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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마법소녀 (6) (37/299)



〈 37화 〉마법소녀 (6)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비전폰에 최면어플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상당한 장점이다.
리프처럼 최면 펜라이트 같은  사용했다면 아마 이게 뭐냐고 하며 바로 경계 당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마법소녀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을 것 같은 일상적인 용품이기에 더욱 방심시키기 좋고, 최면을 걸기 쉬워진다.

최면에 걸린 에스더는 마음을 닫고 있던 게 열리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그대로 풀어 떨어트렸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 자그마한 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터널 안이어서 어두워서  수 있었지만, 밝은 곳이었다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빛이다.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벌써 최면에 저항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강해졌나…?”

날개가 생기고, 꼬리의 형태가 선명해진 데다 뿔도 조금 더 크고 단단해진 모습을 보고 뭔가 변했다고 생각은 했지만, 눈으로 보이는  이상의 변화가 에스더의 내면에서 일어난 것 같아 보인다.
일반인인 내게도 느껴질 정도로 마력이 선명하다.
거기에 더해 손을 간지럽히는 기운과는 반대로 감각을 흡수당하는 듯한 묘한 기운도 함께 느껴진다.
시간이 없다. 에스더가 의식을 되찾기 전에 최면을 마쳐야 한다.
나는 가장 먼저 필수적인 최면을 걸었다.

“일단…후우, 나를 공격할  없다.”

걸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그레이프도 본인이 정말 싫어하는 건 최면을 어기려 드는 경우도 있었다.
제대로 하나하나 쌓아올리지 않은 이런 단편적인 최면으로는…어쩌면 에스더가 나를 공격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음 최면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어떤 최면을 걸어야 하지?

고민해보고 가장 필요한 최면을 걸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에스더의 머리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그사이에 빠르게 커지기 시작하며 파직파직 하고 번개 치는 듯한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아아아아, 일단! 앞으로 모든 문제 답을 손가락으로 알려줘! 무의식적으로! 그리고…아! 앞으로 모든 문제 다 객관식!”

다급하게 지금 상황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면을  나는 곧바로 눈앞에서 터져 나오는 빛에 눈을 찌푸렸다.
터널 안이 어두운 것도 있지만, 에스더의 머리에서 나타나는 빛의 양이 확실하게 늘어났다.
애쉬의 천사의 고리 같아 보이던 원형과는 다른 정돈되지 못한 빛의 느낌이다.
가시 왕관 같은 빛이 빠직빠직 하고 터져 나온  에스더는 정신을 차렸다.

“…흐음? 너무 지루해서 깜빡 잠들 뻔했네. 아직도 못 찾은 거야?”

아무래도 의식을 잃고 있었던 시간을 자신이 너무 지루해서 잠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비전폰을 주머니에 넣고 생각에 빠진 척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대로 에스더를 힐끔거리며 허리에 얹어진 손가락에 시선을 집중했다.


손가락이 한쪽은 하나, 한쪽은 두 개가 위로 올려져 있다.
정답은 1번과 2번, 에스더 자신만을 바라봐 주며 누구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다.
너무 긴장한 탓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댄다.
침을 꿀꺽 삼키고 조금 더 생각하는 척을 하던 나는 혹시나 하고 질문하듯 대답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 연기하며 정답을 말했다.


“1번하고…2번?”
“흐으응~축하해! 정답이야! 아하하하하! 그치만 찍은 티 너무 내는  아냐~?”
“휴우우우…다, 다행이다…2번은 확신했는데 1번은  모르겠어서요.”
“2번이라는  어떻게 아는데?”

에스더가 궁금한 듯 웃으며 질문하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정답을 가르쳐줬잖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내뱉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 좋은 답변을 생각해냈다.


“흐흠…그, 그야…제가 누구보다 에스더님을 잘  자신이 있으니까~? 소망 같은 거죠?”
“흐으으응~?”


…다행히 꽤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었던 것 같다.
에스더의 표정이 무척 만족스럽게 변했다.


“건방져, 네가 누구보다 날 잘 안다고 자신한다는  내가 널 좋아할 거라는 말이라도 하는  같잖아?”
“소, 소망이죠 소망~팬으로서 마법소녀가 저를 좋아해 주면 좋죠.”
“흐으으으응….”


…뭔가 굉장히 묘한 반응이다.
표정은 점점 안 좋아지고 굳어가고 있지만 가느다란 꼬리가 검은 하트모양의 뾰족한 끝을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보인다.
이건 대체 무슨 반응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걸까.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싫어하는 것인가.
답이 안 나온다.


“…좋아, 다음 문제. 내가 타락하게 된 원인은? 이번에도 복수정답이야.”

아니 이건…이미 알고 있다.
마법소녀인 에스더는 간부  정신공격에 특화된 간부, 마인드 컨트롤러 에게 패배했다.
그대로 끌려가서 세뇌당해 타락…에스더를 혹시라도 목격하게 되면 이전의 에스더가 아니니 도망치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였다.

