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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화 〉밀회 (2) (85/299)



〈 85화 〉밀회 (2)

나는 일단 바이크를 근처에 주차한 뒤 키를 뽑아 잠금장치를 활성화했다.
어쩐지 래피드의 눈이 열쇠를 든 내 손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 든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얼굴의 방향이 그렇다.


“아, 아니…일단…걷는 거는 괜찮아요?”
“불이 나긴 했지만 내가 다친 건 아니니까.”

래피드는 자꾸 내 몸에 손을 대며  상태를 체크하려 들었다.
나는 아직 래피드의 상태를 알  없어 경계하는 마음에 살짝 뒷걸음질 쳤다.
갑자기 잡아서 뭔가 하면 저항할 수가 없다.
일단 최면이 제대로 걸려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내가 뒷걸음질 치는  본 래피드의 몸이 굳더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앵거도…친구….”

래피드는 뭔가 중얼거리더니 주먹을  쥐고, 내게 내밀던 손을 내렸다.

“그, 그건 그렇고 집에서 쫓겨나다니! 불이 난 게 앵거 잘못도 아닐텐데…어쩌다 불이  거에요?”
“…합선?”
“정말로 사고잖아요! 그런데 앵거를 내쫓다니…원래 살던 곳이 어디예요?”

래피드의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불안한 예감이 든다.
집 주소를 말해주면 집주인의 신변에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같다.

“아니…내쫓아질  했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불난 걸 수리해야 하기도 하고, 나는 월세가 조금 밀리기도 했고….”
“월세가 얼마나 밀렸는데요?”
“한 달 정도?”
“너무해요…겨우  정도로….”
“아니, 내쫓아질  했어.”
“앵거가 너무 착한 거에요!”

래피드의 입이 다물어지며 어깨가 부들부들 떨린다.
나를 위해서 화를 내주다니…역시 래피드는 착한 마법소녀다.

“정말로 괜찮아, 지금 딱히 살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친구 집에서요?”
“오래 살지는 않고, 나올 준비만 되면 나갈 거지만….”
“어? 그, 그래요…?”

래피드의 표정이 묘하다.
선글라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다.


“어…? 그, 그렇구나…친구…죠?”
“응? 친구지.”
“친구…친구….”

래피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더니, 갑자기 양털처럼 푹신푹신한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주무르며 괴로워하는 소리를 냈다.

“끄으으응…미안해요…요즘 자꾸 이상한 생각이 나서.”
“이상한 생각이라니?”
“…너무 이상해서 말 못하겠어요. 뭔가…저 요즘 이상한 것 같아요.”


래피드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촉각이 곤두섰다.
지금 물어봐야 한다.
최면이 풀렸는지, 아니면 풀렸다가 다시 걸린 것인지…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연스럽게 물어볼 기회다.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왜 이상하다는 거야?”


래피드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붉히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나도 따라서 근처에 누가 있나 살펴보니,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여, 여기로….”


그런데도 래피드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내 옷소매를 잡더니 빌라촌 사이에 있는 뒷골목으로 나를 이끌었다.
두 사람이 겨우 서 있을 만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도중에 갑자기 안으로 꺾여지는 구역이 보였다.
래피드는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곧바로 나를 꺾여 들어가는 구역으로 끌고 들어갔다.
 사이에는 빌라의 정화조로 보이는 커다란 구조물과 여러 실외기들이 있는 공간이 보였다.
비에 쓸려 내려간 듯 바닥에는 물웅덩이가 조금 남아있고 바람에 쓸려온 듯한 쓰레기가 틈새에 걸려있다.


뒤늦게 래피드의 복장을 자세히 바라보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체크무늬 셔츠가 가슴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려는 것처럼 패턴을 일그러트리고, 짧은 치마가 골반이 큰 걸 강조하듯 쫘악 조여졌다가 흘러내리듯 내려온다.
자신의 강점을 봐 주길 바라는 듯한 옷차림이다.
이런 뒷골목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다.
완전히 둘뿐인 장소가 되자 래피드는 내게 몸을 가까이 한 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비밀 친구죠?”
“응.”
“비밀친구는, 비밀 공유하고…비밀, 숨기면  되는 거죠?”


갑자기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나는 래피드와 점점 밀착하게 될수록 숨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뒷골목의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냄새가 난다.

“…안아주세요.”
“어?”
“아, 안기고 싶어요…이게 지금 제 비밀…고민이에요.”

얼굴을 붉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래피드는 잔뜩 수줍어하더니,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스스로 다가와 안겼다.
나보다 키가 작은 래피드가 가슴 밑을 커다란 가슴으로 밀어내는 부드러운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미 지쳐있는 자지가 고개를 떨어트린  움찔거린다.

“진짜로 친구로밖에는 안 보여요…?”


그대로 래피드의 몸이 애교를 부리듯, 애원하듯 좌우로 흔들린다.
래피드가 허리를 살살 흔들자 서로의 다리 사이에 눌린 자지가 움찔거린다.
나는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래피드한테 곧바로 물었다.


