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G rape (1)
시야가 빠르게 회전하고 균형감각이 뒤틀린다.
뜨겁고 부드러운 몸이 나를 끌어안으며 바닥에 넘어뜨린다.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몸이 날아가고 쓰러졌는데도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레이프가 내 머리 뒤쪽을 끌어안고 허리를 잡아 엉덩이 뒤쪽에 손을 올려주며 아프지 않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 잠깐! 이게, 무슨…?!”
“하악! 하악! 하악! 하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소리치자 그레이프의 숨소리가 내 말을 막아버린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뜨겁고 날카로운 숨소리다.
눈을 크게 뜨고 내 어깨를 꽉 잡아 누르고 있는 그레이프와 눈을 마주친 나는 어딘가 맛이 가 버린 눈동자를 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그레이프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회사에 출근할 때처럼 정장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깔끔하지가 않다.
단추도 순서를 잘못 잠가 비틀려 있고, 옷도 어딘가 뒤틀려있는 데다 치마 지퍼도 제대로 안 올라가 있다.
두 눈은 초점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빠르게 떨리고 동공이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커지기를 반복했고, 입에서는 뜨거운 숨결과 함께 짐승이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선물해 준 머리끈으로 묶은 머리도 전혀 정리되지 않아 엉망이었고, 다른 것보다도 몸이 이상할 정도로 뜨겁다.
“애…앵거….”
그레이프의 밑에 깔아 눕혀지게 된 나는 그레이프에게 밀쳐 넘어지며 두 손에 들고 있던 식칼과 비전폰을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확인해보니 비전폰은 내 머리 위에, 식칼은 현관쪽으로 날아가 떨어져 있었다.
아무것도 쥐지 못한 내 위에 올라타 있는 그레이프의 입에서 침이 한 방울 떨어져 얼굴을 적신다.
꿀처럼 엄청나게 끈적하고 달콤한 냄새가 난다.
“윽…! 크흣…!”
나는 손에서 비전폰을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위기감이 온몸을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와 흘러넘쳐서 빨리 저 위로 날아간 비전폰을 잡아 최면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대체 그레이프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레이프가 나를 공격했다.
최면이 잘못되었다.
위험하다.
빨리 최면을 걸어서 제압해야 한다.
그레이프가 나를 공격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당장 최면을 수정해야 한다.
정말 열심히 그레이프에게서 몸을 비틀며 도망치려 했지만 그레이프의 엉덩이에 깔린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레이프의 몸을 점점 무겁게 하고 있다.
나는 허리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레이프의 배를 양손으로 애써 밀어냈다.
온 힘을 다해 밀어보려고 하지만 그레이프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하아…! 하아…! 귀여워어…!”
“무슨, 무슨 소리야! 왜, 왜 이러는 건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그레이프의 커다란 가슴을 양손으로 밀었다.
배를 밀어내도 전혀 효과가 없어 가슴을 양손으로 밀어 올리니 그레이프의 표정이 빠르게 변한다.
웃는 것처럼 가늘어진 눈의 눈꼬리가 점점 내려가고 입가가 점점 비틀리며 숨이 더 거칠어진다.
“하아…! 하악…! 하악…!”
“으윽…! 놔줘, 놔줘…!”
“이, 이건 그런 의미인 거죠? 정말 괜찮다는 거죠?! 그쵸?!”
상체를 조금이라도 위로 밀어올려 내리눌러지고 있는 허리를 빼내려고 했던 건데…그레이프는 이상한 말을 하더니 갑자기 한 손에 크리스탈 소드를 소환했다.
손이 쥐어진 순간 검이 들려있다는, 소환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이상 현상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검을 든 그레이프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검 끝으로 날 겨누더니, 그대로 빠르게 내리찍어버렸다.
“히이익!!”
공포심에 눈을 질끈 감은 나는 카가각 하고 돌을 긁는 소리가 허리 옆에서 들려오자 감았던 눈을 다시 작게 뜨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알아봤다.
그레이프는 검을 내리찍어 내가 입고 있던 옷과 함께 바닥을 뚫어버렸다.
도망치지 못하게 나를 바닥에 고정시켰다.
“하악…! 하악…! 문단속부터 할게요!”
그레이프는 검을 소환한 것처럼 한 손에 낯익은 총을 쥐며 말했다.
방위군 훈련병 시절에 봤던 방위군의 ‘쉘터 긴급보강용 급속경화 콘크리트 총’ 이다.
그 총을 부서진 현관문을 향해 제대로 조준하지도 않고 겨눈 그레이프는 빠른 속도로 방아쇠를 당겨 현관문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이걸로 그레이프에게서 벗어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되었다.
탈출구를 막아버린 그레이프는 어째서인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휙휙 풀어버리고, 두 개 정도는 힘 조절이 잘 안 되는지 아예 뜯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레이프가 옷 밑에 입고 있던 레오타드처럼 몸에 달라붙는 마법소녀로서의 전투복이 눈앞에 드러난다.
벗은 옷 밑에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는 건 내 집에 찾아오기 전부터 이미 마법소녀로 변신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럴 이유가 뭐가 있지?
마법소녀로서의 전투복을 갑자기 보여준다는 건 진심으로 상대해 주겠다는 의미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를 적대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이게 뭘 하는 거지?
협박하는 건가?
뭔가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위협하는 건 아닐까?
최면을 걸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나…?
일단은 시간부터 벌어야 한다.
최면어플만 일단 잡으면 어떻게든 할텐데…최면이 들킨 거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끼더라도 일단 기억을 날려버려야 할까?
