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추적 (3) [내용수정]
나는 곧바로 택시 안의 비상탈출 망치를 손에 들었다.
괴수 문제가 커지며 이제 차량 내 비상탈출 망치는 필수였다.
지하철은 괴수도 함부로 파괴 못 하는 강화유리로 되어있지만, 차량 자체를 통째로 들어 올려질 가능성이 있는 버스와 택시는 승객이 언제든 탈출할 수 있게 되어있다.
속도가 더 빨라지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아~안 되지~그러면 재미없잖아, 안그래 뷰지도장…아니, 앵거 씨?]
“아아악!!”
[뒤에 이미 좌석 열선을 쇼트 시켜놔서 전기충격을 맘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놨거든? 엉덩이 미디엄 레어로 구워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이 미친 년이…나는 곧바로 엉덩이를 들어 의자에서 떼고 앞좌석에 매달렸다.
그대로 오른손을 리프 X의 목에 대고 힘을 줬다.
상대는 마법소녀가 아닌 로봇이다.
손이 망가지더라도 이대로 부러뜨린다!
[오~악력 100, 200…300! 400! 537kg?! 와 이거 뭐야?! 사람 손이 아니잖아? 너 그레이프랑 친한 이유가 있었구나? 둘 다 고릴라네? 근데 모세혈관 다 터져간다. 너 이거 뭔지 모르겠는데 적당히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러다가 뇌졸중이나 뇌경색 온다?]
“크으윽…!”
전혀 부러질 것 같지가 않다.
이렇게 만져보니 부드러운 외피 아래에 단단한 금속 골격이 자리해있는 게 느껴진다. 단순히 잡는 거로는 상할 것 같은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손이 점점 너덜너덜해진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했다가는 정말 앞으로 더는 손을 쓰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곧바로 나는 리프 X의 목을 부러뜨리는 걸 포기하고 왼손에 든 망치로 리프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리프 X의 머리 안쪽에서부터 땡! 하는 소리가 울리며 멈춰 선다.
내 손이 아프다.
“돌머리도 아니고 이 미친년이!”
[실례네, 탄소나노튜브보다 강력한 리프스틸을 사용한 슈퍼 합금 바디라고.]
“리프스틸?”
[내가 만들었어, 이름 멋있지?]
정말로 미친년이다….
나는 곧바로 망치의 방향을 바꿔 창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날 보지도 않고 뒤로 손을 뻗은 리프가 내 목을 잡아 쥐고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팔의 각도가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각도다. 팔꿈치가 뒤로 꺾이고 팔이 늘어나 내 목을 잡아 전기를 계속해서 쏘아내 꼼짝 못 하게 만들고 있다.
“크으으으윽!!”
[유리는 깨지 말고~이거 자율주행 깔아서 되돌려줘야 한단 말이야. 열선 쇼트시킨건 아예 차단 내릴 테니 나중에 고장 난 줄 알고 알아서 고칠 테지만, 유리 망가지면 좀 그렇잖아? 네 차도 아닌데 그러면 안 되지!]
“미친…년앗…!”
훔친 차 주인은 생각해주면서 나에겐 이런 전기충격 코스요리라니.
정말로 뇌가 익어 버릴 것 같다.
[하아~저항이 진짜 너무 심하네, 안 되겠다. 아쉽지만 얘기는 이따가 해줄게. 그레이프도 내일이면 돌아올 테니까~오늘 안에 일 끝내야 해서 바쁘거든.]
“너, 넌…진짜로, 그레이프가 알면….”
[흐음…대체 네가 어떻게 날 덮친 거야? 그걸 다 대비할 자신이 있으니까 찾아왔지. 방위군 본부에 기억 소거장치 있는 거 알아? 물론 맘대로 쓸 수는 없지만…그거 개발자가 나거든? 걱정하지 마, 조심히 지워서 돌려보내주고…제대로 세뇌해서 매일 자기도 모르게 내 연구실로 찾아오게 해줄 테니까 말이야.]
“윽…!”
말을 마친 리프 X의 몸에서 수증기가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
아니, 수증기가 아니다…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몽롱해진다.
이건…수면가스다.
[인간이 아닌 것 같아서 좀 더 농도를 높였으니까 한숨 푹 주무시고~이따가 본체랑 만나. 오늘이 수면치료가 끝나는 날이거든? 그래서 오늘로 맞춘 거기도 하고~그러면, 굿나잇~]
몸에 힘이 풀린다….
생각을…이을 수가 없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어딘가에 묶여있었다.
온몸이 꼼짝도 하지 않고, 특히 오른손에 이상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게 느껴진다.
빨판 같은 형태의 센서와 전극 센서…병원에서나 볼 법한 여러 감지기가 팔에 붙어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내가 묶여 있는 곳은 병원의 수술대 같은 금속 받침대 위였다.
그 위에 여러 금속관으로 온몸을 완전히 구속하고 있다.
