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추적 (1)
목을 잡고 있는 리프의 손이 서서히 변화해 목에 고리를 만들어낸다.
말 그대로, 리프의 손바닥 안에서 금속의 고리가 나타나 내 목에 감겼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감기는 고리와 동시에 리프의 손이 떨어졌다.
“크윽…! 뭐, 뭐야…! 당신 누구야?”
나는 곧바로 목에 손을 대 고리를 풀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다.
목에 감겨진 고리는 금속 와이어 처럼 질기고 단단했다.
생김새는 아무리 봐도 리프가 확실하지만 뭔가 이상하다…첫번째로…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에스더가 내 손에 심어준 알 수 없는 촉수, 이 녀석 덕에 상대의 마력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는 마법소녀와 일반인을 구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리프의 몸에서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리프인가? 아니면…리프가 아닌 무언가인가?
[걱정하지 마, 혹시라도 네가 아니라면…기억을 제거하고 일상으로 돌려보내 줄 테니까, 나도 그레이프한테 죽기는 싫어서…그레이프만 아니었으면 그냥 30%확률로 죽어버리게 두고 기억을 제거했을 텐데 말이야.]
어딘가 이상했지만, 이 살벌하면서도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듯한 대사, 리프가 확실하다.
리프는 바닥에 대고 두 발을 날카롭게 해 구멍을 뚫으며 박아넣더니, 그대로 의자 없이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대로 현관문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와이어를 발사해 문을 닫아버리고는 손가락 두 개를 전기 콘센트에 꽂았다.
아니, 이거 리프가 아니다.
[전기좀 쓸게 뷰지도장씨? 근데 대체 뭔 닉네임이 뷰지도장…아니, 하는 짓을 보면 잘 지은 거긴 한데.]
내 닉네임까지 알고 있는 건가….
나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직접 정보를 지우라고 최면을 걸었는데도 닉네임까지 알고있다면…이미 최면은 풀렸다고 생각하는게 좋을 것 같다.
더는 모른 척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
하지만…아직 모른다,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건지 조금 떠볼까….
최면어플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정보를 캐내야 한다.
나는 문에 몸을 기대고 목에서 손을 떼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천천히 주머니 안의 비전폰으로 손을 넣으며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뭐야…너, 어떻게 날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러자 리프는 움찔 떨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는 말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뭐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리프가 기계음을 재생했다.
[아아아…역시 당첨이야…이걸로 98%가 100%가 됐네…길었다…길었어…길었다고….]
어쩐지…기계음인데도 무척 살벌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다.
아니, 기계음이어서 더욱 살벌하다.
리프는 전기 콘센트에서 손가락을 빼내더니 공중에서 두 주먹을 꽉 쥐고 꼬아 앉은 다리 위에 올리더니 두 손에서 전기를 파직파직 하고 튀어 올렸다.
[어느날 갑자기…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 분명 밖에 나와 있는데 나왔다는 기억도 없고, 나오려 한 이유도 떠오르지 않고…글로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해도 글을 쓸 수가 없고…무슨 수를 써도 말이 나오지 않았어…발성장치를 만들어 목에 대고 목소리를 대체해봐도, 발성 자체를 막고 있었지…입의 모양을 체크해 기계가 반응해서 말하게 해도 말을 하려는 인식 자체를 막아서는 느낌…그래, 그때부터 내가 뭔가에 당했구나 생각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들어!! 너는, 너만은 들어야 해!]
기계음이 이리저리 깨지며 괴음으로 바뀐다.
칠판을 긁는듯한 살벌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귀를 막았지만, 리프의 목소리는 귀를 막았는데도 울리는 묘한 진동으로 변해 내 귀에 그대로 때려져 들어왔다.
[설치한 터렛의 카메라 녹화장치를 체크했더니 누군가가 내 앞에 있었고…그 순간 내가 멋대로 영상을 삭제했지!! 기억도 나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 다른 두 개의 터렛 영상을 체크하고 나서야 영상을 내가 멋대로 삭제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그것도 내 연구실의 영상을 체크하고 알게 되었지…내 몸을 전부 결박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영상이 재생되게 했더니 그것도 내가 인식하자마자 멋대로 삭제해버렸어!]
터렛에 영상을 기록하는 기능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면 나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
내 기록을 스스로 삭제하게 해뒀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일단 다른 방법을 생각해서 오기 전에 분명 또 내가 사이트에서 누군가 실험체가 될만한 사람을 하나 낚았겠구나 싶어서 사이트를 체크했지…내 아이디가 삭제되어있었어!! 내 손으로!! 내! 내 2동 박사가아아아!!]
