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습격 (2)
“계속해서 아르나는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뭔가 대단하고 매력이 넘치는 것처럼 말하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우스워 보이기만 한다는 거 알아?”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아르나의 가슴을 받치던 손을 떼며 말했다.
명백하게 아르나를 무시하기 위한 발언이다.
그러자 아르나는 내 물건 위에 올려놓고 있던 손을 슬쩍 떼고 어딘가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대답했다.
“…무슨 의미죠 그게?”
“아르나가 로제보다 착하고 귀여워? 루이보다 잘 조이고 뜨거워? 시에나만큼 순종적이야? 대체 어디에서 아르나의 매력을 찾으라는 거야?”
“제가 그럼 그 셋보다 뒤떨어진다는 얘기인가요?”
“마법소녀로서도, 여자로서도 뒤떨어지지. 외모는 좀 볼만하긴 한데 성격이나 행동이 이래서는…솔직히 그냥 자위기구에 싸는 게 더 기분 좋아.”
“자위기구라니, 당신 제가 누구인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말은 그렇게 해도 아르나에게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높으신 분의 자녀로 자라며 철저하게 관리된 몸매와 행동거지를 보이는 귀족적인 여자가 내 밑에 깔려 짐승처럼 쾌락에 젖어간다는 것만으로도 성적인 매력이 차고 넘친다.
아르나는 정복욕을 자극해 짓밟고 싶어지게 만드는 여자다.
그런 게 아니어도 애초에 마법소녀이니, 매력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아르나를 좋게 말해 줄 생각이 없다.
좀 더 자극적이게, 좀 더 아르나가 싫어하는 말을 하며 아르나의 자존심을 깎아내린다.
치욕스러워하면서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아르나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하아…도와주겠다고 하고 아르나를 생각해서 뭔가 해 주려고 해도 필요 없어요, 제가 누구인 줄 아는 건가요, 감히 뭘 하는 건가요…아르나는 이런 상대한테 매력을 느껴? 변태야?”
“저급하긴, 행동으로 사람의 매력을 결정하는 건가요? 당신이야말로 자신에게 순종적인 애완동물 같은 멍청한 여성이 아니면 매력을 못 느끼시는 변태 분이신 건?”
“상대가 순종적인 건 싫다?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막 깔아뭉개려 하고 욕하고 폭행을 저지르는 상대를 좋아하나 보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천박하시네요 진짜 아까부터 계속…! 당신은 안목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제가 말하는 건 수준의 차이를 얘기하는 거에요, 이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시나요?”
아르나는 점점 더 나를 깔아뭉개려 하는 눈빛을 하며 더러운 것을 앞에 두고 참는 사람처럼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자존감이 없어서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한 이에게만 매력을 느끼는 거겠죠. 순종적이게 선생님이라고 따르는 이들에게 천박한 욕구를 가지고…제 당당한 모습에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까 봐 두려워서 매력을 못 느끼는 것 아닌가요? 저급한 취향으로 인한 정신적인 불구…그럴 만도 하죠, 저는 강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한….”
“개보지잖아.”
한 마디 말한 것만으로 아르나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한다.
촉수견에게 당한 기억을 잊기 위해서 휴가를 갔다 온 게 틀림없는 아르나에게 제일 고통스러울 기억을 상기시켜준다.
아르나에게 선명하게 남은 상처가 분노를 넘어서 슬픔을 느끼게 한다.
나는 아르나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단맛을 느끼며 계속해서 가학적인 말을 이어갔다.
“매력이 넘쳐서 매력을 못 느낀다? 그게 말이 돼? 매력이 넘치면 매력을 느껴야지. 아르나가 하는 말이 앞뒤가 안 맞네? 나는 아르나를 나보다 대단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더러운 개보지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개, 개보, 개보…지라니, 그런, 그런 천박한…더러운, 말을….”
“도와준다고 할 때 말 안 듣고 날뛰다가 개한테 따먹힌 개보지.”
“개, 개보지…아니에요…개가 아니라, 촉수….”
“촉수견은 개가 아니다? 그래도 개처럼 울면서 박히는 건 누가 봐도 그냥 암캐년이던데? 고귀하긴 무슨, 추잡한 암캐년이겠지.”
“읏, 윽…으읏….”