당장 해부라도 시작해버릴 듯한 분위기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정신 차렸어? 해독가스를 좀 쓰긴 했는데 머리가 어지럽지는 않지? 위험했더라고, 손에 그런걸 달고 있어서 인간이 아니기라도 한 건가 했는데…약물 내성은 없더라?]
“이, 씨발…년…크아아악…!”
말을 조금 꺼낸 순간 몸에 전기충격이 가해진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 아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통해 약물이 주입된다.
“뭐, 뭐야 이거…! 크으윽…!”
약물을 통해 몸이 회복된다. 통증이 가라앉고 정말로 말 그대로 재생되는 게 느껴진다.
기분 나쁜 느낌도 있었지만…그건 오른손에 뭉쳐져 빠져나오질 않는다.
그와 동시에…어째서인지 자지가 빳빳해진다.
[얌전히 있어, 귀찮아지니까…그건 그렇고 뷰지도장 씨, 이거 대체 뭐야? 이거 뭔지 알고 쓰던 거야?]
리프 X는 그렇게 말하며 내 시야 앞에 홀로그램 모니터를 띄워줬다.
모니터 안에는 마법소녀 최면어플과 영상파일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비전폰을 손에 쥐려 했지만, 몸은 이미 전부 묶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다급하게 수술실 같은 방안을 살펴보니 방구석에 있는 컴퓨터 같은 기계 옆에 비전폰에서 칩이 꺼내져 알 수 없는 기계 안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거 뭔지 몰라? 파일 연도가 대체 왜 이래? 연도가 말이 안 되잖아. 파일 복구흔적이 보이는데…이상한걸로 해서 깨지기라도 한거야? 그리고 아까는 그냥 신기해하고 넘어갔는데…이 칩 뭐야? 마력이 왜 이렇게 높아…? 아무리 마법소녀의 신체를 결정화시켜도 이 정도로 높은 마력을 가둘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이거 파일 자체가 이 칩이 아니면 돌아가질 않더라…? 그리고…이 파일 대체 뭐야? 마법소녀 최면어플?]
“하아아아….”
리프 X의 말에서 나온 단어를 들은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국, 들켰다.
마법소녀 최면어플의 존재를 들켜버렸다.
[저기요 뷰지도장 씨, 이거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어플인지 알기는 해? 이딴 게 마법소녀의 정신장벽을 전부 뚫는다는 게 말이 돼…?]
그런데…리프 X는 최면어플의 존재를 확인해놓고도 믿기 어려운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어플인건가? 로봇을 만들고 기억을 바꿔 넣는 과학자가 봐도?
하지만 리프 X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아니…되나? 나라면…방법을 알고있다면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그치만 이건…이 마력은 대체 뭐지? 이딴 마력이 존재해…? 애쉬도 아니고…아니, 난가? 고정을 쓰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아닌가? 이건 래피드한테…아니지, 트루비전의 그 괴물인가? 가능은 해…가능은 하지만…가능성이 있기만 한 건데….]
리프 X는 혼자서 중얼중얼하며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었다.
계속해서 생각에 잠겨있던 리프 X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곧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 좋아, 앞으로 매일 오게 만들면 이건 급한 문제가 아니니까…최면어플…이것도 오버 테크놀로지인가…? 설마 이런게 정말로 존재할 줄은…하지만, 알겠어…이걸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어.]
리프 X의 입꼬리가 로봇인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올라간다.
부자연스럽거나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누가 봐도 인간처럼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리프 X가 떨리는 기계음으로 말했다.
[너…나한테 최면 걸었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홀로그램 모니터에 곧바로 내 심장박동수와 뇌파가 떠오르더니 ‘진실’ 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내 몸에 거짓말 탐지기도 연결해 놓은 모양이다.
[확실해…말도 안 되는 가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법소녀한테 최면을 거는 게 정말 가능하긴 한가 봐? 약한 상대 한정인가? 정신방벽이 약해야 하나…? 아니지, 그레이프도 혹시 최면을 건 거야? 아하! 그래서…아니, 잠깐만…그레이프가 최면에 걸린다고? 마력 특성이 불굴인데…? 그게 말이 돼…? 아니…생각보다 이게 출력이 강하다면…아니지, 보통 최면하고 구조는 같은가? 방심한 순간이라면….]
계속해서 혼자 생각에 빠져있던 리프 X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턱에 손을 대고 굳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이거 하루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흐음…뷰지도장, 뭔가 말 좀 해봐. 어떻게 생각해? 내가 널 어떡하는 게 좋을까?]
“크윽….”
리프 X의 말과 함께 목에 느껴지던 경직감이 사라졌다.
약한 전기를 계속해서 내보내 내 몸을 억지로 긴장시키던 느낌이 사라지자마자 자는 리프 X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이 미친년….”
[응응, 그리고?]
“뼈다귀년! 그레이프가 알면 넌 죽는 거야! 래피드가 가만둘 것 같아! 넌 죽었어! 쓰레기! 멍청이! 리프년!]
[…잠깐만, 너 혹시…래피드도 건드렸어?]
“건드렸다 왜!”
