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준비 (9)
“꺼내드릴까요?”
“앗, 네 고맙습…어?”
“아….”
나는 정말 우연히 만난 척하며 래피드의 손끝이 향하는 곳에 있는 책을 꺼내줬다.
래피드는 감사인사를 하다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래피드를 따라 조금 놀란 것처럼 눈을 일부러 크게 뜨며 말했다.
“또 보네요?”
“그, 그러게요…?”
래피드는 케이크 가게에 이어서 또 나와 우연히 마주친 게 신기한 듯 살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정말 우연인 것처럼 래피드에게 책을 건네주고 래피드가 보려고 하는 책 제목을 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전편 재밌었는데.”
“어? 이거…전편 보셨어요?”
“제목이 애락 이었죠? 조금 끈적하긴 했는데…오히려 좀 더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앗, 맞아요…그치만 끈적…그, 그렇…죠.”
내가 래피드에게 건네주고 있는 소설은 애란, 이전에 래피드가 산 소설책에서 이어지는 내용의 차기작이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끈적한, 야한 내용이 많은 소설이다.
여자들이 읽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게 내 생각보다 야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소설이기도 했다.
래피드는 내가 이 소설의 전작을 봤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고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책 제목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들었다.
그대로 다음 소설책을 집으려는 래피드의 손끝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정말 우연인 척 같은 책을 동시에 집었다.
“후읏…?!”
“아, 죄송해요.”
래피드는 또다시 손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움찔거렸다.
자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혼란스러워 눈을 크게 뜨고 계속해서 깜빡인다.
내 손에 닿았던 손을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며 몇 번이고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조심스럽게 책장에 손을 올렸다가 손을 문질러 보기도 하고 손끝을 직접 쥐어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당황스러워한다.
“여기는 종이책이 남아있어서 좋아요. 요즘 조금 보기 힘들잖아요.”
“아, 맞아요….”
“저는 이…종이책 냄새를 좀 좋아해서, 조금 이상하죠? 지금 시대에 종이책에, 남자가 로맨스 소설 좋아하는 거잖아요.”
“앗, 이상하지 않아요…! 저도, 종이책 좋아하고…로맨스 소설은, 남자도 좋아할 수도 있는…걸요?”
‘꽃은 남자도 좋아할 수도 있는 걸요?’
래피드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대사다.
상당히 유사한 대사를 듣고 나는 소설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처럼 부끄러워하며 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그래도 조금 덜 부끄럽네요. 아, 이 소설은 어때요…? 저는 이거 재미있었는데.”
나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비전넷 후기를 통해 래피드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과 비슷한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된 소설책을 집어 들며 추천해줬다.
래피드는 내게서 책을 받아들더니 앞부분과 중간 부분을 대충 읽어보고는 깜짝 놀라며 책을 받아들었다.
“어? 재,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럼…이건?”
“앗, 이거는…이미 읽고 있어요.”
“정말요? 신기하네요…케이크 먹을 때 한 말 생각나요.”
“맛있다고 느끼는 건 다들 같으니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들 같은가 봐요. 아니면, 취향이 비슷하거나….”
말을 하고 나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에 말한 건 계획해 둔 말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좋게 나왔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첫인상을 최대한 좋게 주기 위해서 계획되어 있는 만큼, 래피드와 대화하는 시간 일분일초가 전부 긴장으로 이어진다.
래피드는 내 말을 듣고 조금 놀랐는지, 나를 묘한 눈빛으로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화할 수록 편한 느낌, 점점 더 호감이 느껴지는 대화 상대, 처음 봤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겹치는 취미와 감성적인 공감.
전부 다 로맨스 소설에서 래피드가 접해왔을 사랑의 예감이다.
우연이 겹쳐지면 운명, 짜릿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운명의 예감, 같이 있기만 해도 편하고 기분 좋아지는 사람….
래피드는 계속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자신의 손을 감싸 쥐었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하고 있다.
그때, 책을 집어 들기 위해 가까이 다가온 래피드의 가슴이 우연히 내 팔에 닿으며 푹신하게 팔을 감싸 누르다가 떨어졌다.
“하아아….”
팔에서 뭔가에 불이 붙어 머릿속에서 터져버린다.
푹신한 느낌, 부드럽고 묵직한 감각, 음란하면서도 귀엽고 그러면서도 야릇한데 어질어질하고 폭력적이고 상냥한 촉감.
뭔가 달콤하고 부드러운…아, 딸기 찹쌀떡 같은 냄새가 난다.
그런 냄새를 맡아본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딸기 찹쌀떡이 떠오른다.
래피드를 만나며 유지하던 이성이 순식간에 확 날아가 버리는 게 느껴진다.
정액을 그렇게 짜내고 왔는데, 갑자기 자지 뿌리가 울리며 성욕이 확 치솟는 게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본능을 넘어선 무언가가 래피드의 몸에 반응하고 있다.
어질어질한 감각이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내 몸을 흥분시킨다.
“앗, 죄, 죄송해요!”
래피드는 내게 가슴이 닿는 걸 눈치채고는 깜짝 놀라며 몸을 떨어뜨렸다.
실수로 가슴이 닿았다기에는 조금 예민한 반응이다.
무언가를 걱정하는 듯 눈빛이 불안하게 떨리기까지 한다.