“왜, 왜 그래?”
“…모르겠어요. 안아주세요.”

…일단 나도 래피드를 이렇게 끌어안아 보고 싶긴 했어서, 곧바로 팔을 들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묘한 느낌이 들고 속이 간질거린다.
야외에서 래피드를 끌어안고 있다니….
누군가에게 들키면 길 가다가 머리를 돌로 내리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행위다.
끌어안은 팔에서 느껴지는 푹신푹신한 마시멜로 같은 달콤한 촉감이 기분 좋다.

“하아아….”

래피드는 내 허리를 감은 손을 꾸욱 눌러 잡아당겼다.
킁킁, 킁킁 하고  몸의 냄새를 맡는 게 느껴진다.
강아지 같다.


나는 기분은 좋지만, 당황스러워서 래피드의 촉감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단 대체 왜 이러는지 알아야만 한다.
최면이 대체 어떻게 되서 이러는 건지…래피드가 순수하게 자기 의사대로 행동하는 거라면 걱정이 없지만, 뭔가 꼬여서 이러는 거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래피드는 잠시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기를 반복하다가 머리카락을 내 몸에 부벼대며 조용하게 말했다.

“저희는…비밀, 친구잖아요?”
“응.”
“보통 친구랑은 다른…훨씬 더 가까운 사이, 맞죠?”

여기까지는 문제  게 없다.
나는 당연한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래피드가 갑자기 선글라스를 위로 올려 머리에 머리띠처럼 고정시키고 살짝 젖은 눈을 빛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그쵸? 맞는 거죠…?”
“왜 그래?”
“…모르겠어요.”

래피드가 혼란스러워하며 눈살을 찌푸린다.
머리가 아픈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내 가슴에 이마를 대고 살살 문지른다.

“하아아…모르겠어…진짜 모르겠어요.  이러는 거지…?”


나도 모르겠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래피드는 잠시 입을 다물고 숨을 삼키더니, 다시 내 가슴에 코를 묻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기분은 좋지만, 왜 이러는 건지 확실하지 않으니 조금 불안해진다.

“이상해…이상해, 지금 보면 이렇게 좋은데  그랬을까요….”
“무슨 일 있었어?”
“…모르겠어요, 저도 제가 이해가 안 돼요.”
“얘기해주지 않을래? 비밀친구잖아.”
“으….”


나는 아직 최면이 남아있는 것 같은 래피드의 모습을 생각해 비밀친구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래피드는 조금 불편한 표정을 하더니, 내 다리에 자신의 다리를 살살 문질러대며 대답했다.


“비밀친구…그쵸, 비밀…얘기  해주는 거죠? 서로?”
“그렇지.”
“…저한테 말해줄 수 있는 비밀은 얘기해 준 거죠?”
“응…저기, 래피드…잠깐….”

계속해서 다리를 문질러대며 자지를 압박한다.
아무리 지친 자지라고 해도 이렇게 부드럽게 유혹하듯 문질러대면 반응할 수밖에 없다.
순진한 래피드는 그냥 끌어안겨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문지르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참기 힘든 자극이다.

“자지   같아.”


래피드는 내 말을 듣자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조금 기쁜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가만히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저한테 반응할  같아요?”
“응.”
“…여자로 보여요?”
“당연하지?”


래피드가 여자로 보이지 않으면 대체 누굴 여자로 보라는 거지?
정말로 이상한 상태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구나…으, 응…여자로 보니까, 반응 참기 힘드니까…당연한 거…아아아…당연한 것 뿐….”
“대체 왜 그래? 래피드, 혼자서만 고민하지 말고 얘기해줘, 비밀친구잖아.”
“비, 비밀친구…읏…하아아….”


계속해서 혼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볼수록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다시 한 번 비밀친구라는 단어를 말하자 래피드가 내 말을 무시하고 싶은 것처럼  팔로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머리를 가슴에 문질러댔다.
애교부리는 강아지 같아서 귀엽다.
래피드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내게 머리를 기댄  천천히, 왜 이러는 건지 이유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게…이상해서, 애쉬랑 모의전 하고 나서 앵거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밀친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등골이 서늘해진다.
끝까지 다 듣지 않았는데도 곧바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최면이 제대로 걸려있다면 비밀친구의 관계를 의심할 리 없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다.


“앵거가 싫어졌다거나 그런 게 아닌데…모르겠어요! 아…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까 불안해서. 조, 좋아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게 호감을 느끼는 최면까지 풀렸었다는 얘기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지금은 왜 괜찮은 건지, 풀린 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상태인지 모르겠지만…래피드의 최면이 이미 한번 풀렸다.


“그, 그치만 지금은, 조….”
“래피드, 잠깐 이거 봐봐.”
“오…아…?”


나는 곧바로 래피드의 얼굴에 최면어플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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