두 번째 문제는 서비스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긴장을 풀고 있던 내게 믿을 수 없는 얘기가 들려왔다.

“1번, 애쉬가 일부러 날 구출하지 않아서.”

설마 정답은 아니겠지 싶었지만, 벌써부터 에스더의 한쪽 손가락이 올라온다.
…뭐?
이게 무슨 소리지?


“2번, 래피드와 애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이건…비밀 사이트에서 돌았던 얘기지만 곧바로 남아있던 에스더의 팬들에 의해 폐기당한 가설이었다.
래피드와 애쉬의  중에서도 파벌이 나뉘었던 얘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래피드, 그레이프, 애쉬, 에스더 넷이서 같이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여 사이가 좋다는 얘기가 많았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손가락이 올라온다.


“3번, 촉수가 좋아서.”

…이게 정답 아냐?


“4번,  강해지고 싶어서.”

4번까지 예시를 말해줬지만…이미 정답은 나왔다.
나는 이번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1번과 2번.”
“흐으응? 그 이유는?”
“1번은…그게 아니면 말이  되니까. 그리고 2번은…직감입니다.”

1번은 실제로 사이트뿐만 아니라 비전넷에서도 얘기가 많았던 문제였다.
애쉬, 래피드와 친한 사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어째서 애쉬는 에스더를 구해주지 않았는가?
애쉬라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나온 얘기였다.


애쉬라면 할 수 있었을 텐데, 애쉬는 가능한데.
그때는 애쉬도 마법소녀지 신이 아니라는 말로 종식되었지만…에스더 본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애쉬가 일부러 구해주지 않았다고…? 대체 왜지?

“일부러 1번, 2번을 연속으로 했는데…완전 찍는  아닌가 보네? 좋아, 다음.”


에스더의 고개는 점점 뒤로 젖혀지며 더욱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어가고 있지만,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이젠 확실히 알겠다. 정답을 맞출수록 기분 좋아하고 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내가 알러지가 있는 음식은?”
“아, 새우요.”
“응…?”

이건 최면의 힘이 없어도 알고 있다.
에스더는 새우 알러지가 있다.
해산물이나 갑각류는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새우에만 반응하는 알러지다.
 번째는 정말로 서비스 문제였다.
다행이다.

“잠깐…이건 어떻게 아는 거야? 방송에서 한 번도 새우 먹은  없는데?”
“심하죠? 래피드가 새우칩 먹고 있을 때 악수도 안 했잖아요. 다가오지 말라고 하고. 그거 보고 나중에 보니까 새우가 나오는 음식은 하나도 시킨 적이 없더라고요.”
“흐으으으응….”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던 것 같다.
꼬리가 파도치듯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고 허리에서 돋아나온 날개도 아주 살짝 팔락였다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마지막 문제, 현재 나의 근원이 되는 감정은?”

에스더는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치켜들어 눈을 내리깔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한껏 당당한 자세가 되지만, 내 쪽이 키가 커서 묘하게 귀여운 느낌이 되는 게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든다.

이상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마법소녀였는데 왜 문제를 풀수록 기분 좋아하고 귀여운 여자애처럼 보이는 걸까.
진정하고 정신 차리자.
상대는 에스더다.
미친년이라고 불리는 타락한 마법소녀이자 촉수보지의 소유자다.


“1번, 질투. 2번, 정의. 3번, 쾌락. 4번, 분노.”

그런데 이번 문제는 뭔가 이상하다. 정답은 이미 에스더의 손가락을 통해 1번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근원이 되는 감정? 이게 무슨 소리지?

“…1번?”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을 얘기 같다.
나는 그냥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하고 에스더가 손가락을 펼쳐서 가르쳐준 번호를 말했다.

“이유는?”
“…음, 그게.”

…이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에스더는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생각하고 있자 오히려 뭔가 이해한 것처럼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가만히 보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계속해서 웃는 얼굴을 보여댔다.

광기 어린 웃음이 아닌 묘하게 당당한 웃음이다.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의기양양해 보인다고 할까, 굉장히 기분 좋아 보인다.
거기에 더해 에스더의 꼬리가 채찍처럼 촥! 촥! 하고 내리쳐지기 시작했다.
뭐지? 대체 어째서인지 묘하게 귀엽다.

“흐으으응…좋아, 124번. 합격.”
“와아아아아….”


기쁘다기보다는 당황스럽다…살려고 맞춘 거긴 하지만 대체 뭐였지? 저번과 같은 문제라고 하기에는 조금 내용이 많이 다르다.
본래의 에스더 퀴즈가 마법소녀 에스더에 대한 퀴즈라면…지금건 타락한 마법소녀인 자신에 대한 퀴즈인  같다.

“124번…아니, 1번. 지금부터 네가 진짜 1번이야.”
“예?”


그때 에스더가 무척 기분이 좋은  팔짱을 끼더니 평소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아닌 들뜬 목소리로 고개를 젖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1번이라는 말을 해도 당황스럽다.
대체 왜 1번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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