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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127화 (127/299)

< 127화 > 접근 (7)

위급한 상황에 급하게 생각해내 건 최면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저항력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커다란 거부감을 일으키는 최면이 조금 우회해서 다시 건 정도로 가볍게 뚫어버렸다는 점이 놀랍다.

정신에 벽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을 정면으로 충돌해 지나가려 하는 것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결과에 도착하게끔 잘 유도하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인가?

그보다는 벽을 부수려 하지 않고 문을 만들어 지나가는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최면을 걸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이게 처음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대로 조종하거나 유도했다는 건 여전히 같지만, 기억을 지우거나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끔 시키거나 하는 게 아니라…지금 필요하고, 해야 할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도록 최면을 걸었다.

이런 것도 가능한 거였구나.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게 아닌, 해야 할 행동을 가속시켜주거나 보조, 지원해주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레이프는 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개 형태의 괴수를 상대했다는 사실에 전혀 기뻐하지 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복잡한 듯 검 끝이 작게 떨리며 긴 한숨이 계속된다.

무언가 고민이 생긴 것 같은 모습이지만, 상황은 그레이프에게 고민에 빠져 있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여기에요! 살려주세요!”

“도와줘! 엄마!”

“읏…!”

마견과 촉수견이 들어왔던 차단벽에 출입문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린다.

엉엉 울며 열심히 도망치는 듯한 남자아이와 여자가 울먹이며 도움을 구걸하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되는 처절한 목소리다.

말도 안 된다.

철로에는 사람이 없다.

“살려줘! 살려줘! 아아악!”

“싫어! 싫어!”

“헤엑…헥…헥…헥!!”

어두운 철로 너머에서부터 들려온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자세히 들어보면 동굴에 울린 목소리 사이사이에 개가 헐떡이는 숨소리가 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이 목소리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엘리트 괴수라는 이유로 훈련소에서 질리도록 교육받은 괴수 중 하나다.

자신이 쫓던 피해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하는 기분 나쁜 괴수가 사람의 흉내를 내며 다가온다.

두 발로 걷고, 개의 머리를 하며 높은 지능을 지닌…개와 사람이 합쳐져 있는 듯한 괴물이다.

“크르르르…!”

어둠 속에서부터 사람 목소리를 내며 다가온 늑대인간이 출입문에 커다란 발톱을 걸고 커다란 몸을 안으로 비집으며 들어왔다.

한 마리가 아니다.

다섯, 여섯…계속해서 늘어난다.

“웨어 울프?! 설마 브리콜라카스…?”

브리콜라카스는 네거티브 간부의 이름이다.

늑대인간은 네거티브의 괴수 중에서도 목격하는 경우가 굉장히 적은 괴수 중 하나다.

네거티브의 간부 중 하나인 라이칸스로프, 브리콜라카스가 직접 데리고 다니는 엘리트 괴수로 촉수견을 애완견처럼 다룰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순수하게 브리콜라카스만 따라다니며, 단일 개체로는 출현하지 않는 괴수이기도 하다.

여기에 웨어울프가 나타났다는 얘기는 네거티브의 간부가 가까이에 있다는 얘기와 동일하다.

하지만…브리콜라카스는 근처에 없다.

내가 왜 이런 걸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들에게서는 그쪽 진영의 느낌이 나질 않는다.

자세히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늑대인간과는 조금 다른 특징이 보인다.

머리에 촉수가 박혀 꿈틀거리며, 그럴 때마다 눈동자가 기괴하게 비틀린다

설마 촉수견처럼 하이브리드 괴수 같은 건가?

웨어울프가 촉수와 합쳐졌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촉수견처럼 괴수와 감염체가 합쳐지는, 괴수가 감염체의 육체를 장악해 주도권을 잡는 건 이미 뉴스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괴수가 괴수를 장악하는 건 들은 적이 없는 얘기다.

네거티브의 상위종이 하위종을 삼킬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동급이라 할만한 개체가 서로를 삼키거나 합쳐진다는 건…적어도 나는 모르는 현상이다.

작은 촉수가 머리에서 꿈틀거리는 웨어울프가 이상한 행동을 하며 그레이프에게 다가온다.

한 손을 입안에 넣고 콰득콰득 씹어대며 이빨 자국이 난 손에서 검은 피를 줄줄 흘린다.

그레이프의 트라우마를 알고 자극해보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다.

“안 무서워….”

“크르르르…엄마…! 엄마…! 아파! 아파!”

“하, 할 수 있어…! 해야 해!”

