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마법소녀 (10) (42/299)



〈 42화 〉마법소녀 (10)

래피드가 도착하자마자 주변의 분위기 자체가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안심이 된다고 해야 할까, 공기 자체가 차분하게 안정되어간다.
몸에 달라붙는 레오타드같은 전투복을 입은 래피드는 마법지팡이를 에스더에게 향한 채 천천히 다가오다가 그레이프를 보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레이프 맞지…?!”
“무슨 의미야 대체…?”
“그, 그야…큰 상처도 하나도 없고?! 어? 이, 이거 다 그레이프가 한 거야? 마력 괜찮아?! 그보다 저만큼 마력이 돼?!”


래피드는 정말로 놀란 목소리로 그레이프를 경계하기까지 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레이프가 마력이 많은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매일같이 나와 섹스하며 마력을 가득 채운 덕에 래피드와 에스더가 놀랄 만큼 강해진 상태인 것 같다.
말하자면 순간적인 도핑에 가깝다.


“대체 어떻게…?”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진짜  별거 아니었던 것 같잖아….”
“아, 아니…그게 아니라…그레이프, 마력  부족했잖아…회사 생활 버틴다고 신체 강화하느라.”
“으, 으으윽….”

…설마 그레이프의 마력이 부족한 것이 이런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슬픈 이유인 줄은 몰랐다.


“어…? 그, 그러니까…로맨스 씨?”
“로맨스 씨?”
“앵거씨, 래피드랑 아는 사이에요…?”
“어? 그레이프랑 아는 사이에요?”

로맨스 씨…? 아무래도 내가 이름을 아직 가르쳐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래피드와 그레이프는 서로서로 나와 상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서로 아는 사람이 겹친다는  신기한 것 같아 보인다.
에스더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고 보면 래피드와 그레이프는 친구였고, 둘 다 나를 알고 있었다.
큰일 났다. 설마 그레이프가 래피드한테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겠지….

“짜증나….”

그때 검은 화염의 포격을 쏘아낸 에스더가 온몸에 검은빛의 기운을 이글이글 태워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에스더의 눈엔 황금빛과 붉은빛이 각각 한쪽씩 자리 잡으며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빛의 눈에는 피가 흘러내리는 듯 검은 마력이 흘러나왔고, 에스더의 두 손에는 천천히 검은 빛의 화염검이 만들어졌다.

“짜증나…짜증나…! 뭐야, 둘이 왔으니 이제  이길 수 있다 그런 거? 둘이니까?! 나는 혼자인  알아?! 루이!!”
“루이?!”

에스더가 외친 이름을 들은 나는 곧바로 루이가 삼켜져 있던 촉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촉수가 갑자기 녹아내리더니…알에서 무언가가 점막을 찢고 나오듯 사람의 형상을  누군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 이게, 새 촉수야아!! 타락촉수!! 이제 언제든지 마법소녀를 타락시킬 수 있어!! 얘는 나처럼 감정만으로 타락시키는  힘들지만 말야!”


에스더의 웃음소리 너머로, 옷이 작은 것처럼 터질 듯이 팽팽해져 있는 성숙한 몸매의 여성이 천천히 걸어왔다.


“하아아아아….”

 키에 기다란 팔다리, 쭈욱 뻗은 몸매…그러면서도 귀여운 얼굴을 가진 그녀는 요염한 목소리로 길게 한숨을 쉬고 퇴폐적인 입술을 빛내며 젖은 발로 지면을 밟아 철퍽철퍽 하고 걸어오더니, 한쪽으로 손을 내밀어 기다란 창을 염력을 써서 끌어당겼다.
머리에는 에스더의 것과 같은 커다란 뿔이, 가슴은 크게, 허리는 잘록하게, 골반은 벌어져서…이상적인 여성의 몸매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작은 키에 귀여운 목소리, 작은 가슴에 어린애 같은 외모를 가졌던 마법소녀, 루이였다.

“아아아아…! 최고야…! 최고야! 최고야! 타락이 이렇게 좋은 건 줄 알았으면 진작 타락했어!”
“루, 루이? 루이 언니야?!
“어머, 래피드~오랜만~? 그레이프! 이 망할 년이! 너만 빨리 왔어도 내가 개고생은 하지 않았잖아!”

