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습격 (5)
단순히 마법소녀들이 나만 지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어선을 최소화한다는 건 실제로 교범에도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로제와 시에나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내 말을 이해했는지 곧바로 빙벽을 세우고, 천장을 달려 앞으로 달려갔다.
“보낼 수 있을 때 보내두는 게 좋긴 하죠!”
루이는 내 말에 찬성하며 조금 전보다 확실히 수가 줄어있는 마견들 중 한 마리의 머리를 방패로 내리찍었다.
강제로 발차 되어 역을 지나치게 될 지하철 차량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비상상황 시에 안전구역까지 달려서 현장을 벗어나게 하는 건 지하철에서도 자주 안내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시에나가 막고 있는 한쪽을 등지고 루이와 아르나가 싸우는 모습을 잠시동안 가만히 지켜봤다.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게 서로 방향을 나눠서 한쪽씩 담당하고, 아르나가 번개를 쏘아내서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고 마비되어 있는 녀석은 루이가 창으로 찔러 죽인다.
애초에 마견 자체가 수가 조금 많고 빠를 뿐 그렇게 대단한 적이 아니다 보니 위험할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런 별것 아닌 녀석들에게 사용하는 마법이 조금 불균형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호흡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루이가 방패와 창으로 마견들의 움직임을 제한해 착실하게 모으고, 아르나가 마법을 사용해 확실하게 처리한다.
루이는 방어에 전념하고, 아르나는 공격에 전념한다.
역할 분담이 무척 잘 되어 있다.
몇 번이나 호흡을 맞춰 보고 나서 나오고 있는 행동이라는 게 느껴진다.
문제는 아르나만 마법을 쓰는 일이 너무 잦다는 점이다.
상위권 마법소녀들의 전투 내용을 글로 읽어 머릿속에 그리기도 하고, 좀 더 호흡이 좋은 마법소녀들의 연계를 영상으로 접해온 내가 보기엔 묘하게 아쉬운 점이 느껴졌다.
방위군 훈련병으로 있을 때 통신병을 지원하며 전투지원 통신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해온 만큼 아주 조금씩만 개선하면 더 좋아질 거라는 게 눈에 보인다.
이 마법소녀들은 아주 조금만 바꾸면 지금보다도 더 잘할 수 있다.
“아르나, 마비시킬 만큼만 마력을 조절해서 마법을 사용해봐.”
“참견하지 마세요!”
“시키는 대로 해! 너만 지금 마법을 너무 많이 쓰잖아! 언제까지 몰려올지도 모르는데 마견한테 왜 그렇게 마력 낭비가 심해? 또 혼자 마력 부족하다면서 덮쳐지려고?”
“읏…!”
내게 지적받은 아르나는 인상을 쓰며 곧바로 사용하는 마법을 바꿨다.
내 말대로 하는 걸 싫어하면서도,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거부감이 더 컸던 건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따른다.
“마비된 걸 루이가 찔러서 처리하고, 마비가 안 된 건 방패로 막아서 마비시키게 해. 아르나는 서포트로 들어가.”
“루이 선배보다 제 마법이 더 위력이 강해요! 서포트라뇨!”
“위력 강한 거 아니까 좀 아끼라는 거잖아! 마견한테 그렇게 펑펑 쓰기에는 아깝다고! 넌 서포트도 할 수 있잖아!”
계속해서 전투방식을 지시하던 나는 아르나가 또다시 불만을 토해내는 걸 보고 한숨을 쉬며 가까이 다가갔다.
나에 대한 반발감이 너무 커서 말을 제대로 들어주질 않는다.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은 달래주어야 한다.
“아르나, 널 무시해서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네가 루이보다 할 줄 아는 게 훨씬 많으니까 다른 것도 해 달라는 거라고.”
“네…?”
“루이는 아르나 너보다 방패술도 뛰어나고,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마력도 적은 만큼 이런 세세한 응용이나 절제하는 건 훨씬 능숙해. 너는 루이보다 강한 마법을, 더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잖아?”
갑작스러운 칭찬에 당황한 아르나는 내 말을 의심하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서 혼내고 매도해오던 상대가 자신을 생각보다 높게 쳐주고 있다는 걸 느끼니 마음이 갑자기 복잡해지는 모양이다.
“아르나는 서포트 하면서 잠시 힘을 아끼다가 가장 필요할 때 강력한 마법으로 처리해줘. 루이를 도와주다가 루이가 벅차 보이면 아르나가 마법으로 싹 정리하면 되잖아?”
“선생님 말대로야 아르나. 한번에 많은 수를 처리할 수 있는 마법을 계속해서 연사하는 것보다는, 잔뜩 쌓여있을 때 한 방으로 처리하는 게 당연히 효율이 높지. 나는 못 하는 거잖아.”
“시에나가 빙벽 내리면 그쪽으로도 마법 한번 써 주고, 아르나가 사용하는 마법이 제일 강하잖아?”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
아르나는 혼나는 것보다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던 이들이 해주는 칭찬이 더 듣기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듯 말하며 고분고분하게 지시를 따랐다.
