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G rape (7)
팔다리의 근육이 찢겨나간 것처럼 아프다.
배는 아직도 계속해서 그레이프가 엉덩이로 내리치는 것처럼 울렁거리고, 골반도 삐걱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다리뼈가 아프고, 무릎이 떨리고, 발이 지면을 잘 딛지 못하고 있다.
등에서부터 어깨, 목으로 이어지는 근육통이 멈추질 않는다.
“허억…허억….”
“애…앵거, 저기….”
나는 비틀거리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온 그레이프를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건 위장이다.
언제 또 강간할지 모른다.
하루를 꼬박 세며 이어진 강간은 내게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본능적인 기피감, 그레이프에게서 멀어져야 한다는 위기감이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혼란시킨다.
나는 그레이프에게서 조금 거리를 벌리며 손바닥을 내밀어 가까이 오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떨어져 주세요.”
“으, 으, 으읏…왜, 왜애…? 왜 그러는 건데요…? 왜, 왜 이렇게…차가워요?”
“떨어져 주세요! 떨어져 주세요!”
“으으으으으…! 흐으으으….”
그레이프가 내게 조금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나는 질겁을 하고 바닥에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며 도망쳤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레이프가 당장에라도 울어 버릴 듯 울상을 짓는다.
그렇게 마음대로 내 의사를 무시하며 강간해놓고 운다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허억…허억….”
나는 내게서 조금 거리를 벌리고 따라오는 그레이프를 무시한 채 지하철에 탑승했다.
의자에 앉으니 온몸에 힘이 풀리며 평소보다 훨씬 가볍고 허전한 아랫도리가 느껴진다.
그레이프는 나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내 쪽을 힐끔거렸다.
그레이프의 시선이 향할 때마다 머리가 점점 아파진다.
어지럽다…심한 두통이 느껴진다.
그레이프가 내 몸에 놓았던 약 때문인가?
아니, 이건 좀 더 근본적인 무언가에서 오는 통증이다.
그레이프에게 강간당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최면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공포….
평범한 사람과는 격이 다른, 포식자인 네거티브를 사냥하는 마법소녀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그레이프에게서 도망쳐야만 한다.
…대체 왜 도망쳐야 하지?
최면을 걸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닌가?
래피드를 범하기 위해서, 래피드의 처녀를 범하기 위해서 위험을 최대한 회피하는 게 좋다.
그레이프는 중요하지 않다…이미 최면어플의 실험은 충분하다.
내게 필요한 건 래피드지, 그레이프가 아니다.
그레이프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왜지?
“…윽!”
“아, 아파요?”
점점 두통이 심해지고, 머리가 두근거린다.
뇌를 조여오는 감각이 심장 소리에 맞춰 울리며 청각을 마비시킨다.
눈이 아파져 오고, 입안이 바싹 마르며 코안이 저려온다.
그레이프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그레이프는 더 이상 무력하지 않다.
최면어플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친다니, 대체 어디로…?
도망칠 필요는 없다, 그레이프는 나를 적대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적대하지 않는데도 생명이 위험하다.
그레이프와 멀어져야 한다…왜?
죽기 직전까지 강간당했으니까…그렇지?
회사는 어차피 관둘 생각이었잖아?
두통이 점점 심해진다.
“혹시, 혹시…또, 또 제가 잘못한 거에요…? 그치만 앵거는 그런거 좋아, 좋아하는…거죠? 그게, 그러니까…지금, 그 이것도 그런…아, 아니죠? 그치만…!”
“가…가까이 오지 마….”
“으읏…으으으….”
지하철 역에 내려와 차량이 오기 전까지 차가운 차단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나는 바로 옆에서 들려온 그레이프의 목소리에 거리를 벌리며 부탁했다.
그레이프는 다행히도 내 말을 듣고 제자리에 멈춰줬고 죄책감에 울먹거리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지하철 안에서 조금 멀리 앉아있던 그레이프는 통증을 참지 못한 내가 이마에 손을 집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차 안에서 그레이프를 보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그레이프와 서로 아는 사이라는 사실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이 뒤따른다.
이 미녀의 정체가 마법강간마 그레이퍼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의 잘못된 시선이다.
나는 그레이프의 걱정스러운 시선에서 오싹한 감각을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가 회사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하철 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무지막지한 근육통이 온몸에 비명을 지르게 만들어줬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레이프에게서 도망치듯 나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그레이프는 순식간에 나를 뒤쫓아 바로 뒤에서 유령처럼 따라왔다.
“애, 앵거! 그러다 넘어져요!”
“저리 가!”
“그런…그런 말 하지…말아주세요….”
