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밀회 (1) (84/299)



〈 84화 〉밀회 (1)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많은 알림이 와 있는 거지?
래피드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메시지를 보낼 이유가 있나?
헤어진 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고, 서로 메시지를 보내고 대화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메시지가 온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답장은 하나도 없을 때 온 일방적인 메시지들뿐이다.
곧바로 래피드와의 대화창을 열어본 나는 일단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래피드가 처음 보낸 메시지부터 찾아 천천히 내리며 읽어보기 시작했다.

<오늘 갑자기 가서 미안해요…애쉬가 요즘 자꾸 이상하다고 해서.]
<케이크는 먹었어요? 어때요?]
<오늘 고민 들어줘서 고마워요….]

처음 보낸 메시지들은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케이크는 리프 X에게 습격당하는 사이 어떻게  건지 모르겠다.
방에 돌아갈 때까지는 들고 있었는데, 그 뒤에는 어떻게 됐지…?
집주인이 먹었을지도 모른다.
메시지들을 보낸 시간이 조금 차이가 나는 거로 봐서 내가 답장이 없어 기다리다가 하나씩 보낸 모양이다.
래피드가 메시지를 보낼 때 나는 리프에게 잡혀가고 있었다.
답장할 방법이 없을 때였다.


<바빠요…?]
<저녁 먹었어요?]
<잘 자요!]

그 다음 메시지도 문제 될  없다.
여전히 답장이 없는 내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좋은아침!!]
<저…혹시 뭐 잘못했나요….]
<…갑자기 가서 미안해요.]
<케이크 별로였어요…?]
<매번 저만 고민 상담해서 미안해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내가 대답이 없자 점심때부터 우울감에 빠진 모양이다.
혼자서 나한테 뭔가 잘못한 게 없나 생각하며 하나하나 사과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저 지금부터 애쉬랑 모의전 해요.]
<앵거한테 응원받고 싶은데….]


점심시간이 넘어, 내가 짐정리를 하기 전 시간대에  메시지다.
이때부터 나는 열심히 짐들을 정리하고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느라 비전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사이에 애쉬랑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2시간 후의 메시지부터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앵거, 저기…통화 괜찮아요?]
<진짜로 중요하게 물어보고 싶은  있어요.]
<혹시 메시지  보는 거랑 뭔가 연관되어있는 거에요…?]
<무슨  있어요?]


래피드는 나와 메신저로 대화한 적은 있어도 통화를  적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통화를 하려고 하려고 하면 전화는 곤란하다는 말만 했었다.
애쉬가 래피드를 철저하게 감시하니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하는 추리만 하고 있었지만, 그런 래피드가 내게 통화를 하자고 갑자기 물어보는 건 조금 이상했다.

<저기…앵거, 저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앵거, 답장해주세요.]
<저기…저희 친구죠?]
<이상한 말 해서 미안해요.]
<친구…맞죠?]
<미안해요….]

메시지만 봐도 래피드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게 보인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게 내게도 느껴진다.


<이상해요…친구사이가 고민을 서로 털어놓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앵거가 제 고민을 받아준 게 싫다는 건 아니에요…근데, 좋은데….]
<모르겠어요 앵거, 전화 주세요…저 진짜 이상해요.]
<이상해요…저 무서워요, 뭔가 이상해요….]

래피드가 하는 말을 보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머릿속에 든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면이 풀리려고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없다.


비밀친구에 대한 최면이 사라져있는 건가?
이런 메시지를 보낼 이유는 그것뿐이다.
대체 왜지? 풀릴 이유는 없을 텐데?

<앵거 무사한 것 맞아요?]
<무슨  있으면 말해주세요.]
<메시지를 읽기만이라도 해주세요.]
<걱정돼요.]


래피드가 걱정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만으로 오싹한 감각이 많이 사라졌다.
다행히 내게 적대감을 가지거나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 최면에서 완전히 풀려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그러면  메시지는 뭐지?
리프를 통해 최면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난 뒤여서 그런지 이런 사소한 메시지만으로도 과하게 신경이 쓰였다.

