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마법소녀 (9)
그레이프의 말과 동시에 머리 위에서부터 에스더가 공중에서 방향을 두세 번씩 꺾으며 나타났다.
밑에서 올려치려는 척하다가 옆으로 틀어지고 위로 방향이 변해 대검을 위에서 내리찍는다.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다.
날개를 통해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대며 있을 수 없는 속임수를 걸고 있다.
그레이프는 그 공격에 반응해 방패를 위로 들어 막아내고는, 검으로 그대로 찌르려다가 머리에 빛이 터져 나오며 곧바로 검을 내렸다.
“그레이프~!! 전부 막아?! 아하하하! 네가~?!”
빠르게 검이 휘둘러진다. 또다시 있을 수 없는 각도다.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회전한 검이 방패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갑자기 옆으로 틀어져 그레이프를 베어 들어온다.
그 검을 그레이프는 다른 한 손에 든 검으로 막아서고, 방패로 에스더를 밀쳐 내려다가 다시 머리에 빛이 파직파직 하고 터지며 멈춰 서게 되었다.
“그레이프! 방어에 집중해!”
“크읏…! 알았어요!”
나는 그레이프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하면 아마 더 이상 공격을 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 명령을 내린 직후부터 그레이프의 머리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에스더를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니다. 지금은 래피드나 애쉬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고 할 수 있다.
“그 날개 좀 짜증 나네!”
“멋있지? 부럽지?! 아하하하하하!!”
에스더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날개를 이용해 공중에서 옆으로 회전, 꼬리의 끝 부분을 뾰족하게 세워 눈을 노렸다가 밑에서부터 사선으로 검을 베어 올리고, 방패에 막히자마자 한 손을 옆으로 떼어내 작은 불의 검을 만들어 휘두른다.
그레이프는 한 손에는 방패,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능숙하게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튕겨내고, 막아서고, 흘려내며 전부 막는다.
정말로, 전부 막아내고 있다.
“앵거…내 뒤에서 나오지 마요.”
마력이 고체처럼 변해 방패와 검에 씌워져서, 두 팔에 갑옷처럼 새어 나와서, 두 다리를 땅에 박아 고정시켜주면서….
완전히, 철벽처럼 막아선다.
이게, 철벽이라고 불리는 마법소녀…그레이프라는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연약한 남자는 싸우는 거 아니니까, 지켜지기만 하고 있어요.”
“무슨 개소리를 하고있어…막기나 해!”
연약하다니! 자존심 상한다.
내 이 근육질인 몸의 어딜 보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만 그레이프를 보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없다.
무지막지하다는 말 밖에는 안나온다.
그레이프의 말대로 등 뒤에서 나갈수도 없다. 그레이프가 공격을 막을 때마다 양옆으로 에스더의 불꽃이 화려하게 퍼진다.
직접 공격한게 아닌, 공격의 여파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까? 그걸 확신할 수 없는 이상 그레이프의 등 뒤에서 나갈 수는 없다.
이대로 래피드와 애쉬를 기다려야만 한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아아아!!!”
에스더의 손이 점점 빨라진다.
양손에 든 불의 검으로 끝나지 않고 꼬리를 써서, 날개를 세워서, 발끝에 불을 휘감으며 발차기를 한다.
날개를 펼쳐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작은 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대로 막아내자마자 한쪽 다리를 우측에서부터 올려 차고, 그레이프가 무릎과 팔꿈치로 잡아 막아내자 꼬리를 얼굴을 향해 찌른다.
그걸 그레이프는 가볍게 고개를 꺾어 피하고는, 다시 빠르게 반대쪽으로 머리를 돌려 어깨와 볼을 써서 에스더의 꼬리를 잡았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자세다.
“너 뭐야…그레이프 맞아?”
“후, 후후후…너, 너야말로…에스더 치고 약한데…?”
“건방지게…이클립스 Eclipse !”
에스더가 주문을 외우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터져 나오며 검은 빛이 주변을 휘감았다.
전에도 본 적 있는 주문이다.
공격을 통과시키는…상대의 공격은 통과하면서 자신은 공격하는 일방적인 주문이다.
이 모든 게 내 눈에 보이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오른손이 욱신거리는 것과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가 보이고 있는 것이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에스더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지만…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레이프에게 잡혀있던 몸을 전부 빼낸 에스더는 지면에 떨어져 내리자마자 발을 밑에서 위로 빠르게 올려 찼다.
“그거라면, 이러면 막을 수 있댔는데…?”
거기에 맞서는 그레이프는 갑자기 온몸이 흐려지게, 쉴 새 없이 진동하는 것처럼 만들며 곧바로 에스더의 발을 막아 세웠다.
“초진동…?! 그레이프…활성화 말고도 마법 쓸 수 있게 된 거야?”
