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마법소녀 (4)
이렇게까지 다급하게 최면을 걸고 명령을 내려본 건 처음이지만, 다행히 잘 먹힌 것 같아 보였다. 잠깐 초점이 나갔던 루이의 의식이 돌아오며 눈을 깜빡거리고, 머리를 흔든 루이가 주변을 둘러봤다.
“읏…방금 의식이…마견이 정신 공격을 할 리는 없는데…?”
“크르르르…!”
“왼쪽으로 창 찔러!”
의식을 되찾은 루이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마견이 전철 위로 완전히 올라와 몸을 던졌다.
나는 곧바로 루이의 자그마한 체구 뒤로 숨으며 소리쳐 명령했고, 루이는 의식하지 못한 채 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곧바로 반응해 창을 왼쪽으로 찔렀다.
“키이익!”
“어?”
명령에 따라 본능적으로 예리하게 내질러진 창이 정확하게 마견의 뇌를 꿰뚫는다, 이어서 루이는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전철 위에 방패를 콰앙! 하고 박아넣은 채 나를 등지고 창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오른쪽! 왼쪽! 왼쪽 위! 뒤에!”
푹, 푹, 푹, 푹 하고 기계적이게 루이의 손이 움직인다. 루이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마견은 루이가 직접 찔러 죽이고 보이지 않는 위치는 내가 명령을 내려 찌르게 한다. 루이가 직접 몸을 움직이면 내가 강제로 몸을 움직이게 하고 루이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이 최면의 명령을 통해 강제로 수행된다.
“잠깐! 이, 이거 뭐야?! 당신 뭐야?!”
“우측 아래!”
“뭐야?! 내, 내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 이게 뭔데?!”
“닥치고 창! 뒤! 수 많다! 버스트 써!”
그레이프를 억지로 멈추게 할 때 생각한 거긴 하지만…설마 실제로 가능할 줄은 몰랐다.
내 명령을 통해 루이를 조종하고 있다.
루이의 창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마견들을 없애간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루이는 아예 방패를 놓아 버리고 창을 움직이고 있었다. 베고, 찌르고, 휘두르고, 내리찍고, 폭발시키고, 찢어발기며 마견들을 도륙한다.
“아하하하! 이거 뭐야! 이거! 당신 뭐야?!”
“왼쪽! 오른쪽 뒤로 버스트! 앞에 봐!”
“좋아!! 다 잡는다!”
루이가 신난 듯 웃어 보이기까지 하며 창을 찔러댄다. 내 시야까지 더해지며 조종되는 루이는 평소의 실력 이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
명령에 강제로 따르는 움직임을 마법소녀의 육체가 견뎌내고 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방향을 말해도 괜찮은 듯 팔이 움직인다.
어느새 마견의 대부분은 줄어들어 전철 주변에 죽은 사체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썩은 피 냄새가 어두운 터널 안을 가득 채우고, 루이의 창에서 쏘아내진 폭발의 여파로 타버린 마견의 사체에서 썩은 고기를 녹여 구운듯한 묘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아하하하! 뭐야 이거! 이러면 그레이프 안 와도 되는데?! 나 혼자 다 할 수 있어!”
“히익! 저게 뭐야?!”
그렇게 또 다른 시야가 되어 루이에게 명령을 내리며 마견들을 막아내던 나는 이상한 외모의 마견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들어본 적 없는 형태다. 온몸에 구멍이 나 촉수가 나와 있다. 칼날 촉수와 이빨 촉수, 페니스 촉수 등, 형태도 다양하다.
마견의 녹아내리고 뼈가 뒤틀린 몸에 촉수까지 더해지니 시각적으로 굉장한 충격을 준다. 혹시 촉수랑 마견이 교배해서 낳은 이종교배의 결과물이라도 되는 걸까? 끔찍한 외관이다.
“나왔다!!”
“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며 비명을 지른 나와 다르게 루이는 눈을 빛내며 기쁨의 환성을 내질렀다.
루이는 악에 받친 얼굴로 창을 꽈악 쥐며 주변의 촉수견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촉수견과 내 사이를 가로막았다.
“저것만 잡으면…!”
“저게 뭔데요?”
“얼마 전에 여기 촉수 나타났지? 촉수가 기생해서 마수에서 좀 더 괴수에 가깝게 되면서…저 촉수견이 마견들이 교배하는걸 부추기고 있어. 한번에 여러 녀석하고 교배하기도 하고.”
“네에?”
“뭘 찾는 것처럼 지상에도 나왔다가 사라지는데…촉수로도 공격해와서 원래 나 혼자서는 상대하기 힘들기도 하고 저번에는 놓쳤지…빨리 지시나 해줘! 내가 잡을 거야!”
아무래도 얼마 전 에스더가 나타난 것 때문에 그 여파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루이는 촉수와 마견이 합쳐진 촉수마견을 보고도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자신의 실력 이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 상황이 신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긴장감에 침을 삼켰지만…기껏해야 1마리다.
나는 이 정도면 루이도 할만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루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좋아, 가보죠…촉수를 무조건 피하세요!”
“뭐?! 그딴 지시가 어딨어! 그걸 내가 어떻게 따르…읏?!”
그 순간 촉수견중 한 마리의 칼날 촉수가 휘두른 촉수에 루이의 한쪽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순식간에 휘둘러진 칼날에 루이 자신도 모르게 목을 틀어 피했다.
“…되네? 읏…!”
곧바로 다른 촉수견의 이빨 촉수가 여러 가닥 날아와 루이가 서 있던 허공을 물어뜯으며 딱! 딱! 하는 소리를 내고, 그 바로 뒤를 칼날 촉수들이 지나갔다. 뱀 같은 촉수가 바닥을 기어와 솟구치며 루이의 다리를 휘감으려고 한다.
