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추적 (10)
행복하게 활짝 웃는 리프는 뱃속을 계속해서 휘젓는 촉수를 따라 허리를 이리저리 틀어대며 입가를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런 리프를 내려다보며 배를 누르다가 최대한 멋있고 진지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며 말했다.
“근데 내가 왜 협상을 해줘야 해?”
“흐이익, 잠깐, 거긴…너무 깊…네에?!”
한 발 빼고 나니 머릿속이 조금 개운해져서 드는 생각이었지만, 내가 리프와 대화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에스더가 리프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내 손에도 망가지긴 했지만, 최면은 걸 수 있는 상태의 최면어플이 있다.
일방적인 상황이다.
이미 이것저것 실험해 보며 꼼꼼하게 최면을 걸어서 리프를 완전히 내 노예로 만들면 끝나는 게임이 되어있다.
내게 필요한 건 리프와 대화하는 것이 아닌, 최면을 거는데 드는 시간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리프가 발끝을 꾹 쥔 채 멈춰달라는 것처럼 엉덩이에 힘을 주고 안쪽을 조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자아…저, 저를 에스더가 죽이지 않고 간 건, 에스더는 그럴 이유가 없으니 앵거님이 뭔가 관계가 있다는 거죠? 도와주러 온 것부터 그렇지만…에스더의 남자친구라도 되는 걸까? 역시 에스더한테도 최면…? 아무튼! 그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나한테 최면어플을 들이민 것부터 내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거죠?!”
…분명 리프는 아까 정신을 잃고 있었을 텐데?
최면을 걸고 있다는 상황만으로 이렇게까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게 가능한가?
기분 나쁜 녀석이긴 하지만 확실히 머리가 좋은 것만큼은 진짜다.
보지에서 정액을 퓻퓻 싸지르고 있지만, 확실히 리프는 초 천재 보지가 맞았다.
“자! 그, 그러면 이제 협상하자구요? 원하는 건…이 초 천재 미소녀박사 리프의 아름다운 몸과 두뇌인 거죠? 연애해줄게요! 아니, 세, 섹스도 할게요! 콘돔만, 콘돔만 써주세요!”
“내가 왜 너랑 연애해야 해?”
“하아?! 나 같은 초 천재님이 연애해준다는데! 이 몸매와 이 두뇌를 당신의 여자로 할 수 있는 거라고요! 읏?!”
멍청한 건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안이다.
감히 리프주제에 내 여자친구 자리를 노리다니.
래피드의 발톱 때 냄새만큼의 매력도 없는 리프가 할 말이 아니다.
정말로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리프가 입을 움찔거리며 두 손을 쥐고 고개를 젖혀 바르르 떨었다.
안쪽에서 촉수가 어딘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리프의 배를 감싸 조이고 있던 촉수는 어느새 상당한 길이가 풀어져 리프의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음액이 줄줄 흘러내려 수술대 위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헥헥대는 리프의 배에 대고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촉수가 뱃속에 아예 자리를 잡아야 정신을 차릴래?”
“햐아악…! 자, 잠까안…! 그럼 뭔데엣…! 나의 미모에 반한 게 아니면…! 헤엑♡ 잠깐! 성감화 하지 맛…♡ 거기는 느끼면 안되는 곳이에요…♡”
“…바보야?”
“바보한테 바보라는 말 듣고싶지 않앗…! 오호옷♡ 안대애♡ 음액 그마안…♡”
점점 리프의 뱃속으로 들어간 촉수는 어느새 결박하고 있던 리프를 풀어줄 정도가 되었다.
너무 많이 들어가 리프를 감싸고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리프는 오히려 몸의 바깥을 잡히기보다 안쪽을 잡히는 게 더 힘든지 오싹해 하며 손끝과 발끝을 쉴 새 없이 파도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촉수 끝이 꼬리처럼 나와 남게 된 리프는 애써 숨을 고르며 헥헥거리고, 본능적으로 두 손을 배 위에 올린 채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려 울먹이며 말했다.
“헤엑…♡ 잠까안…♡ 너, 이거…무슨 짓 하는지 알고 있는 거예요…?! 초, 초 천재님의 내장을♡ 성감대로 바꾸는 거라고옷…♡”
“이게 뭔데?”
