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접근 (6)
촉수들이 움찔거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기괴한 신호를 먼 곳으로 쏘아 올린다.
아주 멀리, 거리의 개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딘가로 신호가 보내진다는 것까지 느꼈을 때, 신호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그레이프의 몸에서 폭력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이…이…!”
순수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높은 농도의 부정적인 감정이 그레이프의 내부에서부터 끓어올라 내 몸을 데운다.
마법소녀로서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것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걸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그레이프의 검 끝에서 마력의 칼날로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진 검 끝에서 요동치는 마력이 눈앞에 보이는 촉수 괴수들을 찢어발겼다.
“하악! 하악…! 하악…!”
나는 숨을 헐떡이는 그레이프에게 안겨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고 있었다.
그레이프가 갑자기 강해진 것처럼 촉수 괴수들을 단번에 없애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가 너무 많아 힘겨워하고 있었는데 장난이라도 치고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전부 베어 죽여버렸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마법소녀에 대해 자세히 안다고 자신하는 만큼, 이게 그레이프가 가지고 있을 만한 수준의 힘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강한 건 애쉬 정도다.
아니, 애쉬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왠지 모르게 애쉬가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왜, 왜 안 간 거에요! 위험했잖아요!”
칼날 촉수에 상처를 입을 뻔한 나를 끌어안은 그레이프는 울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화를 냈다.
탈출 포트에 왜 탑승하지 않았는지, 로제는 어디로 갔는지, 왜 내가 남아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촉수 괴수가 위에서 온 것 같아서.”
“위에서…그러면! 그러면 다른 마법소녀를 두고 올라가면…!”
몇 마디 말만으로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그레이프가 로제와 똑같은 말을 한다.
어떻게든 나를 위험한 곳에 두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떻게든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낼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레이프가 보여준 광경에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그레이프의 옆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는 확신을 얻고 있었다.
“내가 올라가면, 다른 마법소녀들은 누가 지켜?”
“읏…!”
나는 그레이프의 흔들리는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말했다.
이것만큼은 내가 마법소녀가 나타나기도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난 마법소녀가 죽는 건 싫어.”
“아, 안 죽어요…조금, 고생할 뿐이지…여기 있으면 앵거가 위험해 진단 말이에요!”
“지켜줄 거잖아?”
“혹시라도 또 제가 실수하면…애, 앵거한테는 매번 실수만….”
“내가 그레이프 옆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옆에 온 거야.”
나를 가만히 껴안고 있는 그레이프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두근거리는 소리가 몸을 통해 들린다.
그레이프의 시선이 내게 고정된 채 우울해 하는 눈빛이 복잡한 감정을 품으면서도 뜨겁게 반짝이는 게 보인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처럼 젖은 눈이 열기에 타올라 눈물을 날려버린다.
“너무해요…이런 거, 앵거는, 매번, 매번…!”
어린 시절에 마법소녀나 히어로가 나오는 만화를 봤을 때부터 가지게 된 생각은,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뒨 뒤에도 계속되었다.
마법소녀가 죽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래피드에 대해서 알게 된 뒤에는…그 생각이….
…잠깐만.
이상하다.
왜…좋아하는데 상처입히고 싶어하는 걸까?
래피드를 좋아하니까, 래피드가 상처 입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레이프도 마찬가지로 마법소녀이니…좋아…하는데?
래피드의 처녀를 빼앗아, 힘을….
처녀를 빼앗으면, 마법소녀로서 더욱 강하게 성장할 수 없게 되는데?
“윽….”
“…왜, 왜 그래요? 또 아파요?”
“아니, 머리가 계속…뭐였지?”
그건…그건…너무 잔인하고, 말도 안 된다.
래피드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내 손으로 남기게 된다.
그건…최고다.
래피드에게 절대 잊히지 않게 되고, 나도 래피드의 가장 소중한 것을 차지하게 된다니.
…아까부터 내가 왜 계속 이러는 거지?
두통이 심해졌다가 다시 가라앉으며 의문이 사라진다.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그레이프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내 얼굴을 향한다.
“빨리 검사 받아봐야 돼요! 여기에서 나가서…!”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이상한 거 없어.”
“뭔가에 감염당한 거면 어떡해요!”