뭐가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 제일 중요한 건 그레이프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 비전폰을 손에 쥐어야 한다.
그때, 그레이프가 치마를 벗으려고 하며 내 허리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러기 위해서 검을 바닥에 박아넣으며 내 옷을 찔러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 한 것 같다.
그레이프가 몸으로 누르고 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날카로운 검으로 옷을 고정해 놓은 게 다여서 조금만 힘을 쓰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곧바로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그레이프의 허리 밑에서 벗어났다.
“허억! 허억! 허억…!”
스으윽! 하고 날카로운 검날에 옷이 잘려나간다.
네 발로 기어가며 그레이프에게서 벗어난 나는 곧바로 떨어뜨린 비전폰을 집어 들었다.
그레이프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치마 지퍼를 내려 벗어버린 뒤, 입고 있던 옷을 내 방바닥에 툭, 툭 하고 떨어뜨렸다.
“비전폰 들어서 뭐하게요…?”
“헉! 헉! 허억…!”
입고 있던 셔츠와 정장 치마를 벗고 완전히 전투복 차림이 된 그레이프는 바닥에 박아넣었던 검을 다시 뽑아들고 허공에서 없애버리며 비전폰을 들고 있는 내게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 같은 건 무슨 짓을 해도 위협이 안 된다는 것처럼, 어떤 반항을 해도 자기가 원하는 걸 얻고 말겠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다.
암사자가 토끼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아주 느릿하게, 먹잇감을 보는 눈빛으로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반응을 보니 아직 최면어플에 대한 건 모르고 있다.
다행히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최면을 걸어서 어떻게든 수정하면…무슨 문제인지 몰라도 어제 휴가를 쓰기 전에는 문제가 없었으니 그사이의 기억을 전부 날려버리면 일단 괜찮아질 것이다.
최면으로 기억을 지우면 기억의 공백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레이프에게 최면어플을 켠 화면을 내밀었다.
“으응….”
“후우! 후우! 후우…!”
곧바로 그레이프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점점 내게 다가오던 걸음이 멈춘다.
당연하게도 그레이프는 또다시 최면에 걸려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레이프에게 최면을 건 나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때, 그레이프의 머리에서 빛이 빠르게 새어 나오며 파직파직 하는 천둥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빛의 고리가 형성되고 어두운 방 안을 밝게 비춘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갑자기 일어난 현상에 당황하던 나는 다급하게 뭔가 말하려 했지만, 내가 최면을 거는 것보다 그레이프가 최면에서 풀려나는 게 훨씬 더 빠르다.
빛의 고리가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 사라지고 그레이프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하아…하아…진짜 더는 한계인가봐…이성 잃을 것 같아….”
“안 통해…?”
최면을 걸자마자 곧바로 저항력이 일어나며 이성을 되찾는 그레이프의 모습을 본 나는 당황한 나머지 할 말을 잃고 그레이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레이프는 점점 더 가까이, 느릿하면서도 확실하게 내 쪽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레이프에게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조금씩 뒷걸음질 쳐 멀어졌다.
어느새 침대 바로 옆의 벽에 등을 부딪친 나는 그대로 옆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레이프는 내 반응보다 더 빠르게 내 양옆의 벽에 손바닥을 쿵! 하고 부딪쳐 내가 도망칠 곳을 먼저 막아버렸다.
“비전폰…계속 쥐고 있네요?”
“아, 아니…이건….”
그레이프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은 나는 말을 더듬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정말 최면에 대해서 알아차린 건가?
나는 혼란스러운 나머지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그레이프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레이프는 내게 점점 몸을 더 가까이 하며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보다 훨씬 더 심하게 가슴을 밀착하더니, 다리로 내 자지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하아…하아…방위, 방위군에 신고하는 시늉 하는 거에요…?”
“…신고?”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묻자 그레이프는 갑자기 찢어져있는 내 옷을 한 손으로 잡고는 천천히 밑으로 잡아당겼다.
단순히 꽈악 쥐어진 주먹 안에서 드득드득 하고 실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옷이 조금씩 찢겨나간다.
맨몸을 드러내게 된 나는 당황해 두 손으로 몸을 가렸다가, 손목을 잡아 벽에 누르며 다른 한 손으로 거침없이 상의를 찢어버리는 그레이프의 모습에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어차피 말해도 믿어 주지를 않을텐데? 아! 그런 식으로 저항하는 거에요?”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그럼 저항했으니까 지금부터 시작하자는 거죠! 그런 의미 맞죠?!”
나는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찢는 그레이프의 손길을 막으려 했지만, 그레이프는 가슴을 밀착하면서도 재주 좋게 손을 내려 내 상의를 완전히 찢어버렸다.
맨살에 그레이프의 가슴이 꾸욱 눌러지며 안 그래도 흥분해있던 자지가 아플 정도로 빳빳하게 세워진다.
그러자 그레이프는 놀랍게도 내 자지를 손으로 잡아 주무르며 내 눈 바로 앞에서 혀로 입술을 핥아 올리며 말했다.
“자, 잠깐…읏? 그, 그레이프? 저기요?”
“그그, 그럼! 지, 지금부터 안 참고 강간해도 되는 거죠?”
“네?”
나는 내가 대체 무슨 말을 들은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멍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귀가 잘못된 건가?
이상한 단어를 들은 것 같다.
“앵거는 강간하기 좋게 딜도처럼 자지 세우고만 있어요!”
“네?! 아, 아니…네?! 네?!!”
희열에 잠긴 목소리로 말한 그레이프는 자지를 만지고 있던 손을 쥐어 옷만 비틀어 잡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웃으며 내 바지를 찢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