루이는 모든 촉수를 귀신처럼 피하고 있었다. 아니, 눈으로 바라보며 보이는 모든 것을 비정상적이게 피한다. 팔이 급격하게 꺾이고 목이 꺾이고 허리가 뒤틀리며 피하고 있다.
“아파! 아니, 이거…! 읏!!”
“공격해서 자를 만 하면 잘라요!”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크르르르르!”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촉수견이 약이 오를 정도로 공격을 피해대던 루이는 혹시 피하라고만 해서 공격을 안 하는 건가 싶었던 내 명령을 듣자마자 창을 내질렀다.
허공에서 촉수 하나가 베이며 끝이 잘려나간다. 촉수 괴수의 특성상 촉수가 잘려나간 순간 강력한 발정효과가 있는 체액이 뿜어질 테지만, 촉수견의 몸에 기생한 탓인지 기괴하게 끈적한 피가 흘러나오기만 한다.
“되네…?”
루이는 자신이 했는데도 믿기지 않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온 몸이 무리하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로 평범하게 생각해선 불가능한 자세를 취하며 공격을 피하는 루이는 정말로 종종 창을 휘두르고 찔러대며 촉수를 하나하나 제거해나갔다.
“이게 왜 되는 거야…?”
대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나질 않는 모양이다.
나도 믿기지 않는다. 겨우 저런 명령으로 이런 효과가 나온다고?
루이의 몸놀림은 마치 시각에 들어온 정보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명령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단순하게 ‘저 촉수를 피한다’ ‘피하고 할만하면 공격한다’ 라는 반응만 하며 몸이 움직이는 것 같다.
말하자면 생각을 하고 공격하는 게 아닌, 기계처럼 반응하는 공격에 가까웠다.
“키에에에엑!!”
“…잡았네?”
잡았다.
정말로 너무도 쉽게…촉수견을 처리했다.
얘기를 들어보면 루이의 실력으로는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괴수가 아닌 것 같았는데…정말 간단하게 죽여버렸다.
촉수를 하나하나 베어내고 평범한 마견이 된 녀석의 머리에 창을 꽂아넣었다.
그대로 창끝에서 폭발을 일으켜 완전히 터트려버렸다.
끝이다.
“…나 이거 전에 촉수만 막고 피하느라 1시간 동안 싸우다가 놓쳤는데.”
“…다 잡은 거에요?”
“…그러게?”
루이는 아직도 자신이 그 잠깐 사이에 수많은 마견들을 처리하고 이 마견 이상 발생의 주범이자 마견들의 우두머리라고 생각되는 촉수견까지 처리한 자신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대로 천천히 내 쪽을 바라보더니…어린아이처럼 자그마한 몸으로 신나서 폴짝폴짝 뛰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해!! 내가 다 잡았어! 진짜로! 이 잠깐동안!!”
무척이나 신나 보인다.
내가 알기로 루이의 마법소녀 순위는 중위권에서는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꽤 높은 편이었지만 그만큼의 실력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좋은 장비들을 가지고 있어 실력이 커버가 되지만…결국 그녀는 마법도 육체 강화도 제대로 쓰지 못해 양쪽을 둘 다 애매하게 쓰며 싸우는 정도에 그치는 정말 중위권 그 자체인 마법소녀다.
지금 그녀가 잡은 마견의 수는 대충 세어봐도 100마리가 넘었고, 전부 다 잡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기뻐할 만하다. 그레이프가 오기 전에 다 처리해버릴 줄이야…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하지 말 걸 그랬다.
괜히 쫄아서 전화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와아~축하해 루이, 많이 성장했구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목소리가 들린다.
촉수견이 죽은 곳 바로 위의 허공이 천천히 갈라지며 그 안에서부터 붉은 화염이 흘러나온다.
허공에서부터 수많은 촉수들이 새어 나오며 공간 자체가 촉수들로 잠식되어간다. 찢어지기 시작한 차원이 더욱 빠르게 갈라지며 가느다란 촉수들을 토해내고, 붉은 머리의 마법소녀에게 밟히기 위한 촉수 카페트를 만들어간다.
“아, 아아아…!”
조금 전까지 기뻐하던 루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다급하게 방패와 창을 들고 내 허리를 안으며 전철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대로 다급하게 귀에 손을 대더니 나를 안고 도망치며 외쳤다.
“당장 차량 발차시켜!!! 촉수여왕!!! 경보 울려!!!”
“야.”
그리고 아주 잠깐이었다.
차량이 멋대로 출발하기 시작하고…아슬아슬하게 촉수들을 뜯어내며 달려나갈 때, 차원문이 완전히 열려버렸다.
곧바로 차원문에서부터 폭발적인 화염이 쏟아져나오고, 귓가에 매혹적인 목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늘어나고, 멀미가 날 것처럼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눈이 감겼다가 떠진다.
“흐으읏…! 아아악!!”
“선배한테 인사도 안 하니…? 나이 많다고 지금 유세 떠는 거야 루이~? 인사! 인사! 인사!! 인사 하라고!!”
루이는 어느새 벽에 틀어박히며 양손에 들고 있던 창과 방패를 떨어트리고 있었고, 불타는 손으로 배를 잡힌 채 어린애처럼 자그마한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하, 아하, 아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붉은 머리에 미쳐버린 듯한 눈빛, 매혹적인 목소리와는 다른 광기 어린 웃음소리의 주인은…기억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허리춤에는 촉수의 점막과 같은 끈적한 액이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박쥐 날개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고…엉덩이에는 기다란 꼬리가 나와 허공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타오르는 손을 지니고 머리에 커다란 뿔을 달고 있는 마법소녀.
“124번!!! 오오오오오오랜만이야!!! 드디어!!! 찾았다아아아!!!”
에스더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