“2동 박사가 사라졌다고?”
2동 박사라는 아이디는 사이트에서 제일 유명한 닉네임중 하나였다.
포인트가 제일 많기도 하고, 그 자료의 수준으로 이름이 높았다.
활동량도 많고…마법소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에선 한번 탈퇴한 순간 포인트는 돌려주지 않는다.
[내가 지나온 흔적을 보니 내 흔적도 내가 삭제하고 있었어, 내가 그날 먹은 점심도, 저녁도, 아침도 전부 다 기록에서 삭제되어있고 그날 내가 몇 시에 일어났는지, 그 전날 무엇을 했는지….
비전폰을 통해 기록을 체크하려 하니 비전폰을 그대로 분쇄해버렸어, 복구도 못 하게. 사이트를 더 체크해 보려고 어떻게든 수단을 써 보니 사이트를 수십 번도 넘게 해킹해 연구소에서는 접속하지 못하게 차단시켜버렸어, 내 손으로! 내 영상을 확인해야만 했어…내 몸을 전부 결박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영상이 재생되게 세팅하려 했더니…기억을 잃고 내 노트북을 부숴버렸어!]
“어…음….”
뭔가 할 말이 없어진다.
그 최면 하나로 그렇게까지 되는 건가…? 전부 다 주변에 있는 무언가를 부숴버린 얘기뿐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내 적이 누군지는 그때부터 파악했지…바로 나더라고? 2동의 천재, 마법소녀 연구의 선두자, 마도공학의 구세주! 바로 나! 미소녀 박사 리프!]
“아니, 잠깐만.”
[닥쳐! 난 미소녀야!!]
“윽!!”
뭔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 목에 채워진 고리가 조여들었다.
그와 동시에 작은 전기충격이 일어나 목을 마비시킨다.
말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히히히! 어때? 말을 못 하게 된 기분은?!]
“크윽…!”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리프는 깔깔 웃더니 바닥을 박살 내며 다시 발을 꺼내 멋대로 내 냉장고로 가 콜라를 하나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현관 쪽 통로에 있는 싱크대에 등을 기댄 리프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아대며 트름 하나 없이 깨끗하게 콜라를 한 병 그대로 단번에 마시더니 한숨을 쉬며 얘기를 계속했다.
[그 순간…나는 모든걸 포기하려 했어. 차라리 애쉬가 상대라면 무섭고 질 걸 알아도 한 번쯤은 이길지도 모르니까 시도해볼지도 모르지만…내가 상대면 대체 어떡해야 이길 수 있는 거지? 완벽한 초 천재 미소녀 리프님을…감히 나 따위가 어떻게…? 아아…이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나는 리프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 틈에 최면을 걸기 위해 비전폰을 꺼내려 했다.
그러자 리프의 손이 공중에서 때앵~하고 이상한 쇳소리를 내더니 내 목에 채워진 고리에서 나오는 전류를 더욱 크게 키웠다.
“크아아악…!!”
[움직이지 말아 줄래? 너무 움직였다가 마비전류가 강해지면 뇌가 타버릴 수 있거든. 아슬아슬하게 조절해주고 있단 말야…기억을 읽을 수 없게 되면 곤란해.]
리프는 이번엔 냉장고에서 또 다른 음료수를 꺼내더니 하나하나 들이마셨다.
마신다기보다는…몸을 냉각시키는 느낌이다.
음료수를 마실 때마다 몸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때 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뇌세포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내게 초 천재에 어울리는 엄청난 발상을 떠올리게 해줬어…이런 두뇌전에서 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나…컴퓨터보다도 뛰어난 연산능력을 갖추고, 언제나 천재적인 발상을 일으키는 나뿐…그리고 최근에 내가 하던 연구는, 나의 의지나 명령을 넘어서, 기억을 전송하는 기술….]
리프는 담배를 피우듯 음료수를 마시고 입에서 수증기를 뿜어내더니, 비운의 히로인처럼 눈에서 냉각수로 보이는 검은 액체를 흘리며 말했다.
아니…저거 혹시 콜란가?
[하아아…그때부터였지…리프 X의 비운의 탄생이 시작된 건….]
“…리…리프…X?”
[초 천재 마도 공학 미소녀박사 리프의 모든 기술이 결집된, 대마도병기 시험작 초호기 VER.0.899992, 그게 바로 나…리프 X….]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리프 X는 멋대로 내 싱크대의 금속 부분을 주먹으로 내리쳐 그대로 가라앉혀 버리더니, 벽에 손톱을 세우고 긁어 깊은 상흔을 남겼다.
내 집이!!
