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습격 (6)
촉수견들은 달려와 보니 생각보다 많은 마법소녀의 수에 놀랐는지 거리를 유지하고 경계심을 높였다.
지능이 높은 촉수괴수와 생각을 공유하는 만큼, 이대로 달려드는 게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움직임이다.
수를 더 모아서 습격해올지, 아니면 지금 여기에서 시간을 벌고 있다가 뒤따라 오는 녀석들과 합류할지를 고민하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 알지? 정석대로 안전하게 간다?”
“선배가 막고, 제가 공격하는 거죠?”
“시에나 쪽은 로제가 막고, 시에나가 공격해. 더 올지도 모르니까 빠르게…!”
“아, 잠깐만.”
나는 촉수견의 움직임에서 이대로 두면 도망쳤다가 더 많은 수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째서인지 느끼며, 전투를 준비하는 루이의 말을 멈춰 세웠다.
곧바로 시에나와 아르나를 번갈아 본 나는 둘에게 사용할 마법을 지시했다.
“시에나가 빙벽으로 쟤들 완전히 가둬봐. 루이랑 로제가 몰아넣고.”
“네? 아, 네!”
의도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일단 내 지시대로 따르며 안 좋은 일이 없었기 때문인지 로제와 시에나는 내 말대로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로제는 빠르게 움직여 촉수들을 피해 시선을 유도하며 공격을 할 수 있는 촉수의 갯수를 줄이고 루이도 조금 어리둥절하며 방패를 들고 촉수견들을 몰아세워 한구석으로 점점 압박한다.
“아이스 월 Ice Wall!”
“아, 한 곳을 남겨두라는 게 아니고 전부 다 막아. 뚜껑도 닫고.”
“네…? 그래도 촉수견은 곧바로 부숴서…네!”
“잘했어.”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성공적이게 촉수견들을 가둔 시에나와 로제, 루이를 칭찬해준 뒤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아르나에게 시선을 향하고, 손가락으로 촉수견들이 갇혀 점점 금가고 있는 얼음 큐브를 가리켰다.
“아르나, 번개. 제일 깔끔하고 관통되는 거로.”
“써, 썬더 Thunder!”
“키아아아악!!”
“캬오오오옥!!”
“잘 안 죽네? 여러 번.”
얼음 안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몇 번이고 감전되어 타 죽어가는 촉수견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촉수가 다급하게 얼음을 때려 금이 가게 하지만, 감전되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탓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한 곳에 속박시킨 채 아르나의 화력을 쏟아붓는 공격에 촉수견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전부 침묵한다.
“어?”
“나쁘지 않은 연계긴 한데…생각한 거랑 실제랑 역시 다르긴 하구나. 오래 걸리네.”
“어라…?”
“시에나, 빙판을 두껍게 해서 발을 묶는 건 어려워? 아니면 빙판 위로 빙벽을 쌓는 건?”
“가, 가능할 것 같아요.”
“좋아, 다음에 오는 건 그러면 발을 묶기만 하고, 로제랑 루이가 벗어나지 못하게 압박해보자. 빙판으로 움직임을 방해하는 건 좋은데, 아예 속박해버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생각한 것보다 훨씬 쉽게 촉수견들을 처리했는데도 달성감보다 황당함이 앞서는지 마법소녀들의 태도가 묘하게 얼어붙어 있다.
나는 네 사람의 반응을 무시한 채 조금 전에 지시했던 마법 연계의 개선점을 생각해 다른 방식을 얘기해줬다.
“아니면 아르나가 마비시키고 시에나가 발을 묶는 것도 좋겠네. 그러면 움직임이 더 제한될 테니까. 발을 묶는 동안은 루이랑 로제가 움직임을 제한하고, 묶이고 나면 근접해서 확실하게 처리해도 될 것 같고.”
“크르르르…!”
촉수견을 쉽게 잡을만한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자 때마침 동료의 비명소리를 듣고 나타난 새 촉수견들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나타났다.
이번에는 여섯 마리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끝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지금 마법소녀들이 좀 더 연계가 좋아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네 사람 모두에게 지시했다.
“빨리 처리해!”
“네!”