밤 동안 거절해도 전혀 듣지 않고 강간해대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그레이프는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상처를 받는 것처럼 울먹이며 순종적이게 거리를 벌렸다.
나는 그레이프를 뒤로 한 채 열심히 출근했고, 그레이프는 내가 비틀거릴 때마다 움찔거리며 나를 부축하기 위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회사 앞에서 정말로 나를 부축해줘 버렸다.
“아앗!”
“으윽….”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은 계단에서 균형을 잃어버린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다가 그레이프의 품 안에 안겼고, 그레이프는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잡아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푹신하고 탄력있는 몸이 탄탄하면서도 확실하게 넘어지려던 내 몸을 보호해줬지만, 나는 그레이프에게 조금도 고마운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문지르면서도 전혀 흥분되지 않는다.
자지가 멋대로 빳빳해지기는 하지만, 자지에서도 뒤늦은 통증이 느껴지며 또다시 강간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치솟는다.
그레이프에게 끌어안겼다는 것 자체도 무섭다.
이대로 꽈악 끌어안아 가슴을 문지르며 허리를 흔들고 다를 강간해버릴 것 같아서 두렵다.
화장실로 데려가 져서 조용히 하라며 보지로 자지를 물어 정액을 짜내며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할까 봐 불안하다.
“놔주세요!”
“으읏…으….”
나는 그레이프의 어깨를 밀치고 벗어나며 곧바로 거리를 벌리고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회사에 출근한 뒤 그레이프는 내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준 모양인지 내게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고 거리를 유지해줬다.
내 쪽을 힐끔거리고 자꾸만 이유 없이 내 주변을 지나가며 시간을 보내고, 조용히 일하는 내 뒤를 맴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레이프가 또다시 나를 강간할 방법을 살펴보는 건 아닌가 싶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행히도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있어 나를 함부로 강간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
갑자기 나를 왜 강간한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내가 건 최면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지금은 강간에 만족하고 주변의 시선을 생각해 일시적으로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있지만, 언제 또 그런 일이 반복되어 발생할지 모른다.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분명 또 강간당한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앵거 씨, 저기…커피, 커피 시켰으니까…앵거 씨 거 라떼…그, 다들 마시니까….”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그레이프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프가 직원들에게 커피를 돌린 것인지 다른 직원들은 모두 손에 커피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그레이프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라떼가 담긴 텀블러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일하다 말고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손에 내게 줄 라떼를 든 그레이프를 바라보고 언제나처럼 손을 내밀어 받으려 했다가 흠칫 놀라며 의자를 책상 쪽으로 더 가까이 움직였다.
“안 마십니다.”
“그…앵거 씨 입맛…으로 시켰는데. 다, 다른 거로 시켜줄까요? 라떼는 제가 먹고…앵거 씨 뭐 따로 마시고 싶은 거 있어요?”
“안 마셔요.”
“으으읏…네에….”
단호하게 말하자 그레이프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텀블러를 들고 뒷걸음질 쳤다.
마시고 싶지 않다.
그레이프가 또 날 강간하기 위해서 음료에 뭔가 탔을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금은 그레이프에게서 뭔가 받아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조용히 일하며 그레이프를 어찌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레이프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내 쪽을 힐끔거렸다.
점심시간이 되고 나서는 갑자기 밖에 빠르게 나가 나한테 먹으라며 도시락을 사 왔지만, 나는 라떼를 주려 했을 때처럼 곧바로 거절했다.
그레이프가 주는 도시락을 거절한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서 그레이프가 사준 것과 다른 도시락을 사 와서 먹었고, 그레이프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울적해 하며 자리에 앉아 자신이 사온 도시락을 먹어치웠다.
식사가 끝난 뒤 빈 도시락 케이스를 내 대신 버리고 와 주겠다는 말을 거절한 나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들을 버린 뒤 화장실에 갔다 왔고, 화장실에서 돌아온 뒤 다른 직원들이 오기 전에 어깨를 안마해주겠다는 그레이프의 말을 또다시 거절했다.
그레이프는 계속해서 내 눈치를 보며 뭔가 해주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레이프와 지금 가까이 있는 것 자체가 너무도 무서웠다.
“필요한 거…! 필요한 거 없어요? 그, 다른 직원들 오기 전에….”
“저, 저한테서 떨어져 주세요….”
단둘이 있는 상황 자체가 무섭다.
직원들이 오기 전에 강간당할까 봐 두렵다.
나는 정말 혹시나 몰라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레이프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고, 다행히도 그레이프는 순순히 내 옆에서 떨어져 줬다.
“으으으…아으으으으으…아아아…!”
그대로 자리로 돌아간 그레이프는 고통과 고뇌가 가득 찬 울음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고 책상에 엎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