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마법소녀 (3)
나는 마력감지등의 붉은 조명이 비추는 불길한 느낌의 철길 위를 달렸다.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불길한 분위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등 뒤를 쫓아오는 낮은 으르렁거림이 귀를 칼날로 긁어내듯 자극한다.
“크르르르르…!”
“으르르르르…! 컹! 컹!”
전투가 시작된 이상 마견의 특성에 따라 주변의 모든 마견들이 모여들 것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개의 습성이 남아있는 것인지 마견들은 자신들끼리는 서로 쉽게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무리를 지어 사냥한다.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
“허억! 허억…!”
하울링 소리가 터널 안에 몇 번이나 메아리쳐 울려 퍼진다.
공기를 강하게 울리는 묘한 진동이 배 속을 아프게 때리고 있다. 마법소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에게는 공포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음파 공격이다.
철길 위를 뛰어오는 마견들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달리며 나는 아주 잠깐 엉뚱한 생각을 했다.
달리는 게 전혀 힘들지가 않다. 확실히 예전보다 몸이 좋은 게 느껴진다.
이렇게 뛰는데도 크게 거리가 줄어드는 느낌이 없다. 조금씩 다가오는 건 느껴지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
말도 안 된다.
마견이 뛰는 속도와 내가 뛰는 속도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얘기였다.
여러 약물로 강화된 방위군 특수전 병사들의 몸하고 비슷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여러 약물을 먹으며 그레이프와의 섹스를 통해 단련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몸이 벌써 이런 수준이 되다니…대체 뭐지?
문득 나는 그레이프가 섹스를 하다가 아주 약간이지만 자신의 마법특성에 대해 말해줬던 게 생각났다.
그레이프의 마법은 ‘활성화’ 엄청나게 대단한 마법이 아니다. 자신의 마력에 검에 깃들도록 마법검에 새겨진 마력의 길을 더욱 고효율 적으로 활성화하거나, 몸에 가하는 마력을 통한 육체강화를 더욱 빠르게 활성화 시키고, 몸을 빠르게 반응하게 하거나, 지쳐도 움직이게 하거나 하는 마법이다.
그게 내 몸에 축적된 약에 무슨 영향이라도 끼친건지…몸이 굉장히 가볍다.
섹스만 해대서, 그 섹스도 엄청난 강도여서 힘과 체력이 늘어나는 걸 쉽게 느끼지 못했지만…발로 바닥을 찰 때마다 느껴지는 감각은 비정상적일 정도다. 방위군 시험을 칠 때 대여받았던 보급형 파워슈트를 입고 있는 느낌이다.
이 정도면 마견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컹! 컹컹! 컹!”
“카르르르륵! 카르르!”
“히익!”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가 곧바로 앞만 보고 달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마견의 외형이 너무 끔찍하다. 머리가 반쯤 날아간 채로 마력으로 재생해 질척한 무언가를 흘리며 달려오는 녀석도 있고…다리가 8개가 되어 달려오는 녀석도 있다. 성기가 2개 달려 덜렁거리는 놈, 꼬리가 칼날 같은 걸로 9개 정도 달려있는 녀석…공통점이라면 모든 마견들이 비정상적인 크기에 털이 하나도 없다는 점 정도다.
작은 개도 마수화하게 되면 뼈와 근육이 비정상적이게 자라나며 저 정도 크기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히려 그렇게 변한 개가 뼈가 살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하며 더욱 끔찍한 외형이 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난 방위군 시험을 칠 때 그 파워슈트를 입고도 총으로 마견을 겨우겨우 잡았던 남자다. 맨손으로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한 마리도 힘든데 지금 있는 건 수십 마리다. 절대 못 이긴다. 괜히 객기부리지 말자.
“허억! 허억! 허억!”
“하앗!”
쉴 새 없이 뛰어간 끝에 차량 전방에 도착하자 드디어 마견들의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무원 같은 제복 차림의 조그마한 여자아이는 두 손에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무기를 들고 있다.
한쪽에는 기다란 창, 다른 한쪽에는 덩치에 맞지 않는 커다란 방패.
방패는 성인 남자가 든다면 그리 이상한 크기도 아니게 보일 것 같았지만, 그녀의 몸에는 상당히 커 보였다.