“정신공격 괴수나 감염 괴수는 본 적도 없….”
그레이프의 말에 반박하던 그때, 눈앞에 기분 나쁘게 생긴 괴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견의 몸에 촉수 괴수를 등에 태운 형태의 괴수, 촉수견이다.
대체 언제 접근한 것인지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그레이프를 습격하려고 하고 있다.
“뒤!”
“읏!”
그레이프는 곧바로 뒤를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러 앞으로 세워져 날아오는 촉수를 베어냈다.
날카로운 촉수가 검에 잘려나가고도 추진력을 잃지 않고 날아오다가 그레이프가 휘두른 방패에 맞아 떨어진다.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는 위치였지만 혹시라도 내게 닿을까 봐 방패로 하나하나 쳐내고 있다.
“히익?!”
방패를 든 그레이프는 곧바로 자신을 덮친 촉수의 본체를 공격하려다 그 형태를 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어울리지 않게 굳은 모습을 보인다.
겁을 먹고 있다.
촉수견은 아무리 강해 봐야 중위권 마법소녀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다.
그레이프가 이렇게까지 겁을 먹을 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레이프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
“개, 개, 개…!”
그레이프는 촉수견에게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움찔거렸다.
방패도 제대로 가져다 대지 못해 칼날 촉수가 그레이프의 몸을 쉴 새 없이 때린다.
상위권 마법소녀 중에서도 특출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그레이프의 몸에 상처를 내지는 못했지만, 중위권 마법소녀보다 좀 더 강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촉수견 한 마리가 그레이프를 일방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정신 차려!”
“읏…! 윽…! 으으…!”
그레이프의 개 공포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건 정도가 좀 심하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마견한테도 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움츠러들어 있다.
로제도 상대할 수 있는 촉수견한테 상위권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그레이프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칼날 촉수에 온몸을 농락당하며, 촉수견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흠칫 놀라며 몸을 비튼다.
그러면서도 내가 다칠까 봐 도망치거나 비켜서지 않고 울먹이면서 온몸으로 막아선다.
“싫어…! 개 싫어! 싫어!”
이대로는 안 된다.
더 안전해 보이는, 더 강한 마법소녀인 그레이프를 선택했는데 개 공포증 때문에 겨우 촉수견 한 마리한테 이렇게 당하다니.
이러다가 촉수견이, 마견이 몰려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레이프, 눈 떠!”
“읏…! 흐윽…! 으….”
나는 그레이프가 내 목소리에 반응해 잠깐 눈을 뜬 사이 최면어플을 실행했다.
잠깐 사이에 패닉에 빠진 그레이프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고, 그레이프의 등을 칼날 촉수가 때리고 잡아당긴다.
무의식 상태에서도 내 앞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듯 꼼짝도 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개를 더는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싫어어어어! 무서워어!”
곧바로 그레이프의 개 공포증을 최면으로 없애버리려던 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격렬한 거부반응에 깜짝 놀랐다.
머리 위에 고리가 떠오르는 저항력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건 저항도 필요하지 않은 수준의 완전한 거부다.
그레이프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져 나오며, 그레이프가 술자리에서 해줬던 얘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 커다란 개가 손을 물고 놔주지 않은 채 달려, 사냥감 취급당하듯이 끌려다녔다.
손등에도, 손바닥에도 상처가 크게 남아 한동안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체육을 좋아하고 체조, 발레를 즐겨 했던 만큼 그때의 좌절감은 그대로 개에 대한 공포가 되었다.
개의 그림자나 실루엣 정도는 괜찮지만, 개가 눈앞에 있으면 손을 물리고 끌려갈 때의 통증과 공포가 잊혀지지 않고 떠오른다.
그러면 대체 어떤 최면을 걸어야 하지?
개를 무서워하지 않게 단순하게 건 최면은 실패했다.
트라우마에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간 게 문제인가?
통증과 공포가 떠올라 무서운 거면 그게 느껴지지 않는 최면을 걸면 되나?
“워우우우우!”
그레이프의 팔다리를 감싼 촉수견이 온 힘을 다해 그레이프를 잡아당긴다.
그러다가 자기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울음소리로 동료를 부른다.
