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습격 (4)
“뭐야, 여기에 왜 있어요?”
로제와 루이 모두 내가 지금 이 장소에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운지 놀란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루이는 안정적이게 방패와 창으로 마견들의 움직임을 막아 세웠고, 루이가 막는 동안 아르나와 시에나는 좀 더 수월하게 마견의 머리를 하나하나 부숴 나갔다.
미리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빠르게 나타난 루이와 로제를 보고 안도한 나는 긴장이 살짝 풀리는 걸 느끼고 땀에 젖은 셔츠 단추를 뒤늦게 하나 풀어 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운 나쁘게 휘말렸어.”
“여긴 위험합니다. 오셨던 길로 바로 돌아가셔야….”
“저쪽에서도 마견들 오고 있어. 그거 때문에 여기로 도망 온 거야.”
“편음蝙音…정말이네요, 선생님 제 뒤로!”
로제는 내 말을 듣자마자 흠칫 놀라며 눈을 감고 마법을 사용해 손에 든 두 자루 단검을 부딪쳐 묘한 소리를 냈다.
퍼져나가는 음파에서 뭔가를 느낀 듯 내 뒤쪽에서 오는 마견들을 느낀 로제는 아르나와 시에나와는 다르게 곧바로 나를 뒤에 두고 지킬 준비를 하며 한 손에는 역수로, 다른 한 손에는 바르게 단검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나는 아르나와는 완전히 다른 성실하고 착한 로제의 모습에 감격했다.
“온다!”
“컹!”
“크르르르!”
곧바로 마견들이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로제에게 달려든다.
로제는 단검을 든 양손을 위아래로 크게 벌려 잡아 쥐더니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견들을 향해 바로 잡은 단검을 아래에서 위로, 역수로 잡은 단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휘두르며 마법을 사용했다.
“랑아狼牙!”
“키이잉!”
강하게 지면을 내디디며 외친 시동어와 함께 투명한 늑대 머리 형상의 빛이 로제의 몸을 휘감는다.
거대한 늑대가 로제의 단검을 따라 큰 입을 벌리고 닫으며 달려드는 마견들을 한 번에 물어뜯었다.
“응조鷹爪!”
이어서 사용한 마법으로 생겨난 날카로운 발톱 형상의 마력으로 마견을 잡아 찢어버린다.
로제는 마법소녀라기보다는 마법을 사용하는 무술가 같은 몸놀림으로 동물의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을 해 날렵하게 마견들을 죽여나갔다.
하지만 수없이 밀려오는 마견은 로제가 아무리 단검을 휘둘러도 수가 줄지 않는 것처럼 계속해서 어둠 속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달려드는 마견들이 시체로 변해 지면을 어지럽히고 바닥을 검은 피로 끈적하게 적신다.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마견들을 상대하며 강렬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을 밟은 로제는 두개의 단검을 모두 역수로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크게 휘둘러 내리쳤다.
“용격참龍擊斬!”
로제의 앞에 있던 마견들이 허공에서 생겨난 거대한 참격에 베여 산산조각이 난다.
마법소녀라기보다는 마법을 사용하는 무도가 같은 로제의 모습에 나는 조금 놀라면서도, 로제의 엄마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기괴한 마법에 납득해버렸다.
계속해서 단검을 휘두르던 로제는 루이가 합류하고 전보다 훨씬 여유롭게 마견들을 처리하고 있는 뒤쪽을 힐끔거리더니 발차기로 마견의 머리를 찢어버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르나! 이쪽 좀 도와줘!”
“뭐?! 싫어!”
“나 혼자서는 다 못 막을 수도 있어! 선생님이 다치면 어떡해!”
“내가 알게 뭐야!”
아르나는 로제의 요청을 듣자마자 나를 힐끔거리고는 기겁하며 거절했다.
도와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나를 지켜주기 위해 싸운다는 것 자체가 싫은 것 같다.
“시에나가 가! 여긴 그럭저럭 안정된 것 같으니까! 그게 좀 더 균형이 맞을 거야!”
시에나는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으며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빙벽으로 적을 막거나 얼음으로 얼려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
로제는 마법을 사용하긴 하지만, 먼 거리에서 공격하기보다는 빠른 몸놀림과 강력한 마법으로 근거리의 적을 단숨에 처치하는 느낌이다.
아르나는 시에나보다도 더 빨리 움직이며 거리를 마음대로 조절하며 원거리 마법을 난사하는 느낌으로, 적을 막을 수는 없지만 마비시켜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
루이는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폭발 마법 하나뿐, 공격수단도 근거리이고 방패로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뿐이지만 경험이 많아 그런지 꽤 능숙하게 방패로 다수의 적을 압박하고 있었다.
루이의 말대로 시에나와 로제, 아르나와 루이가 각각 2인 1조가 되는 게 훨씬 밸런스가 좋아 보인다.
곧바로 시에나가 빠르게 몸을 움직여 로제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로제가 마견을 처리하기 좋도록 빙벽과 빙판을 만들어 마견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원거리와 근거리, 방어와 공격이 적절하게 분배되는 조합으로 나누어진 넷은 각자 한 방향씩 맡으며 안정적이게 마견들을 처리해나갔다.
“라이트닝 볼텍스 Lightning Vortex!”
빠르게 마견들의 수가 줄어들어 갈수록 아르나는 뒤쪽을 힐끔거리며 경쟁이라도 하듯 강력한 마법을 난사해댔다.
마치 이쪽이 더 빨리 끝나게 할 거라고 하는 것처럼 휴식하며 쌓아둔 마력을 전혀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아르나의 마법이 마견의 시체로 이루어진 산까지 까맣게 태워 불쾌한 냄새를 터널 안에 가득 채운다.
