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2동 박사 (3)
기쁘면서도 어지러운 얘기가 2동박사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다.
“…처녀의 몸을 유지할수록 마력수용 한계치 성장률이 크게 늘어나는 걸텐데…? 래피드가 그랬으니까 아무리 하고 싶어도 남자랑 섹스할리가…래피드의 마법 특성도 있고, 그리고 다른 것보다 왜 굳이 래피드가 다른 남자랑…?”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질문하고 싶다. 하지만 2동박사가 내게 허락해 준 건 대답과 말하기. 질문은 하지 못하게 금지시켰던 탓에 물어볼 수가 없다.
래피드가 처녀라고…? 그건…그건 확실히 세간의 정보와 다르게 래피드가 이미 처녀가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에 실망했던 내게는 환영할만한 소식이지만…대체 어떻게?
“이상하다…’지정역행’ 으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몇 초 정도밖에 안 되는데…? 역행…? 아냐, 설마…아니, 래피드의 마법 특성이 시공간이니까…그치만 그건 이상한데…? 같은 존재가 한 공간에서 충돌하면 ‘용량이 더 큰 것’ 이 덮어쓰니까…처녀의 몸과 미래에서 역행해 온 정신? 어…? 말이 되기는 하는데…애초에 시간역행이라니…아니, 가능은…하지만…래피드가? 그런 마법을 쓴 흔적은 없는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그걸 놓친다고? 아니, 애초에 차원장벽을 어떻게 뚫어? 시간까지…? 거기다 그건 래피드의 마력으로는 절대 안 되는…아니, 뷰지도장님 진짜로 래피드하고 섹스한 거 맞아요?”
“안했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용량이 큰 것이 덮어써? 충돌?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오니 두통이 더 심해진다. 이해를 못 하면서도 대답을 하려는 명령이 남아 답을 내지 못해 뇌가 혼란에 빠지는 게 느껴진다.
“에에엥…? 뭐야아…? 최면 걸면 거짓말 못 하는데…? 아, 명령 충돌이구나…? 래피드랑 사귀고 있어요?”
“아니!”
새로운 질문이 간략하고 정확하게 전해져오자 기존의 명령이 덮어씌워져 두통이 조금 가셨다.
2동박사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머릿속의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처녀…? 래피드가 경험이 없는데…어떻게 내 손에 최면어플이 있을 수 있지? 최면어플 하고 같이 있던 영상은 대체 뭐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뭐야…? 아, 혹시…래피드랑 뭐 했어요? 남들한테는 말 못하는 거.”
“가, 가슴…만졌어.”
“아~뭐야아~어? 래피드가 가슴 만지게 해줬다고요?”
“아니….”
“…혹시 강제로?”
“그, 그래….”
아슬아슬하게 질문이 빗겨나갔다. 어떻게 만졌냐고 질문했다면…그대로 최면을 걸어서 만졌다고 대답하게 되었을 것이다.
질문이 조금 줄어들자 이제서야 긴장감이 느껴진다. 러시안 룰렛이었던가? 총알이 하나 들어있는 리볼버를 내 쪽으로 겨누고 계속해서 쏘아대는 기분이다.
“와…뷰지도장님 진짜 짐승이다…아니 근데 래피드 가슴은 어떻게 만진 거에요…? 어? 잠깐…그럼 섹스한 상대는 누구예요?”
“그, 그레이프….”
“그레이프?! 와, 아니…하긴?! 그 고릴라보다 센 여자라면 침대 정도야 간단히 부수긴 하겠지만…어?! 그레이프랑 섹스를 했다고요? 어떻게 살아있어요?! 걔 진짜 돌연변이 같은 앤데!”
외견은 미녀인 돌연변이 암고릴라같은 여자라니 말이 심하다. 그레이프가 얼마나 오나홀로 쓰기 좋은데.
꼼짝도 못 하게 해놓고 박아대면 정말 엄청나게 기분 좋은 그레이프를 모욕하다니.
조금 반발심이 생기긴 하지만 2동박사의 말이 공감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침대가 부서질 정도였는데 내 골반이 어떻게 멀쩡하지…?
“에엥…? 하긴…그레이프는…처녀만 유지했으면 엄청 셌을 거라는 말도 했으니까…멍청하게 첫 투입 때 래피드를 감싸다가 마견들한테 끌려가서…아, 그런데 그레이프가 너무 세도 좀 무서우려나…아닌가? 마력만 제대로 성장했으면 트루비전에서 만드는 이상한 검도 안 썼을테고? 지금의 그 찌질한 모습이 없는 당당한 체육녀가…그건 별로 안 귀여운데…어? 그런데 그레이프랑은 대체 어떻게 섹스한 거에요?”
“크, 크으윽….”
결국, 올 것이 왔다. ‘어떻게’ 섹스하게 됬느냐는 질문…대답할 수밖에 없다. 머릿속을 휘젓는 끔찍한 감각이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헤집어 정보를 강제로 토해내게 한다.
“그레이프가 그래보여도 좀 겁이 많아서…섹스는 안 할 것 같았는데…? 마력 흡수하는 거 무서워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니, 어쩌다 사귀게 된 거에요?”
“안, 사귀고..있어.”
“에엥…? 그 그레이프가…그냥 섹스했다고요? 원나잇? 대체 어떻게…?”
두 번째 ‘어떻게’ 다. 대체 어떻게 그레이프랑 섹스했는지 그 방법을 물어보는 질문…썩을, 진짜 더는 한계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씨발…! 최면, 최면 걸었어!”
“…최며언?”
결국, 말해버렸다.
