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습격 (3)
나는 지금 상황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느끼면서도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려 머리를 감싸 쥐고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머리가 점점 아파져 오며 스위치가 내려가는 것처럼 생각 자체가 사라져 간다.
두통이 거의 다 사라졌을 때 내 머릿속에는 많은 수의 괴수와 감염체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윽…!”
서서히 이성이 되돌아오며 상황을 파악한다.
잠깐 사이에 차단벽이 완전히 올라가 버리고 나와 아르나, 시에나 세 사람은 차량이 있는 철로 쪽에 갇히게 되었다.
역과 철로 사이가 막히며 역 안으로 괴수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도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감염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명으로 근거리에서 작동하는 지하철 차량의 센서가 작동해 표면을 철갑으로 뒤덮고 있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인식하자 의식 안쪽에 파묻혀있던 본능 같은 무언가가 술렁인다.
감염체가 오고 있지만, 이미 벽이 내려와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친다고 해도 내 다리로는 감염체를 따돌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두꺼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관자놀이에 손을 대며 아르나를 노려봤다.
시에나가 검을 들고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도 아르나는 우울감에 휩싸여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르나에게 걸어가 정신을 차리라고 뺨을 때리며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변신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르나와 시에나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시에나 혼자 싸우는 것보다는 당연히 아르나도 같이 싸우는 게 좋다.
아르나는 내게 뺨을 맞고 인상을 썼다가 다급한 내 표정을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두 주먹을 허리 쪽에 대고 꽉 쥐었다.
“지금 하려고 했어요! 나한테 명령하지 마세요!”
밝은 빛을 내뿜은 작은 번개가 파직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 아르나의 몸을 뒤덮는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내려 묶여있던 양갈래머리는 어느새 날카롭게 벼려진 바늘처럼 뾰족하게 사방으로 퍼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에 마법소녀로 변신한 아르나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시에나의 발밑이 쩌적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빙판으로 변하고, 스케이트로 변한 발이 빠르게 움직이며 허공에 얼음의 길을 만들어냈다.
“아르나는 선생님 지키고 있어!”
“뭐?!”
시에나는 빙판에 점점 가속도를 받으며 무언가가 달려들면 바로 찌르기 위해 검을 앞으로 세우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나는 내 옆에 서서 인상을 쓴 얼굴로 내 쪽을 힐끔거리는 아르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나는 건방진 모습이 조금 신경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마법소녀로서의 능력만큼은 상당하다.
비정상적인 가속을 받은 시에나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아르나는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커다란 엉덩이를 내 쪽으로 내밀며 몸을 숙였다.
그대로 달리기 선수처럼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한 아르나는 두 손과 발에 번개를 번쩍이며 양갈래머리를 삐쭉삐쭉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불안감을 느껴 아르나를 불러세웠다.
“…아르나?”
“흥!”
아르나는 그대로 나를 어두운 곳에 내버려두고 감염체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바닥에 손을 대고 레일건의 탄환처럼 빠른 속도로 몸을 날린다.
어느새 내 앞에서 사라져버린 두 사람을 보고 당황한 나는 비명 같은 목소리를 냈다.
“뭐 하는 짓이야! 어디 가! 아르나!!”
순식간에 나는 어두운 곳에 홀로 남아있게 되었다.
두 마법소녀에게 나를 지키게끔 최면을 걸어뒀는데, 나를 내버려 두고 뛰쳐나가 버렸다.
이건 내가 무언가에 공격받을 때 나를 우선해서 지키라고 최면을 걸어뒀기 때문이다.
이후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어도 내가 무언가에 공격받고 있지 않으니 나를 우선해서 지키지 않는다.
“큭!”
최면을 걸 때 사소하다고 생각할만한 실수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운전실 안으로 도망가고 싶지만, 운전실 문은 등록된 사람이 아니면 외부에서 열 수 없게 되어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곧바로 아르나와 시에나가 날아간 곳의 반대 방향으로 뛰어 도망치려다가 본능에 가까운 감각에 발을 멈췄다.
불안감을 느끼며 반대쪽 방향을 가만히 보고 있자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터널 벽에 부딪혀 울려 퍼진다.
“컹! 컹! 컹!”
“헥, 헥! 크르르륵!”
아르나와 시에나가 사라진 방향보다는 조금 더 늦게 오고 있는 것 같지만, 양쪽 방향 모두에서 마견들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르나와 시에나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역에서 내려와 차량 바로 옆에서 붉은색의 등이 어둡게 비추는 공간을 달려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나와 시에나 두 사람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지하철 차량의 끝에서 아주 조금 더 지나간 정도의, 내 생각보다도 훨씬 가까운 거리다.
