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2동 박사 (2)
붉은 광선이 시야에 비치고, 눈을 통과해 알 수 없는 감각들이 전해진다.
아니, 전해진다기보다는…시각을 통해 강제로 머릿속에 전달되는 것에 가깝다.
가위에 눌린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꼼짝도 할 수 없는데 주변은 인지된다. 바람 소리도, 길을 걷는 사람들이나 커피를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카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2동박사가 세 개의 펜라이트를 만지는 모습도 보인다.
펜라이트에는 검은색, 흰색, 빨간색의 테이프가 각각 둘러져 있었고, 2동박사는 라이트를 계속 만지는가 싶더니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의식은 있죠? 뷰지도장님 조금 위험한 사람같아서요~마법소녀의 보지 형태를 막 찍고 그런다니…좀 무섭잖아요~그쵸? 저도 그래서 제 몸을 지킬 게 필요해서 제 최신 발명품을 조금 들고왔어요. 신기하죠?”
뭐라는 거야? 마법소녀 보지를 찍는 게 무섭다고?
난 대놓고 보지 사진을 찍은 적은…최근에는 있지만 그런 걸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찍는 건 정말 닉네임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곳에 드러나는 보지의 외면적 형태일 뿐, 전혀 무서워할 일이 아니다.
“덩치도~그야 그렇게 꼬신 저도 잘못이긴 하지만 전 지금은 엄~청 약해져있으니까요. 뭐, 차원장벽을 넘는 게 원래 역류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아, 잠깐만요…기억 지우는 게 뭐였더라…기억 씌우는게…흰색이었나? 맞다, 맞다…흰색이다. 자, 여기 보세요~”
찰칵! 하고 흰색의 광선이 얼굴을 뒤덮으며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표백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뭐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자아~지금부터 제 말에 거짓말을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대답도 가능~아, 질문은 귀찮으니까 안 받을래요~나만 궁금한 거니까! 몸은 허락받기 전에는 못 움직여요~짠!”
그대로 2동박사가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치며 박수를 치자 정신이 돌아온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여전히 멍하고…꼼짝 할 수 없다.
“으음~사실 그냥 대화해보고 싶기도 한데…제가 말이 많아서 이것저것 비밀을 많이 말하거든요…귀찮아 지는 정보가 많으니까…입도 가볍고요, 너무 비밀을 많이 알아서 입이 가볍다고 해야 할까, 뭐~이것저것 제가 가리면서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최면 걸어서 기억을 지워버리는 게 편하잖아요?”
2동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덥다는 듯 연구복을 반쯤 흘러내리더니 어깨와 가슴이 훤히 드러나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며 펜라이트를 까딱거렸다.
“후아~더워라~연구소 밖은 에어 컨디션이 안 좋아서…헤엑…이 몸으로는 너무 힘들어…아, 뷰지도장님은 뭐 드실래요? 여기 직원한테도 이미 최면 걸어놔서 공짜로 뭐든지 마실 수 있어요~아하, 제 마음대로 시켜도 괜찮죠? 생과일주스 두 개~커피는 너무 마셔서 피곤하거든요.”
“뭐, 뭐야 이거….”
“오~말할 수 있죠? 꽤 빠르네요? 최면에 걸린 상태로 의식만 회복하는 속도가 상당한데 이건 마력을 사용하는 최면이긴 하니까…마력에 대한 저항? 역시 마법소녀랑 섹스하면 마력에 대한 감응도가 올라간다는 가설이 진짜인가? 음~남성체여도 그런 반응이…아니면 혹시 섹스를 한 상대가 뭔가 보호마법이라도 걸어준 거에요? 꺄악! 마법소녀랑 로맨스~아침, 저는 지금은 마법소녀가 아니에요~’지금은’ 말이죠…힘이 없어서…뭐, F-급 마력이 있는 건 진짜지만요?”
“저기…2동박사님? 그…방금 그건 뭐죠? 지금…꼼짝도 할 수 없는데요?”
“우와! 언어구사능력이 엄청 빨리 회복되네요? 의식이 있는 상태의 트랜스라니…아! 방금 그건 뷰지도장님도 사이트 회원이시니까 아시죠? 방위군에 있는 기억 소거장치~그거 제가 최면술사님하고 같이 연구해서 만든 거거든요! 그걸 제 전용으로 휴대용으로 만든 거에요. 아직 실험작이긴 하지만…한 방을 차지하는 크기를 이 펜라이트 세 개로 만들었으니까 대단하죠? 배터리를 많이 먹어서 오래 쓸 수는 없지만요.”
“아니….”
“아참, 그런데 섹스한 지금은 마법소녀가 누구예요? 섹스는 기분 좋았어요? 앗, 생과일 주스 나왔다. 마실 수 없죠? 먹여드릴까요? 근데 섹스는 어쩌다 하게 된 거에요? 혹시 좋아하는 마법소녀랑? 좋아하는 마법소녀가 누구예요?”
“아니…잠….”
길어!! 시끄러!!!!
아니…이 상황이 무섭고 긴장되긴 하지만…말이 너무 많다 이 사람. 아니, 이 마법소녀?
마법소녀도 아니라고 했나? 그런데 마법은 쓴다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긴장이 되면서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뭔가가 강제로 입을 열게 하려 하지만 명령어가 너무 많아 코드가 꼬인 컴퓨터처럼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결국 나는 2동박사에게 최면을 당하고 있다는 이 이상한 상황속에서도…점점 두통이 찾아오자 저항하지 않고 질문에 대답하는 길을 택했다.
“하, 하나씩…!”
“앗~! 죄송해요. 말이 너무 많죠? 또 뇌를 망가트릴 뻔했네….”
