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비밀친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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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그레이프가 다시 마력을 가득 채우고 돌아간 다음 날, 나는 전신에 느껴지는 통증에 집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누워있었다.
돌아가기 전에 최면을 걸어 기존에 걸었던 최면들을 전부 풀고 나를 공격할 수 없다, 나를 보호한다 라는 두 가지 최면만 걸고 잠이 든 것까지는 기억난다.
그 후에 정말 죽은 듯이 잠들었고, 지금은 바닥에 깐 이불 위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그레이프와 섹스한 흔적이 가득하다.
남자의 냄새가 아닌 암컷 냄새가 가득해져서 야한 애액 냄새와 땀 냄새가 배어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
이제는 내 방에 침대가 망가져 있는 게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다.
벽에 새겨진 손톱자국들도 그렇고…바닥에 살짝 움푹 패인 곳도 그렇고…가끔 쓰는 콘돔에다, 그레이프가 혹시 모른다며 갈아입으려고 가져다 놓은 속옷이 든 가방까지 있다.
…내 방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
비밀 인터넷과 관련된 물품들은 리프와의 일이 있었던 뒤 잘 정리해 숨겨놓았지만, 그 탓인지 더더욱 내 방이라는 느낌이 줄어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샤워실에 추가로 생긴 그레이프의 샴푸, 칫솔, 치약….
…내 방은 강간소녀 그레이퍼의 비밀 섹스룸이 되어 가고 있다.
어제는 결국, 정말 더는 안될 수준으로 정액을 텅텅 비워내 지고 나서야 그레이프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분명 내가 마법소녀를 따먹을 생각이었는데 대체 어쩌다가 내가 마법소녀에게 따먹히는 거로 변하게 된 거지…?
이건 섹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착정행위다.
나는 그레이프에게 따먹히고 있다.
“으으으윽….”
손을 조금 움직이자 전신이 엄청난 통증에 휩싸인다. 고통스럽기보다는 말 그대로 통증이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발등에서 발바닥, 종아리 앞쪽과 뒤쪽, 허벅지와 허리…등 전체와 가슴, 배, 어깨, 팔, 목 전부 다….
온몸에 뭔가 잘못 주사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뻐근하다.
그런데도…자지는 멀쩡하게 기운이 넘친다.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조용한 방 안에서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왜 이런지 알 것 같았다.
꿀럭, 꿀럭 하는 소리가 오른손에서 작게 울리고 있다.
오른손이 욱신거리면서 손등의 핏줄 안에 숨어있는 무언가가 내 몸속에서 알 수 없는 뭔가를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체온보다도 아주 약간 더 따뜻한 게 팔을 타고 흘러 온몸에 퍼지다가 자지에 모였고…자지가 조금 따뜻해지며 지친 자지가 점점 회복되는 게 느껴진다.
몸에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확실히 에스더가 내 몸에 무언가 심어놓은 게 틀림없다.
에스더가 촉수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과 손등에서 느껴지는 이 기다란 느낌을 생각해보면 아주 자그마한 촉수가 아닐까 싶다.
혈관 안에 숨어있는 초소형 촉수…조금 섬뜩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얌전하다.
처음 이걸 알아차렸을 때는 조금 불안했지만, 지금은 이 묘한 기생촉수가 나를 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얌전히 멈춰있기만 하고…내 몸속에서 영양분을 어느 정도 공급해주는 느낌이다.
팔을 통해서 마력을 흘려주기라도 하는 것인지 각성제 샘플을 맞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도 든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지금도 방 안에 남아있는 그레이프의 잔류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냥 보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이해해보려 해도 시간낭비다.
정리해보자면 오른손에 박힌 이 묘한 것은 정액을 만들어주지는 않아도 자지 자체의 피로도를 풀어주는 힘과 마력이 눈에 보이게 해 주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뭔가 위험한 것도 아닌 것 같다.
드론이 내 몸을 스캔할때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었고….
자지를 회복시켜주는 건 좋지만…어제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죽을 뻔 했다.
오른손이 자지를 회복시켜주고 그레이프가 정액을 만들게 부추기는 콤보로 정말 목이 바싹 마를 정도로 쥐어짜내졌다.
대체 몇 번을 싼 거지…평범한 인간이 사정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나는 방구석에 쌓아놓은 여러 영양제와 약품들을 힐끔 보고 난 뒤, 내 자지를 내려다봤다.
확실히 약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몸도 좋아졌고…자지가 신기할 정도로 커져 있다.
원래 크기가 내 손 하나 정도 길이였다면,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길다.
과하지 않게 펼쳐서 엄지에서 중지까지…한 뼘 정도 길이는 되지 않을까?
없던 자신감도 생길 정도로 크다…역시 아무나 살 수 없는 베스트 셀러…이것이 진짜로 자지를 크게 만들어준다는 전설의 약, ‘남자의 자신감 괴수자지 MAX’ 의 힘인가….
그러고 보면 어제는 그레이프가 정말 안 봐주고 섹스한 것 같은데도 몸이 버틸 만 했다.
지금 이렇게 반쯤 죽어있긴 하지만 이것도 놀라운 거다.
