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밀회 (1)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많은 알림이 와 있는 거지?
래피드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메시지를 보낼 이유가 있나?
헤어진 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고, 서로 메시지를 보내고 대화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메시지가 온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 답장은 하나도 없을 때 온 일방적인 메시지들뿐이다.
곧바로 래피드와의 대화창을 열어본 나는 일단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래피드가 처음 보낸 메시지부터 찾아 천천히 내리며 읽어보기 시작했다.
<오늘 갑자기 가서 미안해요…애쉬가 요즘 자꾸 이상하다고 해서.]
<케이크는 먹었어요? 어때요?]
<오늘 고민 들어줘서 고마워요….]
처음 보낸 메시지들은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케이크는 리프 X에게 습격당하는 사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방에 돌아갈 때까지는 들고 있었는데, 그 뒤에는 어떻게 됐지…?
집주인이 먹었을지도 모른다.
메시지들을 보낸 시간이 조금 차이가 나는 거로 봐서 내가 답장이 없어 기다리다가 하나씩 보낸 모양이다.
래피드가 메시지를 보낼 때 나는 리프에게 잡혀가고 있었다.
답장할 방법이 없을 때였다.
<바빠요…?]
<저녁 먹었어요?]
<잘 자요!]
그 다음 메시지도 문제 될 건 없다.
여전히 답장이 없는 내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좋은아침!!]
<저…혹시 뭐 잘못했나요….]
<…갑자기 가서 미안해요.]
<케이크 별로였어요…?]
<매번 저만 고민 상담해서 미안해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내가 대답이 없자 점심때부터 우울감에 빠진 모양이다.
혼자서 나한테 뭔가 잘못한 게 없나 생각하며 하나하나 사과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저 지금부터 애쉬랑 모의전 해요.]
<앵거한테 응원받고 싶은데….]
점심시간이 넘어, 내가 짐정리를 하기 전 시간대에 온 메시지다.
이때부터 나는 열심히 짐들을 정리하고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느라 비전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애쉬랑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2시간 후의 메시지부터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앵거, 저기…통화 괜찮아요?]
<진짜로 중요하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혹시 메시지 안 보는 거랑 뭔가 연관되어있는 거에요…?]
<무슨 일 있어요?]
래피드는 나와 메신저로 대화한 적은 있어도 통화를 한 적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통화를 하려고 하려고 하면 전화는 곤란하다는 말만 했었다.
애쉬가 래피드를 철저하게 감시하니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하는 추리만 하고 있었지만, 그런 래피드가 내게 통화를 하자고 갑자기 물어보는 건 조금 이상했다.
<저기…앵거, 저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앵거, 답장해주세요.]
<저기…저희 친구죠?]
<이상한 말 해서 미안해요.]
<친구…맞죠?]
<미안해요….]
메시지만 봐도 래피드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게 보인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게 내게도 느껴진다.
<이상해요…친구사이가 고민을 서로 털어놓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앵거가 제 고민을 받아준 게 싫다는 건 아니에요…근데, 좋은데….]
<모르겠어요 앵거, 전화 주세요…저 진짜 이상해요.]
<이상해요…저 무서워요, 뭔가 이상해요….]
래피드가 하는 말을 보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머릿속에 든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면이 풀리려고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비밀친구에 대한 최면이 사라져있는 건가?
이런 메시지를 보낼 이유는 그것뿐이다.
대체 왜지? 풀릴 이유는 없을 텐데?
<앵거 무사한 것 맞아요?]
<무슨 일 있으면 말해주세요.]
<메시지를 읽기만이라도 해주세요.]
<걱정돼요.]
래피드가 걱정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만으로 오싹한 감각이 많이 사라졌다.
다행히 내게 적대감을 가지거나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 최면에서 완전히 풀려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그러면 그 메시지는 뭐지?
리프를 통해 최면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난 뒤여서 그런지 이런 사소한 메시지만으로도 과하게 신경이 쓰였다.
래피드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최면이 풀리기라도 하는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처음 걸어뒀던 내 손에 닿을 때만 손이 보지처럼 느끼게 되는 최면도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니까.