루이가 마견들을 모으면 아르나가 한 번에 태워버리고, 수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 마견이 많이 모여있지 않을 때는 적절하게 약한 마법으로 마비시키며 수를 모으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이 출발하는 소리가 들리고 빙벽 너머로 사라졌던 로제가 돌아왔다.
“방위군에 연락도 해 뒀으니 다섯 개 역 정도 지나면 저절로 정차할 겁니다!”
“좋아, 잘했어. 그럼 이제 시에나는 빙벽 없애고, 아르나는 뒤쪽으로 마법!”
“알고 있어요!”
시에나가 길을 막고 있던 빙벽을 없앤 직후 아르나의 몸에서 마력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머리카락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로제는 나를 끌어안고 곧바로 아르나의 뒤로 도망쳤고, 시에나도 빠르게 빙판을 타고 달려 아르나의 앞에서 비켜섰다.
“라이트닝 볼텍스 Lightning Vortex!”
번개로 이루어진 폭풍이 회전하며 철로 위를 가득 채우고 빙벽 뒤에 모여있던 수많은 마견들을 한 번에 태워버린다.
루이가 막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을 마법 한 번에 처리한 아르나는 묘한 쾌감을 느끼는지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마법을 쏘아낸 손을 내렸다.
“봐봐, 한 번에 다 쓸어버렸잖아. 지하철은 폐쇄된 공간이니까 지금처럼 길을 막았다가 아르나가 한번에 처리하는 게 더 나을….”
“아르나, 굉장해! 멋있어!”
“수가 적을 때도 막 써대서 몰랐는데, 아르나 이거 엄청 강한 마법이었네….”
“번개니까 적을 관통하고, 전도될수록 파동이 강해지니까….”
“다, 당연한 걸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에요?”
내 말대로 하니 더 잘 되지 않냐고 하려던 내 말을 시에나, 루이, 로제가 순서대로 끊는다.
아르나는 갑자기 모두가 자신을 칭찬하는 상황이 어색한지 입꼬리를 이상하게 비틀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단점은 마견을 태워버리다 보니 악취가 심하고 연기 때문에 시야를 가린다는 건가….”
강력한 마법이 철로를 가득 채우며 꽤 많은 양의 감염체들을 죽여버린 건지 아주 잠시동안 소강상태가 일어났다.
아르나의 번개가 마견의 오염된 육체를 태워 지독한 냄새가 터널을 가득 채우고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콜록, 콜록….”
“선생님, 이거….”
“응?”
“제 마스크에 쓰이는 거랑 같은 겁니다.”
잘 보이지 않는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쉬기 힘들어 져 입을 가리고 작게 기침하던 내게 로제가 자신이 쓰고 있는 마스크와 비슷한 천을 건네줬다.
로제가 입에 하고 있는 마스크는 여러 독성 가스나 음액으로 이루어진 최음 성분의 가스를 일정량 막아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손수건같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천을 입에 대자 숨 쉬는 게 훨씬 편해진다.
“고마워, 로제…앞쪽에는 아직도 많아?”
“네, 슬슬 박쥐들이…선생님!”
“읏?!”
지하철 차량 쪽으로 달려가며 앞쪽을 살피고 온 로제에게 상황을 물어보던 순간, 질문에 대답하던 로제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아 몸을 돌렸다.
로제의 몸에 손바닥 두 개 크기의 불가사리 모양 괴수가 뛰어올라 찰싹 달라붙는다.
“윽…!”
괴수에게 물린 로제는 나를 은밀하게 덮치려던 괴수에게 대신 물리고는 단검을 역수로 들어 허리에 붙은 괴수를 내리찍었다.
나는 소리 없이 바닥에 떨어진 기분 나쁜 형태의 괴수를 보고 정체를 파악했다.
감염체 수준으로 약하지만 마법소녀가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떠돌이 괴수, 허거다.
“루이 선배! 허거!”
“박쥐도 온다! 아르나!”
소형 괴수와 감염체들은 수가 많고 움직임이 빨라 많을수록 상대하기 힘들다.
어찌 보면 마견보다도 귀찮은 게 이 녀석들이다.
허거는 어두운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튀어 올라 음액과 독을 주입하고, 박쥐 감염체인 포이즌 배트는 조용히 날아와 독을 주입하고 피를 빨아먹는다.
둘 다 어둠 속에 숨어서 소리 없이 움직이니,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접근을 알아차릴 수도 없다.
루이는 지금까지 소형 괴수들에게 당한 게 많은지 마견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긴장하며 방패를 높이 들고 자세를 낮췄다.
넓은 범위를 공격하거나 적을 탐색할 능력이 없는 루이는 언제나 소형 괴수가 나타나면 하나하나 정확하게 찔러 죽일 수밖에 없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다.
아르나는 루이가 자신을 부르자마자 허공에 손을 뻗으며 번쩍거리는 번개의 파도를 뿜어냈다.
“썬더 웨이브 Thunder Wave!”
번개가 넓게 퍼져 파직파직 하고 날아가며 어둠속에 숨어있던 박쥐들을 지면으로 떨어뜨린다.