“뭐라고 했더라? 개보지한테 매력을 느끼냐고? 고귀하고 고결하고 아름다운 개보지라고?”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아르나에게서 피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분노는 조금 끈적하게 타들어 가며 녹은 카라멜 맛이, 슬픔은 좀 더 거칠게 부수며 짜내진 푸딩 같은 맛이 난다.
아르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취한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아르나를 더욱 자극했다.
“안 그래도 아르나한테 매력을 못 느꼈던 내가 더러운 보지에 박으려고 일부러 시간 맞춰서 찾아온다? 말이 돼? 내가 왜 다른 애들을 두고 아르나랑 해야 해?”
“하악…! 아윽…! 흐윽…!”
“박아달라고 졸라대면 자위기구 대신 써줄 순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양이야. 의무적으로 어떻게든 싸주려고 하는 행동을 멋대로 오해하지 말라고. 내가 아르나처럼 박을 수만 있으면 개보지여도 상관없는 변태인 줄 알아?”
“당신…마, 말이…너무, 너무 심하신…것 아닌가요…!”
“좋게 말하니까 못 알아들은 건 아르나잖아. 전에도 좋게 말했더니 못 알아듣고 멋대로 날뛰다가 촉수견한테 따먹혔지? 이번에도 아르나가 멋대로 오해해놓고 왜 또 내 탓이야?”
내가 미처 다 삼키지 못한 아르나의 감정이 철도 주변의 공기를 끈적하게 뒤덮는다.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피부를 간질이는 느낌과는 다른…좀더 원초적인 기운이 심장과 뇌를 긴장시킨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혀로 핥으며 아르나에게서 달콤한 충동을 느꼈다.
마법소녀에게서 피어오르는 진득한 감정이 뇌를 점점 마비시킨다.
두통을 넘어선 무언가가 느껴진다.
수분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 갈증이 생겨난다.
목이 마른 동물이 물을 모르더라도 수분을 느낀 순간 물을 마시면 된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갈증의 해결책이 느껴진다.
이건, 이 갈증은 마법소녀를 통해서 빠르게 채울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무리다.
나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내 몸은 그런 걸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다.
아르나는 점점 트라우마에 빠져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어 있다.
지금이라면, 들키지 않는다.
들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위험하지 않은 마법소녀가 있다.
이미 무력화되어가는 마법소녀, 내게 저항할 수 없는 마법소녀다.
이곳으로 오면, 굶주림을 채울 수 있다.
강력한 의지와 함께 알 수 없는 미약한 기운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며 어지럼증이 더욱 심해진다.
“…아르나, 교대 안 하고 뭐 해?”
“읏?!”
“앗, 선생님도 계셨구나.”
“시에나.”
그때, 운전실 문이 열리며 시에나가 밖으로 나왔다.
점점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며 울먹이던 아르나는 시에나를 보자마자 급하게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더니 내게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시, 시에나야말로 빨리 교대해주지 않고 뭘 하는 거야!”
“어? 아르나가 아직 철도에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해서…사람들 다 태우고 느리게 교대하더라도 차단벽 내리지 말고 밝을 때 교대해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루이 선배가 그렇게 전달해줬는데….”
차단벽을 내리고 나면 역과 철도는 완전히 분리되며, 근무교대를 하는 마법소녀는 잠시동안 어두운 철로 옆에 혼자 서 있게 된다.
시에나가 하는 얘기를 들으니 왜 아르나가 차단벽이 내려오고 나서 따로 이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해됐다.
나는 시에나에게 까칠하게 말하며 괜히 화를 낸 아르나를 가만히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시에나가 배려해주고 도와주려는 걸 그런 식으로 말하잖아. 시에나가 그러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서, 선생님?! 어…? 저, 저는 괜찮은데….”
“부잣집 아가씨라서 집에 사용인들이 많으니 아무나 막 대하는 게 버릇이 된 거야?”
“읏, 윽…!”
“도와주려는 걸 시에나 혼자서 계속 나쁘게 받아들이는 거잖아? 그래놓고 왜 자꾸 남 탓해?”
“선생님, 그만!”
점점 더 아르나의 정신을 밀어붙이며 구석으로 몰아넣어 가던 순간 시에나가 아르나와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당황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시에나는 당장에라도 울 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물고 두 손으로 손수건을 쥐고 있는 아르나를 힐끔거리더니 조금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둘이 싸웠어요?”
“싸운 게 아니라 교육이야.”