래피드가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래피드를 이렇게 만든 원인이 무언가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래피드가 보내는 메시지의 느낌이 변한건…애쉬랑 모의전을 한다는 말을 하고 난 뒤부터다.
모의전 중에 무언가 일이 있기라도 했던 건가?
애쉬의 최면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애쉬의 저항력이 높다고 래피드의 최면이 풀리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체 뭐가 원인일까.
최면이 풀린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하며 화면을 내려보니 그 후의 메시지는 더 이상했다.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앵거, 미안해요…이상한 소리 해서, 당연한 건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어요.]
<저 뭔가 이상해졌었나 봐요….]
<답장해주세요…이상한 말 해서 미안해요…정말로 잘못했어요.]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요….]
<전화라도 괜찮아요….]
이 메시지를 끝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레이프와 섹스하는 하루 동안 계속해서 내 답장을 기다린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제 그레이프와 죽을 정도로 섹스하고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을 때 메시지가 보내져 있었다.
<보면 메시지 하나만…보내주세요…]
기다리다 지쳐서 정말 애원하듯이 보낸 듯한 메시지다.
메시지를 보고 나는 아주 잠시동안 고민에 빠졌다.
답장을 바로 해주는 게 좋을까?
이렇게까지 기다린 걸 보니 답장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지만, 래피드가 최면에서 풀려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바로 다시 최면을 걸면 되는 거긴 해도…메시지만으로는 래피드가 왜 이러는 건지 알 방법이 없다.
다시 최면을 걸어도 풀려버린다면 그것도 문제다.
어디까지 풀린 거지? 지금 어떤 상태지? 왜 이러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나는 메신저 창을 가만히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대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래피드의 상태도 짐작이 가지 않고, 답장을 보내도 괜찮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자, 갑자기 메신저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보고 있어요?]
“…꿀꺽.”
래피드다.
메시지를 보자 저절로 침이 삼켜진다.
별것 아닌 한마디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래피드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읽음 표시가 사라진걸 확인한 것인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띠링띠링 하고 알림음이 연속해서 울린다.
<앵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큰일 난 거 아니죠?]
“응?”
이상하다.
최면이 풀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내 걱정만 해준다.
혹시 그냥 내 착각이었던 건 아닐까?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메시지 내용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
<잠깐만 볼 수 있어요…? 정말 아주 잠깐만….]
나는 래피드의 메시지를 보며 두통을 느꼈다.
어떡해야 될지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상황인 거지? 대체 뭘 어떡하면 좋지…?
최면이 풀린 건가? 아니면 안 풀린 건가?
리프의 일만 없어도 최면이 풀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한번 벗어나고 우회하는 걸 보고 나니 불안해진다.
이게 다 리프 때문이다.
나중에 보면 배를 때려줘야겠다.
조용히 고민을 계속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일단, 걱정하는 걸로 봐서 내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답장을 보내서 조금 떠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앗]
<앵거, 괜찮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갈 수 있어요.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보러 가도 돼요…?]
나는 래피드의 메시지를 보고 그제야 내가 지금 있는 장소를 떠올렸다.
여기는 그레이프의 집이다.
내 집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고, 래피드가 보러 오겠다는 말은 아마도 공간이동을 해서 보러오겠다는 말일 것이다.
래피드가 그레이프와 나의 관계를 아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곳으로 온다 해도 문제였고, 내 집이었던 곳에 가는 것도 문제였다.
전에 만났던 곳으로 온다고 해도 내가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는 한 시간은 넘게 걸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래피드에게 솔직하게 사정을 얘기해줬다.
[아…나 지금 집에 없어.>
<바깥이에요…?]
[아니, 말을 잘못했다. 집이 없어.>
<네?]
[집에 불이 나서 답장도 못 했어. 미안. 비전폰도 같이 타버려서 고장 났거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네?!]
<불이요? 왜요?]
<안 다쳤어요?!]
<갈께요! 바로!]
<정신 잃고 있었던 거에요?]
<얘기하지 그랬어요! 아니, 얘기 못하겠지만…아….]
<병원이에요? 집이에요?]
<아니, 집 불탔다고 했죠…? 병원이에요? 어디 병원이에요?]