날카로운 말투와 신경질적인 목소리,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걸음걸이와 표정은 누가 봐도 농염한 30대의 미녀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얼굴은 귀여우면서도 색정적인…정말 여러 가지 감상이 섞여나오는 외모였다.


“흐으응…타락하면 이런 기분이구나? 아아, 이제 그 돼지새끼들이랑은 안녕이야! 애 같은 몸하고도 안녕! 난…그래, 분노의 마녀, 루이…! 좋아아…그레이프!  먼저야!”

루이는 기다란 창을 지팡이처럼 들더니, 그대로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마법주문을 외웠다.

“익스플로져 explosion…!”
“리와인드 Rewind!!”

그 순간 래피드의 손에서부터 쏘아내진 오묘한 일렁임이 루이를 덮쳤다.
루이와 래피드의 사이에 마력의 실이 이어지고, 래피드의 마력이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아아아아아아!!”


루이의 모습이 되돌아가고 있다. 놀랍게도, 정말로 점점 뿔이 작아지고 키가 작아지며, 다리가 줄어들고 가슴이 작아지고 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타락한 마법소녀를 되돌리고 있다.
평범한 마법이 아니라는  느껴졌다.

마력의 선이 이어져 있는 것만으로 래피드의 마력이 엄청난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물방울 하나를 잔에서 빼낸 건 평범한 사람으로는 알 수 없지만, 단숨에 부어버리고 있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소모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양의 마력이 사용되었다.


“하아아…시, 시러어…하아아아…아, 안돼애애…나, 내 모옴…내 가슴이야아…아아아아….”

그대로 래피드가 루이를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자 루이는 눈물을 흘리며 한마디 비명 같은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어 쓰러졌다.
…뭐라고 하기 힘든 말이다.

“하아…! 하아…! 하아…!”
“아하,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에스더의 동료가 될 뻔한 루이를 순식간에 다시 원래의 마법소녀로 되돌린 래피드는 많은 마력을 소모하고 지쳤는지 숨을 헐떡였다.
그런 래피드의 모습을 보며 에스더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천천히 다가온다.
어쩐지…에스더의 얼굴이 무척이나 일그러져있다.
웃으면서도 우는 듯한, 괴로우면서도 허탈한 듯한 얼굴이다.

“그래…래피드…정말로, 할 수 있네? 되돌릴 수 있었네?”
“에, 에스더….”
“…그런데도  왔던 거구나?”
“아니야! 그런 게…!”
“닥쳐, 래피드.”

천천히, 에스더의 손에 들린 검은 불의 검이…바닥으로 흘러내린다.
평범한 불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바닥을 향해 타오르며 눈물처럼 떨어져 지면을 불태운다.
화륵화륵 하고 피어오르던 에스더의 마력이 점점 가라앉고, 그녀의 눈이 검은색에 물들어갔다. 흰자가 사라지며 검은색으로 변하고 붉은 눈동자만이 남아 공포스럽게 빛나며, 천천히 검이 들어 올려졌다.

“덤벼, 마법소녀.”
“에스더…! 내 말을 들어줘!”
“닥쳐어어어어!!!”


지금의 이상한 눈으로도 뒤쫓을  없는 속도로 에스더가 사라졌다. 날아온 것이나 뛰어든 것이라는 걸 전혀 느끼지 않는 속도로 사라져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그레이프를 뛰어넘어 곧바로 래피드를 향해 휘둘러진 검은 불이 아래로 떨어지는 톱날 모양의 칼날이 위에서 밑으로 내리찍어진다.
아니, 내리찍어지려고 했었다.

“그레이프으으으!!!”

내리찍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건 그레이프가 어느새 방패를 들어 검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지만 그런 그레이프의 모습을 보며 검보다 방패가 훨씬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왜 검만 들고 있었던 거지?
그레이프는 사납게 자신을 노려보는 에스더에게서 래피드를 완벽하게 보호하며 온몸에 마력을 휘감아 버티고 서 있었다.

“방패!! 거슬려어어어!!! 이, 샌드백년이이이이!!”