래피드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최면이 풀리기라도 하는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처음 걸어뒀던  손에 닿을 때만 손이 보지처럼 느끼게 되는 최면도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니까.
래피드가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래피드를 이렇게 만든 원인이 무언가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래피드가 보내는 메시지의 느낌이 변한건…애쉬랑 모의전을 한다는 말을 하고 난 뒤부터다.
모의전 중에 무언가 일이 있기라도 했던 건가?
애쉬의 최면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애쉬의 저항력이 높다고 래피드의 최면이 풀리는  말이 안 된다.
대체 뭐가 원인일까.
최면이 풀린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하며 화면을 내려보니 그 후의 메시지는 더 이상했다.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앵거, 미안해요…이상한 소리 해서, 당연한 건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건지 모르겠어요.]
<저 뭔가 이상해졌었나 봐요….]
<답장해주세요…이상한 말 해서 미안해요…정말로 잘못했어요.]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요….]
<전화라도 괜찮아요….]

 메시지를 끝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레이프와 섹스하는 하루 동안 계속해서 내 답장을 기다린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제 그레이프와 죽을 정도로 섹스하고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을 때 메시지가 보내져 있었다.


<보면 메시지 하나만…보내주세요…]


기다리다 지쳐서 정말 애원하듯이 보낸 듯한 메시지다.
메시지를 보고 나는 아주 잠시동안 고민에 빠졌다.
답장을 바로 해주는 게 좋을까?

이렇게까지 기다린 걸 보니 답장을 해주는 게 좋을  같지만, 래피드가 최면에서 풀려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바로 다시 최면을 걸면 되는 거긴 해도…메시지만으로는 래피드가  이러는 건지 알 방법이 없다.
다시 최면을 걸어도 풀려버린다면 그것도 문제다.


어디까지 풀린 거지? 지금 어떤 상태지? 왜 이러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나는 메신저 창을 가만히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대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래피드의 상태도 짐작이 가지 않고, 답장을 보내도 괜찮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자, 갑자기 메신저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보고 있어요?]
“…꿀꺽.”


래피드다.
메시지를 보자 저절로 침이 삼켜진다.
별것 아닌 한마디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래피드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읽음 표시가 사라진걸 확인한 것인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띠링띠링 하고 알림음이 연속해서 울린다.

<앵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큰일 난 거 아니죠?]
“응?”


이상하다.
최면이 풀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내 걱정만 해준다.
혹시 그냥 내 착각이었던 건 아닐까?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메시지 내용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

<잠깐만  수 있어요…? 정말 아주 잠깐만….]

나는 래피드의 메시지를 보며 두통을 느꼈다.
어떡해야 될지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상황인 거지? 대체 뭘 어떡하면 좋지…?


최면이 풀린 건가? 아니면 안 풀린 건가?
리프의 일만 없어도 최면이 풀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한번 벗어나고 우회하는 걸 보고 나니 불안해진다.
이게 다 리프 때문이다.
나중에 보면 배를 때려줘야겠다.

조용히 고민을 계속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일단, 걱정하는 걸로 봐서 내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답장을 보내서 조금 떠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앗]
<앵거, 괜찮아요? 무슨  있었어요…?]
<갈 수 있어요.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보러 가도 돼요…?]

나는 래피드의 메시지를 보고 그제야 내가 지금 있는 장소를 떠올렸다.
여기는 그레이프의 집이다.
내 집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고, 래피드가 보러 오겠다는 말은 아마도 공간이동을 해서 보러오겠다는 말일 것이다.
래피드가 그레이프와 나의 관계를 아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곳으로 온다 해도 문제였고,  집이었던 곳에 가는 것도 문제였다.
전에 만났던 곳으로 온다고 해도 내가 그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은 넘게 걸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래피드에게 솔직하게 사정을 얘기해줬다.

[아…나 지금 집에 없어.>
<바깥이에요…?]
[아니, 말을 잘못했다. 집이 없어.>
<네?]
[집에 불이 나서 답장도  했어. 미안. 비전폰도 같이 타버려서 고장 났거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네?!]
<불이요? 왜요?]
<안 다쳤어요?!]
<갈께요! 바로!]
<정신 잃고 있었던 거에요?]
<얘기하지 그랬어요! 아니, 얘기 못하겠지만…아….]
<병원이에요? 집이에요?]
<아니,  불탔다고 했죠…? 병원이에요? 어디 병원이에요?]