“기, 기생괴수의 기생방식중 하나잖아욧…♡ 이런 짓을 천재님한테 해도 되는 거냐고요…! 천재 미소녀의 귀한 몸을 뭐라고 생각하는거얏…!”
내장이 성감대로 변한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한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뱃속이 다 성감대면…그러면 배를 때리면 느끼는 걸까?
어차피 리프에게 배려심같은 걸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주먹을 쥐고 리프의 배를 내리쳤다.
“흥으으으읏!!!”
그러자 곧바로 리프가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지르더니, 점점 눈동자를 위로 들어 올린다.
역시 이건 아닌가, 너무 세게 때렸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리프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나오고 눈물이 나오며 달콤한 숨이 잔뜩 새어 나왔다.
“하악♡ 하악♡ 아학♡ 학♡ 안댓♡ 머, 머야앗…♡ 무슨 짓을 하는거에요…♡”
“천재가 아니라 샌드백이네.”
“아학!! 헥!! 안댓♡ 천재님의 소중한 영양분 공급소라구웃♡ 뇌에 영양을 보내야 하는 소중한 기관…♡ 헥!!!”
최면을 걸던 자기가 위험하던 여전히 시끄러운 입이다.
이 정도로 말이 많은 모습을 보니 질리는 걸 넘어서 감탄하게 된다.
나는 리프의 배꼽에 손가락을 넣어 안쪽을 휘저으며 말했다.
“배로 느끼니까 그냥 배보지라고 하자.”
“응하아아아악♡ 아냐하아악♡ 그딴 거 아니야앗♡”
“배보지.”
“후이이이익♡ 후이익!! 히익!!”
잠시 리프의 배를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내리치며 악기를 연주하듯 쾌감에 절여진 신음소리를 내뱉게 하던 나는 손을 멈추고 배를 손끝으로 누르며 말했다.
“자, 그럼 화풀이도 좀 끝났으니까 슬슬 세뇌해볼까.”
“세, 세뇌엣?! 히잇♡ 히익♡ 잠깐♡ 설마 나를 아무 생각도 못 하는 최면 외장 연산장치 같은 걸로 만들 생각이에요?”
“어….”
뭐랄까, 이 정도까지 되니 소름이 돋는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다 알겠다는 듯이 말하니 머릿속을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머리가 좋은 걸로 설명이 가능한가?
“설마 진심은 아니죠? 당신의 허접한 뇌로 저의 천재 뇌세포를 맘대로 조종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뉴런 반응속도부터 다르다구요! 잠까안…♡ 지, 진짜로 이건 협상하는 게 좋다니까욧?! 이 초천재님이 설마 너 같은 바보의 생각을 다 못 읽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궁금해진다.
대체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렇게까지 내 생각을 읽는 듯이 말할 수 있는 거지?
어디까지 읽히고 있는 거지?
이미 리프를 꼼짝 못 하게 해 무섭지는 않지만, 꽤 오싹하면서도 신기해진다.
호기심을 풀고 싶어진 나는 최면어플을 리프에게 내밀어 명령했다.
“내 생각을 어떻게 파악하는 거야? 내가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고 있어? 솔직하게 대답해.”
“헤엑…헤엑…♡ 애초에 날 살려준 것부터가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건 당연하고, 사람은 부족한 걸 채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것도 있으면서, 평소에 관찰한 걸 보면 최면을 거는 게 꽤 허점이 많아 보이고, 살려준 이유를 생각하고 내 외모에 반한 것도 아니라는 게 확정되었다면 당연히…이, 이런 건 단순히 생각의 범위를 자르고 상황을 통해서 하나하나 소거해가는 단순 추론이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추리를…아아아, 왜 말을 멈추게 하지 않는 거에요!!”
그런데 리프는 계속 봐온 모습처럼 시끄럽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신경질을 내며 울먹이고는 입을 다물고 부들부들 떨다가 머리 위에 빛의 고리를 반짝였다.
무언가에 저항하고 있다.
“씨이…! 머, 머리 뒤에…! 만져봐요! 몰래 뇌파 감지기 붙여놨으니까! 그걸로 서버에 뇌파를 읽게 해서 내 머리로 다운로드 시키고 있어요!”
“…뭐?”
“생각을 어느 정도 읽는 건 맞지만, 그걸로 더 빠르게 선택지를 줄여서 연산하고 있는 거라고요! 이 멍청이!”