그레이프는 곧바로 마력을 파장처럼 뿜어내 주변을 탐색하더니, 검을 고쳐잡고 방패를 앞에 세웠다.

얼마나 많은 수가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한 그레이프의 표정이 굳는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와 있다.

어차피 간부도 아닌 괴수 따위가 그레이프의 상대가 되지는 않겠지만…문제는 나다.

그레이프는 시간만 있으면 괴수들을 전부 죽여 버릴 수 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를 온전히 지키지는 못한다.

발톱 끝이라도 내게 닿으면 그대로 내 몸은 반 토막이 되어 잘려나간다.

그 사실을 그레이프도 깨닫고 있는 건지 내 쪽을 힐끔거리며 긴장하고 있다.

“앵거…안아도 되요?”

“응?”

“다른, 다른 음흉한 의미가 아니고…응원해달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 비상용 쉘터로….”

지하철의 비상용 쉘터는 탑승구역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소형 쉘터를 얘기한다.

긴급상황 시에 시민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입장은 가능하지만 나올 때는 마법소녀가 열어주거나 방위군이 와서 열어줘야만 한다.

나를 완벽히 지킬 자신이 없으니, 안전한 곳에 잠깐 두고 오려 한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잠깐만, 잠깐만 혼자 있으면…전부 죽이고 올게요!”

“알았어.”

혼자서 거기까지 이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긴 하나 그레이프가 나를 안고 움직여준다면 얘기는 다르다.

늑대인간이 아무리 빨라도 그레이프보다 빠르지는 않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두 팔을 내밀며 빨리 안으라는 자세를 취했다.

“아, 아, 안아도 돼요?”

“응.”

“만질…만질게요? 진짜 괜찮죠? 허리에 손댈게요? 허리 안 아파요?”

“빨리 해!”

자기가 안아도 되냐고 물어봐 놓고, 이상하게 하나하나 허락을 구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댄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체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소극적인 그레이프의 모습에 나는 짜증을 내며 먼저 다가가 가슴을 맞대며 팔을 허리에 둘렀다.

허리를 제대로 잡게 하려고 손을 잡아주자 그레이프가 내 손을 꽉 잡는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게 느껴진다.

“하아…하아…!”

늑대인간의 머리를 밟고, 탑승구역을 지나 계단을 미끄러 오르듯 달리고 있어서 숨이 찬 게 아니다.

그레이프의 이상한 숨소리가 복잡한 감정에 섞여 흘러나온다.

죄책감과 충동, 흥분 사이사이에 생각의 파편이 섞여 있다.

이대로 계속 도망치면 계속 안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쉘터에 빨리 가야 하는데 쉘터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

안 떨어지려고 팔로 옷자락 꽉 잡는 거 귀여워.

이거 설마 진짜 그레이프가 하고 있는 생각 같은 건 아니겠지?

아닐 거다…빨리 나를 안전한 곳에 둬야 하는데 쉘터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니…그레이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아까부터 이상한 감각이 계속되는데, 이것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있을 리가 없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가 먼지처럼 바스라져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잠깐만요…! 개폐 승인 번호가….”

이미 괴수 경보로부터 시간이 상당히 지나며 자동으로 열려있는 시간이 지나버린 쉘터의 문에서 키 패드를 슬라이드시켜 비밀번호를 입력한 그레이프가 손을 대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마법소녀의 마력을 감지한 쉘터 문이 덜컹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커다란 금고 같은 내부가 드러난다.

그레이프는 익숙한 모습으로 쉘터 안에 나를 놓은 뒤 곧바로 문을 폐쇄시키기 시작했다.

“살려줘! 살려줘!”

“어디야! 어디, 어디 있어!”

문을 여는 건 빠르지만, 닫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조금씩 닫혀가는 문 너머에서 그레이프를 쫓아온 늑대인간들의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린다.

그레이프는 잠깐 뒤쪽을 힐끔거리더니, 점점 닫혀가는 쉘터 철문의 틈새를 통해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바로 올 테니까, 전부 없애고 빨리 올 테니까…조금만 기다리고 있어요? 무서워하지 말고…무슨 일 있으면 저, 저…전화! 하고!”

“전화…?”

“지원 요청해 둘 테니까! 간부 나타나도 여기 절대 못 건드리게 할 거니까! 빨리 올게요! 바로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마요!”

완전히 닫혀가는 철문 틈새로 그레이프가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약간 남은 틈새에 늑대인간의 손이 끼이기라도 하면 괴수의 몸에 둘러쳐진 방벽 때문에 문이 닫히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잠깐 사이에 가까이 온 늑대인간들을 그레이프가 쉘터에서 조금 먼 곳으로 유인한다.

