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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124화 (124/299)

< 124화 > 접근 (4)

아르나를 본 순간부터 갑자기 그레이프의 몸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끈적끈적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그레이프의 정신이 과도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부정적인 감정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안 될 감각을 자극한다.

약간 씁쓸하면서도 짜고 단 맛이 함께하는 후회의 맛에서 자신의 행동이 전부 오해였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감칠맛처럼 숨겨져 느껴진다.

처음부터 오해였고, 아무것도 전달된 게 없다는 공허함은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하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괴롭히기만 했다는 꿀처럼 끈적한 죄책감, 지금까지 자신이 한 행동과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를 종잡지 못하는 혼란의 뒤섞인 크림 같은 맛이 내 안에 충치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농도 짙은 단맛을 풍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래도 아닐 거라는 일말의 희망이…아주 약간의 쓴맛이 단맛의 풍미를 배가시킨다.

아주 약간의 희망이 섞여 있는 진한 절망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며 형언하기 힘든 굉장한 맛을 자아낸다.

모든 음식이, 쓸모없는 미각이 마비되어 버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맛이다.

흐려진 눈빛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성을 유지하는 그레이프의 모습을 보고 확신하게 된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여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멈추지 못하게 된 마법소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딴 별것도 아닌 감염체나 소형 괴수 같은 건 필요 없다.

확실하게 데려갈 수 있는 녀석이 와야 한다.

“윽….”

또다시 두통이 느껴진다.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일어난다.

무서울 정도로 허기가 지며, 체력이 크게 소모된다.

너무 많이 사용해버려서, 힘이 부족하다.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이 대체 뭐지?

기억에 구멍이 난 것처럼 뭔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지만, 이상하다는 건 당연하다.

당연하니까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다.

머리가 꼬이는 기분이다….

불쾌감 속에서도 마음이 강제로 진정되며 필요 없는 기억이 사라진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위험해졌다는 사실이다.

주변엔 더 이상 마견이나 소형 괴수가 없는 것 같지만…이게 끝이 아니다.

더 온다.

더 오게 해 버렸다.

“그레이프…걔 좀 업어줘, 빨리 도망가야 해.”

“네?! 네…으읏….”

나는 당장에라도 울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는 그레이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로제는 시에나를 업고 있고, 나는 가장 가벼워 보이는 루이를 업는다.

그레이프는 내가 아르나를 업어달라고 하자 묘하게 복잡한 감정을 흘리더니 하기 싫은 것처럼 아르나를 잡아 들어 올렸다.

마법소녀인 그레이프가 다른 마법소녀를 구출하는 걸 꺼린다니, 이상한 생각이지만…대체 어째서인지 정말로 그렇게 느껴진다.

“빨리 가자.”

로제와 그레이프가 모든 괴수들을 죽이고 난 뒤 나는 묘하게 푹신한 시쳇더미를 밟으며 어두운 철로 옆을 걷기 시작했다.

등에 업은 루이의 몸이 상당히 무겁다.

마음 같아서는 마법소녀인 로제와 그레이프중 한 명에게 두 명을 업어달라고 하고 싶지만, 둘은 괴수가 나타나면 곧바로 반응할 수 있게 한쪽 손이라도 비워 둬야만 한다.

“그레이프, 이것 좀 들어줘.”

“…네.”

내가 들고 있던 방패는 무거워서 그레이프에게 넘겼다.

그레이프는 내게서 방패를 받아 한 손에 가볍게 차고 한쪽 팔로 아르나를 안아 어깨 위에 둘러업은 채 주변을 경계하며 앞서 걸어갔다.

역으로 걸어가며 그레이프의 한쪽 어깨에 업힌 아르나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르나도 그렇고 시에나, 루이도 전부…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지금은 방해만 되고 있다.

쓸모없는 마법소녀 같은 건 버려두고 가고 싶지만…의심받아서는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말을 잘 듣는 시에나나 루이는 몰라도 언제나 반항만 하던 아르나를 향하는 이 불쾌한 감정은 참을 수 없다.

반항하면서 잘난 듯이 말하더니 짐만 되고 있다.

지금도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저렇게 방해만 되고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레이프가 왔으니 이제는 필요도 없는 것들인데…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아르나 저년 만큼은…두고 가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하지만…이렇게까지 싫어할 필요가 있나…?

이딴 짓을, 내가 한다고?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지만, 두통이 생긴다.

내가 살아야 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으니 미워하는 건 당연, 하다.

…실수인 척 슬쩍 떨어뜨려서 두고 갈 수 없을까?

나한테도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저항만 하고 반항만 하고 짜증만 나고…짐덩이인데다가 도움도 안 되는 마법소녀라니 정말로 쓸모없다.

차라리 이참에, 이대로 괴수한테 끌려가게 해서…처리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저항할 수 없는 상태니까…슬쩍 떨어뜨리고 가면 그대로 아무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음액에 절여져 망가져 버릴 것이다.

“우웁….”

몸속에서부터 거부반응처럼 구역질이 일어나지만,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머릿속이 시끄럽게 울리며 이상한 단어가 떠오른다.

해야 한다…기회가 왔을 때 해야 한다….

그레이프에게 말해서 아르나랑 루이를 바꿔 들자고 하면…내가 아르나를 들고 갈 수 있다.

조금 있다가 괴수들이 올 때 실수인 척 슬쩍 떨어뜨리면 처분할 수 있다.

나는 뱃속에서 올라오는 역겨움을 참으며 그레이프를 불렀다.

“그레이프.”

“네…?”

“서로 바꿔 들지 않을래…요? 그레이프는 뭔가 나오면 싸워야 하니까…가벼운 애를 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레이프는 내 말을 듣고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가 되지만 내키지 않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게 주는 것도 싫고, 자신이 업고 가는 것도 싫다.

