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래피드 (1) (27/299)



〈 27화 〉래피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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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안녕하세요!”
“오! 래피…아가씨 아니야? 오늘은 무슨 케이크 먹으려고?”
“음…오늘은 살구 생크림 케이크 위에 살구 시럽 올려주세요!”

상쾌한 점심이다.
햇살은 따사롭고, 애쉬는 저 먼 곳에서 괴수들을 잡고 있다.
케이크 가게에는 교복을 입은 어린 래피드가 보인다.
내 옷차림은 평소 래피드를 쫓아다닐 때의 긴 코트에 마스크, 모자, 선글라스가 아닌 결혼을 하는 신랑처럼 단정한 양복 차림이다.
손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책이 들려있다.
제목은 ‘사랑은 짜릿하게 다가왔다.’
로맨스 소설이다.

“다리는  어때요…?”
“좋으니까 일을 하지~다음에 먹고 싶은 케이크 있어?”
“이거 다음에는 블루베리 타르트!”
“타르트? 좋아, 잠깐만 기다려.”

케이크 가게 주인아저씨는특이하게도 한쪽 다리가 의족이었다.
래피드와 주인아저씨의 대화를 몇 번이고 엿들으며 알게 된 것이지만, 주인아저씨는 래피드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괴수에게 다리를 뜯긴 아저씨를 구해준 게 래피드였고, 그 보답으로 래피드에게 매번 가장 맛있게 만든 케이크를 선물해 주는 듯했다.

지금 갈까?
아니, 아직이다. 주인아저씨가 없는 순간을 노린다.
케이크 가게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래피드의 자리는 일부러 방해받지 않길 원하는 것처럼 따로 떨어져 있었다.
계속해서 미행하며 알게 된 것이지만  자리는 가게 아저씨가 자주 헌팅당하는 래피드를 배려해 만든 자리였다.
말하자면 래피드 전용석이다.

“타르트 마침 굽고 있었는데 잘됐네. 잠깐 있다가 가져다줄게.”
“네에~!”

래피드는 오늘도 교복 차림이다.
어린 시절의 모습 괴수들이 나타나기 전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 래피드는 케이크 가게의 점장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서 케이크를 받아 테이블에 앉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저씨가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지금이다.

“어?”

가까이 다가가자 래피드가 나를 알아차린 듯 눈을 크게 뜬다.
옷차림을 살펴보고 케이크를 물고 있다가 반가운 듯, 그러면서도 아는 척해도 될지 망설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귀엽다.
그대로 시선이 천천히 밑으로 향하다가, 래피드가 좋아하는 소설책의 제목을 보고 시선이 고정되는게 보인다.

“안녕, 래피드?”

곧바로 나는 소설책을 뒤집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켜두고있던 최면어플의 화면을 래피드에게 보여줬다.

“최면 시간이야.”

래피드의 초점이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걸렸다.

“후우우우….”

긴장감에 숨이  막혀와 숨을 길게 내쉬자 뒤늦게 주변에서 나던 소리가 들려온다.
카페 특유의 음악소리와 탕! 탕! 하고 철판에 무언가를 내려치는 듯한 소리.
아마도 타르트 바닥을 떼어 내기 위해 틀에 충격을 가하는 것 같다.
가게 안에 있는 손님은 네 명, 전부 다 여자 손님이다.
다른 손님들과는 떨어진 테이블 덕에 래피드와 나의 자리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프에게 최면을 몇 번이고 걸어보며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레이프는 나를 경계하지 않아 최면어플을 내밀어도 반응 없이 최면에 걸렸을 뿐, 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끔 최면을 걸고 그상태에서 다시 최면을 걸기 위해 화면을 보여주려 하면 무언가 이상한 감각을 느낀 것처럼 갑자기 나타난 검을 빠르게 뻗어왔다.

즉, 마법소녀에게 경계할 틈을 주지 않고 최면에 거는 것이 안전하다.
에스더도 그레이프도 완전히 방심한 상태에서 최면에 당한 것 같았지만…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최면어플을 보여주는 것은 리프를 통해 배운 것이다.
먼저 최면을 걸면 주도권을 잡아갈 수 있다. 당연한 얘기다.
여기까지는 생각한 대로다.
그저 장난감으로서 래피드를 가지고 노는 건 최면을 걸어 의식을 잃게 한 상태에서 몰래 섹스하는 거로도 충분하지만…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래피드 모양의 섹스 인형이 아닌, 성녀로 추앙받는 래피드 본인이다.
나는 래피드에게 최면을 걸자마자 아주 잠시 심호흡을 한  곧바로 작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내게서 이성적인 끌림을 느낀다, 내게 호감을 느낀다, 나를 공격할 수 없다.”

가장 기본적으로 깔아 두어야 할 안전장치와 밑바탕을 깔아두며 나는 머릿속에 그레이프에게 했던 최면 실험을 떠올렸다.