리프의 말대로 머리 뒤쪽을 만져보니 납작한 기계장치가 만져졌다.
곧바로 스티커를 떼듯 지익 떼어낸 나는 머리카락이 텅 비어버린 곳이 만져져 인상을 쓰며 리프를 내려다봤다.
이걸 붙이기 위해 내 머리에 원형탈모 같은 흔적을 만들다니.
괘씸하다.
“방금 그거 뭐야.”
“뭐, 뭐가…욧…?!”
“최면상태에서 질문에 일부러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 거야?”
“어, 어중간하게 멍청해선…♡ 이정도는 알아보나 보네요…! 맞아요, 말을 많이 해서 다른 정보로 연막을 뿌리는 거에요. 최면은 결국 진실을 말해라 뿐이지 중요한 진실을 말하라고 명령하지는 않으니까…♡ 후읏♡ 지금까지는 말도 못 하게 만들 정도로 말을 길게 하는 걸 싫어했으면서, 계속 말하게 내버려두다니…이래서 행동패턴이 불확실한 저지능 단세포들은…♡”
“감도 3배.”
“히이이잇!! 가, 감도 같은 거 아무리 올려봤자♡ 평범한 뇌로는 상한치가 있어서 신경가소성으로 망가트리기 전에는 17배 이상은 절대 올라가지 않…♡”
“감도 17배.”
“후이이이잇!! 헤엑!! 힉!! 후아앗♡ 혹♡ 호옥♡ 헤으읏!!”
나는 바보처럼 움찔거리며 눈물과 침뿐만 아니라 콧물도 흘리고 보지에서 애액을 퓻퓻거리는 리프의 배를 주먹으로 탕탕 내려치며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 연막을 뿌려 최면에 대답하는 걸 지연시킨다니, 그런 것도 가능한 건가.
어차피 지금부터는 리프에게 최면으로 당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리프를 개조해 둘 생각이지만, 역시 주의해야 할 필요가 보인다.
감도가 17배 이상으로는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는 말도 상당히 흥미 있는 얘기다.
잠시 리프의 배를 스트레스 풀이용 북으로 사용하며 악기를 연주하던 나는 손을 멈추고 리프의 감도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줬다.
“감도 정상. 야, 근데 머리가 이렇게 좋으면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지 않아?”
“헤엑…♡ 헥…♡ 뭐, 뭘 말인가요♡”
“내가 너랑 협상을 왜 해야 해? 어차피 넌 최면에 저항력도 약해서 못 벗어나잖아. 철저하게 하려면 그냥 널 계속 최면 상태로 두고 무선통신 같은 걸로 어떤 최면을 걸지만 물어보면 되는데?”
내가 생각한 방법은 리프를 무언가를 통해 연명시키며 정말 살아만 있는 최면 보조장치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수면치료 캡슐에서 잠들어 있던 걸로 봐서 아마 비슷한 도구는 직접 만들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리프 X와는 조금 다르게 인격 없이 지식만 옮긴 로봇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거나…뭐든지 시킬 수 있다.
“아, 아니…설마 그런 귀축같은 방법을 쓰려는 건 아니죠? 그런 짓 했다가는 이 미소녀를 처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안 느끼는데? 나 죽이려고 했잖아.”
“죽이려고 하다뇨! 그건 리프 X가 한 거지, 저는 앵거님의 기록을 철저하게 지워주며 오히려 보호해줬다고요!”
“그건 내가 너한테 최면을 걸어서 그런거고, 리프 X는 날 공격했잖아.”
“그래요! 리프 X 그녀석…그 실패작! 나는 그저 궁금한 사실을 더 알고 싶어서 정중하게 모셔오길 바란 것뿐인데 인격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아서…사과드릴게요! 네? 보, 보지로 사과하라고 했죠? 보지로 사과할게요! 봐봐요, 앵거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최면을 건 건 바로 저 리프! 리프 X는 실패작! 앵거님을 공격한 못된 실패작! 사과할게요! 제가 칼을 만들었는데 멋대로 칼이 날아가 앵거님의 손을 다치게 한 점을 사과드릴게요!”
시끄럽다…하지만 이젠 리프가 시끄럽게 얘기하는 것도 뭔가 불안해진다.
지금도 뭔가 본래 의도를 감추려고 길게 말하는 건 아닐까?
리프와 대화하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리프 X와 리프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별개의 존재인가?
