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추적 (2) [내용수정]
“하아…하아…닥쳐….”
나는 곧바로 주머니에 조심히 넣어 비전폰을 쥔 손을 뽑아 최면을 걸려다가 멈칫했다.
최면이 걸리나…?
상대는 마법소녀가 아니라 기계다.
하지만…걸리지 않을지 몰라도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이미 나를 잡아가려는건 확정이다.
…이 최면어플은 마법소녀라는 정신에 작용하는 건가?
아니면, 마법소녀의 몸 자체에 작용하는 건가?
비밀 사이트에서 계속해서 있었던 논쟁이다.
마력의 원천은 영혼과 정신인가? 육체인가?
전자라면, 최면어플이 통할지도 모른다.
나는 곧바로 최면어플을 리프 X의 눈앞에 내밀었다.
[아하!! 그거구나!! 그걸 나한테 내민 거였어!]
“안 통하나 역시…!”
[그거 신기하네~? 뭐야, 뭐야? 왜 칩에서 마력이 나와? 특수칩? 마법소녀의 신체로 탄소가공 해서 만든 칩이야?]
탄소가공 칩…? 대체 무슨 얘기지?
설마 최면어플이 들어있는 데이터 칩을 얘기하는 건가? 이게 그걸로 되어있다고?
대체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방금 반응으로 알 수 있는건…리프 X는 최면이 통하지 않고, 최면어플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최면어플을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다. 알고있었다면 저런 반응을 할 리가 없다.
걸리려는 틈도 보이지 않았겠지.
그렇다면...단순히 자신에게 누가 무슨짓을 한건지 찾아내 결국 나한테까지 오게 된 건가?
그렇게밖에는 생각 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수 없는 말을 하는 리프 X를 뒤로한 나는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곧바로 리프 X는 발밑에서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를 내더니, 신발밑에서 바퀴라도 숨겨놓은 것처럼 가만히 일어선 채 빠르게 내 뒤를 쫓아왔다.
[흐으음~역시 제대로 완성이 안 되어서 아직 이동이 약한 게 아쉽네, 걸어가는 정도는 괜찮지만 달리기라도 하면 관절 부하나 과열이 심해져서…마음같아선 제트엔진이나 부유 장치 같은 걸 넣어서 날아가서 잡아가고 싶은데 말이야. 좀 천천히 달려줄래? 뷰지도장씨? 쫓아가기 힘드니까~]
“좀 닥쳐!”
[그보다 설명해주지 않을래? 아까 내민 건 뭐야? 기억 소거장치? 아니면 의식을 날려버리는 기기? 어떻게 마력을 칩에 담은 거야? 트루비전에서 만든 거야? 비전폰에 그걸 연동할 필요가 있어?]
이 자식, 다행히 날 쫓아오는 속도는 빠르지 않은 모양이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대신 목소리는 그대로 다 들린다.
하지만 이걸로 최면어플의 존재를 모르는건 확실해졌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숨이 그렇게 차지는 않아 생각을 할 여유는 충분했다.
나는 달리면서 생각을 계속했다.
날 감시하고 있었다면 리프 X는 어째서 내 집으로 찾아왔을까?
뷰지도장이라는 닉네임을 아는 걸 보면 감시라도 하고있었던게 틀림없다. 그레이프가 오늘 집에 찾아올 일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있는게 틀림없다.
내 방으로 찾아왔다는건...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싶지 않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숨어든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아파트를 해킹하는 걸 본 이상 이용할 수 없다.
나는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법한 곳으로 도망치기 위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계단 싫은데…좀 천천히 가고 있어 줄래? 엘리베이터로 갈 테니까…자아, 바로 내려갈게?]
계단 위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바퀴로 된 발로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올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나는 내려가다가 일부러 멈춰 서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번호판을 보며 리프가 밑까지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하아…하아…하아….”
서로 위치가 안 맞게 되면 다시 위로 올라와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사이에 다시 내려가 도망가 거리를 벌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엘리베이터가 이상하다.
“뭐, 뭐야 이거.”
숫자가 쉴 새 없이 바뀌고 있다.
6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5, 3, 2, 1 하고 변하더니 다시 밑에서 한번에 2층으로 올라온다.
겨우 3층밖에 안 되었지만, 이 아파트는 층마다 차이가 굉장히 크다.
그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거기에 더해, 엘리베이터에서도 이상한 쇳소리와 타는 냄새가 난다.
1층으로 내려갔던 엘리베이터는 곧바로 다시 2층으로 올라오더니 2층에서 멈춰 서며 문을 열었다.
[쉬고 있었어? 빨리 내려가야지?]
“미친년!!”
나는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가며 비전폰을 꺼내 그레이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가 걸리지 않는다. 뒤늦게 화면을 보니 통신구역 이탈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지하 쉘터 안에서도 통화가 가능한 최근에는 이런 화면을 보려면 안에 있는 모듈이나 주변의 통신 안테나들이 전부 망가지는 엄청난 상황이 되어야만 가능했다.