검날에서 흘러 떨어지는 불꽃이 그레이프의 방패를 점점 불태우고 녹여낼 때마다 그레이프의 마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에스더가 검을 멈춘 채 치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그레이프의 방패를 태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되지 않아 방패가 녹아 없어질 것 같지만, 그레이프의 마력이 점점 더 커지며 에스더를 막아서고 있었다.


“너!!! 그레이프 아니지!!!”
“말이 너무한 거 아냐 에스더…?!”
“내 귀여운 그레이프는…! 지는  어울린단말야아아!!!”


그레이프는 여유 있게 말하고 있었지만…감각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래피드가 많은 양의 마력을 단숨에 써 버린 것처럼, 그레이프도 에스더의 검을 막기 위해 마력을 빠르게 소모하고 있다.
분명 얼마  가 한계가 올 거라는  너무도 확실하게 보인다.
그레이프가 강해진 건…마력의 양을 잔뜩 채워 일시적으로 강해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아직 마력이 남아 버틸  있지만, 전부 쓰는 순간 곧바로 에스더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레이프도 같은 생각인지 에스더의 공격을 막아서던 그레이프는 방패를 부들부들 떨며 래피드에게 말했다.

“래피드…! 애쉬는! 언제…! 오는 거야…!”
“애, 애쉬는…외부 구역에…하아…마법소녀 세 명이나 있는데 못 막겠냐고…!”
“늦는다 이거지!! 공간이동은 쓸 수 있어?!”
“그 정도는 가능해…하지만, 쓰면 더는 마력이…!”
“앵거 다른 곳으로 내보내!”

그레이프의 외침과 함께 래피드의 시선이 내게 향해졌다. 막대한 양의 마력을 단숨에 사용해 쇼크가 온 듯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던 그녀는 결심한 듯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내게 마법지팡이를 향한 채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노바아아아 Nova!!!”
“커헉…!”

 순간 에스더가 마법 주문을 외우며 주변의 마력을 단숨에 폭발시켰다.
새하얀 불꽃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마력이 연속으로 터져 나오고, 검을 막아내던 그레이프를 발로 차 옆으로 날려버린다.
그레이프는 갑자기 강해진 에스더에게 반응하지 못하고 옆을 차여서 터널의 벽으로 날아가 그대로 박혀버렸고, 에스더는 그레이프가 다시 돌아올 시간도 주지 않은  래피드에게 들이닥쳤다.

“어딜!!  데려가아아아!! 래피드!! 이, 도둑고양이년아아아아아아앗!!!”


비명이 섞인 비통한 외침을 찢어지듯이 내뱉은 에스더의 몸이 검은색과 붉은색, 하얀색의 불길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기운과, 본래 그녀의 마력, 그리고 마력을 통해 만들어진 하얀 불의 검이 뒤섞여 아름답게, 그리고 시끄럽게 빛난다.
그대로 래피드에게 검이 떨어지려는 순간…나는 에스더를 향해 몸을 날렸다.

래피드는 나를 공격할  없다.
에스더는 나를 공격할 수 없다.
그러니까…지금 공간이동 주문을 외우느라 무방비해졌던 래피드를 보호할  있는 건, 이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스페이샬 랜드 Spacial Rend!!”

그와 동시에, 래피드의 입에서 공간이동이 아닌 공격주문이 나왔다.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는 척하고 공격 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갑자기 든 의문이었지만, 나에게 하려던 공격이 아니었다면, 갑자기 내가 뛰어들었을 때 내가 맞을 수도 있을까?
정답은, 맞다. 맞을 수도 있다.
래피드의 마법으로 세로로 쭈욱 절단된 공간이 내 손목의 옷깃과 펼쳐진 상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에스더는 내가 뛰어든 순간 흠칫 놀라며 검을 멈췄고, 그대로 달려든 내게 밀쳐져 낮은 허공에서 지면으로 추락했다.

“어, 어?!”
“아야야…윽…하아….”

나는 설마 래피드가 공격주문을 외우고 있었을 줄은 몰라 둘의 공격이 겹치는 사선으로 뛰어들었고, 정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래피드가 사용한 마법은 밖에서 봤을 땐 무슨 마법인지 알기 어려웠지만…터널 안에서 보니 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법지팡이에서 쏘아내진 무언가가 공간 자체를 절단해버렸다.
위아래로 쏘아진 살벌한 기운이 터널을 세로로 갈라버렸고, 내 바로 옆의 지면이 깔끔하게 둘로 쭈욱 나누어져 있었다.
몸을 일으키며  모습을 보고 오싹해 하던 나는, 밑에서 느껴지는 말랑하고 푹신한 촉감에 천천히 시선을 밑으로 향했다.