“마법 아니야, 애쉬가 초진동이 없으면 못 막는다고 해서…몸을 엄청 빠르게 떨면서 움직이는 것뿐이야!”
“징그러!!!”
설명을 들으니 정말로 징그럽다.
에스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레이프에게 닿은 발을 떼내고는 불의 검으로 베어 갔다.
“슈팅스타 Shooting Star !”
그대로 꼬리를 밑으로 내려 꼬리 끝에서부터 작은 불꽃의 탄환을 쏘아댄다.
에스더가 마법소녀였을 때부터 가장 즐겨 사용하는 마법…슈팅스타의 탄환이 그레이프에게 날아가며, 검을 바닥에 꽂아버린 그레이프의 손에 하나하나 잡혔다.
말 그대로 하나하나 다 잡혔다.
“뭐, 뭐 하는 거야 그레이프?!”
“…잡았네?”
“징그러!! 그걸 손안에서 터트리는 게 어딨어!”
“어…몰라, 이게 왜 되는 거야?”
“아아아, 진짜! 아무리 감정에 마력이 증폭되어도, 네가 불굴이어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지키는 사람 한명 있다고…잠깐만…왜 아직도 마력이 그래? 너…진짜로 그레이프 맞아?”
“마, 마력…? 그, 그러게? 아직 엄청 많네…?”
갑자기 에스더가 질린 듯이 검을 내리고 말하자 그레이프가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는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힐끔거렸다.
마법소녀는 처녀를 유지하면 잠재력과 성장속도가 빨라지지만…안에 정액을 받게 되면 마력이 회복된다.
아무래도 그레이프는 아직도 마력이 한참 남아있는 것 같아 보인다.
온몸에 선명하게 떠오른 갑옷 같은 마력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하아…재각성이라도 했어…? 대체 뭐야?”
“그, 글쎄? 마, 마법소녀의 힘 아닐까?! 위급한 상황에서 나오는…!”
“…그레이프, 바보야? 아니, 바보 맞지. 그딴 게 있었으면 너랑 나랑 싸우고 있겠어?”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레이프도 에스더도 방금 전 까지 죽일 듯이 싸우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평범하게 대화하고 있다.
원래는 친구였던 것처럼…아니, 생각해보니 둘은 원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가장 초기에 유명했던 마법소녀는 래피드와 애쉬, 그리고…에스더와 그레이프다.
아주 잠깐이지만 넷이 함께 다닌 적도 있으며, 그때는 정말 마법소녀 아이돌 그룹이라는 느낌으로 좋아하는 팬들도 많았다.
지금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에스더는 갑자기 두 손에 들고 있던 불의 검을 없애버리더니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하아…너 그리고…방패 잘 쓰는데? 왜 방패 안 든 거야 대체? 진작 좀 들었으면 고생 안 했잖아?”
“애, 애쉬가 들지 말래서….”
“애쉬이…? 하, 그년 진짜…그래, 너한테도 뭔가 했다 이거지?”
“잠깐만, 에스더…너, 정신파장…?”
“아하? 그러고보니까…약간 약해졌네? 흐응…원인이 뭐지? 아, 다시 돌아온다…아하, 아하하하!”
그레이프와 에스더는 정말로 뭔지 알 수 없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서로 예전에 역시 아는 사이였기 때문인지 둘만 통하는 대화가 있는 모양이다.
에스더는 그대로 한 손을 머리에 올리더니…점점 광기 어린 표정으로 변해가며 다른 한 손에 화염을 휘감으며 말했다.
"아하, 아하하하! 대화시간 끝~! 다시 할까? 준비해 그레이프!"
“역시…어쩔 수 없는거야? 아니, 아직은…! 에스더…!”
“아하하하하!! 그레이프…신파극은 집어쳐. 난 마녀, 넌 마법소녀…충분하잖아?”
“래피드의 지금 마력량으로는 아직 널 되돌릴 수 없어. 하지만….”
그레이프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갑자기 다시 웃음을 멈추더니…무척 살기 어린 눈을 하고는 그레이프를 노려봤다.
칼날이 눈에 서려 있는 것만 같다.
화륵화륵 불타는 분노가 에스더의 눈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래피드가 뭐? 하아아아…한심해 그레이프.”
천천히 그녀의 손에 피어오른 불의 색이 변한다.
붉은색에서 청색으로, 청색에서 흰색으로…아니, 흰색에서 한 번 더,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다.
검은색의, 어두운 빛의 불이 손에 이글거리고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어두운 빛이 에스더의 손 위에서 일렁인다.
“래피드가 할 수 있는 게 있어? 애쉬가 있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르면 샌드백 답게 생각하지 말고 맞기나 해!!”
“크읏…!”