시에나는 내 눈치를 살피고는 아르나의 옆으로 슬쩍 가서 등을 토닥였다가 고개를 돌리며 역 안을 둘러봤다.
나와 아르나, 시에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량에 탑승하거나, 이미 역 위로 올라가 있는 상태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시에나는 살며시 내 옆으로 다가와 팔을 붙잡고 가슴을 살짝 문지르며 커다란 골반을 내 허리에 톡톡 두들겼다.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으세요…? 저 이제 퇴근인데, 아르나한테 화내지 마시고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가실래요?”
“식사…?”
“아르나는 일해야 하니까, 그렇게 혼내지 마시고…나중에, 천천히 혼내도 되잖아요? 네?”
시에나는 갑자기 내게 대놓고 애교를 부리며 살살 달래는 목소리를 냈다.
문득 시에나가 동생이 많다는 게 떠오르는, 능숙하게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다.
나는 멍하니 시에나와 식사를 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가, 아직 배가 그렇게 고프지는 않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거절해줬다.
“지금 딱히 식사할 시간은 아닌데.”
“선생님도 참…식사하고 다른 걸 하러 가도 괜찮잖아요. 기분 푸시고….”
“기분 괜찮아.”
“인상도 쓰고 있고, 눈빛도 날카로운데요…?”
인상을 쓰고 있는 건 아까부터 계속해서 느껴지는 두통 때문이다.
눈빛이 날카롭다는 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머리는 아프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그냥 아르나를 괴롭히면서 기분 좋기만 했는데….
이렇게 달콤한 맛이 나는데 기분이 나쁠 수가 있나?
“눈빛이 대체 어떻길래?”
“짐승 같아요…마견? 같은 눈빛.”
“…마견 같은 눈빛이라고?”
“앗! 아니, 그러니까…그만큼 뭔가 화가 나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분노한…참기 힘든? 선생님이 마견 같다는 게 아니고….”
대체 내 눈빛이 어떻길래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샤워할 때 본 내 눈빛은 그레이프에게 쥐어짜이며 지쳐 보이는 눈빛이 되기는 했지만, 마견같이 난폭하거나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나는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당황하는 시에나에게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주며 비전폰을 들어 셀프 카메라 모드를 실행했다.
보급형의 비전폰이 느릿하게 작동하며, 화면이 검게 떠오른다.
화면이 살짝 지직거리고, 빠르게 떨린다.
눈에 익숙한 현상이다.
마력에 반응해, 기계장치가 노이즈를 일으킨다.
“워우우우우우!!”
철도에 설치된 마력감지등이 붉게 점멸하며 울음소리가 낮은 음으로 울려 퍼진다.
익숙한 울음소리가 몇 번이고 반복해 울리고 감염체에게 반응한 차단벽이 빠르게 닫히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시에나는 놀란 얼굴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허공에서 검을 꺼내 들며 몸을 돌렸다.
“감염체?! 아까까지만 해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 센서에는…!”
진득하고 기분 나쁜 혐오감이 철도 건너에서부터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선명한 불쾌감이 피부에 달라붙어 쓸어 올라간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묘한 기대감과 흥분을 느꼈다.
수많은 감염체와 돌아가지 못한 괴수들이 철도 너머에 숨어있는 게 느껴진다.
왜 이런 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그 존재감 자체가 피부를 타고 기어 올라오고 있다.
괴수와 감염체들은 나를 공격할 테니 숨어야 한다.
당장 어딘가에 숨어서 마법소녀가 패배하는 걸 기다리거나…지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마법소녀를 무력화시킬 수 없으니까, 기다렸다가…지치고 방심한 마법소녀를 노린다.
…뭐지 이게?
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최면어플을 쓰면 되는데 왜 기다려야 하지?
무력화를 언제든 시킬 수 있는데, 왜 무력화되는 걸 기다려야 하지?
애초에 무력화라는 말이 맞나?
최면에 걸린 게 왜 무력화지?
그건 트랜스 상태, 무의식 상태라고 해야 한다.
무력화가 아니라, 최면 입력 대기상태에 더 가깝다.
그레이프는 최면을 걸고 나서도 풀려날 수 있고, 최면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도 하잖아?
그건 무력화가 아니다.
위화감이 강해진다.
두통이 심해지며,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끊어지려고 한다.
이성이 되돌아오려고 하다가, 침전물에 억제당한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한다.
“아르나! 전투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