나는 이를 악문 채, 이대로 2동박사에게 끌려가 실험체가 되는 내 미래를 상상했다. 마법소녀에게 최면이라니…분명 실험…아니, 잠깐만.
…지금 내가 당하는 것도 최면이잖아?
아니, 이상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면어플은 마법소녀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
반대로 2동박사의 최면 펜라이트는…나에게 통하고 있다.
뭐지?
혼란스러운 현실에 머릿속이 뒤죽박죽된다. 그러고 보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마법소녀에게만 최면을 걸 수 있는 나, 지금 나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2동박사. 검은색과 흰색, 붉은색의 광선…검은색과 흰색, 붉은색의 노이즈….
너무 공통점이 많다. 혹시…그러면 이 마법소녀 최면어플은…2동박사가?
그런 추리를 머릿속에서 하고 있던 내 눈앞에서 2동박사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뭔가 착각이겠죠~마법소녀한테 최면이라니! 아하하하! 진짜 웃긴다~!”
…뭐지?
왜 웃는 거지?
“마법소녀한테 최면이 걸릴 리가 없잖아! 일반인한테도 이렇게 걸기 어려운데~이거 간단해 보이지만 진짜 엄청난 기술이라고요. 심지어 지금은 마법소녀가 정신방벽이 그렇게 복잡한데~그레이프랑 진짜 연애 안 하는 거 맞아요? 사실 그레이프가 좋아해서 최면에 당해준 척 연기해 준 거 아냐? 아하하하!”
왜 웃는 거지…?
…최면 펜라이트로 나한테 최면을 걸고 있으면서.
마법소녀한테는…최면을 걸 수 없다고 단언한다고?
“아하하하…하긴…뭐, 아예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니네요~저도 지금 그거 연구중이거든요.마법소녀 최면장치~묘하게 리얼해서 재미있는 얘기네요! 뭐 어차피 기억 지울 거니까~지금은 마법소녀가 ‘퍼스널 리얼리티’ 라고 해서 개인의 현실자각을 통해 마법을 펼쳐가지고, 최면이라는 ‘외부의 개입’ 이 안 통해요! 신경언어로 사고하는 건 같으니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이 얘기 최면술사님이 들으시면 엄청 재밌어하겠다! 최면술사도 못 하는 마법소녀 최면을 평범한 일반인이 걸어서 섹스까지~와아~! 진짜 대단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2동박사의 말을 믿기에는…내가 겪은 경험이 너무도 선명했다.
래피드는 상냥해서 당해준 척했다고 치자. 그레이프도 변태년이라서 당한 척했다고 치자.
그럼…에스더는?
2동박사는 그렇게 말하지만 난 알 수 있다.
이 최면어플…2동박사도 정체를 모르는 것 같지만, 이건 진짜다.
제기랄…나도 2동박사처럼 만나자마자 최면부터 걸어버릴걸!
마법소녀가 아니라고 하지만 마법을 써서 뭔가 만들었다는 것도 보여줬으니…사연이 있는 듯해 보였다. 잘 모르겠지만, 완전한 지금은 마법소녀가 아니어도 하프 마법소녀 정도는 된다는 얘기겠지? 그런 게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걸 수만 있다면…최면만 걸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다. 이 상태에서 대체 어떻게 벗어나라고? 내가 에스더를, 래피드를, 그레이프를 마음대로 다뤘던 것과 똑같다. 약간은 다른 듯 하지만…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모든 게 2동박사에게 조종된다. 대답은 할 수 있게 해줬지만…이 눈앞에 있는 인식저해장치 때문에 큰 소리로 대답해도 주변의 누구도 내 쪽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진짜 재미있다…그레이프랑 섹스한 것도 자세히 물어봐야지~아, 걱정하지 말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말 다 해주셔도 돼요~이따가 이걸로 기억 지워줄테니까요~뭐, 운 나쁘면 기억이 잘못 지워져서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되지만…확률은 70%! 연구소에 있는 대형으로는 100% 원하는 기억만 지워드릴 수 있지만 이런 소형기기로 아직 100% 제 마음대로 지우는 기술까지는 못 만들어서~미안해요~오늘 만난 건 비밀이라, 그래도 70% 확률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끔찍한 얘기다. 30%확률로 뇌사상태가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잖아.
어떡하지?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근데~그래서 그레이프랑 정말로 처음에 어떻게 만나서 섹스한 거에요~?”
“크윽…진짜로, 최면 걸었어…걸어서…내 방으로 유인….”
“아하하하, 진짜~엄청 재밌다. 진짜 진심으로 최면 걸었다고 생각하는구나.”
2동박사가 깔깔 웃는다. 마른 몸에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리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가학심을 무지막지하게 자극하지만, 꼼짝할 수 없다. F-급 마법밖에 못 쓰는 마법소녀면 정말 일반인에게도 제압당하는 약한 몸이다. 최면만 안 걸렸으면…정말 강제로라도 눕혀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데…!
“정말로 걸었다고!”
“푸후훕, 귀여워~응응 그래요. 걸었어 걸었어~어디 나한테도 한번 걸어볼래요? 뭐 라이터라도 꺼내나? 아니면 동전에 끈을 묶어서~? 아하하하하하…하…하아…하….”
어느새 내 손에는 비전폰이 들려있고, 2동박사의 얼굴에는 최면어플이 내밀어 져 있었다.
2동박사는 얼굴에 비전폰이 들이밀어 진 채 초점이 흐릿해져서…멍하니 앉아있는 게 보인다.
…응?
…뭐야?
“…아….”
2동박사가 멍하니 멈춰서 초점을 잃은 채 침을 흘리고 있다.
…얘 바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