너무 오래 달리지 않아도 되어서 좋지만, 아르나와 시에나가 내게서 그렇게 멀어지지 못했다는 건 그렇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둘의 실력이라면 마견 정도는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을 테니 달려가면서도 빠르게 마견을 처리해 점점 멀어졌어야 한다.
“왜 이렇게 많아!”
아르나와 시에나 두 사람은 몰려드는 마견 떼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견이 몰려오는 것을 막고만 있었다.
시체를 밟으며 다른 마견을 죽이고, 달려드는 마견을 죽이기를 반복한다.
그런데도 마견들은 끝이 없는 것처럼 차량을 밟고, 벽을 타고 달리며 둘에게 달려들었다.
“아이스 프리즘 Ice Prism!”
“라이트닝 볼트 Lightning Bolt!”
시에나의 검이 휘둘러지며 자그마한 기둥 형태의 얼음조각들이 날아가 마견의 몸에 박힌다.
그 위로 아르나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번개가 마견에게 명중하며 얼음조각에 반응해 주변으로 퍼져 다른 마견들을 동시에 구워버린다.
이미 몇번이고 해 본 연계인 듯, 둘의 마법은 짜 맞춘 것처럼 연속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마법으로 놓친 마견은 시에나가 검을 휘둘러 목을 베고, 아르나가 발차기로 하이힐 끝을 머리에 정확히 박아넣으며 처리한다.
파도처럼 쉬지 않고 밀려 들어오는 마견들을 전부 막아내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많은 수에 당황했는지 시에나는 검에 묻은 검은 피를 털어내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이상해! 아르나! 지원 필요할 것 같아! 얼음벽 칠 테니까 잠깐 막는 사이에 연락을…!”
“지원같은거 필요 없어! 마견 같은 건 아무리 몰려와도 시간만 있으면 버티면서 충분히…!”
“루이 선배 말대로 정말로 숨어서 모여있다가 오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휴가중이었던 동안 감염체가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아르나는 고집스럽게 말하며 번개를 뿜어냈다.
시에나가 아르나에게 하는 말을 듣자 머릿속에 루이가 해줬던 얘기가 떠오른다.
나는 뒤에서 오는 마견들은 전혀 모르는 것처럼 한 방향만 열심히 막아내고 있는 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르나! 고집부리지 마!”
“선생님?!”
“당장 지원 요청해!”
아르나도 시에나도 지금은 잘 막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둘은 몰려오는 감염체들에게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내가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다른 마법소녀들을 불러야 한다.
“필요 없다니까! 알아서 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아르나는 내 말을 듣자마자 오히려 더 고집을 부리며 신경질적이게 발을 밟았다.
지면을 타고 흘러나간 번개가 마견들을 마비시키고, 그 위로 시에나의 얼음 마법이 날카롭게 베고 지나간다.
아르나는 지원이 필요 없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조금 전보다도 더 강하게 마력을 뿜어내며 마견으로 이루어진 시체의 산을 더욱 빠르게 쌓아갔다.
아르나도 시에나도 다수의 약한 적을 처리하는 데에 특화된 마법들을 사용하며 마견들을 한 마리도 등 뒤로 보내지 않고 있다.
아르나가 마법으로 마견들을 마비시키면 시에나가 얼음의 칼날로 베거나 뚫어버리고, 시에나가 얼음으로 움직임을 둔화시키면 아르나가 번개로 태워버린다.
확실히 언뜻 보면 정말 지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르나와 시에나의 연계는 훌륭했다.
하지만 이미 한쪽을 막는 것만으로 벅차 보이는 둘이 반대쪽에서 오는 마견들도 지금처럼 잘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대쪽에서도 오고 있다고!”
“아르나! 내가 연락할 테니까 막고 있어줘!”
“크읏…!”
내 말을 들은 순간 시에나는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 좋다는 걸 파악했는지 곧바로 아르나의 뒤로 빠져나오며 귀 뒤에 손을 올렸다.
아르나를 선봉에 세우고 뒤로 빠져나오는 마견들만 처리하며 시에나가 지원을 요청하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시에나처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르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열심히 마견을 상대한다.
“루이 선배! 로제! 대기하고 있어?! 마견 너무 많아! 도와줘!”
“이미 가고 있어!”
“이거 봐! 이거 모여있는 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대로 다급하게 지원을 요청한 순간 시에나와 아르나가 막고 있는 마견의 파도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천장을 거꾸로 달리고 있는 로제가 시야에 들어오고, 로제의 팔에 안겨 매달린 채 마견들을 하나하나 창날로 찔러대고 있는 루이의 모습이 보인다.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발밑에 빛나는 발톱 형태를 만들고 있는 로제는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고, 시에나와 아르나의 앞에 루이를 던진 뒤 몸을 돌리며 안정적인 자세로 내 앞에 떨어져 내렸다.
“어?!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