 만진다, 2번, 날개가 뻐근할 때 기지개를 켠다, 3번, 뿔을 다듬는다!”

“2번이죠?”

“다, 다섯 번째! 보기 중에서 최근의 내게 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1번, 머리카락. 2번, 손톱. 3번, 뿔!”

“3번…? 어…지금 보니까…뿔 끝에 다듬어 본 거에요? 전보다 표면이 좀 더 빛나네요.”

계속해서 문제를 내도 내가 틀리는 일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조합해 문제를 내기 전에 맞추기도 하고, 모를만한 문제는 에스더에게 건 최면을 통해 답을 알아낸다.

나와 마주 본 에스더의 눈이 점점 커지고 숨이 뜨거워지며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려 알아보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그럴 때는 문제를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해 정답을 맞혔다.

문제가 이어질수록 상당히 이상한 문제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스더의 팬클럽 사람들은 절대로 맞출 수 없는 문제들뿐이다.

네거티브가 된 뒤의 변화, 방송에는 알려지지 않은 에스더에 대한 정보, 에스더를 지켜보는 것뿐만 아니라 끝없이 생각해야만 알 수 있을 만한 내용과 네거티브가 된 후에도 막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맞출 수 없는 문제가 이어진다.

“말도 안 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