최면이 안 통했던 것도 있고, 리프 X도 자신이 인격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은 실패작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면 잠들어있던 리프는 정말로 나를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을까?
“자, 리프 X는 앵거님의 멋있는 점을 잘 모르니까 그런 짓을 한 거에요. 그 못된 로봇! 제가 나중에 꼭 데이터 칩 하나하나까지 다 분해해서 혼내줄게요!”
“내 멋있는 점이 뭔데?”
“자, 자지요! 로봇이니까 보지도 없어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는 거죠! 단숨에 자궁까지 두드리는 길이에 가득 채우는 굵기, 주름 하나하나 난폭하게 긁어주는 귀두! 넣는 느낌이 자극적이도록 불거진 핏줄! 색이나 형태나 휘어짐 하나하나까지, 이건 누군가가 억지로 쥐어 잡아 모양을 유도해서 담금질하듯 만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이상적인 자지라고요!”
“자지 말고는?”
“…어.”
“감도 5배.”
“후이이이잇!! 헤엑♡ 자, 잠까안…♡ 나, 난폭한 점♡ 난폭한 짐승 같은 점이 남성미를…♡”
나는 리프의 말을 듣고 배를 내리치며 내 자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담금질 되어서 자극적인 형태가 되도록 유도해 빗어낸 듯한 자지라니…그레이프는 대체 내 자지에 무슨 짓을 해 놓은 걸까.
…얘기가 계속될수록 점점 본래의 주제에서 멀어져가는 느낌이 든다.
“감도 정상, 본론만 얘기해. 내가 너랑 협상해서 좋을 이유가 있어? 애초에 뭘 협상하자는 건데?”
“하아…하아…지, 지금 바로 생각한 최면을 걸지 않고 계속해서 물어보는 것도 결국 불안해서 그러는 거죠? 이 초 천재 미소녀라는 천재를 만난 순간 범재로서 부족함을 느끼고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쵸?”
“감도 17배 해달라고?”
“아, 아니! 잠깐만요! 맞잖아요! 내가 최면에 걸려도 또 돌발행동을 할까 봐 어떤 최면을 걸 건지 고민하는 거잖아요!”
반쯤은 리프의 말이 맞다.
무슨 최면을 걸어야 좋은 것인지 답이 나오질 않는다.
래피드나 그레이프와는 다르게 리프는 자신이 최면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거나 정신 조작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추론을 하며 하나하나 문제점을 찾아가 수색하는 귀찮은 마법소녀였다.
하지만 그 점도 결국 이성을 잃게 만들고 질문에만 대답하는 리프 생체컴퓨터로 만들어 버리면 해결되는 것 아닌가?
리프의 말대로 어떤 최면을 걸지 고민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리프의 이성을 남겨두고, 인간으로서 기능하게 내버려두며 최면으로 뒤에서 조종하려 할 때의 고민이다.
난 리프에게 인간성을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그게 고민이 아닌데? 어차피 이성을 다 날려버리면 되는 거잖아.”
“그, 그건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나요? 아니, 저 리프라고요?! 2동의 아이돌, 마법학의 권위자! 시공을 초월한 특급 천재!”
“마법소녀 슈퍼컴퓨터.”
“그래요! 슈퍼컴퓨터 급의 두뇌를 가진 마법소녀…네?”
“마법소녀, 생체, 슈퍼, 컴퓨터.”
진지하게 한 단어씩 끊어 말하자 최면에 걸려있는데도 리프의 얼굴이 단숨에 창백해진다.
입술이 빠르게 마르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 공포의 빛이 여린다.
“저, 저기…진짜?”
“응.”
“저기…어…지, 진짜로? 그, 잠, 잠깐만요…다, 당신 인간 맞죠? 혹시 촉수괴수가 인간성을 침식한 건 아니죠?”
“얘기는 끝이지?”
협상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마법소녀 생체 슈퍼컴퓨터를 조립할 시간이다.
