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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122화 (122/299)

< 122화 > 접근 (2)

확실히 내가 알던 그레이프와 점점 달라져 가는 게 보인다.

다행히 나를 보자마자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고 단순히 가까이 와도 될지 어떨지 고민하고 있기는 하지만, 불안감이 얼마나 심한 건지 손을 부들부들 떤다.

충동적으로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해 버릴 것만 같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 옷깃을 잡아 쥔 그레이프가 누가 봐도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숨소리를 내며 매달린다.

머리에 보이는 빛의 고리가 조여드는 걸 보니 최면에 저항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게 틀림없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괴수가 전부 반토막이 되거나 가루가 되어 쓰러져있다.

충동적이게 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레이프에게서 공격성은 보이지 않고…그럭저럭 안전하다면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다.

“언니?! 머리에 그건 왜…! 설마 정신 공격?!”

“그레이프, 로제…여기 보세요.”

조금 안심한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레이프와 허탈해하다가 깜짝 놀라며 말하는 로제에게 최면어플을 보여줬다.

불안감에 떠는 그레이프의 머리와 눈에서 빛이 사라진다.

로제도 마찬가지로 최면어플을 보고 무의식에 빠져든다.

그레이프가 최면에 걸린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이전에 걸어둔 최면을 취소했다.

“내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최면은 취소…가까이 와도 괜찮다.”

다음은 로제 쪽이다.

최면어플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고 의문을 가진 것 같으니, 기억을 지운다.

“그레이프의 머리 위에서 빛이 나는 걸 봤다는 사실을 잊는다.”

다른 최면을 더 걸어서 안전장치를 걸어두거나 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지금은 안전해졌지만 언제 또 괴수나 감염체가 나타나 달려들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이 정도로 최면을 끝낸 나는 최면어플을 종료하고 주변을 경계했다.

“애, 앵거! 앵거, 괘, 괜찮아요?!”

“핫!”

최면어플에 의한 무의식 상태가 풀리며 이성을 되찾은 그레이프는 가장 먼저 두통이 느껴지지 않는 걸 확인하고 아주 잠깐 이상해하더니 내게 안부를 물었다.

로제도 이성을 되찾고 깜짝 놀라고 있긴 하지만, 조금 전까지 그레이프가 검을 한번 휘둘러 감염체랑 괴수를 전부 처리하는 모습에 넋이 나가 있었던 탓에 위화감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는 먼지투성이가 되고 손등에 어디에서 긁혔는지 모를 상처가 있는 걸 조금 살핀 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응, 네…괜찮은 것 같네요.”

“사, 상처…상처….”

그런데 그레이프는 내 손등에 난 작은 상처를 보고 눈동자를 불안하게 떨더니 괜찮다는 내 말을 대체 뭐로 들은 것인지 후회와 불안감, 죄책감을 마구 쏘아내 주변을 끈적끈적하고 단 냄새로 가득 채워버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달아서 입안이 텁텁해진다.

이성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불안하다.

“…이건 다친 것도 아니에요.”

“소, 손…손, 손 잡아도 돼요? 잠깐, 잠깐이니까…강제로 안 할 테니까.”

불안감에 떠는 그레이프에게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자 그레이프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손등을 덮는다.

마력이 손등을 간지럽히면서 안쪽을 따끔하게 찌른다.

묘하게 아픈 통증이 속을 역하게 뒤집어 놓으며 손등의 상처가 아물었다.

회복 마법이라기보다는 내 신체 활동 자체를 활성화시켜 억지로 아물게 한 것에 가깝다.

“하아…하아아아…안 늦었어…이번에는 안 늦었어….”

언제 다쳤는지도 모를 상처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내 몸을 살펴본 그레이프는 따로 다친 곳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달콤한 맛이 점점 사라지며 머리를 아프게 하고 갈증을 일으키는 자극이 사라진다.

조금씩 진정해가며 그레이프를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조금 어색하면서도 묘한 느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레이프는 나를 강간한 강간범인데,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안심되면서도 불안한데, 이 불안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상하지만…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은 게 당연하지만 왜 당연한 건지 모르겠다.

“…언니랑 서로 아는 분…아는 사람이야?”

“아, 로제….”

그레이프에게 손을 잡히고 있는 모습을 본 로제가 떨떠름해 하며 말하자 그레이프는 그제야 로제를 발견한 것처럼 깜짝 놀라며 내 손을 놔줬다.

그레이프는 그대로 로제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으, 응…친…지, 직장…동료.”

“직장 동료…?”

로제의 눈썹이 모아 올려지며 얼굴이 의문에 물든다.

로제가 아는 나는 방위군 측에서 고용한 비밀요원 같은 사람이다.

마법소녀인 그레이프와 아는 사이라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팀장님이세요.”

“회사 팀장…? 그레이프 언니가요?”