단순한 욕망으로, 그레이프의 비밀 계정을 보며 자지를 빠는 법을 교육해주던 나는 그레이프의 마법소녀 평생을 끝장내 버릴 수도 있는 영상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그레이프라는 걸 알 수 있게 눈앞에서 변신하고 자지를 빨아대며 자신의 정체를 말하는 영상을 찍고 싶다는 말을 하자 그레이프는 곧바로 거절했고, 나는 최면을 걸어 강제로 시키려 했다.
그러자 곧바로 저항력이 일어나며 명령에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명령을 취소해버렸지만…이후 조금씩 다시 시도해보며 우연히 알게  것이 있었다.

자지를 빠는 것은 연습이 아니라 공부다.
공부를 할 때는 보면서 다시 복습하기 위해 교육 영상을 찍어야 한다.
교육 영상은 자료로 남기는 것이니 신상정보를 말해야만 한다.
자지를 더욱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변신하는 게 좋다.

그렇게 명령을 조금씩 단계를 밟아가며 내리자 그레이프는 자기소개를 하고 자지를 서툴게 빨아대다가 내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고 자극하자 곧바로 변신해버렸다.
즉, 블럭을 쌓아올리듯 명령하면…거부감이 강한 명령도 듣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과한 거부감이 드는 명령이 아니라면 유도하는 것으로 명령을 듣게 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애쉬에게 절대 들키지 않고 래피드를 계속해서 따먹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프를 만나고 마법소녀가 처녀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래피드와 섹스를 하면 언젠가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때 이상한 점이 보인다면 나는 그대로 죽는다.

결국 래피드와 계속해서 안전하게 섹스하는 방법은 하나다.
래피드의 인식을 바꿔서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든 뒤 사귄다.
그리고 섹스한다.
물론, 그렇게 된 후에는 인식을 조금 더 바꿔서 그레이프하고도 섹스할 예정이다.
래피드도 그레이프도 계속해서따먹는다.

“나에게는 비밀을 쉽게 말하게 된다. 대화가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래피드가 나랑 사귈 이유는 없다.
난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무언가 특출난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제약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에, 지금은 그냥 백수에 불과하다.
그레이프가 사주는 약들과 격렬한 섹스로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매력 있는 외모도 아니다.
하지만, 최면어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

명령이 점점 한계치에 온 것인지 래피드의 머리에 빛이 나기 시작한다.
파직파직 하고 작은 소리가 나지만 카페의 음악 소리에 묻힌다.
밝은 빛은 멀리 떨어진 자리이기에 내 몸으로 가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려진다.

“…내게 만져질 때 손을 보지처럼 느끼고, 최면에 대한 기억은 잊는다…!”

마지막 명령과 동시에 래피드의 머리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터져 나오고, 래피드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어, 어라…? 어?”

아주 잠시동안 초점이 나가며 감각의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래피드가 당황스러워 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갑작스러운 감각에 놀라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래피드에게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가만 보니까…맞죠? 오랜만이네요.”
“아, 안녕하세요…?”

래피드는 나를 보고 주변 눈치를 보는  계속해서 가게 안을 힐끔거리더니 자신의 앞에 비어있는 의자를 손을 내밀어 가리키며 말했다.

“아, 앉으…실래요?”
“앉아도 돼요?”

곧바로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토끼 같아서 귀엽다.
앉지 못하게 하면 못 들은 척 하고 억지로라도 앉으려 했는데 호감을 느낀다는 명령 때문인지 쉽게 앉게 해준 것 같다.
나는 일부러 소설책의 표지가 보이게끔 테이블 위에 놓으며 래피드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그때 구해줘서 고마워요.”
“앗! 앗…! 네에…! 그, 쉬잇, 쉬잇….”
“아, 별일은 아니고 그냥 이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신경 쓰였으면 미안해요.”

조용히 인사를 한 나는 래피드가 먹고 있던 케이크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살구 생크림 케이크 위에 살구 시럽을 올려 먹고 있다. 케이크 위에 시럽을 올려 먹는 건 미행할 때마다 알  있었던 래피드의 입맛이다.

“여기 시럽 맛있죠?”
“어? 네, 그쵸…? 맛있어요.”
“저도 친구가 자주 사줘서 먹어봤는데 여기가 시럽을 직접 만들어서 더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주인분이 엄청 실력이 좋으시다고. 살구 케이크도 지금 시기면 살구도 직접 따오시는 것 같은데.”
“어?! 마,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저는 오늘 딸기 케이크 먹으러 왔는데…살구도 끌리네요.”

살구 케이크에 관한 얘기는 래피드가 얼마 전에 주인아저씨와 하던 얘기였다.
래피드는 케이크를 무척 좋아해서 케이크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사실도 미행하며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 보다…래피드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 혼자 다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군가랑 나눠 먹는 걸 좋아한다.
이 앞에 비어있는 자리는 주로 주인아저씨가 앉는 자리였고, 래피드는 혼자 먹을 때보다 확실히 누군가랑 같이 먹을 때 표정이 밝아 보였다.
래피드는 살구 케이크도 먹고 싶다는 내 말을 듣고 머뭇거리더니, 내 쪽으로 케이크와 포크를 내밀며 말했다.

“하, 한입 드실래요…?”