“아아아, 진짜! 8구역 제대로 청소하긴 하는 거야? 아직도 이렇게 많잖아!”
루이는 불평을 토해내며 사각형의 방패로 온몸을 가린 채 있다가 몸을 숨긴 채 뒤편에서부터 창을 내질러 한 번에 한 마리씩, 정확하게 마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전략도 상당히 간단하다. 차량에서 조금 떨어져서 벽을 등지고서 주변의 마견을 하나하나 찔러 죽인다.
그 단순한 동작이 마법소녀의 몸에서 행해지니 너무도 비현실적이게 보인다.
작은 체구에서 나올 수 있는 파워가 아니다. 지면에 박아넣은 방패로 마견의 발톱과 이빨을 막아내며 하나씩 단숨에 푹, 푹 하고 찔러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단숨에 뼈를 부수고 뇌를 파괴한다. 심장을 노리고 찔러간 창이 마견을 꿰뚫어버리고 목숨을 하나하나 앗아간다.
“버스트 Burst!!”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창을 가속시키는 건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는 간단한 폭발 마법이다. 마견을 창으로 꿰뚫을 때마다 창날 끝에서 폭발 마법을 사용해 찢어버리거나 창을 뒤로 빠르게 뽑아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뒤로 튕겨 나간 창은 그대로 등지고 있는 벽면에 부딪혀 멈추고, 다시 앞으로 찔러진다.
마력의 분배가 적절하다. 강한 마력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약하고 많은 적을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전술이다.
“저기요! 지원 진짜 안돼요?!”
[정말 위급하다면 말해주세요. 그레이프가 현장으로 내려갈 겁니다. 다만, 개인적인 통신으로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발표 같은 소리하네 진짜! 됐어요! 끊어요! 안 그래도 돼지 놈들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어?!”
“허억…! 허억…!”
쉴 새 없이 마견들을 청소하던 루이는 그제야 달려오던 나를 발견했는지 경악하며 벽을 등지고 있던 좋은 위치를 포기하고 창을 휘둘러 마견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잠깐 날려보내고는 내게 급하게 달려왔다.
그대로 내 허리를 방패를 잡은 팔로 끌어안고는 내 배에 겨우 닿을만한 자그마한 키와 체구로 날 가볍게 들어 올리며 전철 위로 도망쳤다.
한번 땅을 박찬 것만으로 간단하게 내 키의 두 배는 될 법한 전철 위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 역시 마법소녀 답다.
“하악! 하악! 하악! 하악!”
루이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이동되자 뒤늦게 숨이 벅차오르며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거칠게 숨을 쉬는데도 몸에 산소가 부족해 숨이 막힌다.
“뭐야! 왜 나와 있어!”
“허억…! 허억…!”
“당신 차 안에 있던 사람? 차 안에 혹시 마견이 들어온 거야?!”
나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루이는 놀랍게도 곧바로 인상을 쓰더니 정말 제발 그건 아니길 바라는 것처럼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설마…혹시나인데, 또 그 돼지새끼가 억지로 문 열었어?”
나는 루이의 ‘또’ 라는 말이 신경이 쓰였지만, 문을 열려고 했던 그 뚱보의 외관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이의 표정이 정말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는 것처럼 비틀어졌다.
“아아아아 진짜아!! 왜 내 팬만 이따구냐고! 다 죽여버리고 싶어 진짜로!! 그 돼지새끼, 가족 중에 한 명이 의원이라고 신고도 제대로 안 먹히고!”
그 귀엽고 조용하고 요정 같기로 유명한 루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말이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나는 억지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참고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건 방위군이 아니라 제약회사에서 배운 방법이다. 영업현장이 방위군들이 있는 현장인 경우가 많다 보니 위급상황에서 괴수에게서 숨어야 할 때 심장을 빠르게 진정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악덕 기업이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도움은 되었다. 급하게 심장을 진정시킨 나는 머리에 피가 쭈욱 빠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잠깐 어지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정말로 잠깐이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루이에게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후우! 루이씨, 맞죠? 지하철 아이돌….”
“하아…보면 몰라?”
“저거 다 잡을 수 있어요?”
