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4번 (2)
에스더의 얘기가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말하는 것 자체는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되지만, 상황과 매치가 전혀 안 된다고 느껴진다.
나를 적대하고 죽이러 온 게 아니라 나를 혼내고 교육해주러 온 듯한 말투와 행동이다.
“확실히 알아줬으면 좋겠어. 촉수 괴수가 되고 나면 인간일 때랑은 생각의 방식이 좀 달라지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이런 건 미리미리 교육해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
“촉수 괴수요?”
“퀴즈를 전부 맞힌 것도 그렇고, 마음에 들어서 특별한 촉수로 해 주려고 했는데…너는 조금 특별 취급할 필요가 있겠어. 감히 그런 짓을 하려고 한 벌로 페니스 헤드는 한 개, 하지만…그래, 조금은 크고 두꺼운 거로 해 줄게. 남자는 그런 게 중요하지?”
“네?”
“하아…그래도 다행이야, 혹시라도 못 찾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찾은 애는 손으로 좀 만져주겠다고 하니 정말 열정적으로 찾더라고? 진작 이럴 걸 그랬어.”
“절 찾았다고요?”
조금씩, 에스더가 왜 내 앞에 나타났는지, 왜 여기 왔는지가 이해되며 소름이 돋는다.
촉수 괴수들이 나를 찾았다는 얘기를 듣자 이 주변에 왜 그렇게 촉수를 사용하는 괴수들이 많아졌었는지…왜 내게 쏘아진 칼날촉수가 멈췄는지가 이해된다.
왜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았는지도 알겠다.
에스더 팬클럽 유성우 번호 124번인 나를 촉수 괴수로 만들어서 데려가기 위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니고 있었다.
에스더가 나를 위협한 건 단순히 나를 조금 교육해두기 위해서다.
마법소녀로서 팬을 위해 지켜야 할 처녀성에 상처를 낼 뻔한 내가 촉수 괴수가 되어서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경고한 것이다.
“기대해도 좋아, 촉수 괴수가 되면 미적 감각도 조금 변해서 지금의 나를 봐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게 되니까…네거티브가 느끼는 감정이 무슨 맛이 나는지 알아? 원래 음식의 맛 같은 건 잊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맛이 난다고~?”
에스더가 아까 아무것도 없는 곳을 할퀴는 것처럼 손을 휘둘렀던 위치에서부터 허공에 금이 가고 깨져가며 네거티브가 있는 차원으로 통하는 통로가 열린다.
팔짱을 끼고 공중에 앉아 치원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에스더가 지면을 밟고 내 손목에 꼬리를 감는다.
나를 반드시 데려가기 위해 특별히 에스더 혼자 찾아와 열어준 특별한 차원문이다.
“그럼 갈까? 또 방해받아서 두고 가긴 싫으니까 말이야.”
문득 늑대인간의 머리에 촉수가 꽂혀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에스더가 타고 다니거나, 데리고 다니는 건 촉수 괴수다.
촉수와 대화를 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어쩌면 에스더가 촉수 늑대인간에게 그레이프를 유인하게끔 명령해 뒀을지도 모른다.
그레이프는 오지 못한다.
“124번, 너는 꼭 내가 맛있는 감정만 먹게 해줄게!”
“에, 에스더 님! 잠시만!”
상황을 파악한 나는 다급하게 내 손을 잡아끄는 에스더를 멈춰 세웠다.
꼬리가 휘감긴 쪽이 우연하게도 비전폰이 든 주머니와 같은 방향의 손이어서 비전폰을 빠르게 꺼내기도 어렵다.
지금은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
차원문을 넘어서면 끝이다.
에스더는 다행히 내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꼈는지 잠시 멈춰준 상태였다.
뭔가 대화할 거리가 필요하다.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에스더가 나와 대화해줄 만한 얘기를 떠올렸다.
“촉수…괴수가 되면! 대화는 지금처럼 못 하게 되는 건가요?!”
“흐으응? 그렇지? 그야 다른 팬들하고도 대화하긴 해야 하니까…124번이 조금 특별하긴 해도?”
“아뇨! 그게 아니라, 지금처럼 이렇게 대화하는 게 어려워지는 건가…생각의 방식이 조금 달라진다고 하신 것 같아서요!”
“뭐, 촉수는 눈도 없고 입도 없으니까…그건 촉수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이 주제는 실패다.
오히려 더 빨리 데려가려는 듯 팔을 잡아당기는 힘이 강해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눕혀 에스더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저항했다.
가느다란 꼬리가 감겨있는 것뿐인데도 와이어가 휘감긴 것처럼 질기고 단단하다.
“하…? 지금 이거 뭐하는 짓이야?”
“그러면, 그럼! 변호 시간 좀 주세요! 잠시 저를 변호할 시간!”
“변호오?”
내 말에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에스더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시간이 지체되는 게 싫은 듯 계속해서 팔을 잡아당기지만, 얘기는 들어주려는지 팔짱을 끼고 멈춰 선다.
“이대로 가면 촉수 괴수 되도 자지 하나만 달아준다면서요! 그에 대한 변호입니다.”
“흐응?”
“에스더 님의 보지를 만진 건 잘못된 행동이 아니에요!”
“…아앙?”
얼마나 황당했는지 입을 벌리고 멍청한 소리를 낸 에스더는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손목을 휘감고 있던 꼬리를 풀어줬다.
그와 동시에 팔짱을 끼고 있던 손에 불을 휘감고 점점 그 온도를 올린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네, 네엑.”
“…이건 진짜 제대로 교육해둬야겠네.”