지금 당장 최면을 걸어서 래피드를 덮치고 싶어진다.
여기에서 최면을 걸면 근처 화장실로 끌고 가서 섹스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어질어질해진다.
겨우 가슴이 닿은 것뿐인데,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렵다.
그 순간 머릿속에 애쉬가 검을 휘두르는 광경이, 그레이프가 최면에 조금씩 저항하거나 내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지에서 느껴지던 욱신거림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며 오싹한 위기감으로 변한다.
래피드를 건드리면 생명이 위험하다.
“괘, 괘, 괜찮아요….”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래피드에게서 한걸음 떨어졌다.
손에는 대체 언제 꺼내 들었는지 모를 비전폰이 쥐어져 있었다.
위험했다.
다행히 잔뜩 사정하고 와서 그런지 자지가 세워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금 놀라서 움찔거리기만 하고, 빳빳할 정도로 커지지는 않는다.
래피드는 그런 나를 보고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밑쪽을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그러다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깨닫고 깜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제가 너무 가까이 서 있었나 봐요.”
“아, 아니에요…제가 너무 멍하니…책에 정신이 팔려서 그만.”
래피드와 나는 서로 얼굴을 붉히고 조금 거리를 벌렸다.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박자에 맞춰서 래피드의 어깨가 움찔움찔 떨린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밑을 힐끔거리며 눈썹 끝이 점점 아래로 쳐진다.
뭔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맞지 않아 당황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래피드의 반응을 살피며 소설책을 읽어보는 척하던 나는 문득 책에서 재미있는 문장이 눈에 띄어 소설책을 펼치며 보여줬다.
로맨스 소설답게 조금 판타지적인 내용이다.
“이거 문장이 참 재미있네요? 운명의 사람하고 닿으면 그것만으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는 거.”
“어? 그, 그쵸….”
“정말 그럴까요…?”
그럴 리 있나.
운명의 사람하고 섹스도 안 하고 닿는 것만으로 기분 좋으면 그건 뭔가 마약이라도 한 거겠지.
비밀 사이트에서 그런 약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온몸을 성감대로 만들어 손만 잡아도 절정하게 해 주는 괴수 음액 정제 마약이었다.
물론 그런 마약들은 특정 괴수의 사체에서 성분을 뽑아내는 만큼 쉽게 만들 수 있는 약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판매 개수가 제한되어있었는데도 반응이 꽤 뜨거웠어서 기억하고 있다.
그것과 별개로 문장 자체는 재미있기는 했다.
나는 책을 읽고 있다가 실수인 척 다른 책을 집으려는 래피드의 손을 잡았다.
“후윽?! 후으읏?”
“앗, 미안해요. 이거는 취향에 안 맞아서 다른 책 좀 보려다가….”
“에?! 앗, 네, 아뇨, 괘, 괜찮아요….”
단순히 손을 만지는 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야한 한숨 소리가 들린다.
기분이 너무 좋은데 대체 왜 기분이 좋은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래피드는 또다시 손을 자신의 손으로 주물러보며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내 손과 자신의 손을 몇 번이나 힐끔거리고는 정말 조심스럽게 내 손에 손끝을 톡 가져다 댄다.
“읏…응…읏…? 후읏…?”
손가락 끝을 내 손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쾌감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해를 하지 못해 계속해서 손가락을 돌리는 모습이 귀엽다.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어리둥절하면서도 내 손을 만지는 것만으로 기분 좋다는 사실을 알아가며 혼란스러워한다.
“…후읏? 후읏…후으윽, 하아, 하아….”
시간이 갈수록 손이 점점 노골스러워진다.
이유는 이해할 수 없지만, 기분 좋다는 것만은 알 수 있는지 래피드의 손이 손끝을 꾸욱 문질러대다가 손바닥을 손등에 비벼온다.
대체 왜 손을 만지면 쾌감을 느끼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허리를 살살 흔들며 뜨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하아아아….”
반응이 엄청나다.
허리를 움찔거릴 때마다 커다란 가슴이 바들바들 떨린다.
눈을 크게 뜨고 중앙으로 모아 밖에서 해서는 안 될 바보 같은 표정이 되어 내 손에 비벼대는 손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혼란스러워한다.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꼬아서 비벼대며 움찔거리고, 손가락이 쭈욱 펴졌다가 모아지기를 반복하며 야하게 움찔거린다.
문득 대체 손끝은 어떤 식으로 느끼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손이 보지처럼 느끼는 거니까 손끝이면…어딜까?
지금 래피드는 어딜 문지른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손을 만져대는 걸까?
대체 손바닥은 어떤 느낌이길래 이러는 걸까.
보지처럼 느끼는 거니까…지금은 질구인가?
아니면 질 내? 좀 들어간 곳…? 지스팟 정도? 아니면 완전히 안쪽…?
상상만으로 자지 발기할 것 같다.
“저기…손은 왜….”
“앗?! 아, 아뇨?! 어? 아니에요!”
더 이상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 손을 살짝 피하며 말하자 래피드는 깜짝 놀라 내 손을 만지던 두 손을 머리 높이로 번쩍 들어 올리며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의 두 손을 번갈아 살펴봤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자각하며 놀란 모습이다.
이런 야한 모습을 봤지만, 다행히 내 자지는 쉽게 발기되지 않았다.
집에서 미리 잔뜩 싸두기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