다급하게 1층으로 뛰어 내려가자, 아주 약간의 차이로 1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달려서 밖으로 뛰쳐나갔고, 리프 X는 몸에서 수증기를 뿜어대며 쫓아왔다.
[전화했어~? 전파 탐지되던데? 내 주변에서는 통화 같은 거 못 하니까 포기해. 누구한테 하려고 했을까? 그레이프~? 내가 그것도 파악하지 않고 왔을 것 같아? 그레이프가 왜 하필이면 오늘 회사 일이 바빠져서 집에 가야 하게 되었을까?]
“뭐…?!”
[그레이프 그 년 때문에 찾고 나서도 굉장히 고생했단 말야? 이상하게 감각만 좋은 고릴라년이…집 주변에 깔아놓은 드론만 몇 개를 부순 건지…하아…아~맞아, 궁금했던 건데 너 결국 그레이프랑 무슨 사이야? 혹시 남자친구? 그러면 역시 데려가야겠는데…잘못해서 죽여버렸다간 귀찮아지니까 말야. 뇌 손상 없이 기억만 보고 지우는 건 아직 소형화가 안 되었단 말이지….]
“꺼져!”
그레이프에게 단련당하며 몸이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전력질주를 하는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쫓아오는 리프 X를 따돌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달려도 저걸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리프 X가 움직이는 속도는 스쿠터랑 비슷한 속도다.
전력질주를 해야만 겨우겨우 거리 유지가 가능하다.
온몸이 기계인 것 치고는 느린 속도지만, 사람인 내게는 너무 빠른 속도다.
“차앗!”
[여자를 발로 차다니!]
“닥쳐! 깡통!”
나는 아파트 안을 달리다가 발에 바퀴를 달고 쫓아오는 리프 X에게서 몸을 돌려 발차기를 날리고 그대로 뛰어갔다.
단단한 몸만큼 무겁지는 않은 것인지 리프 X는 그대로 넘어지며 멈춰섰다.
그대로 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섞여들어 가며 도망쳤다.
“망할…전화가 아직도 안돼…!”
그레이프를 피해서 왔다는 걸 보면…그레이프가 리프 X보다는 훨씬 강한 모양이다.
나는 리프 X에게서 멀어지자마자 그레이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아직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먼 거리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내 비전폰을 해킹한건가? 무선 해킹이 가능한가?
아니...그렇다면 아까 내 방에서 바닥을 깨 유선을 꺼내 접속할 필요가 있었나?
확실하지 않다. 해킹한게 아니라 역시 거리가 가까운 걸 수도 있다.
“어? 뭐야…전화가….”
“아 뭐야~안테나 나갔나?”
“근처에 괴수 나온 거 아냐?”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전화가 갑자기 되지 않거나 그대로 끊어져 버려 난감해 하고 있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해킹이 아니라 내가 지금 리프 X가 전파방해를 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리프가 가까이에 있다.
눈앞에 마침 무인 버스가 보이는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버스에 탑승했다.
“허억…허억…허억….”
무인버스는 해킹하지 못할 것이다.
트루비전의 서버를 통해 운영되어 해킹으로부터 완전 안전하다는게 처음 시작할때 광고문구이기도 했으니까.
버스의 속도는 아무리 느려도 스쿠터보다는 빠르다. 이대로 타고 가다 보면…단 한순간이라도 리프 X의 전파방해 거리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레이프에게 전화를 건다.
버스 안에 앉은 나는 그제야 숨을 돌리고 비전폰을 들었다.
그대로 그레이프에게 전화하기 위해 대기하려는 그때, 아주 잠시 안심한 순간, 갑자기 허리에 멋대로 안전벨트가 감겼다.
직접 차는 게 아닌, 사고 시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고정형 긴급 안전장치다.
[아아…승객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이 버스는 현재 정비가 필요한 상태라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곧바로 내려주시고, 다음 버스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에이…! 뭐야!”
“내리자, 내려!”
“어?! 자, 잠깐…!”
무인버스에서 방송이 나오며 다른 승객들이 내린다.
방송에서 나오는 건 리프의 목소리…버스에 그사이에 수작을 부린 모양이다. 해킹이라도 한 건가?
사람들이 내린 직후,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나만 태운 버스가 출발한다.
이것도 해킹 가능한 거냐…!
[뭐…무인버스 해킹도 못 할 것 같았어? 생각은 좀 했네? 사람 많은 곳으로 이동, 무인버스 탑승...트루비전의 기록에 남으면 안 되니까 스피커에 접속하는거랑 속도를 낮추는 정도밖에 못 하지만 말야…루트도 바꿀 수 없고~그래도 운행속도를 낮춰두면 다음 역쯤에는 나랑 다시 만날 수 있겠네?]
역시나 리프 X가 한 짓이다. 방송에서 버스의 안내음이 아닌 리프 X의 목소리가 재생되고 있다.
[그래서 말이야, 나는 잠든 나를 내버려두고 지금까지 파괴했던 파일을 복구했단 말이지~인격을 옮기면서 기존에 만들고 있던 리프 X의 보조인격하고도 엉켜서 말투도 좀 이상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기억 대부분은 옮겨졌으니까 복구작업도 어렵지 않았고~그랬더니 글쎄…어떤 개, 자식이…나랑 세, 세, 세, 섹스를 하고 있는 거야…! 내 첫 경험을! 감히 초 천재 미소녀에게….]