나는 곧바로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레이프도 못 이겨서 무서워하는 게!
이미 내가 이 상황에서 자력으로 벗어날 방법은 없다.
기억을 읽을거라고 했으니, 어차피 조금 지나면 알게 될 사실이다.
그럴거라면 먼저 얘기해서…차라리 겁을 먹고 손을 대지 않는 쪽에 건다.
나는 이대로 리프 X가 겁을 먹고 죄송합니다 하고 놔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래피드와 애쉬는…마법소녀들 중에서도 규격 외의 존재였다.
내 몸에는 거짓말탐지기가 이어져있었고, 곧바로 내 말이 진실이라는걸 증명해줬다.
그런데 리프 X는 로봇인데도 불구하고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내 희망과는 다른 말을 해왔다.
[너…진짜 건드린 건 아니지?]
"건드렸는데?"
왜 거짓말 탐지기에 진실이라고 나왔는데도 믿지 못하는거지?
아니, 믿고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닌가? 믿을 수 없어 하는 듯한 모습이다.
[아니…저기, 래피드…그래…래피드랑 이어져 있는 사람이면 내가 건드리기 좀 무섭지. 근데 난 널 강제세뇌할건데? 잠깐만, 그레이프랑 하면서…래피드랑도? 정신 나갔어? 아무리 최면을 걸었다지만…자, 잠깐…래피드…처녀….]
리프 X는 혼자서 나를 보고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기계의 몸을 부들부들 떨며 쉴 새 없이 깨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미친놈…너 진짜 죽고 싶은 애였구나?]
“응?”
[너…너…아, 아니다…이러면 내가 건드릴 필요가 없겠네…그냥 안 죽일게…와…진짜 미친놈이네…건드려도 래피드를…와….]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
겁을 먹은 것 같긴 하지만, 나한테 겁먹거나 래피드에게 겁먹은 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나를 보면서는 연민이 느껴지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로봇인데도 체온이 느껴지는 시선이라니…그 정도로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다는 건가?
[아무튼…이걸로 음성 자료는 다 수집했어.]
리프 X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비전폰을 둔 곳까지 걸어가 집어 들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기 전에 아주 잠시,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냈다.
마치 내게 들어보라는 듯 스피커폰으로 바꿔두기까지 한 탓에 벨 소리가 들려온다.
[아, 아~아-아-아….오케이, 음음….]
[여보세요?]
[아, 그레이프? 나 앵거야.]
“미…!”
리프 X의 목에서 나온 기계음은 내 목소리였다.
곧바로 나는 큰 소리를 내 그레이프에게 말을 걸려 했지만, 목에 전기가 오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다급하게 손바닥으로 수술대를 내려쳐 소리를 내려 하자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기계가 올라와 포박해버린다.
[애, 앵거? 네에…무슨 일이에요…?]
[오늘 못 보니까 조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 그, 앗, 그게…아…그, 하아아…그, 그래요…?]
[오늘 일 바쁘다고 했었잖아? 좀 어때? 힘들지는 않아?]
[안 힘들어요! 오, 오늘…오늘 갈까요? 그냥 갈까요?!]
리프 X는 그레이프와 통화하며 내가 한 번도 내지 않았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분명 내 목소리인데…굉장히 느끼하고 달콤하다.
찢어버리고 싶어지는 목소리다.
[그것 때문에 전화 건 거기도 한데…내가 그레이프 집으로 가면 안 될까?]
[어? 저, 저희 집으로요?]
[응…그레이프 집으로.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그레이프의 방에서, 그레이프를 안고 싶어.]
[아, 아, 아, 아, 아…돼, 돼돼돼돼요! 돼요! 돼요!!]
그레이프는 리프 X와 통화를 하며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레이프…내 목소리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나중에 보면 죽었다.
진짜 죽도록 때리고 말테다.
어차피 내가 때려도 아프지도 않고 흔적도 안 남을 테지만 그래도 죽어라. 때릴 것이다!
이 샌드백년!
[그래…? 그러면…그레이프의 집에서 하는 첫날 밤이니까, 나도 좀 더 준비해서 가고 싶은데…하루만 더 있다가 만나지 않을래?]
[하, 하루 더…? 그러니까…이틀 뒤에…요?]
[응…좀더 욕정을 쌓아서, 짐승처럼 섹스하고 싶어…열 번, 스무 번도 넘게 그레이프의 안에 잔뜩 싸면서….]
“으으으으윽!!!”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런 말을 해서 대체 내가 어떻게 감당하라고!
[조, 조조조조조좋아요!! 좋아요!!! 이틀 뒤죠!! 알았어요!! 청소, 청소하고!!! 기, 기다릴게요!! 그날 휴가 쓸게요!!]
[응…고마워 그레이프, 잔뜩 섹스하자…임신시킬 생각으로 갈게.]
[하아아아아아…하아, 하아, 하아….]
[끊을게 그레이프, 이틀 뒤에 봐.]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윽!!!”
스무 번 같은 소리하고 있네!! 진짜로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