변신하지는 않았어도 그 그레이프랑 진심섹스를 하고 숨을 쉬고 살아있다니…하지만 그 사실이 그렇게 기쁘지는 않다.
오히려 점점 더 난폭해지는 그레이프가 무섭기만 하다.
난 그레이프와 섹스하는건 기분 좋지만 생체딜도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레이프에게 건 최면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성이 보인다.
혼자 남은 나는 바닥에 누운 채 앞으로 최면을 거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은 작은 실수였지만 너무 큰 피해로 돌아왔다.
겨우 대상 한번 제대로 지정하지 않고 말한 것치고는 심각한 문제다.
아직까지도 최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이번에 다시 한 번 확실해진 것은 최면은 절대 무적 같은 게 아니라는 거였다.
그레이프에게 최면을 걸며 최면이라는 건 일종의 프로그래밍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하게 명령해도 듣게 할 수는 있지만,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것이 최면 대상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나는 일단 지금까지 알아낸 최면의 주의사항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원하는 결과를 정확하게 내기 위해서는 명령이 복잡하고 세세해질 필요가 있다.
다른 명령보다도 최면상태에서 입력해둔 명령이 최우선시되며, 이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내 말에 복종한다 같은 명령을 통해 재명령해도 기존에 내린 최면과 충돌하면 듣지 않기도 한다.
대상을 제대로 지정하지 않으면 원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상대에 따라 거부감이 강한 최면은 듣지 않기도 한다.
거부감이 큰 명령은 여러 최면들을 통해 우회하면 가능하다.
또 뭐가 있지? 감각 제어 가능, 상대에게 의식이 없거나 하면 최면을 거스를 수 있음, 원래 있던 인식을 교묘하게 뒤트는 게 복잡한 명령이 더 쉽게 걸림….
일단은…이 정도일까.
생각보다 복잡해 머리가 아파진다.
단순하게 무의식 상태에서 가지고 노는 건 쉬웠지만…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의심을 받지 않고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건 꽤 어려웠다.
하지만 래피드를 따먹기 위해서는 그 어려운 걸 해내야 했다.
그레이프는 너무 간단하게 섹스했지만…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원래부터 자위 영상을 비밀 SNS에 올리는 변태녀였던 만큼, 숨겨왔단 변태적 욕망이 폭발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이미 그레이프에게 걸어뒀던 최면은 거의 다 풀어뒀는데도 계속해서 나를 따먹는다…정말로 몰래 섹스할 수 있는 편리한 섹스파트너 같은 취급을 받고있는 걸까.
복잡한 최면이 필요 없어 보여 공격할 수 없는 것과 나를 보호해주는 최면만 걸어뒀는데도 돌아가는 길에 ‘또 올게요♡’ 라고 말하고 가서 소름이 돋았다.
온몸에 느껴지는 통증을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지쳐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다른 최면을 걸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고보니 감각도 조절할 수 있었다. 감도 50배 같은 것도 되려나? 그러면 내가 좀 편해지지 않을까?
그런 바보 같은 명령이 통할지는 잘 모르겠다. 한번 제대로 생각하고, 다음에 왔을 때 실험해봐야겠다.
다음은…래피드다.
래피드는 어떡하면 따먹을 수 있을까?
상당한 고민이다.
나는 먼저 지금까지 래피드에게 건 최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를 공격할 수 없다, 나를 이성으로 본다, 내게 호감을 느낀다, 대화에 쉽게 빠진다.
그리고, 내게 비밀을 쉽게 말해주는 것과 손을 내게 잡히면 보지처럼 느끼는 것….
여기까지는…나쁘지 않다.
다음에는 무슨 최면을 걸면 좋을까?
어떤 최면을 걸지도 고민이지만 어떤 걸 할지도 고민이다.
전날 있었던 래피드의 반응을 보면 내가 구해준 것에 크게 감동한 것으로 보였다.
겨우 그런 거로 반했을 리가 없지만…그래도 어느 정도 호감은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거 한번 구해줬다고 반해? 어림도 없는 소리.
아무리 그래도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구해준 게 아니라 에스더를 유인해서 필살기를 쓰려는데 내가 방해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만 보면 좋았으니, 나쁘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응?”
래피드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최면어플을 키고 래피드의 위치를 추적했다.
추적해보니, 래피드가 어느새 케이크 가게에 있는 게 보였다.
조금 특이하다.
이 시간에 케이크 가게…? 평소에는 지금 시각이면 이미 케이크 가게를 나와서 도서관에 가 있거나 공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을 시간이다.
애쉬는…추적해보니 오늘도 외부 구역에 있다.
아마 오늘도 열심히 괴수들을 사냥하고 있는 모양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근육통이 느껴지는 몸을 힘겹게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아직 어떤 최면을 걸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지만…지금처럼 애쉬가 멀리 나가 있고 안전하게 래피드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샤워하고 온몸에 파스를 붙인 뒤 옷을 입으니 몸에 파스냄새가 가득했지만…다행히 움직일 만했다.
온몸이 욱신거리지만 걸을 수는 있다.
최면도 중요하지만 자주 만나서 친밀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래피드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