상대하기 꽤나 힘들었던 촉수견들이 전투방식을 바꾼 것만으로 손쉽게 잡힌다.
서로의 위치나 전투방식을 혼자 싸울 때와는 확실히 다르게 하라고 조금 얘기해 준 것만으로 네 사람의 호흡이 점점 좋아진다.
서로 먼저 처리하려고 경쟁하며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장점이 살아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횟수가 많아진다.
여섯 마리 전체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아르나와 시에나가 마법을 사용하고, 그런데도 오는 공격은 루이가 막으며 로제가 근접해 뒤쪽에서부터 하나하나 처리한다.
그러다가도 루이가 제대로 압박해 단번에 여러 마리를 죽일 기회가 생기면 아르나가 강력한 마법을 사용해 두 마리에서 세 마리를 한 번에 지져버리고, 루이가 막아내지 못하는 공격이 생기면 시에나가 빙벽을 세워서 막아준다.
여섯 마리가 나타났으니 네 명의 마법소녀로는 상대하기 힘들어야 할 텐데도 촉수견들은 빠르게 죽어 쓰러져갔다.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간단하게 잡힌다.
전투라기보다는 사냥에 가깝다.
“어…? 우리…뭔가….”
“뭔가 잘 맞지 않아요? 이런 거 처음인데.”
루이와 시에나는 한 번의 전투만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느낌을 받았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촉수견들이 쓰러지자 촉수견들이 싸워서 이길 거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뒤로 빠져서 약해진 마법소녀를 덮칠 기회만 노리고 있던 마견과 허거, 박쥐들이 또다시 몰려온다.
하지만 네 명의 마법소녀들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여유를 부리며 몰려오는 괴수와 감염체들을 손쉽게 처리해나갔다.
“뭐, 뭔가 쉬운데요?!”
“안 그래도 그레이프는 지하철 지원 안 내려오니까 걱정하고 있었는데…이러면 지원 안 불러도 되겠네?”
“넷으로 충분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
“매번 다른 구역에서 대타 오는 것 때문에 나도 눈치 보기 싫고….”
박쥐와 마견, 허거, 촉수견이 섞어서 몰려와도 이미 적응해버린 방식으로 간단하게 처리한다.
빙벽으로 길을 막고 있다가 빙벽을 내리며 아르나가 최대한 많은 수를 마비시키고, 시에나가 빙판으로 발을 묶은 뒤 로제와 루이가 근접해서 처리한다.
서로 마력의 분배도 확실히 하고, 연계도 점점 더 좋아진다.
“루이, 막을 때 힘이 부치면 방패 측면을 폭발시켜서 옆으로 빗겨내는 건 어때?”
“패링을 해보란 얘기죠? 폭발력으로 빗겨내는 힘을 강화하라니…한번 해 볼게요!”
“로제, 너는 강한 녀석을 처리하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으니까 약한 녀석 상대하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세 보이는 것들만 우선해서 처리해.”
“네!”
“시에나는 세 보이는 애들은 속박해두고, 약한 놈들은 아르나랑 연계해서 얼음조각으로 죽이고.”
“아이스 프리즘 Ice Prism!”
“아르나는 전체 마비 위주, 수가 쌓이면 마법!”
“알고 있어요!”
쏟아져 오는 괴수들 사이에서 서로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는 방식의 마법을 생각하며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아르나도, 루이도 이런 상황인데도 점점 표정이 풀어지며 묘한 쾌감에 빠져들고 있다.
시체가 쌓이고 피비린내와 매캐한 냄새가 가득해지는 어두운 터널 안에서 서로의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도취해간다.
“넷 다 조합이 좋으니까, 합만 맞추고 실수만 하지 않으면 상위권 마법소녀 정도의 힘은 낼 수 있을 거야.”
“네!”
“막기 힘든 부분 보이면 말하고, 시에나가 빙벽 쳐서 진입을 찢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마법소녀들의 중심에서 보호받으며, 괴수들이 찢겨나가는 걸 지켜본다.
감염체도, 괴수도 일반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지금은 마법소녀들의 사냥감일 뿐이다.
지시를 이어갈수록 점점 내가 안전해진다는 게 느껴져 안도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얼마 가지 못해 위기감으로 변했다.