“자, 자자자자잠깐! 앵거님! 앵거 천재 미남님! 자지대왕님! 잠깐만요! 저기! 트랜스 상태에서 하나하나 명령을 내려서 이 천재의 두뇌를 조종하겠다고요?! 앵거님 그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요! 뭐든지 자를 수 있는 검을 버터 자르는 나이프로 쓰기 위해 날을 다 으깨놓겠다는 말이랑 다를 바 없는 얘기에요! 당신! 중장비 자격증도 없이 중장비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의 그 무능한 두뇌로는 이런 고급 두뇌를 조종하는 건 아니, 앵거 천재 폐하의 살짝 부족한 아니, 이, 이딴 천것의 두뇌를 사용하는데 앵거님의 귀중한 목소리와 사고시간이 낭비될 필요가 있나요?! 이성을 남겨주시면 충성을 다 해서 복종할게요!”
“애초에 협상같은거 할 시간도 없잖아? 이런 상황이면 마법소녀가 찾아올테니, 그 전에 끝내야지.”
“자, 잠깐만! 여기 주변에 인식저해장벽 다 깔려있어요! 그리고 여기 거주구역 아니야! 얘기할 시간 많아요!”
이렇게까지 소동을 벌였으니 당연히 상황을 정리하러 마법소녀가 찾아올 것이다.
그런 생각에 빨리 일을 끝내야 해서 서둘렀지만, 리프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 급할 필요도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잘됐다. 좀더 여유롭게 리프 컴퓨터를 조립해야겠다.
“잘됐네, 천천히 조립해야되겠어.”
“조…뭐라구요?!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저한테 하는 말 맞죠?!”
“좀 기다려봐, 어떡하면 이성을 다 날려버릴 수 있나 고민중이니까…아니지.”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리프에게 최면어플을 내밀었다.
“이성을 다 날려버렸는데도 내 명령에는 잘 반응하고 생각도 잘하게 하는 최면은 어떻게 거는 게 제일 좋아?”
내가 리프에게 원하는 건 세 가지다.
나를 더 이상 공격할 수 없도록, 로봇도 만들 수 없도록 아예 생각 자체를 못 하게 할 것.
생각을 못 해도 내가 하는 말에는 반응해서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할 것.
그 생각도 내 질문에 대한 답만 생각하고, 컴퓨터처럼 반응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변수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수정된 방법을 얘기해 줄 것.
이런 상태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지만,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리프가 나보다 똑똑하니까, 리프 스스로 자신을 컴퓨터로 만들게 하면 되는 것이다.
“흐으으으으윽!!!”
그런 생각에 최면으로 대답을 요구하자, 리프는 갑자기 머리 위에서 빛의 고리를 활발하게 띄우며 고통의 눈물을 주륵주륵 흘려댔다.
지금까지 리프가 보여준 빛 중 가장 밝게 빛나고 있다.
완전히 고리의 형태를 형성해 최면에 저항하고 있는 게 보인다.
리프는 얼굴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이를 악물어 인상을 쓰고,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저, 저기요!? 저 생각보다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없어지면 방위군이 움직이거든요?! 애쉬랑 래피드 담당 연구원이거든요?! 도와줄게요! 아니, 애쉬! 애쉬 따먹고 싶지 않아요?! 당신, 그레이프랑 래피드 둘다 손댔다고 했지! 애쉬랑도 하고 싶지 않냐고요!!”
“애쉬?”
“너, 너 혼자 생각해서 애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컴퓨터로 만들면 사고는 네가 해야 된다고! 도와줄게! 도와준다고오오!!”
“최면 전부 취소, 아니, 최면 전부 무효!”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말에 리프에게 걸고 있던 최면을 전부 무효화시켰다.
애쉬랑 한다고?
최면이 전혀 통하지 않고, 래피드에게 최면을 걸었던 걸 걸리기만 해도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애쉬의 보지에, 내 자지를 박을 수 있다는 건가?
그건 정말로…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하아…하아…하아…이, 이제…협상…할만, 하죠…? 네…? 대화하자고요, 대화…!”
리프의 말대로다.
애쉬도 따먹을 수 있다면, 얘기 정도는 들어볼 만했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뱃속을 휘젓는 촉수도 멈춰주고 주변에서 다리 바퀴가 망가진 의자를 찾아 끌고 와 수술대 옆에 앉았다.
“방법부터 얘기해봐.”
“…없는데요?”
나는 최면어플을 리프의 얼굴 가까이에 내밀었다.
그러자 곧바로 공포심을 느낀 리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아직 없다는 거지! 생각해보겠다고요! 대화 좀! 대화 딱 10분, 아니 5분만요!”
“이상한 소리 하면 통증 50배 하고 유리조각 씹어먹게 할 거야.”
“히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