붉은 불이 푸르게 변하고, 서서히 하얗게 탈색되어간다.
뜨거운 불길에 기도가 달아올라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진다.
에스더는 나를 가만히 노려보면서 하얀 불이 맺힌 손가락을 손등이 보이게 내밀고 한번 해 보라는 듯 앞뒤로 까딱거렸다.
“어디 한번 지껄여봐.”
“이, 일단 이 불 좀….”
몸속에 수분이 증발할 정도로 뜨거운 불길에 입이 바싹 마른다.
말을 할 때마다 열기가 공기에 섞여 폐에 들어와 호흡이 통증으로 변한다.
에스더는 내 상태를 느끼고 곧바로 불을 지워주더니, 다시 팔짱을 껴 가슴을 받쳐 들어 올렸다.
“납득이 안 가면 입 지진다? 어차피 촉수 괴수 되면 필요 없으니까. 입만 지지는 게 아니라, 팔다리도 전부 태워서 끌고 갈 거야.”
“하아…하아…하아….”
일단 시간은 벌었다.
입을 지지고 팔다리를 태워버리겠다는 게 난폭하고 오싹하게 들리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죽이지 않겠다는 말에서 묘한 상냥함이 느껴진다.
퀴즈를 전부 푼 팬이라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많이 봐 주는 건가.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폐가 찢어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에스더를 힐끔거렸다.
…에스더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다.
팔짱을 끼고 있으니 반응이 조금 늦어질지도 모른다.
얘기를 들어주려고 가만히 날 노려보고 있으니…최면어플을 내밀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가 비전폰을 빠르게 뽑아들었다.
“총이면 가만 안 두려고 했는데…어디 연락이라도 하려고?”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에스더의 꼬리가 내 손을 다시 잡았다.
갑자기 손이 안 들려서 보니 어느새 꼬리가 감겨있었다.
말도 안 되는 반응속도다.
“가족한테 작별인사? 1번이 그러긴 했는데.”
“그, 그게…더우니까 땀에 젖어서…고장날까 봐.”
“아? 바보야? 촉수 괴수 되면 이제 안 쓸 거잖아.”
팔짱을 끼고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꼬리를 생각 못 했다.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고 움직임도 정교하다.
지금은 최면을 걸어도 눈앞에 비전폰을 내밀기 전에 피해버릴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상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나를 변호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얘기를 많이 해서…그레이프나 다른 마법소녀가 찾아올 때까지 시간을 번다.
나는 에스더의 보지를 만졌던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최대한 억울해 보이도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퀴즈 다 맞췄잖아요? 퀴즈 맞히면 원래 상품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문제 맞히면 소원 들어준다면서!”
“소원 들어주고 있잖아? 유성우의 소원은….”
“알고 있어요, 유성이 전부 타오를 때까지 에스더와 영원히 함께…그치만 그건 유성우 팬클럽의 얘기지 저 개인의 소원은 아니잖아요? 상품도 못 받았고…소원 들어준다고 했고!”
“흐응….”
그럭저럭 말은 되는 얘기에 에스더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입술이 살짝 일그러지며 뭔가 이상하지만 그렇긴 하다고 생각하는지 고개가 살짝 끄덕여진다.
“에스더 님이랑 함께하는 거? 당연히 유성우의 소원이죠, 그런데 그건 에스더님이 저를 촉수 괴수로 만들면서까지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도 당연한 거고 당연히 같이 가는 거죠. 안 그래요?”
“…그래?”
“그럼요, 그러니까 그건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라 당연한 걸 같이 하는 것뿐이니까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죠. 에스더님하고 같이 있기 위해서 악수회 입장권 구매하거나 팬클럽 응원의상 구매하는 걸 선물이라고 하진 않죠?”
“으음….”
촉수 괴수가 된다는 건 같이 있을 수 있도록 옷차림을 바꾸는 거랑 다를 바 없다.
그 옷을 만드는 건 고생스럽겠지만, 팬도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 옷을 받는다.
에스더가 팬을 촉수 괴수로 만드는 건 힘들어도 팬은 그만큼 인간인 자신을 잃게 되니 충분한 대가를 치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가 멋대로 소원을 받은 건 잘못이지만, 에스더 님이 소원 들어주겠다고 했잖아요? 에스더 퀴즈는 원래 다 맞추면 상품을 주는 게 전통이고!”
“그…렇지?”
“제 소원이 에스더 님 보지 보는 거랑 만지는 거였어요. 그래서 봤고, 그래서 만졌습니다.”
“흐으으응?”
목이 말랐는데 눈앞에 물이 있어서 조금 마셨다.
마시고 싶은 게 소유주가 있는 물이었긴 했으나, 소유주가 뭐든 마셔도 좋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내 논리에서 허점을 찾지 못한 에스더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진다.
“저는 에스더 님이 갑자기 멈춘 게 제 소원을 간파하고 모른 척해주는 줄 알았던 것뿐이에요! 마법소녀는 감각이 예민하다는 얘기를 에스더님 방송에서 들은 적이 있어서!”
“…내가 만져도 좋다고, 봐도 좋다고 하는 줄 알았다?”
“전부터 계속 보고 싶었던 게 눈앞에 있는데 다리도 벌리고 서 있고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고…애초에 촉수 괴수 때문에 최음가스를 얼마나 들이마셨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참아요?”
에스더는 내 말을 듣고 곧바로 당당하게 벌리고 서 있던 두 다리를 모았다.
두 발을 모아 일자로 선 에스더의 얼굴이 아주 조금이지만 붉어진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