“뇌가 망가진다니…?”
“음~사람의 뇌도 결국은 신경언어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 알아요? 결국은 컴퓨터랑 작동이 비슷하다는 얘기인데 이건 입력되는 언어정보를 그대로 뇌에서 변환시키게 해주는 말하자면 인풋 장치 같은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정보를 인풋 하면 제대로 된 명령어가 전부 동시에 작동하려 하니 충돌되어서 결국 뇌가 과부하 상태가 되어….”
“그만!!”
머리 아프다.
진짜 최악이다. 이 사람 이런 인간이었나? 글만 봤을 땐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 아플 것 같은 얘기가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들리니 뇌가 저절로 집중하고 반응해 전부 대답하려다가 멈춰 서는 게 느껴져 정말 언어로 뇌를 반죽 당하는 기분이 든다.
머릿속이 욱신거린다. 최면에 걸린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아니, 내가 명령을 많이 걸면 이런 느낌이 들어 최면에서 벗어났던 건가…?
“와아…그래도 다행이다! 뷰지도장님은 머릿속은 그렇게 변태에 이상한데 내구력은 좋네요! 역시 변태적인 자극에 솔직한 사람이 자기 정신에 대한 주도권이 높아 정신방벽이 높은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퍼스널 리얼리티가 가장 강력한 애쉬는 누구보다도 변태적인 자극을 많이 겪어 자신에 대한 정신방벽이 그렇게 두꺼워졌다는 가설이….”
“씨발, 제발 그만해….”
“아아아, 미안해요…그치만 참을 수 없는걸요? 걱정하지 마요, 이따가 머리 아픈 건 전부 다 ‘포맷’ 해줄테니까. 여기 검은색 펜 보이죠? 이걸로 기억을 삭제할 수 있어요! 붉은 광선은 트랜스상태로 강제 돌입시켜서 입력창을 키우는 장치라면 흰색은 명령어를 입력, 검은색은 삭제에요. 간단하죠?”
붉은 빛…흰색 빛…검은색 빛…무언가 익숙한 얘기에 머릿속이 지끈거린다.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최면어플이 떠오른다.
어플에 떠오르는 노이즈도 붉은색, 흰색, 검은색의 노이즈였다. 설마…무언가 관련이 되어 있는 건가?
“뭐, 지금 기술로는 이게 한계지만…나중에는 가능하다면 펜 하나로도 세 가지 기능을 다 하게 만들고 싶기도 하고 좀 더 기술적인 한계를…아, 오늘은 이 얘기 하러 온 게 아니었지 참? 어차피 기억 나중에 다 지울 거니까 말 좀 많이 할게요? 연구팀에 있는 사람들은 저랑 대화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아예 모르는 사람한테는 얘기도 안 꺼내지만 뷰지도장님은 그래도 마법소녀랑 섹스할 정도면 꽤 이것저것 지식이 많은 사람이겠죠? 참, 마법소녀중 누구 제일 좋아하세요?”
이…이 씨발년….
죽여버리고 싶다. 진짜로 이렇게 머리가 아픈 건 처음이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이 슬랜더하면서도 야한 몸을 어떻게 따먹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젖어있었는데…지금은 머리가 너무 아파 미칠 것 같다.
질문 하나하나로 머릿속을 찔러 헤집어대는 기분이다. 뇌를 자지로 따먹는 것 같다. 진짜 귓구멍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괴롭다.
“애, 애쉬랑…래피드….”
“와! 역시! 애쉬랑 래피드가 제일 매력 있죠? 제 머리스타일 보여요? 이거 저도 연구하면서 애쉬랑 래피드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어서 이렇게 한건데…둘 다 무척 흥미롭죠~애쉬는 힘의 차원 자체가 다른 느낌이고, 래피드는…어라~? 잠깐만…그럼 혹시…뷰지도장님 섹스한 상대가 애쉬에요…? 애쉬면 침대 정도야 한 번에 부숴버릴 수 있긴 할 텐데!”
“아, 아니야….”
“앗, 그러면 래피드~? 래피드한테 막 자지 빨아달라고 하고 가슴 만지고 보지 박아대고 한 거에요? 에이~설마아~!”
“크으으윽…!”
머리가 아프다. 섹스를 하진 않았다. 아직 섹스는 안했지만…무언가가 대답을 강제하는 게 느껴진다. 자지를 빨아달라고 하진 않았다. 섹스도 아직이다. 하지만…가슴은…가슴은 만졌다….
머릿속에서 명령이 충돌해 대답하지 않고 있자 2동박사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어리둥절하다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이 커지고, 활짝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한다.
“어?! 진짜야? 래피드란 말야?! 진짜로?!”
“제, 제길…!”
“우와아! 대애애애단해! 래피드랑 했어요?! 와아! 응…?”
섹스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가슴은 만졌다.
명령이 충돌하자 머릿속에서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대답이 안 나와 뇌가 점점 조여드는 기분이 든다. 겨우 이 정도,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대답한다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엄청난 고통으로 느껴지며 말을 한마디도 못 하게 만든다.
이게 무슨 끔찍한 고통인지 모르겠다.
난 섹스하려고 온 건데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응…? 그런데…어? 이상하다? 래피드는 처녀일텐데?”
“…뭐?”
그런데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와중에…이상한 말이 하나 들려왔다.
래피드가 처녀라고?
그걸 어떻게 알지? 그리고….
래피드는…이미 최면어플의 전 주인에게 따먹혔는데?
“이상하다? 얼마 전 검사결과에도 처녀였는데…? 어라? 래피드는 처녀여야 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