날아오는 박쥐 감염체를 마비시켜 쉽게 날아오지 못하게 한 루이는 뒤이어서 시에나에게 마법을 지시했다.
일부는 번개를 미리 감지하고 피해 계속 날아오지만, 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녀석들도 상당히 많다.
“시에나! 떨어진 놈들 얼음 마법으로 전부 꽂아서…!”
“아니, 죽이는 건 루이랑 로제가 해! 시에나, 우리 주변 제외하고 전부 빙판!”
다량의 얼음조각을 쏘아내는 마법인 아이스 프리즘을 써서 처리하길 바랐던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지금 더 적절한 마법은 빙판을 만드는 마법이다.
시에나는 나와 루이의 지시 사이에서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지면에 꽂으며 주변을 단숨에 얼려버렸다.
“아이스 필드 Ice Field!”
쩌적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마견의 시체에서 나온 피로 끈적해져 있던 지면이 빠르게 얼어붙는다.
허거들은 마견이 죽은 시체 사이사이에 숨어서 조금씩 접근하다가, 마견이 흘린 검은 피들에 잠겨있던 다리가 얼어붙으며 놀랐는지 쩌적쩌적 소리를 내며 빙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박쥐들도 마찬가지로, 날개가 달라붙어 퍼덕이며 놀란 소리를 낸다.
“어?”
“소리 나는 곳에 공격해!”
루이와 로제, 시에나는 놀라면서도 곧바로 몸을 움직여 바닥에 붙은 녀석들을 하나하나 처리했다.
어두운 곳에 숨어있어도 이렇게 해 버리면 소리가 나게 되니 위치를 들킬 수밖에 없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녀석들은 아르나가 계속해서 번개를 쏘아내 처리하고, 바닥에 있는 놈들은 발이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죽인다.
“어…? 이거 이렇게 쉬운 놈들이었나…?”
생각보다 훨씬 쉽게 처리되는 상황에 루이가 허탈해하며 창을 찌른다.
시에나도, 로제도 갑자기 긴장감이 확 풀려버린 듯 바닥을 검으로 쿡쿡 찌르고 발로 밟으며 내 쪽을 힐끔거리고 있다.
빠르게 움직이고 은밀해서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괴수가 아닌데, 이런 감염체가 아닌데 하며 착실히 수를 줄여나간다.
“뭔가 쉬는 시간 같아져 버렸네….”
긴박했던 분위기가 밭일하는 것처럼 바닥을 쿡쿡 찔러대는 상황에 풀어지며 갑자기 힘이 빠졌는지 시에나는 조금 황당해 하며 말했다.
그러자 마치 시에나의 말을 들은 것처럼 어둠 속에서 낯익은 울음소리와 함께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날카로운 촉수가 뻗어져 날아왔다.
“크르르르르….”
“촉수다!”
“아아앗! 쉬는 시간 같다고 하지 말걸!”
일반인 남성보다는 빠르지만 마법소녀에 비하면 느린 속도와 강력한 최음효과, 마비, 속박, 현란한 공격을 보이는 촉수괴수와 감염체들 중에서도 특출난 이동속도를 자랑하는 마견이 합쳐진 하이브리드형, 촉수견이 부하들을 보내고 지친 마법소녀를 상대하려는 것처럼 나타나 달려든다.
“흐윽!”
촉수견을 보자마자 아르나는 깜짝 놀라며 몸을 뒤틀었고, 루이는 그런 아르나를 힐끔거리며 곧바로 방패를 들고 아르나의 앞으로 나갔다.
누가 봐도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촉수견에게 겁을 먹는다.
“아르나!”
“읏!”
아무리 촉수견한테 당했었다고 해도, 지금 이렇게 두려워하는 건 곤란하다.
내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냥 놀리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마법소녀 하나하나가 중요한 상황이다.
나는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아르나에게 다가가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나와 눈을 마주치게 했다.
방위군에 훈련병으로 있을 때 조교에게 배운, 패닉이 오려는 병사를 진정시키는 방법이다.
“겁먹지 마!”
“겁먹다니…그런, 그런 게…!”
“정신 차려!”
“아, 알고 있어요! 놔 주세요!”
촉수견과 마주한 것보다도 내게 얼굴을 잡히며 당황한 게 더 큰 것인지 아르나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든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르나는 내 손을 뿌리치고 서서, 조금 전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루이의 뒤에서 손을 뻗었다.
루이는 그런 아르나를 힐끔거리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갑자기 날아오는 칼날 촉수를 방패로 능숙하게 막아내며 말했다.
“아르나, 설마 진짜로 촉수견한테 겁먹은 거 아니지? 마법소녀가 네 명인데?”
“닥치세요, 전처럼 바보짓만 안 하면 별것도 아니에요.”
“어머나 무서워라, 선배한테 닥치라니….”
촉수견이 세 마리나 한 번에 나타났지만, 세 마리밖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촉수견 세 마리보다 마법소녀 넷이 확실하게 강하다.
세 마리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