솔직하게 래피드에게 지금까지 답장을 못  이유를 말해주자, 래피드는 갑자기 메시지를 눈사태처럼 빠르게 보내왔다.
가속 마법이라도 쓴  같은 엄청난 속도다.
반응을 보니…최면이 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메시지가 신경 쓰인다.


다시 화면을 올려 메시지를 읽어보니…최면이 풀렸다가 돌아온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에는 정말로 래피드의 최면이 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이후 다시 내 걱정을 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나중에 리프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는 걱정스러워하며 쉴  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래피드의 모습을 보고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하며 답장을 보냈다.

[일단 집에서는 쫓겨났고…지금은 친구 집에 좀 있어.>
<집에서 쫓겨나요? 왜요? 화재 때문에? 화재는 쫓아낼 이유가 못되잖아요!]
[집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지….>
<악독한 사람이네요…어떻게 화재가 나서 다친 사람한테….]


래피드는 나를 쫓아낸 못된 집주인에게 대신 화를 내줬다.
역시 성녀라고 불릴 만큼 선한 마음을 가진 마법소녀다.


<그러면…친구 집이라고 했죠? 지금은 어디 있는 거예요?]
[A 구역에서 산 쪽. 12번 쪽?>


나는 그레이프의 집이 있는 곳에서 바로 옆의 있는 구역을 말해줬다.
그레이프의 집은 완전히 산속에 있었지만, 이 근처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그리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빌라촌이 나온다.
아파트와 다르게 쉘터도 빌라에서 나와 도망쳐 들어가야 하는, 가난한 곳이다.


충분히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 살만한 구역이기도 하다.
그레이프가 아까 말해준 바이크를 타고 나가면 얼마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을 만한 거리기도 했다.
사실 그레이프와 택시를 타고 이쪽 방향으로 이동할 때만 해도 역시 그레이프는 여기에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산 속으로 들어가 숨겨진 금속으로 된 주택을 보고 실망과 감탄을 동시에 느꼈다.


<어…?]
[왜?>
<아니에요, 바로 갈게요.]

래피드는 이제는 내게 공간이동을 해서 온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곧바로 간다고 말했다.
혹시나 몰라 최면어플을 켜보니 래피드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위치가…내가 원래 살던 집 주변이다.
그새 공간이동을 해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기다리자, 래피드의 위치가 내가 말해준 지역으로 변한다.
나는 조금 놀라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걸어가며 메시지를 보냈다.


[나 아직 안 씻었는데….>
<기다릴게요,]

래피드의 정확한 상태는 알 수 없었지만,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대화하는 태도를 봐서는 위험할  같지도 않다.
대화만 봐도 내게 위험하지 않은 상태인  이미 확실해보였으니…최면이 풀렸다면 다시 최면을 걸고, 안 풀렸다면 단순히 래피드를 만나서 놀고 오면 되는 일이다.
 풀려있다면 다행이지만, 풀렸다면 빨리 다시 걸어두는 게 좋다.


대충 샤워하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 나는 몸에 물기만 말리고 그레이프가 사준 옷을 입고 나와 집에서 나왔다.
집 옆에 세워져 있던 그레이프의 바이크를 만져보니 이미 열쇠가 꽂혀있었다.
언제든 내가 타고 나갈 수 있게 준비해  모양이다.
나는 좌석에 올려진 헬멧을 머리에 쓰려다가, 갑갑한 느낌에 대충 바닥에 내려놓고 바이크를 운전했다.


# # #




바람에 젖은 머리를 말리며 래피드가 있는 장소로  나는 최면어플의 추적기능을 확인해 래피드가 있는 곳을 빠르게 찾았다.
이미 내게 메신저로 자신이 있는 곳을 대충 말해주기도 했지만, 추적기능을 쓰니 조금도 헤매지 않고 래피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갈  있었다.


“앗…!”

그리고 래피드도, 내가 근처에 오자마자 나를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빌라촌에서 짙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래피드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다.

“…어?”

가까이 다가온 래피드는 갑자기 멈칫하고 고개를 살짝 내려 내 바이크 쪽을 보는 것처럼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뭔가 중얼거렸다.

“같은 모델….”
“래피드?”
“앗, 앵거! 다친 데는 없어요?

래피드는 선글라스를   내게 가까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