나는 전철 밑에 루이와 나를 포위하듯 서서 짖어대는 마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째서인지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평범한 수가 아니다. 대체 뭐지? 전철 위에 올라와서 보니 확실히 알겠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마견이 모여있다.
“…못 잡아 이제.”
“네?”
“아아…진짜, 이제는 못 잡는다고. 원래는 다 잡을 수 있는데…그쪽 구해서 못 잡아. 나는 지형이 없으면 이렇게 많은 수를 상대할 방법은 없단 말야.”
루이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방패와 창을 내게 보여주듯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난 원래 중위권 실력이 절대 아니란 말야…이상한 돼지새끼들이 자꾸 돈 쳐 모아서 나한테 트루비전에서 특제품 주문해서 비싼 장비 사 주니까 싸우는거지…하아아…진짜로 이것만 아니면 다 신고해서 교도소에 처넣어버리고 싶어….”
“그럼 계속 여기에서 기다려야 해요?”
내 말을 들은 루이가 전철 주변을 힐끔 둘러봤다.
속도를 높일 일도 없기에 일부러 괴수들이 전철 위로 함부로 올라오지 못하게 직사각형으로 만든 차체 위로 마견이 마견을 밟아 계단을 만들며 올라오고 있다.
아마 지금 이 여유는 아주 잠깐 가지는 휴식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1분을 세기도 전에 분명 전철 위는 마견들이 올라와 엉망이 될 것이 뻔해 보였다.
“기다리기도 전에 아마 마견들이 먼저 올라올걸…미안한데 당신 다리나 손 정도는 잘릴 각오 해둬. 내가 전부 지켜줄 수는 없으니까.”
“이런 망할…진짜 그 뚱보 때문에….”
“그건…하아, 미안해…내 팬…쓰레기 새끼 때문에…나중에 의수 할 일 있으면 연락해, 조금 도와줄게.”
루이의 입에서는 불길하고도 현실적인 얘기가 나온다. 확실히 루이의 말대로 루이의 실력으로는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없다.
“하아…진짜, 그레이프 그 거지년…지 발표만 소중하고 내 일은 전혀 소중하지 않다. 이거지? 상위권 애들은 애쉬님하고 래피드님 빼고 다 이래서 문제야. 적어도 에스더가 타락하기 전에는 안 이랬는데….”
“그레이프? 그레이프가 왜요?”
말투만 보면 30대인 루이가 귀여운 목소리로 한 말에 나는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대체 지금 그레이프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싶다.
“지원 신청했는데 안 와! 자기 발표 있다고, 마견정도는 미안하지만, 전철을 어떻게 할 수도 없을 테니 알아서 해달래! 나 정도면 충분하다고! 충분하긴 한데!! 벽만 끼고 싸우면 충분한데 이젠 못 하게 됐으니까 방법이 없다고!”
“…그레이프가 발표 때문에 못 온다고 했다고요?”
“그래!”
…루이의 화난 목소리를 들은 나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비전폰을 꺼내 그레이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아주 잠시 울리고, 곧바로 그레이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앵거씨, 저 죄송한데 지금 업무중….]
“그레이프, 조금 전에 뭐 지원 거부했지.”
“뭐? 당신 지금 그레이프랑 직접 통화하는 거야?”
[어? 그건 어떻게 아세요…? 어? 잠깐, 옆에 루이 언니 목소리….]
“발표자료 두고 갔더라? 나한테 있는데…나 지금 마견한테 팔다리 뜯기기 직전.”
곧바로 전화기 너머로 무언가 우당탕탕 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레이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익!! 갈게요!!!!]
전화가 끊어지자, 마견들이 시간을 잰 것처럼 전철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마리 한 마리씩 발을 올려대는 마견들을 보며 루이는 나를 등지고 서서 방패를 들고 말했다.
“…당신 그레이프 남자친구야?”
“남자친구는 아니고…잠깐 여기 좀 보세요.”
“뭐? 왜…애….”
이어서 나는 급하게 루이에게 최면을 걸었다.
시간이 없다. 빠르게 명령을 끝내야 한다.
“날 목숨 걸고 지켜! 팔다리 하나도 상하게 하지 마! 내 명령에 따라! 곧바로 최면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