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추적 (6)
에스더의 손톱이 빠르게 휘둘러져 허공을 찢어발기자 화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나타나 리프 X 에게 쏘아졌다.
리프 X는 양 무릎과 한 손 바닥에서 파동을 쏘아내 뒤로 빠르게 피하고는 곧바로 벽에 붙어 금속의 벽에서 튀어나온 스위치를 주먹으로 내리찍듯 눌렀다.
곧바로 여러 기계장치와 수술 장비들이 가득했던 벽면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뒤집히며 아무것도 없는 금속 벽으로 바뀌어간다.
[에, 에스더?! 아니…대체 왜?!]
에스더는 곧바로 꼬리의 끝을 세워 나를 등진 채 이리저리 휘두르더니 날 포박하고 있던 금속 파이프들을 전부 잘라내 버렸다.
꼬리 끝에서 마력이 일렁이는 게 보인다.
끝이 그렇게 날카로워 보이지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는 모양이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 갑자기 에스더가 나타나 구해주었다는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수술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1번….”
에스더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나를 힐끔 보더니 깜짝 놀라 꼬리를 세우고 날개를 펼쳐 내 몸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
눈빛이 위험하게 변하고, 끈적이는 액체가 가득한 내 자지를 힐끔거리더니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떤다.
화가 난 표정인데도 얼굴을 붉히고는 리프 X를 더 살벌하게 노려보며 이마에 핏줄을 세운다.
점점 에스더의 이마에 불거지는 핏줄이 많아진다.
“이, 새, 끼…가아아?”
머리에 솟아오른 뿔 사이에 번개가 치기 시작하고 날개가 쫘악 펼쳐지며 박쥐처럼 생긴 날개의 각 마디 끝 부분에서 칼날 형태의 촉수가 뻗어져 나온다.
눈가에 불꽃이 떠오르고 입에서 화염이 솟구치며 꼬리 끝이 불에 휘감긴다.
점점 괴물처럼 변해가는 에스더는 신기하게도 내가 있는 곳은 모든 화염이 피해가게 조절하고 있었다.
리프 X는 눈앞에 홀로그램을 띄우고 다급하게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에스더가 불을 뿜어낼 때마다 리프가 자랑하는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진 연구실이 고온에 휘감겨 빨갛게 달아오르고, 리프 X가 홀로그램 모니터를 조작할 때마다 빠른 속도로 달아오른 벽이 차갑게 식어갔다.
부서진 팔꿈치가 떨어져 나가고 새 팔이 벽에서 튀어나와 저절로 결합하며 에스더에게 뜯겨나간 한쪽 팔이 수복된다.
리프 X는 그러면서도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지 울먹이며 말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고온 대비로 방벽 전환, 액체질소 배출, 긴급 소화장치…! 아아아! 에스더가 왜…?! 뭐야?! 감정 에너지 변환률이…미, 미친…!]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히이이익!! 왜, 왜 저래!]
에스더의 날개 끝에서 펼쳐져 쭉 뻗어 나간 칼날 촉수의 끝이 벽면을 헤집는다.
금속이 아닌, 젤리라도 자르는 것처럼 벽 안을 파괴하고 터트리며 지나간다.
벽을 긁어내며 쏘아진 촉수들은 그대로 리프 X에게 빠르게 휘둘러져 온몸을 산산조각낼 것처럼 움직였다.
그대로 촉수에 몸을 잘려나가기 직전에 리프 X는 벽면을 손으로 눌러 몸을 숨겼다.
벽면이 리프 X를 삼키듯 돌아가고, 에스더의 촉수에 베여 깊은 상흔만을 남긴다.
[손에 뭘 심어놓고 있는 거야! 에스더가 왜 나와!!]
“벽으로 숨으면…못 죽일 것 같아아아아?!!!”
에스더의 한 손이 어깨 위로 들리고 마력이 빠르게 뭉쳐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여든 마력이 손바닥 위에서 길게 찢어지며 두꺼운 화염의 창으로 변한다.
“메테오 재블린 Meteor Javelin!”
에스더가 시동어를 외치는 것과 동시에 마법의 형태가 완전히 고정되며, 폭발하듯 사방으로 쏟아지는 불을 쥐어 던지는 것과 동시에 에스더의 손에서부터 화염의 창이 쏘아져 날아갔다.
마법소녀일 때부터 애용하던 기술, 화염을 투창하는 에스더의 마법이 연구소 벽면에 충돌해 폭발한다.
[히이이익!]
터져나간 벽에서 잠시 모습을 보인 리프 X는 곧바로 홀로그램 모니터를 조작해 자취를 감췄다.