“닥쳐 좀!!”
[하지만 그 덕에 추적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 추적마법이라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귀찮아서, 누군가를 추적하려면 그 상대의 신체 일부가 필요하거든? 특정 좌표를 찾기 위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해야 하나…다행히 안에 잔뜩 싸주셔서 정액이 남아있더라고요? 난 마력 총량이 남아서 많이 흡수 못 하거든~문제는 이미 마력화가 진행되어서 염색체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는 거? 유전자를 통한 추적은 그래서 어려우니까 다른 마법소녀한테 부탁해서 추적마법을 썼는데 그것도 내 마력이랑 섞여서 위치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아 가지고…]
이 자식 또 시작이다.
그렇게 입을 다물게 해놨더니 로봇이 되어서 돌아와 귀를 아프게 할 줄이야.
나는 끔찍하게 아파진 오른손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별로 자주 써서 좋은 힘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손을 못 쓰게 되더라도 여기에서 벗어나야 했다.
“크으으윽!!”
촉수가 핏줄 사이사이에 다시 파고들며 핏줄을 터트려 멍든 손이 파랗게 물들어간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힘이 일으켜져 안전벨트를 파괴해버렸다.
엄청난 격통이다. 각오는 했지만...손이 쉴 새 없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손을 살살 쥐기도 힘들다.
[너 그거 신기하다? 대체 뭐야? 아~해부해보고 싶다!! 그레이프랑 사귀는 거 맞아? 안 사귀는 거면 그레이프한테 이번에 인공 촉수딜도 시험작 선물해주고 그냥 해부해버릴까….]
“꺼져!”
비전폰을 다시 꺼내 든 나는 그레이프에게 전화를 해 보려 했지만, 이번에도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메시지도 보내지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래피드에게도 보내보지만 역시나 안된다.
텔레파시같은거라도 없나? 뭔가 방법이...없다.
분명 지금은 좀 멀어져 있을텐데…무인버스를 통해서도 전파방해가 가능한건가?
...버스에서 나가야 한다.
나는 곧바로 버스 옆쪽의 비상탈출망치를 사용해 창문을 깨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래서 말이야, 그 이후가 더 재미있는데 추적하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가 날 따먹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이 나를 어떻게 한 사람이 설마 내 안에 정액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남겨뒀을 것 같지는 않아서 일단 다른 사람의 정액을 함정으로 넣어뒀을 걸 염두에 두고…앗!]
계속해서 지껄이는 리프 X의 방송을 뒤로하고 창밖으로 뛰어내린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멋지게 바닥을 굴러 안전하게 착지했다.
버스의 속도가 느렸던 덕도 있었지만, 그레이프에게 단련된 몸이 생각보다 탄력 있고 단단했다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자지만 단련된 게 아니라 몸이 전부 좋아져 있었다.
나는 뒤에서 리프 X가 쫓아오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급하게 차도 위를 달려 인도로 도망쳤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뛰어내린 나를 보고 괴수가 습격한 건가 싶어 놀란 눈으로 버스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다시 숨을까? 아니, 나보다 리프 X의 이동속도가 조금 더 빠르다. 전력질주를 하면 비슷하지만 나는 사람, 리프 X는 기계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숨어 이동하는것도 위험하다.
아파트에서 어떻게 2층에 멈췄다는걸 파악했지? 거기에는 감시카메라도 없었다.
뭔가를 사용해 날 추적하고 있다.
빠르게, 멀리 이동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곧바로 다급하게 근처에 세워져 있던 택시에 탑승했다.
“허억! 허억! 허억…! 아, 아무 데나 가주세요! 하아아아….”
마침 운 좋게 한대가 세워져 있어 바로 탈 수 있었다.
택시는...무인버스처럼 따로 서버에 접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선 해킹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가 되어있다.
이걸로 안전하다.
택시 좌석에 묻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거리만 멀어지면…그레이프를 부를 수 있다.
온몸에 흐르는 땀이 천천히 식어가고, 오른손의 통증이 뒤늦게 느껴진다.
근육이 전부 터져버린 것처럼 아프다.
바들바들 떨리며 파랗고 붉은 반점들이 가득해지고 있다.
다행히 손은 움직이지만…엄청난 격통이 느껴진다.
안쪽이 전부 터져버린 모양이다.
진동모드라도 켜둔 것처럼 움찔거리는 팔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나는 비전폰을 들고 빨리 통화가 가능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택시가 아무리 달려도...통화가 되질 않는다.
[계속해도 될까?]
“헉?!”
그리고 그때, 운전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차면 못 듣잖아? 이게 그다음 이야기인데~그보다 먼저 지금 얘기를 해 주자면, 설마 내가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게 발을 미끄러트리면서 쫓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당연히 택시 멈춰있던 거 해킹했지.]
내가 타고 있는 택시의 운전수는 리프 X였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택시의 모든 문이 철컥 하고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