나와 같은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이 동일한 파동을 일으킨다.

“애…앵거…씨는, 약하니까…이런 무거운 여자는 못 들지 않을까요?”

“…그레이프 말대로 내가 짐덩이인 건 맞긴 하지만, 짐덩이니까 짐을 들고 가는 게 나을….”

“짐덩이라는 말은 안했어요! 짐 아니에요!”

부들부들 떨며 말하던 그레이프가 깜짝 놀라며 내 말을 끊었다.

그레이프는 그대로 점점 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리더니 콜라처럼 차가우면서도 살짝 오싹해지는 단맛이 가득한 우울감을 흘리며 말했다.

“제가, 제가 또 말실수 한 거에요…전부….”

그대로 입을 다물고 얼어붙은 그레이프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레이프에게 관심을 주려고 해도 관심이 잘 가질 않는다.

이상한 위화감에 뒤섞여있는 지금에서야 느끼는 이질감이다.

묘한 감각에 아무 말 없이 있자, 옆에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로제가 한쪽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그…저기, 그레이프 언니 때문에 걱정이신 거면…제가, 아르나를 들까요? 아르나보다는 시에나가 좀 더 가벼우니까.”

로제가 그레이프와 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느끼고 대책을 냈다.

그레이프와 내가 아는 사이라는걸 알고 나서부터 말실수를 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건지, 말을 꺼내면서도 무척 조심스러워한다.

로제의 말대로 하면 확실히 그레이프가 전투하는 데에 방해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는 내 목적대로…아르나를 버리는 건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아르나랑 사이도…안 좋으셨으니까….”

“…윽.”

머리를 조여오는 두통과 함께 로제의 말이 심장을 찌른다.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기라도 한 건가 하는 위기감이 치솟는다.

아르나랑 사이가 안 좋아서, 아르나를 몰래 버리려는 걸 알아챈 건가?

하지만…로제에게서 나를 의심하는 듯한 맛은 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아르나 에요?”

“…맞아.”

“…사이가 안 좋다고요?”

로제의 말을 들은 그레이프의 눈빛이 이상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울감이 훨씬 강했는데, 지금은 혼란이 더욱 강하다.

그리고 씁쓸한 맛도 강해지며…희망이 갑자기 커지는 걸 알 수 있다.

“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사이가 안 좋다는 거죠?”

“…그렇게까지 엄청 안 좋은 건 아니고 그냥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에요.”

“별로…좋아하지, 않는다…?”

그레이프의 반응이 점점 더 이상해진다.

내가 마법소녀를 해칠 거라고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다.

혼란, 희망, 기대, 망설임…상당히 복잡한 맛이 이리저리 튀며 오묘하게 긍정적인 감정이 잘못 보관해서 식초가 되기 직전의 술 같은 맛을 낸다.

“앵거도…나처럼 마음만…? 잘 안 된 걸까? 아직 안 늦었어…?”

이상하게 긍정적이게 변한 그레이프의 감정이 점점 살벌하게 피부를 찌른다.

내게 무서운 기운을 쏟아내거나 뭔가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순수하게 마법소녀의 마력 자체가 아프다.

몸살에라도 걸린 것처럼 어깨가 무겁고 관절이 시려온다.

위기감을 착각한 내장이 끈적하고 달콤한 기운을 몸속에 가득 채우며 고통을 마취시킨다.

그러면서도 마법소녀의 마력이 강해진 걸 느낀 몸이 멋대로 움찔거리며 그레이프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그러자 표정이 점차 풀어져 가던 그레이프가 갑자기 다시 울상을 지었다.

감각이 점점 더 비틀리며, 그레이프의 감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감정에서부터 생각이 조각조각 떨어져나와 흐릿하게 들려온다.

그치만…별로 안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더…심각하니까….

그레이프에게서 흘러나오던 희망이 갑자기 실망으로 바뀐다.

“하아아….”

한숨을 내쉰 그레이프에게서 생각이 안개처럼 흘러나온다.

같은 인간, 같은 감정, 같은 감각…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그레이프와 일시적으로 연결되게 해 준다.

묘한 공통점이 연결되어 생각이 조각조각 나 들려온다.

[진짜로 사실 다른 마법소녀가 좋다는 얘기였는데 내가 착각한 건 아니겠지?]

[싫어…이런 착각 싫어….]

[매번 착각만 했지만…지금 상황은 전부 내가 착각해서 이렇게 된 거지만, 이번만큼, 이것만큼은 아니었으면….]

[좀 더 천천히 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야, 빨리 안 했으면 이 아르나라는 애한테 뺏겼을지도….]

[근데 지금이 뺏기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잖아….]

[강간하지 말걸…그치만 앵거가, 앵거가 너무 따먹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어! 그건 내 잘못 아니야!]

[아냐, 이런 생각 하면 안 돼! 그랬다가 미움받았잖아! 그리고 그건 내가 착각해서 저지른 거고!]

[아아아아…진짜, 진짜 어떡해…나 어떡해….]

[나 때문에…전부 나 때문이야…전부 내가 잘못한 거야….]

[대체 어떡해야 하는 걸까….]

“윽…!”

그레이프의 생각이 들리며 머릿속과 내장이 철근으로 휘저어지는 듯한 고통에 휩싸인다.

그레이프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에 이질적인 거부감이 든다.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안 것처럼 기억이 갑자기 군데군데 지워진다.

사용해서는 안 되는 감각을 사용해 몸속이 뒤틀린다.

써서는 안 될 기운이 소모되며 심각한 공허감이 찾아온다.

지금 내가 뭘 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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