“벌써…! 이쪽으로 와! 이쪽으로 오라고!”

“여기야? 여기야!”

“아파! 아파! 헥! 헥…!”

늑대인간과 그레이프의 목소리가 멀어지며, 서서히 쉘터 문이 완전히 닫혀간다.

결국, 쉘터 문이 잠기고, 나는 붉은 등이 점등된 내부에 혼자 남게 되었다.

밖에서 혼자 싸우고 있을 그레이프가 걱정되지는 않는다.

잠시 기다리면 그레이프가 늑대인간을 전부 죽여버리고 돌아올 것이다.

혹시라도 네거티브의 간부가 나타날까 봐 지원요청까지 한다고 했으니, 더더욱 안심이다.

갑자기 습격에 휘말려서 위험해졌었지만…이번에는 진짜로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후우우….”

비상탈출 포트로 탈출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쉘터 안에서 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이상해 지고 있던 상황도 다행히 잘 해결된 것 같고…이번에는 정말로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어두운 쉘터 안에서 진정하고 나니, 이상한 생각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고개를 쳐든다.

아까 전화 얘기를 할 때 묘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이미 나는 그레이프를 수신 거부 해 놓은 상태다.

아까 전화를 끊고 나서 뭔가 수신 거부를 했다는 걸 알게 될만한 일이 있었나…?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그레이프가 나한테 전화를 계속 걸어보고 걸리지 않자 불안해하며 비전넷에 수신 거부에 대해서 검색해보는 모습이 떠오른다.

안전한 장소에 혼자 남게 되자 잠시동안 마취된 것처럼 잊고 있던 피로가 몰려들며 잊고 있던 통증과 허기가 느껴진다.

근육통도 상당하지만, 두통과 함께 느껴지는 이 괴상한 굶주림이 꺼림칙하다.

배가 고픈 것과는 다르게, 뭔가 좀 더 중요하지만 먹는 거로는 채울 수 없는 게 부족해진 느낌이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응…?”

그때, 갑자기 닫혀있는 쉘터 문에서 개폐장치가 열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치이익 하고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유압 장치가 움직이며 쉘터 안을 울린다.

늑대인간들을 몰고 다른 곳으로 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전부 죽이고 온 건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다.

“아아~열리는 거 답답해! 비밀번호도 그대로, 열리는 속도도 그대로…개선 할 생각이 없는 거야?”

“어?”

그런데 당연히 그레이프라고 생각한 내 귀에 그레이프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귀여우면서도 난폭해 보이는 목소리와 함께 불길하면서도 따뜻한 마력이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피어오른다.

열리고 있는 문 틈새를 통해 새어 나오는 불꽃처럼 붉은빛의 마력이 쉘터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선 블레이드 Sun Blade.”

태양처럼 뜨거운 검날이 두꺼운 철문을 초콜릿처럼 녹이며 잘라낸다.

붉은색으로 물든 사람 한 명 두께의 철문이 조각조각 나고, 타오르는 열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려진 틈새로 새하얀 손이 들어온다.

날카로운 손톱에 갑자기 타오르는 불길이 철문을 녹여 붉은 카펫이 바닥에 깔린다.

쉘터 안이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라 내 이마에서 땀이 흘러나온다.

더워서 나오는 땀과 식은땀이 섞여 오싹한 감각이 척추를 할퀴고 올라간다.

쉘터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건 그레이프가 아니다.

지원을 온 다른 마법소녀도 아니다.

“하아아…그레이프 저거 왜 갑자기 개 안 무서워해? 귀찮게!”

“어…어…어….”

기억과는 다른 모습이 조금씩 눈앞에 드러나며 어두운 쉘터 안을 밝게 비춘다.

날카로운 뿔에 붉은 머리, 본 적 없는 날개가 허리춤에서 펼쳐지고 기다란 꼬리가 뱀처럼 흔들리며 시선을 잡아끈다.

촉수의 점막 같은 것으로 되어있는 박쥐 같은 날개를 천천히 접은 에스더가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손을 들어 올리고는, 정말 반갑다는 것처럼 손을 흔든다.

“안녕, 124번! 오랜만이야!”

활짝 웃는 얼굴이 갑자기 비틀리고 일그러지며, 살벌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천적을 만난 것처럼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에스더는 가만히 멈춰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날카로운 손톱이 나 있는 손으로 목을 잡아 쥐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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