“어? 어…? 어…?”

그러자  눈앞에는 무척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살벌하고도 무서운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 당황해 얼굴을 붉히고 있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붉은 머리의 에스더가 있었다.
커다란 뿔이 눈앞에 보이자 잡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친다.
나는 조심히 에스더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무척 수줍어하며 시선을 밑으로 향하자 놀라 숨을 삼켰다.

“바, 바보 아냐…내, 내가 저런 속임수 같은 거에 당할  같아?”
“역시 파악하고 있었나….”

뛰어들기를 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에스더가 래피드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해 그대로 공격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에스더가 아까 확실히 공격을 멈춰줬던 것 같은데…래피드는 의도하지 않은 공격을 그대로 해 버렸지만, 이것도 각자 차이가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 에스더가 얼굴을 잔뜩 붉히며 입가에 주먹 쥔 손을 대서 입을 가리고 말했다.

“마, 마법소녀끼리 죽이는  싫어도…이런 짓까지 하면 위험하다고…이,  멍청이…!”
“위험한 건 아는데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어, 얼마나 날 좋아하는 거야 너….”


…뭐지? 어쩐지 에스더가 귀여워 보인다.
조금  까지만 해도 그렇게 무서웠는데  갑자기 이렇게 귀여운 목소리를 내는 거지…?
자세히 보니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고, 그렇게 살벌해 보였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부끄러우면서도 당황한 모습으로 몸을 살살 꼬아대고 있다.
…뭐지? 내가 이런 최면을 건 적이 있나?

밀착한 몸을 통해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피부가 접촉되었을 때 에스더의 몸에서는 분명 무언가를 흡수하고 빨아들이는 듯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었는데…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그냥 외관이 특이한 마법소녀처럼 촉각을 예민하게 하는 마력만 느껴진다.
어쩐지…방금 전보다 무척 약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앵거!”

그때 그레이프가 나와 에스더에게 달려들며 머리 위에 빛을 잔뜩 파직 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곧바로 그레이프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멈춰 섰지만, 순식간에  밑에서 날개를 움직여 빠져나간 에스더는 래피드와 그레이프의 앞에 날아올라 점점 공중에 떠오르더니…래피드를 보면서도 나를 계속 힐끔거리며 어째서인지 칼날이 무뎌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흐, 흥…오, 오늘은 이쯤 하고 가주겠어. 패, 팬 서비스 차원에서 말야….”
“팬 서비스…?”
“아, 아하하하하하! 허접하고 약해진 마법소녀한테는 관심 없어! 재미없어졌으니까 갈래!”
"에, 에스더…?!"


그대로 갑자기 에스더는 허공을 찢더니, 차원문을 열어 넘어가 버렸다.
혼자서 이동하는 차원문은 순식간에  수 있다더니…정말이다. 정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이다.
이게 끝이다.

“…뭐였지?”

대체 왜 에스더가 갑자기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정말 황당하고 허무하게도…정말로 이게 끝이었다. 주변에는 루이가 쓰러져있고 수많은 촉수괴물들의 사체가 퍼져있는 데다, 내 몸은 엉망이었지만…이걸로 끝이었다.
멍하니 서 있던 나는 에스더가 갑자기 도망친 이유를 알 수 없어 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봤고…또다시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내 등 뒤에는 래피드가 얼굴을 붉힌 채 살짝 시선을 피하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저, 저기…그, 그렇게 뛰어들면 위험해요…아무리 위험해 보여도…그, 마, 마법소녀니까!  정도는 막을 수 있는 걸요!”

래피드는 조금 전까지 그렇게 죽을 각오로 싸우던 걸 잊어버린 것처럼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그레이프가 다급히 달려와 래피드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애, 앵거…몸은 괜찮아요? 아! 아까 방패…고, 고마워요.”

래피드와 그레이프는 그대로 서로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것처럼…입을 다물고 있다가도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얘들 왜 이래.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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