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습격 (1)
탑승객들을 위해 차단벽이 올라가기 시작하며 나는 역에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둘러봤다.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아니기 때문인지 역에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적다.
사람도 없으니 운전실에 탑승해볼까 싶어졌지만, 그레이프에게 너무 짜내져 전혀 서지 않는 물건을 확인하고 생각을 접었다.
이렇게까지 욕구가 텅텅 비어있는 건 처음이다.
야한 생각 자체는 들지만, 육체가 버티질 못한다.
마법소녀에게 생명을 위협당하다니….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그레이프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고 난 뒤 나는 어지럼증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두통과 근육통이 점점 심해져서 빨리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제대로 휴식해서, 다른 마법소녀들을 덮칠 체력을 회복해 둬야 한다.
…뭔가 이상하다.
그레이프에게서 위기감을 느낀 순간부터 뭔가 내 몸의 상태가 이상하다.
그레이프를, 마법소녀를 적대하기 시작하자 점점 머릿속이 아프게 조여온다.
몸속에 쌓여있던 침전물이 흔들리며 올라오는 듯한…기괴하고 불쾌한 기분이다.
“윽….”
위화감이 두통에 녹아 사라진다.
조금 전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눈이 아프다.
집에 가서 회복해야 한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마법소녀를 마음대로 덮칠 수 있는, 처녀를 유지하는 마법소녀를 사냥할 수 있는 존재다.
생명을 최대한 유지해서, 최대한 많은 마법소녀들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내게는 그럴 힘이 있다.
다른 잡것들과는 다르다.
많은 마법소녀를 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래피드 뿐이다.
래피드의 향기가, 흔적이…이미지가 잊혀지질 않는다.
만족하고 싶다.
회사도 관뒀으니, 이제 래피드에게 내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래피드를 무력하게 해서 범할 수 있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
죽으면 다른 마법소녀들을 처리할 수 없으니까.
왜 처리해야 하지?
기분 좋으니까….
얌전히 집에 돌아가려고 대기선 뒤에 서 있는 그때, 운전실에 탑승하는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낯익은 여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짙은 향기가 후각이 아닌 무언가를 자극한다.
냄새가 나는데, 냄새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며 입에 군침이 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말을 걸어선 안 된다.
몸에 가득 차올랐던 침전물이 가라앉으며 초점이 천천히 돌아온다.
나는 곧은 자세로 우아하게 서 있는 금발의 여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말을 걸었다.
“아르나.”
“누구…! 읏!”
우연히 나와 마주친 아르나는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디자인의 붉은 원피스를 입은 채 내 쪽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마법소녀는 차단벽이 전부 내려오고 난 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투입되거나 교대되는데…아르나는 그런 건 신경 안 쓴다는 듯 일반인처럼 입고 와서 당당하게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단벽이 다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미리 역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니, 특이한 일이다.
촉수견에게 범해진 뒤로 아르나를 보는 건 처음이다.
얼마간 휴가를 쓴 거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휴가가 끝나고 다시 업무에 복귀한 모양이다.
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싫은 티를 내는 아르나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
최면이 통하지 않아 두려움이 느껴졌던 그레이프와 달리, 최면에 전혀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르나는 보기만 해도 귀엽게 느껴졌다.
언제든 내 마음대로 성욕을 풀 수 있는 부잣집 아가씨 마법소녀라는 사실이 무척 자극적이고, 마음에 든다.
아르나는 양 갈래로 묶어 길게 늘어뜨린 금발머리를 새침하게 찰랑거리고는 팔짱을 껴 커다란 가슴을 끌어안으며 사납게 말했다.
“이 저질스러운 사람…!”
“뭐?”
웃는 얼굴로 다가간 나는 모욕을 받자마자 눈을 가늘게 뜨며 아르나를 노려봤다.
아르나는 그런 내게 오히려 더 인상을 쓰며 마주 노려보더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질이라고 한 게 불만이신가요? 그럼 저질이 아니면 뭐죠? 제가 복귀하는 날의 첫 근무에 맞춰서 찾아오다니!”
“아?”
“이 발정 난 인간…제게 그렇게 마력회복을 하고 싶은가요?”
반응을 보아하니 아르나는 나와 마주치면서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연하게도 아르나가 휴가를 끝내고 다시 근무에 복귀하는 타이밍에 맞춰 나와 마주치게 되며 내가 일부러 자신을 보기 위해 시기를 맞춰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같은 때가 아니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아르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우연히 마주친 걸 가지고 무슨…할 마음 전혀 없어.”
“우연이라고요? 지금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는 건가요?”
“아르나가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어, 그게 사실이니까. 계속해서 이상한 트집 잡지 않아 줬으면 좋겠네.”
“그렇게 발뺌을 하시겠다는 건가요? 정말 저열하시네요. 일부러 당신이 오는 시간과 다르게 맞춰서 일하러 온 제게 당신이 우연히 맞춰서 찾아온다고요?”
“일부러 피했다고? 왜?”