“아르나! 뭐 하는 거야! 마력 아껴!”
그 모습을 본 루이는 점점 수가 줄어드는 마견을 마법 하나 사용하지 않고 처리하며 신경질적이게 말했다.
“너 이렇게 써서 마력이 남아?! 다음 웨이브는 어떡하려고 그래!”
“…웨이브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점점 상황이 끝나간다고 생각하고 더 빨리 끝내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던 아르나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러자 루이는 방패 끝으로 마견의 머리를 찍어버리며 한탄하고는 아르나에게 짧은 설명을 해줬다.
“하아…!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이러네! 하필 내가 있는 구역이라니! 다른 데로 웨이브좀 가면 안 되나? 로제랑 오면서 봤는데, 마견만 있는 게 아니야! 다른 것들도 전부 모이고 있어!”
“네?”
“아마도 촉수견도 있을 테고, 로제! 아까 오면서 포이즌 뱃 Poison Bat도 보였다고 했지?!”
“독편복毒蝙蝠 말씀이시죠? 확실히 봤어요!”
“소형종도 몰려온다는 얘기니까…괴수도 있을까? 허거 Hugger 는 보였어?”
“허거는…잘 모르겠어요. 아, 아까 천장 달릴 때 슬라임은 보였어요!”
포이즌 뱃은 박쥐가 네거티브의 괴수에게 감염당해 생겨난 감염체로, 강력한 환각성 미약을 주입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사람에게서 계속해서 피를 빨아먹는 감염체다.
작은 크기에 은밀한 움직임, 물 때 통증을 잊게 해주는 마취성 독니로 환각에 빠져드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게 하며 사람을 조용히 죽이는 소형종 감염체다.
허거는 이름 그대로 사람을 끌어안는 소형 괴수로, 고양이 정도의 크기에 얇은 불가사리 같은 몸체와 다리, 물갈퀴 같은 점막을 가지고 기어 다니며 사람을 끌어안아 덮치는 괴수다.
중앙의 입에서 미약을 주입하는 작은 독니가 달린 촉수가 나오고 한 마리만 붙어도 떼기 어려운데 다수가 군집해 이동해 다니며 먹이를 발견하면 단숨에 달려들어 몸 전체를 덮어버리는, 무척 기분 나쁜 공격을 해온다.
특이하게도 알을 낳고 괴수로 분류하지만, 괴수보다는 감염체에 가까운 습성을 지녀 네거티브가 사는 세상의 동물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 돌고 있는 녀석이기도 하다.
“마견은 이동이 빠르니까 먼저 온 거고, 아마 이 녀석들을 다 처리하면 연속해서 올 거야! 그러니까 마력 아껴 둬! 뭐가 올지 모르니까!”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죠?”
“자세히는 몰라! 지하철 내부에서의 돌발성 웨이브는 나도 교범에서만 본 상황인걸!”
루이가 아르나에게 해주는 설명을 옆에서 들은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지금 상황을 이해했다.
루이가 봤다는 교범은 아마도 내가 방위군을 준비할 때 공부한 것과 같은 교범인 것으로 보인다.
교범에 따르면 특정한 지휘계통에게 괴수, 감염체들이 모여서 일으키는 집중공격을 웨이브라고 칭한다.
웨이브는 주로 차원문을 연 네거티브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때때로 지금처럼 차원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괴수들이나 감염체들이 뭉쳐 한가지의 목적을 가진 것처럼 웨이브를 일으키기도 한다.
발생 원인이나 이유는 모르지만, 한번 발생한 웨이브는 말 그대로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며, 웨이브 자체에 끌린 괴수와 감염체들을 전부 죽여 없앨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괜찮은 실력의 마법소녀도 결국 지쳐서 패배하고 감염체들의 둥지로 끌려가는 일이 많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기도 하다.
마법소녀들이 패배하면 넷은 둥지로 끌려가 괴수들의 쾌락인형이자 번식의 그릇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된 순간 감염체들에겐 아무런 쓸모도 없는 남성체이기에 단순한 고기가 되도록 찢겨 죽게 될 게 분명하다.
처음 느낀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오싹한 위기감과 함께 머리가 갑자기 조금 개운해지는 걸 느꼈다.
죽지 않기 위해 뇌가 평소 이상으로 활성화되며 신경이 곤두선다.
머릿속에 훈련병 시절 뇌가 녹아내리도록 공부했던 교범과 마진사에서 본 여러 글이 떠오르며 지금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린다.
일단 계속해서 몰려드는 괴수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방해되지 않도록 마법소녀들이 싸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둬야 한다.
“시에나! 천장에 로제가 지나갈 틈 약간만 남기고 빙벽 최대한 많이 쳐서 시간 벌어!”
“네?”
“로제, 올 때 했던 천장 달리기로 앞에 가서 차량 강제 발차 좀 시키고 와. 이 주변에서 멀리 떨어뜨려!”
시에나와 로제는 내 갑작스러운 지시에 어리둥절하며 따르지 않고 검을 든 손만 움직였다.
나는 제대로 내 지시에 따르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짜증을 느끼고 화를 내며 말했다.
“웨이브면 계속해서 밀고 들어올 거 아냐! 차량을 어떻게 할 여유도 없을 텐데 저대로 둘 거야? 전면 충각으로 밀고 지나가게 그냥 보내!”
“선생님, 그치만 갑자기 차량은 왜…?”
“혹시라도 차량에 문제 생기면 너네 지하철 안에 사람들도 보호하러 갈 거잖아! 방어선을 늘려서 뭐할 건데? 지킬 대상을 줄일 수 있으면 당연히 최소화해야지!”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