솔직하게 래피드에게 지금까지 답장을 못 한 이유를 말해주자, 래피드는 갑자기 메시지를 눈사태처럼 빠르게 보내왔다.
가속 마법이라도 쓴 것 같은 엄청난 속도다.
반응을 보니…최면이 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메시지가 신경 쓰인다.
다시 화면을 올려 메시지를 읽어보니…최면이 풀렸다가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에는 정말로 래피드의 최면이 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이후 다시 내 걱정을 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나중에 리프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는 걱정스러워하며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래피드의 모습을 보고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하며 답장을 보냈다.
[일단 집에서는 쫓겨났고…지금은 친구 집에 좀 있어.>
<집에서 쫓겨나요? 왜요? 화재 때문에? 화재는 쫓아낼 이유가 못되잖아요!]
[집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지….>
<악독한 사람이네요…어떻게 화재가 나서 다친 사람한테….]
래피드는 나를 쫓아낸 못된 집주인에게 대신 화를 내줬다.
역시 성녀라고 불릴 만큼 선한 마음을 가진 마법소녀다.
<그러면…친구 집이라고 했죠? 지금은 어디 있는 거예요?]
[A 구역에서 산 쪽. 12번 쪽?>
나는 그레이프의 집이 있는 곳에서 바로 옆의 있는 구역을 말해줬다.
그레이프의 집은 완전히 산속에 있었지만, 이 근처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그리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빌라촌이 나온다.
아파트와 다르게 쉘터도 빌라에서 나와 도망쳐 들어가야 하는, 가난한 곳이다.
충분히 내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 살만한 구역이기도 하다.
그레이프가 아까 말해준 바이크를 타고 나가면 얼마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을 만한 거리기도 했다.
사실 그레이프와 택시를 타고 이쪽 방향으로 이동할 때만 해도 역시 그레이프는 여기에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산 속으로 들어가 숨겨진 금속으로 된 주택을 보고 실망과 감탄을 동시에 느꼈다.
<어…?]
[왜?>
<아니에요, 바로 갈게요.]
래피드는 이제는 내게 공간이동을 해서 온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곧바로 간다고 말했다.
혹시나 몰라 최면어플을 켜보니 래피드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위치가…내가 원래 살던 집 주변이다.
그새 공간이동을 해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기다리자, 래피드의 위치가 내가 말해준 지역으로 변한다.
나는 조금 놀라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걸어가며 메시지를 보냈다.
[나 아직 안 씻었는데….>
<기다릴게요,]
래피드의 정확한 상태는 알 수 없었지만,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대화하는 태도를 봐서는 위험할 것 같지도 않다.
대화만 봐도 내게 위험하지 않은 상태인 건 이미 확실해보였으니…최면이 풀렸다면 다시 최면을 걸고, 안 풀렸다면 단순히 래피드를 만나서 놀고 오면 되는 일이다.
안 풀려있다면 다행이지만, 풀렸다면 빨리 다시 걸어두는 게 좋다.
대충 샤워하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나는 몸에 물기만 말리고 그레이프가 사준 옷을 입고 나와 집에서 나왔다.
집 옆에 세워져 있던 그레이프의 바이크를 만져보니 이미 열쇠가 꽂혀있었다.
언제든 내가 타고 나갈 수 있게 준비해 둔 모양이다.
나는 좌석에 올려진 헬멧을 머리에 쓰려다가, 갑갑한 느낌에 대충 바닥에 내려놓고 바이크를 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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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젖은 머리를 말리며 래피드가 있는 장소로 간 나는 최면어플의 추적기능을 확인해 래피드가 있는 곳을 빠르게 찾았다.
이미 내게 메신저로 자신이 있는 곳을 대충 말해주기도 했지만, 추적기능을 쓰니 조금도 헤매지 않고 래피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앗…!”
그리고 래피드도, 내가 근처에 오자마자 나를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빌라촌에서 짙고 큰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래피드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다.
“…어?”
가까이 다가온 래피드는 갑자기 멈칫하고 고개를 살짝 내려 내 바이크 쪽을 보는 것처럼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뭔가 중얼거렸다.
“같은 모델….”
“래피드?”
“앗, 앵거! 다친 데는 없어요?
래피드는 선글라스를 쓴 채 내게 가까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