[강력한 힘!! 높은 강도!! 마법소녀에게도 지지 않을법한 파워! 히히히! 애쉬도, 래피드도 필요 없는 오직 나만을 위한 기계제국의 건설을 위한 초호기! 마법소녀의 신체 부위를 가공해 만든 동력로에 높은 전기 출력을 통한 괴수의 단절장벽 파괴! 초진동 무기와 고열의 장비를 탑재해 괴수도, 마법소녀도 상대할 수 없는 최강의 병기…!]
리프 X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온몸에서 전기를 파직파직 하고 튀어댔다.
내 집의 벽면이 불타고 있다.
내 집이 불탄다!
[그렇게 될 예정이었는데에에!!! 너만, 너만 아니었다면!!! 너 때문에, 리프 X는 실패작이야!!]
곧바로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것과 함께 방안에 스프링쿨러가 작동하기 시작하고 리프 X의 몸이 빠르게 젖어들어 갔다.
축축하게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으며 옷에 가려져 있는 밑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브래지어도 하나 입지 않고 속옷도 입지 않았지만…보이지 않는 곳들은 처참했다.
가슴에는 유리 같은 표면의 초록색 구체가 반짝이고 있었고, 배 밑으로는 전부 기계 관절이었다.
인간이 아니다.
로봇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내가 상대여서야 이길 수 없었지…그야 당연히! 나는 최고의 천재니까! 트루비전의 그 괴물만 제외하면…! 내가 최고니까! 내가! 최고니까! 그래…내가 상대라면, 나 혼자서는 이길 수 없어…그래서 나는 날 복제했지….]
확실해졌다.
이건 리프가 아니다…리프처럼 생긴 기계였다.
[뭐, 말을 못하는 억제가 풀릴 줄은 몰랐지만 말야. 저주 같은 느낌의 마법도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이건 사실상 전뇌 휴머노이드의 하나니까 다른 개체로 인식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아, 스프링쿨러 짜증나네…잠깐 기다려.]
리프 X는 곧바로 바닥에 손을 꽂아넣더니, 안에 있는 전선 하나를 뽑아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파트 안에 울리던 화재경보기가 곧바로 꺼지고, 스프링쿨러도 멈춘다.
그와 동시에 이대로 누군가가 오길 바랐던 내 마음속 희망도 함께 꺼졌다.
[해킹 끝…이 아파트 좀 오래됐네? 옛날 방식이야…뭐, 아무튼 대충 그렇다는 거야. 지금 나는 리프의 인격을 복제해서 만든 가상인격체, 이것도 널 추적하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부터 나랑 싸우게 되어서 제대로 복제가 안 되었고, 원래 하던 연구를 틀어서 이 바디도 미완성이고…덕분에 조금 데미지가 커서 본체는 비밀 연구실의 강제 수면치료실에 넣어버렸지만…오히려 잘됐어. 나랑 싸울 일 없는 나라니, 이길 수밖에 없지.]
“크윽….”
뭔가 말해주고 싶지만, 목이 전기충격에 굳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기가 흐르는 목의 근육이 경직된 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오른손의 촉수가 혈관을 통해 알 수 없는 액체를 내뿜었다.
뇌 속에서 무언가의 스위치가 내려가고 힘이 솟구친다. 오른손에 통증을 일으키며 몸을 이리저리 늘려 핏줄 사이사이에 파고든 촉수가 내 손을 움직인다.
“크아아아아악!!!”
[응…?]
왼손에는 고리가 파고들며 피가 나고 있었지만, 오른손은 멀쩡했다.
하지만…겉보기에만 멀쩡할 뿐 안은 엉망이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낸 손은 그대로 꼼짝하지 못하게 되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안쪽의 핏줄이 전부 터져버린 느낌이 든다.
나는 왼손을 고리 안에 넣고 오른손으로 계속해서 잡아당겼고, 고리는 어느 순간 목 뒤쪽의 연결고리에서부터 빠작빠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콰지직 하고 파괴되었다.
“하아…! 하아..! 하아…!”
그 모든 과정을 흥미 있게 지켜보던 리프 X는 갑자기 온몸에서 수증기를 뿜어냈다.
아니, 수증기가 아니라…몸을 뜨겁게 달궈 젖었던 옷들을 순식간에 다리고 있다.
리프 X는 연기 사이로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양손에서 전기를 파직 거리며 말했다.
[재미있네…? 아무리 연결고리가 약하다고는 해도…평범한 인간의 근력으로는 절대 못 끊어내는데? 특수전 병사라도 되는 거야? 너…뭔가 강화하고 있는 거 있어? 방금 그거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