다른 촉수견이, 마견이 몰려온다.
시간이 없다.
“내가 손을 잡으면 한동안 통증이나 공포가 느껴지지 않고 행복감에 빠진다.”
일단 가장 먼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든다.
적당한 조건을 걸어 언제나 발동되는 최면이 아니게끔 제한을 걸어둔다.
“개가 그림자로, 온 몸이 검고 흐릿하게 보인다.”
감각에 제한을 걸어, 그레이프가 받아들일 만한 형상으로 보이게끔 개를 보았을 때 그레이프에게 입력되는 값을 바꾼다.
“나를 지켜.”
마지막 최면은 단순한 주문 같은 것이다.
나를 지키려는 최면을 걸어두면 지키겠다는 최면이 우선시되어 개 형태의 감염체나 괴수가 무서워도 행동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떠오른 최면을 전부 건 나는 곧바로 최면어플을 종료했다.
“으읏…싫어…! 싫어!”
이성을 되찾은 그레이프는 촉수견의 촉수가 팔다리에 감겨있는 걸 확인하고 뒤를 힐끔거렸다가 그대로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들바들 떨며 공포감에 젖어 패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면에 걸려 의식을 잠시 잃었단 사실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려 당황하고 있다.
“그레이프, 진정해.”
나는 곧바로 그레이프의 손을 잡고 그레이프를 진정시켰다.
무서운 기억도 떠오르지 않고, 통증을 잠시 잊게 해준다.
우연하게도 내가 잡은 손은 그레이프가 개에게 물렸을 때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쪽의 손이었다.
“하아…하아…어…? 어…?”
점차 진정하게 된 그레이프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이성을 되찾은 그레이프가 당황하며 팔을 잡아당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촉수에 꽈악 붙들려 있던 팔에 마력이 타오르며 촉수를 지져 터트려버린다.
그레이프는 내게 잡힌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빠르게 진정해가며 가만히 멈춰 있었다.
“괜찮아, 안 무서워.”
“애, 앵거…? 어?”
“그레이프.”
“읏…윽…!”
점점 차분해졌다가 개 공포증과는 다른 의미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그레이프가 침을 꿀꺽 삼킨다.
가만히 자신을 진정시켜주는 내게 눈을 맞추고 숨을 고른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빠르게 뛴다.
“무서워하지 마.”
두근두근, 두근두근 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가만히 내게 고정된 눈이 뜨겁게 빛나며 젖어들어 간다.
푹 빠져들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내게 고정되어있는 눈동자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아아아…진짜아아!”
갑자기 내게서 돌아선 그레이프의 검이 촉수견을 단번에 베어 갈랐다.
반응도, 인식도 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촉수견을 처리하자 뒤이어 마견과 촉수견이 떼를 지어 나타난다.
그레이프가 열어둔 철로와 이어지는 문을 통해서 마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벌레를 쳐내는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에 둘로 나누어진 마견이 검은 피를 쏟아내고, 세로로 찢어져 움직일 수 없게 된 촉수견의 촉수가 꿈틀거린다.
다행히 최면이 잘 들어갔는지 더는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싸우는 그레이프에게 마견과 촉수견은 상대도 되지 않았다.
마견과 촉수견의 시체가 순식간에 쌓인다.
“하아…하아…하아….”
순식간에 개 형태의 감염체와 괴수를 전부 검으로 베어 죽인 그레이프는 가만히 고개를 내리고 숨을 헐떡이더니,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손잡이를 꽈악 쥐었다.
황당하면서도 기쁘고, 그러면서도 또 어이없어한다.
복잡한 감정이 몸에서부터 흘러나와 미묘한 맛을 자아낸다.
“그렇게 노력해도, 그렇게 힘내도 못 했는데…평생, 평생 무서웠는데….”
그대로 가만히 멈춰서 있던 그레이프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그레이프에게서 나오는 감정의 맛이 점차 이상하게 바뀐다.
“지키려고…한 것만으로…이 정도로, 이렇게까지…이게 뭐야아….”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이고,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인 혼란스러운 감정이다.
뭐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이상하게도 그 온도만큼은 느껴진다.
감정을 맛으로 느끼고 있는 이 기괴한 감각이 데이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겁다.
“나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