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습격 (8)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진다.
넷이서 막아내고 있던 게 둘이 되니 당연하게도 힘겨워 질 수밖에 없다.
루이가 남겨준 방패를 잘 들고 있어 괴수와 감염체를 조금 놓친 정도로는 내게 상처가 생기지 않았지만, 시에나와 로제는 나와 사정이 다르다.
몰아오는 괴수들을, 감염체들을 상대하는 게 벅찬지 로제와 시에나의 몸에 상처가 조금씩 생긴다.
별것 없는 찰과상처럼 보이지만, 감염체와 괴수가 마법소녀에게 강하는 공격은 모두 강한 독성과 최음성분을 가진다.
이미 도망치는 촉수견을 처치하며 지치기 시작한 로제와 시에나의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진다.
그런데도 괴수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해서 몰려온다.
“로제! 선생님 데리고 도망가!”
“뭐?!”
“빨리! 시간 벌 테니까!”
“그치만…!”
더는 괴수들에게서 나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시에나가 남은 마력을 전부 빙벽을 쌓아올리는 데 집중시키며 말하자 로제가 잠깐이지만 망설인다.
그런 로제에게 시에나가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신경질 내며 혼낸다.
“가라고! 상황 파악 안 돼?! 우리는 안 죽지만 선생님은 죽는단 말이야!”
“큭…!”
괴수나 감염체에게 잡힌 마법소녀는 평범한 여성보다도 더욱 귀한 대접을 받으며 죽지 않게끔 영양액까지 주입하며 무한히 쾌감을 뽑아내는 에너지 보급원 취급을 받지만, 남성은 잡히는 즉시 잔인하게 뜯겨 고기로 생을 마감한다.
빙벽을 사방에 세워 아주 잠깐밖에 버티지 못할 안전한 길을 만드는 시에나의 모습에 로제도 결국 이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상을 쓰며 나를 끌어안았다.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강한 힘으로 잡아 어깨에 들쳐멘 채 로제의 발이 질척한 바닥을 박찬다.
“방패 꼭 잡으시길!”
“윽…!”
로제에게 붙들려 매달리게 된 나는 무거운 방패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잡아 쥐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반동에 이를 악물었다.
마법소녀인 루이가 조그마한 몸으로도 가볍게 들고 다니던 방패는 내게 너무도 무거웠다.
흔들릴 때마다 방패를 잡고 있는 팔이 떨어질 것 같지만, 혹시나 모를 괴수의 공격을 막아줄 걸 생각하면 방패를 함부로 놓을 수도 없다.
질척한 공기와 쾌락이 가득한 장소에서 순식간에 멀어지며 머릿속에 끼어있던 묘한 감각이 약간이지만 벗겨진다.
시에나 덕분에 위험한 장소를 안전하게 벗어났다.
고마움보다는 기특함, 최면을 걸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생기며,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묘한 위화감이 든다.
“받아, 제발…!”
로제는 나를 업고 도망치며 어딘가에서 꺼내 든 비전폰을 손에 들고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이따금 박쥐들이 어두운 곳에서 나타나 달려들지만, 화려하게 몸을 회전시키며 피해 달아난다.
천장을 밟고 달리고, 벽을 차고 달리며 시에나가 있던 곳에서 점점 멀어진다.
나는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는 버티기 힘든 진동과 방향전환에 어지럼증을 느끼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여보세요….]
“그레이프 언니! 왜 안 오는 거야! 지원 요청했다는데!”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로제의 전화 상대를 알아차리고 숨을 집어삼켰다.
엄마한테 전화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레이프한테 전화를 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상적인 지원 요청 통신이 아닌, 개인 연락처를 통해 전화한 로제의 입에서 분노와 갑갑함이 비명처럼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제일 가깝잖아! 웨이브라고! 연락 못 받은 거야?!”
[…상황은 계속 보고 있어.]
“왜 안 오는 건데 그러면! 마견 얼마 없어! 진짜로, 진짜 급하다고! 나밖에 안 남았어!”
[미안해, 나…나 오늘은 진짜 안돼…쉬게, 쉬게 해줘….]
“언니! 제발!!”
로제는 두 사람이 사적으로도 아는 사이라는 게 느껴지는 말투로 당장에라도 울어버릴 것처럼 부탁했지만, 그레이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개 공포증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듯,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무력감이 전화 너머에서부터 느껴진다.
나는 그레이프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막혀오며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레이프가 오면 안전하다.
하지만 그레이프는 위험하다.
알 수 없는 것이 머릿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모순된다.
[로제…미, 미안해…나, 나 진짜 힘들어…나도, 나도 힘들어….]
“제발, 언니…! 도와줘, 제발…!”
나를 끌어안고 있는 로제가 점점 지쳐가는 게 느껴진다.