그레이프에게 로제와 내 관계를 들킬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로제는 나와의 관계가 비밀이라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고, 다른 마법소녀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는 최면에 확실히 빠져 있다.

“네, 제가 다니는 회사…정확하게는 다녔던 회사네요.”

“…아! 그런 거군요…표면적으로는…알겠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라는 말을 다시금 강조하자 로제는 자기 스스로 납득할만한 상황을 생각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다니는 회사 같은 거로 이해해주거나 했을 것이다.

그레이프는 내가 다녔던 회사라는 말을 하자 고개를 바짝 들며 움찔거리고는 내게 향하던 시선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발끝을 본 채 울 것처럼 울먹이다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며 이상한 걸 묻는다.

“잠깐…두, 둘…둘 아는 사이…에요? 얘기 하는 게 묘하게….”

“응? 어? 그, 그게….”

“…어쩌다 보니 지하철에서 알기만 하게 된 사이기는 한데.”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그레이프는 나와 로제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보다는 그냥 아는 사이라는 것 자체가 중요했는지 다행히도 더는 추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불안한 눈으로 로제를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천천히 스캔하듯 살펴본다.

가만히, 로제의 그리 크지 않고 적당한 가슴에 고정되어있던 그레이프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저분해진 단발머리에 고정된다.

“…마법소녀, 가슴…머리….”

“…언니?”

“…로제 혹시…머리, 자른 적, 있…어? 길렀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나 계속 단발머리잖아.”

“아! 응…! 그랬지? 응! 아는 사이구나!”

그레이프의 표정이 갑자기 조금 밝아지며 부정적인 감정의 농도가 조금 옅어진다.

감정의 맛이 대체 왜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상하지만…이상한 건 당연한 거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럴 때가 아니야, 언니…빨리 이 분…데리고 나가줘. 또 감염체 올 수도 있으니까…천장에 저 구멍으로 나갈 수 있을까?”

“저기는…아마 안 될 거야, 뭔지 모르겠지만, 전선을 끊고 와서….”

“감전당하겠네, 탈출구는 그럼…역으로 가서 조금씩 뚫고 나가거나….”

“비상탈출 포트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왔던 곳을 되돌아가야 되는 건 여전하네.”

서서히 안정되어가는 그레이프에게서 마법소녀다운 말이 나온다.

비상탈출 포트라는 건 지하철에 소량으로 설치되는 말 그대로 내부 인원을 비상탈출시키며 사출시키듯 쏘아 올리는 일회성 엘리베이터 같은 녀석이다.

위급상황에서만 마법소녀의 마력에 의해 가동 승인되는 장치이며, 탑승구역에 설치되어 있다.

“그러면 언니, 역까지…조금 도와줘. 마견은 내가 최대한 처리해 볼 테니까 다른 마법소녀들도 구출해서 한번에….”

“…다른 마법소녀?”

나를 비상탈출 포트로 데려가서 다른 마법소녀들과 함께 올려보내려고 생각한 로제가 말하자 그레이프가 이상한 단어에 반응하며 얼어붙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뭔가를 불안해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끈적하게 흘린다.

“다른 마법소녀가…있지? 지하철 이니까?”

“…언니?”

“아냐…그치만, 맞으면…또 나 착각한 거면…처음부터 나 혼자, 나만…나만….”

점차 몸 주변에 달콤한 설탕물을 입히듯 끈적한 감정에 뒤덮이게 된 그레이프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리며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풍미 있는 단맛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전부 부정적인 감정들뿐이다.

“…역 이쪽…이지?”

“으, 응.”

그레이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압박감이 로제와 나를 짓누른다.

나는 내 옷깃을 손끝으로 쥐어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는 그레이프 옆에 서서 도망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레이프는 뭔가 열어서는 안 될 걸 앞에 두고 긴장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닫은 채 다가오는 감염체와 괴수들을 전부 단칼에 날려버렸다.

박쥐가 날아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검을 휘둘러 없애버리고, 허거가 다가오면 발로 지면을 밟아 진동을 보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순식간에 찔러 죽여버린다.

마견이 다가오면 잠시 움찔하기는 했지만 로제가 앞으로 나가 처리해주거나 발에 차이는 자갈을 날려보내 미간을 뚫어 죽여버렸다.

분명 조금 전과 같은 괴수와 감염체들이지만, 로제가 아닌 그레이프가 상대하는 것만으로 너무도 약해 보이게 변했다.

그레이프는 멍하니 말없이 걸으며 생각에 빠져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도망치는 길은 그렇게 멀게 느껴졌는데 다시 되돌아가는 길은 금방이었다.

이렇게 짧은 거리였나 싶을 정도로 잠깐의 시간 동안 그레이프와 여유롭게 걸으며 걸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있던 위치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로제와 도망친 뒤 괴수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욱, 우윽, 윽….”

“시에나!”

괴수와 감염체들이 승리한 곳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커다란 슬라임에게 삼켜져 온몸을 자극당하고 있는 시에나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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