에스더는 말과 동시에 손톱의 형태로 일렁이는 검은 불이 휘감긴 손을 휘둘렀다.
손날을 세운 채 그레이프를 베어내고, 손을 펼쳐 할퀸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에스더의 주변에서 느껴졌던…마력이 아닌 다른 감각이 에스더의 불에 담겨있다.
무언가를 흡수하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레이프의 마력을 깎아내고 있다.
“이, 이건…?!”
“아하하하하!! 그레이프~! 넌 말야…근접전밖에 못 하니까! 샌드백인거야!”
깎아내고, 깎아내고, 깎아낸다.
그레이프의 몸 주변에 뭉쳐져 있던 마력이 나무를 잘라내듯 조금씩 깎여나간다.
마력이 얇아지고 그대로 소멸한다.
에스더의 불에 흡수되며 삼켜지고 있다.
그레이프의 힘을 흡수하고 있다.
“안돼…!”
마력의 갑옷이 점점 깎여나가며 그레이프의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무언가 크게 변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마력을 깎아내는 치명적인 공격으로 변했다.
“절대로…안돼!”
그런데 분명히 쉴 새 없이 깎여나가는데도…그레이프의 몸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방패로 막고, 검으로 막아낼 때마다 마력이 깎여나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데도,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대로 마력이 사라져 버리는데도 끝이 나질 않는다.
쉴 새 없이 그레이프의 안에서 마력이 샘솟고 있다.
“오늘은!! 절대로!! 안져!!”
에스더가 깎아내는 속도보다 빠르게 그레이프의 마력이 증폭된다.
없애는 만큼 만들어내고, 부수는 만큼 고친다.
상처가 생겨도, 뒤로 물러서면 피할 수 있어도 절대로 피하지 않는다.
그레이프의 양옆으로, 내 바로 양옆으로 에스더의 불꽃이 새어나가며 주변이 모두 까맣게 타올라도 그레이프 만큼은 절대 불타지 않는다.
전부…막아낸다.
“그레이프….”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에스더는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광기 어린 미소를 가득 띤 채, 얼굴에 희열이 가득해져서 소리쳤다.
“늦었네에?! 이제서야 감정으로 마력을 증폭하는 거야!! 애쉬가 안 가르쳐줬어~?!”
“뭐…?!”
알 수 없는 얘기에 그레이프가 경악했다.
감정으로 마력을 증폭…?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에스더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그레이프의 마력은 샘솟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말 그대로 원래 있어야 하는 크기가 커지고 있다.
덩어리 자체가 갑자기 커지는 느낌이다.
“아하하하하!! 감정의 증폭이, 너만 할 줄 아는 건 줄 알아?”
에스더는 갑자기 두 손을 모아 쥐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그레이프 너머의 나를 가만히 노려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미워, 미워, 미워, 질투나, 질투나, 질투나, 질투나, 질투나!!”
“히이익…!”
무섭다.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무섭다.
핏줄이 튀어나온 것처럼 붉어지는 에스더의 눈이 무섭다.
쫘악 펼쳐진 채 피가 흐르는 것처럼 흘러내리는 붉은색의 마력이 무섭다.
“코로나아아! 매스! 이젝트으으으 Coronal Mass Ejection !!!”
에스더의 몸에서 점점 검은색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본래 그녀의 마력이라 생각되는 붉은색의 화염과 같은 마력을 집어삼키며 점점 커진 마력은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며 그녀의 양손에 저절로 뿜어져 나온 것처럼 거대한 검의 형태를 띠며 나타났다.
검의 모양으로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게 아니다. 저절로 터져 나와 어쩔 수 없이 검의 형태로 모으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죽어어어!! 이, 배신자아아아아!!!”
“앵거! 내 뒤로!”
죽음이라는 게 불의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면 저런 형상일까?
에스더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불은 이리저리 튀어 오르며 터널 안을 파괴하며 그레이프를 향해 내리쳐졌다.
광선의 포격이 검처럼 내리쳐진다는 비정상적인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며 나는 순간적으로 이상한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거 내가 맞을 뻔하면 멈추는 건가?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 해뒀으니까 멈추지 않을까?
그레이프가 저걸 막을 수 있나?
“멀티플 배리어 Multiple Barrier!”
그 순간 눈 앞에 수없이 많은 양의 투명한 장벽이 나타났다.
본래 보이지 않았을 그것이 두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상처를 품어주는듯한…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자애로운 빛의 마력이 장벽을 형성해 그레이프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 위에 에스더의 포격이 맞부딪치며, 쉴 새 없이 장벽이 깨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포격이 사라졌다.
“그레이프! 어?! 머, 멀쩡해?! 아직 괜찮아?!”
“래피드?! 그, 그건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야?!”
나는 기억에 있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래피드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