“당연히 당신의 추악한 마력회복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죠.”
이 부분은 어딘가 이상하다.
지금까지 나는 아르나가 마력회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왔는데, 추악하다고까지 할 정도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르나도 그레이프처럼 내가 최면을 걸며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걸 확인한 나는 귀찮지만 만난 김에 일단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확인하고 수정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질문했다.
“아르나, 내가 분명 몇 번이나 마력회복 행위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왜 계속 그렇게 음란한 행위로 받아들이는 거야? 마력회복은….”
“마력회복 행위 자체는 마법소녀를 지원해주는 개념이고, 전혀 야한 행동이 아닌 거라는 건 이제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하는 행동은 전혀 고결하고 얌전하지 못하잖아요!”
“고결?”
“인공호흡을 하는데 혀를 넣고 입술을 핥아대는 사람이 있나요?”
비유를 듣고 나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곧바로 이해된다.
마력회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박하게, 쾌감에 젖어 행위를 해대는 게 아르나가 보기에는 거부감이 드는 것 같다.
“당신은 인공호흡을 필요할 때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입을 맞추고 싶을 때 인공호흡이라는 핑계를 대서 행위를 하는 것과 같아요. 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는데도 강요하고…하지 않았다고 그런 심한 말을 해서 모욕하고, 집요하게 저를 꺾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일부러 찾아온 게 아니라니까?”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발정 난 사람….”
아르나는 계속해서 내게 단정한 말투로 욕하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척이나 건방진 모습에 저절로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별것도 아닌 게, 최면에 저항하지도 못하는 마법소녀 주제에 자존심만 높아서는….
짜증 나는 모습에 저절로 머리가 조이듯 아파져 온다.
래피드도 아니고, 심지어 처녀도 아닌 마법소녀에게 내 감정을 소모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하지만 래피드를 먹기 위해서는 내 성욕을 소모시켜 위장할 필요가 있다.
귀찮지만, 아르나는 위험하지도 않고…관리해두면 내게 도움이 된다.
나는 이참에 아르나의 생각을 확실히 교정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내 그곳을 가리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가 흥분해있지 않을까? 아르나는 마법소녀니까 내가 흥분해있는지 정도는 심장 소리로 알 수 있지?”
“심장소리…그런 게 가능한 건 상위권 마법소녀들 뿐이에요, 지금 알고도 놀리시는 건가요? 그 수준이 안된다고?”
“못 해?”
“못 해요!”
중위권 마법소녀는 심장 소리를 감지해 남자가 발기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도 못 하는 건가.
래피드와 그레이프는 가능한 것 같아 중위권에서도 꽤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는 아르나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불가능한 것 같다.
“손 줘봐.”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르나의 손목을 잡아 강제로 내 다리 사이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방심하고 있던 아르나는 변신하지 않고 있는 탓인지 무방비하게 내 자지 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지, 지금 뭐 하는…!”
“이게 흥분한 거로 보여?”
“네?”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내 것 위로 슬쩍 손을 올리게 된 아르나는 화를 내려다가 내 말을 듣고 조금 놀라며 움직임을 멈춰 섰다.
발기되기는 커녕 축 처져서 힘없어 보이는 자지 위로 아르나의 가느다랗고 단정한 손이 살짝 쥐어진다.
“아르나…계속 혼자 이상한 상상 하고 자의식 과잉이 심한 것 같은데…내가 아르나랑 야한 걸 하고 싶어서 마력회복을 해 주는 줄 알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보지 못할 각도에서 아르나의 가슴 밑에 슬쩍 손을 대 받쳐 올려주며 말을 이었다.
아르나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면서도 전혀 발기하지 않는 자지를 보고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슴을 만져도 전혀 흥분이 안 되는데…나는 어떻게든 아르나한테 마력회복을 해 줘야 하니까 모든 수단을 써서 억지로 흥분하려 했던 것뿐이야.”
“그게…무슨….”
“아르나의 마력을 채워주려면 흥분이 전혀 안 되어도 흥분해야 하잖아? 그럼 어떡해야 하겠어? 아르나 말대로 고결하고 얌전하게 정액을 사정하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고결하고 얌전하게 정액을 사정한다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르나가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면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지. 그런데 아니잖아?”
“다, 당신! 제가 매력이 없다니!”
“없으니까 지금 전혀 흥분하지 않고 있지.”
아르나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진다.
치욕스러워 하면서도 내 말에 어찌 반박할 수가 없어 분노만 삼키는 모습이다.
나는 공기 중에 떠도는 아르나의 분노와 심적인 고통을 선명하게 느끼며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달콤한 감정이 느껴지며, 가학심이 피어오른다.
내게 전혀 저항할 수 없는 마법소녀를 좀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
심각할 정도의 갈증이 목 뒤를 긁고 지나간다.
처녀는 아니지만, 아르나는 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다.
자위기구 같은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게 정액을 배출할 수 있는 마법소녀….
제대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내게 복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내 생명을 위협하지 않게끔 확실히 길들여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