로제가, 마법소녀가 약해지고 있다.
몸속이 갑자기 허전해지며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두통이 심해진다.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주변에 숨어있던 괴수들이 로제에게 모여든다.
“사람도 있단 말야!! 남자! 죽는다고!! ”
[민간인…? 대체, 왜? 너랑 있다고…?]
“…안돼!”
여러 마리의 코핀 셸들이 지면에서부터 솟구치며 로제를 노린다.
곧바로 껍질을 발로 차며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달리려 하지만, 천장에서 달려들던 박쥐를 운 나쁘게 밟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반 바퀴 회전해 솟구치다가, 다시 반 바퀴 회전해 떨어지며 단단한 조개 껍질을 밟는다.
그와 동시에 뱀처럼 생긴 가느다란 촉수가 천장에서 떨어져 로제를 덮쳤다.
들고 있던 방패에 부딪친 괴수가 그대로 로제에게 떨어져 팔다리를 휘감는다.
“윽!”
어쩔 수 없이 나를 내려놓은 로제가 단검으로 촉수뱀을 찔러 팔에서부터 잘라낸다.
진한 음액이 섞인 체액이 뿜어져 나와 코를 찌르지만, 로제가 쓰고 있는 마스크에 걸러져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는 로제에게서 받았던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방패를 낮게 들어 올렸다.
“로제!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여기까지 인가 보네요…방패 똑바로 들고 있어 주세요.”
더 멀리 도망쳤으면 좋겠지만, 여기가 한계인 듯 괴수들이 모여든다.
로제는 한 손으로 단검을 빼 들어 주변을 경계하며 그레이프에게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적어도 사람이라도 구해주면 안 될까? 부탁이야.”
[목소리…목소리….]
“비전폰…건네줄 테니까, 혹시 나도 지면…위치라도, 어디 있는지라도 물어보면서…부탁해.”
로제는 내게 비전폰을 던진 뒤 남은 단검을 하나 더 뽑아들며 살기를 끌어올렸다.
마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예리하게 벼려지며, 주변의 감염체와 괴수들을 압박한다.
접근하면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는 감정이 공간을 질척하게 잠식해간다.
[아냐, 아닐 거야…발차, 따로 출발 시켰다면서…차량 먼저 안전한 곳으로 보낸다고….]
로제의 살기에 몸이 이상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생존 본능이 치솟는다.
마법소녀에게 죽지 않으려면, 마법소녀를 약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나를 지금 지켜주고 있는 건 마법소녀다.
위화감이 강해진다.
[…앵거?]
대답하면 그레이프가, 위험한 그레이프가 온다.
하지만 그레이프는 위험하지 않다.
그레이프가 와야만 한다.
오지 않으면 위험하다.
[아…아니지? 누구세요? 아니야, 아닐 거야….]
그레이프는 마법소녀고,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
왜 그레이프가 나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최면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최면을 건 사실 자체를 들키지 않는다면 그레이프가 나를 죽일 일은 없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언제부터 그레이프가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게 되어있던 걸까?
[아니…죠?]
지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마법소녀가 필요하다.
마법소녀에게 들키면 죽는다.
뭘 들키면, 대체 왜 죽는 걸까?
두통이 심해지고, 머릿속을 무언가가 조여온다.
“윽…!”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꼬인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상황이 맞지 않고,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상한 건 나다.
“그….”
불러야 한다.
당연한 걸 왜 참고 있는 거지?
살기 위해선 불러야 한다.
아무리 위험한 짓을 한다고 해도 그레이프는 마법소녀다.
마법소녀는 괴수의 적이고, 사람의 아군이다.
“…그레이프.”
[아…!]
전화 너머로 그레이프의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려온다.
먼 거리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끈적한 절망이, 후회가 치솟는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왜…! 왜애!! 어째서!! 어째서어어어!!]
그레이프의 절규가 기계음을 찢으며 기괴한 소리를 낸다.
진한 마력에 휩싸인 기록장치에서 때때로 보이는 노이즈 현상이 전화 너머에서부터 일어난다.
[왜 거기 있는 건데! 왜, 왜 매번! 안돼, 갈 거야! 갈 거야아! 싫어! 닥쳐! 닥쳐어어!!]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을 뿌리치는 듯한 말을 하는 그레이프의 목소리가 깨진 기계음에 섞여 기괴하게 들려온다.
오싹하면서도 살벌한 감각과, 안도감과 공포감이 뒤섞여 혼란이 강해진다.
그런데도 그레이프가 와야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지지 않는다.
[죽지마, 죽지마아!! 나 때문에! 나 때문에에! 싫어, 싫어, 싫어, 싫…!!]
마력에 의한 전파 혼선을 버티지 못한 전화가 끊어지는 것과 함께 땅과 천장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