빛나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벽면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물거리며 에스더가 찢어버리는 만큼 다시 벽을 꿰매고 있다.
기계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기분 나쁜 광경이다.
에스더는 그 기분 나쁜 변화가 시작되자마자 무언가에 날려 보내지는 것처럼 쏘아져 날아가더니 콰드득! 하고 벽면에 손을 박아넣었다.
그대로 손으로 안에서 무언가를 쥐고 뽑아내자 숨어버리려 하던 리프 X가 목을 에스더의 손에 잡힌 채 끌려 나왔다.
[에, 에스더!! 나야!! 리프! 나 기억 못하는 거야?!”
“…리이이이프으으으?”
[케엑!!]
에스더는 리프 X를 곧바로 바닥에 휘둘러 내팽개치더니 화염의 발톱을 발에 둘러 내리찍었다.
그대로 양손에 화염의 검을 든 에스더는 리프 X의 목에 검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그래서?”
[햐아아아악!! 무서워! 무섭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오오오!!”
에스더는 그대로 리프 X의 머리에 검을 내리찍었다.
아니…찍으려다가, 멈춰 섰다.
[에, 에, 에스더…?]
“…치잇!”
공중에서 갑자기 검을 멈춘 에스더는 무언가 잊고 있던 게 갑자기 생각났다는 눈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눈동자만 돌려 내 쪽을 가만히 보고 있더니…이를 악물고 리프 X의 한쪽 다리를 단숨에 잘라버렸다.
“하아? 팔만 기계인 게 아니잖아?”
[꺄아아아아악!!]
“…전신이 기계네?”
에스더는 리프의 몸을 보고 조금 멈칫하더니 마력을 갑자기 주변으로 터트리듯 쏘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한쪽 벽에 검을 대고 원형으로 돌려 베어내 벽 안에 숨어있던 리프의 본체가 잠든 수면 캡슐을 눈앞에 드러냈다.
두려워하면서도 고통의 비명은 전혀 지르지 않고 있던 리프 X는 본체가 드러나자마자 경악하며 에스더에게 밟힌 채 울먹였다.
“이게 본체구나? 못 본 사이에 이상한 기술이 늘었네?”
[자, 자, 잠깐…! 잠깐!]
“겁먹지 마, 죽이지는 않을테니까…어디부터 뚫어줄까?”
[에스더…제, 제발…응? 내, 내가 다 잘못했어!]
에스더는 상쾌하게 미소 지으며 주먹 쥔 손에서 검지와 엄지를 펴 캡슐 속의 리프를 가리켰다.
마법소녀일 때부터 유명한 에스더의 마법, 슈팅스타를 쏘기 직전의 자세다.
“뭘 잘못했는데?”
[어?]
“뭘 잘못했냐고!!”
리프 X는 에스더의 말을 듣고 빠르게 눈을 빛내더니 나와 에스더 사이를 번갈아 보고는 몸에서 전기를 파직 거리며 말했다.
[…뷰지도장을 괴롭힌 거?]
“…장난하니?”
곧바로 에스더의 검이 휘둘러져 리프 X의 다른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다.
“이 팔다리를 다 자르면 그다음은 본체다.”
[뷰, 뷰지도장으로 실험하려고 한 거!]
“뷰지도장이 뭔데 이 새끼야!”
[쟤! 저 남자!]
“아아앙…?”
에스더의 검이 리프 X의 아랫배에 꽂혀 안쪽을 후벼 팠다.
통증에 무감각하게 반응하던 리프 X도 이번에는 조금 다른지 깜짝 놀라며 두 손으로 에스더의 다리에 매달리며 애원했다.
[에, 에스더…거기 동력로, 동력로 가까우니까 조심….]
“기계인데도 보지는 만들었나 봐?”
[…네?]
“우리 애한테 보지로 도장 찍었다고, 지금 나 도발하는 거야? 그냥 죽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어? 리이이이프으으으?”
에스더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이 순식간에 증폭된다.
끈적하고 질퍽이는 마력이 주변을 삼키고 리프 X의 몸을 점점 우그러트린다.
마력 자체가 압력을 가지고 리프 X를 부숴버리고 있다.
“…기계는 죽여도 되는 거지?”
[에스더!! 에스더! 잘못했어! 응?! 진정하고! 진정….]
갑자기 에스더가 뜬금없이 나를 바라보며 물어보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검을 휘둘러 리프 X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목이 잘린 리프X의 동체가 바닥에서 솟구쳐나온 비전폰을 손에 쥐었다.
눈에 익은 디자인…내 비전폰, 화면에 보이는 건 최면 어플이다.