“크르르르르….”
어느 순간부터인가 먼 거리에서 덤벼들지 않고 조심스럽게 공격을 회피하며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는 촉수견이 보인다.
아무리 몰려와도 중위권 마법소녀 넷이서 전부 막아낸다는 상황에 위화감을 느꼈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이, 살기가 내게 향한다.
나를 노리는 게 느껴진다.
“컹! 컹!”
촉수견이 짖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처럼 땅이 미세하게 떨린다.
뭘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감염체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자신보다 상위의 괴수에게 복종하는 감염체, 괴수들의 특성상 촉수견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허거를 촉수로 쥔 촉수견이 조금 먼 거리에서 허거들을 투척하고, 마견에 다리에 매달려 달려와 덤벼든다.
박쥐들은 허거를 하나씩 쥐고 공중에서 떨어뜨리고, 아르나의 마법에 죽은 척 떨어져 내리다가 갑자기 날아들어 몸을 문다.
“선생님!”
“저 새끼가!”
빙판에 허거의 발이 묶이지 않게 하면서, 떨어지는 박쥐들도 경계하게 만든다.
마견 하나를 공격해도 허거가 뒤따라 달려들고,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촉수견은 거리를 벌리고 멀리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는 촉수괴수에게서 가끔씩 보이는 지휘 특성이다.
촉수괴수였다면 움직임이 느리니 로제를 보내 사냥해버리기라도 할 테지만, 마견과 합쳐지며 접근하는 즉시 도망칠 수 있는 이동능력을 갖추고 있어 그러기도 어렵다.
지휘 능력을 지닌 촉수견 한 마리 때문에 상황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은 잠시 무리하더라도 지휘권자를 없애야 한다.
“시에나, 빙벽으로 한쪽 막아두고 로제랑 가서 저놈부터 죽여!”
“네!”
촉수견 한 마리를 수월하게 상대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마법소녀가 필요하다.
가장 빠르게 접근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건, 상대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시에나와 강한 공격력을 보이는 로제다.
나는 시에나에게 빙벽으로 주변을 두껍게 막은 뒤 아르나와 루이만 남겨서 방어선을 지키게 하고, 로제와 시에나에게 먼 거리에서 지켜보는 촉수견을 사냥해 오라고 지시했다.
“카르르르!”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촉수견이 유리를 긁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발밑의 지면이 갑자기 솟구쳐 올라오고, 땅이 폭발하는 것처럼 터진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있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밀쳐 검은 피로 끈적하게 변한 바닥에 몸을 뒹굴었다.
“크으으읏…! 아아악!”
“아르나!”
땅을 파고 나타난 건, 땅속에 지뢰처럼 숨어있는 괴수인 코핀 셸coffin shell 이었다.
아르나를 덮친 거대한 조개는 단단한 껍질로 된 입을 다물려 하고, 아르나는 온 힘을 다해 조개 껍질 사이에 끼어 두 손으로 닫히지 않도록 막아내고 있다.
코핀 셸의 내부에 있는 커다란 촉수가 아르나의 몸을 맛보듯 서서히 핥고, 끈적한 가스를 뿜어내 아르나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우읍…!”
여성에게는 강력한 최음효과와 근 이완, 남성에게는 복통과 오한,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가스가 주변을 적신다.
당장에라도 루이를 보내 아르나를 구하게 해야 하지만, 루이는 나를 보호하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아르나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며 모든 공격을 루이 혼자서 막아내게 되면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으읏…! 시, 시러…! 시러엇…!”
마법을 사용해 보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최음 가스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하게 뿜어져 나와 아르나의 온몸을 녹여버릴 것처럼 완전히 풀어버린다.
혀가 풀어져 점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아르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코핀 셸의 혀가 천천히 움직여 힘이 빠져가는 아르나의 몸을 정리한다.
껍질 한쪽에 있는, 사냥감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벌어진 틈새로 아르나의 목이 나오게끔 하며 천천히 입을 다물어간다.
“흐으으읏! 후아아앗!”
아르나는 껍질 밖으로 머리만 내놓은 채 완전히 삼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