좋아, 생각보다 더 좋은 반응이다.
곧바로 나는 거절하지 않고 따로 준비되어 있던 포크로 케이크를 살짝 잘라 먹었다.
맛있다. 크림도 부드럽고 살구도 딱 적당히 익어있는 데다 식감도 좋다.
래피드를 미행하면서  거지만 이 케이크 가게 상당한 맛집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맛있다.

“으으으음….”
“맛있죠? 맛있죠?”
“역시 이…시럽에 쓰는 설탕이 다른 맛….”
“앗?! 알겠어요? 그거 아시겠어요?”

이것도 래피드가 한 말이다. 래피드는 설마 내가 이런 말을  줄은 몰랐는지 무척 놀라면서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있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도 좋지만 여기는 딸기 케이크에 딸기잼 올려 먹는 것도 맛있어요.”
“그거 제가 자주 먹는 거에요!”
“앗, 그래요? 왠지 입맛이 비슷하네요. 맛있는 건 누구나 똑같이 느껴서 그런가.”
“그렇죠? 그렇죠?”

맛있는 건 누구나 똑같이 느낀다는 말도 래피드가 주인 아저씨에게 하던 말이다.

“여기는 근데 과일 케이크도 좋지만 초콜릿이…그거 먹어봤어요? 헤이즐넛으로 초코시럽을 감싸고 있는 볼이 올려진 케이크인데, 일부러 먹기 좋게 조그마한 조각을 여러 개 합쳐서 한 조각으로 만들어서 파는 거.”
“그거 제가 만들자고  거에요!”
“오, 그거 맛있던데…안에 초코는 그냥 시럽이 아니고 원래 있는 초코를 비율을 바꿔서 녹여서 만든 거죠?”
“그거 알겠어요? 우와, 우와…어때요? 맛있어요?”
“초콜릿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듯한 맛이에요.”
“앗, 그렇죠?! 그쵸?”

전부  래피드가 하던 말들뿐이다. 아주 조금씩 바꿔서 말하고 있을 뿐.
생각보다 래피드의 반응이 뜨겁다. 매일같이 미행하면서 느낀 거지만 래피드는 다른 사람하고 대화하는  좋아하면서도 막상 보면 대화하는 사람이 적다.
케이크 가게 아저씨, 도서관 할아버지, 공원 경비원 정도로,  외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건 조금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헌팅을 자주 당하는 것도 있고 본래의 모습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피하고 있는 거겠지만….

“우와…케이크 좋아해요?”
“케이크도 좋아하고…책도 좋아해요. 이 주변에도 자주 오고요.”

거짓말이다. 케이크는 맛있긴 하지만 너무 달아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가게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단맛이라고 할 만한 적당한 단맛이어서 좋지만…확실히 맛집이다 딸기 케이크만 사가지 말고 그레이프 먹을 것도 사갈까.
책도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계속해서 미행하며 래피드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전부 다 읽어봤다.
이 주변에도 자주 안 온다. 위치를 추적해서 오게 된 것뿐이다.

“이 동네에 맛집이 조금 많죠? 전 그래서 자주 오는데.”
“앗, 맞아요. 저도 그래서 자주 와요.”
“여기 케이크 가게 말고 저쪽에 화덕피자 가게도 엄청 맛있는  알아요? 전 원래 거기서 피자 먹고 나서 여기로 와요.”
“어? 알아요, 저도 거기 자주 가는데….”
“어? 그래요? 신기하네…맛있어서 그런가? 저희 뭔가 되게 비슷하네요.”
“네에, 앗…혹시 거기에서는 무슨 피자 먹어요?”
“음…이상할 수도 있는데…보통은 마르게리타 피자, 그리고 가끔…딸기 초콜릿 피자라고 알아요?”
“그거 제가 해달라고 한 거에요!”
“어? 신기하네요…가끔 그게 이상하게 끌린단 말이죠…가끔요.”

거짓말이다. 그런 거 입에 대고 싶지 않다. 피자는 무조건짭짤해야 한다.
초콜릿 피자라니…따뜻한 초코 타르트 같은 요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피자라는 글자가 들어간 순간 먹기 싫어졌다.
래피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얘기했을 뿐이다.

“으응? 아가씨 친구야?”
“앗, 아저씨….”

잠시동안 대화가 이어지고 래피드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며 경계심이 흐려질 때쯤 안쪽에서 주인아저씨가 의족을 차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걸어 나오며 말했다.
나는 아저씨를 보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소설책을 들어 표지가 보이게 래피드에게 보여주며 인사했다.

“아, 그러면…저는 가 볼게요. 아저씨도 나오셨으니까…저 딸기 케이크 두 개 포장해주세요.”
“엥? 손님이셨어? 잠시만 기다리슈.”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가끔 보면 인사라도 하면 좋겠네요…비밀로.”
“앗, 네에! 저도 반가웠어요.

곧바로 아저씨는 진열장에서 조각 케이크를 꺼내 빠르게 포장해주기 시작했고, 나는 래피드에게 다가가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아, 아니에요…저야말로, 무사해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그대로 래피드가 머뭇거리며 내민 손을 갑자기  잡으며 흔들었다.

“응?! 후으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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