대체 어느새…? 벽면을 전부 집어넣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시 조립하고 벽 뒤편에서 바닥 밑으로 가져오도록 조작하고 있던 건가?
위험하다.
[에스더! 멈춰!]
“싫은데?”
내가 무언가 반응하기도 전에 리프 X의 손이 움직인다. 목이 잘린 채 최면 어플을 에스더에게 내민다.
그리고 완전히 내밀어 지기도 전에 에스더의 발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리프 X의 팔을 차서 손목과 동시에 비전폰을 날려버렸다.
불에 휘감긴 에스더의 발에 닿은 것만으로 리프 X의 팔이 녹아 떨어진다.
“뭐야? 비전폰? 총인 줄 알았네.”
[아아아….]
“다음은, 본체 차례!”
에스더는 검을 휘둘러 리프 X의 머리를 쳐 포탄처럼 날려보냈다.
머리가 날아간 방향은 리프의 본체가 잠들어있는 캡슐 쪽이다.
그대로 리프 X의 머리가 캡슐에 박히고, 안에 가득 차 있던 액체가 흘러나오며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앗!”
나는 그 모습보다도 더 경악스러운 광경에 깜짝 놀라며 불에 타 그을린 지면을 차고 달려가 내 비전폰을 잡아들었다.
에스더의 발에 차여 날아간 비전폰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이미 비전폰은 에스더에게 차이며 화면이 깨지고 케이스 끝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상태를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안쪽이 불탄 건 아닌 것 같다.
깨지긴 했지만…화면도 제대로 켜지는 데다 보이기는 보이고 최면 어플도 제대로 실행된다.
“휴우우우…크으윽…!”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비전폰을 쥐고 있는 내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갑자기 에스더가 나타난 건 조금 이상했지만…내가 에스더와 연관되어있는 거라고는 이것밖에 없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해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오른손에서 갑자기 통증이 느껴져 비전폰을 떨어트리고 손을 편 채로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언가가 이어지는 느낌…파열된 근육과 모세혈관이 억지로 회복되어가며 무언가가 내 손 안을 잡아 비트는 듯한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진다.
리프가 몸에 집어넣었던 실험용 재생약의 영향이 아직 몸에 남아있는 듯하다.
“1번!”
그 순간 캡슐 안에서 잠들어있는 리프의 본체를 악귀 처럼 노려보며 날개 끝으로 연구실을 파괴해가던 에스더가 움직임을 멈추고 다가와 커다랗게 펼쳐진 날개로 내 몸을 감쌌다.
에스더의 몸을 휘감던 불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화가 풀리는 것처럼, 감정이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대로 내 오른손을 잡고 허락도 없이 마력을 몸속에 흘려보내 온다.
혈관을 간지럽히는 감각이 온몸에 퍼진다.
“…아무 이상 없네.”
에스더는 내 몸 상태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어딘가 다친 곳은 없는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대체 왜 에스더가 나타난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지금 이 태도로 봐서는 내 편인 것으로 보였다.
내 편인 걸 넘어서…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날 지켜주려고 나타난 거였다.
대체 왜지?
괴인의 간부가 날 지켜준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꼼짝없이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에스더가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날 지켜주고 구해주고…분노해서 리프를 저렇게 만들어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지만…에스더는 정말로 괴인이 아니라 마법소녀라도 되는 것처럼 리프에게서 날 보호해줬다.
이미 리프 X는 고철이 되어있고, 리프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채로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나오는 캡슐 안에서 머리를 기대고 세워져 있었다.
에스더는 불에 그슬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연구실을 보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사나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층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스더…님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왜?”
“…가만히 있어, 촉수에 마력 채워줄 거니까…조금 오래 걸릴 거야.”
나는 갑자기 시선을 슬쩍 피하는 에스더의 말을 듣고 촉수가 심어진 내 오른손을 들어 올려 바라봤다.
여기에서 마력이 빠져나가서 왔다니….
에스더는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내 몸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굉장히 섬세하게 마력을 조절해주는 게 느껴진다.
에스더의 폭발적인 마력과 알 수 없는 기운이 천천히 분리되어서 내 몸속에 순수한 마력만 조금씩, 조금씩 넣어주고 있다.
검은색의 기운은 내 몸에 들어가면 좋은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억지로 뜯어내 가장 깨끗한 부분만 모아 전달해주고 있다.
타락한 마법소녀, 간부급 괴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냥한 모습에 나는 놀란 눈으로 에스더를 내려다봤다.
에스더는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젖히며 올려다보고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1번?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여긴 어디고, 넌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