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그레이프 (6)
“좋아, 일단...에스더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전부 잊어버리게 되고, 나에게 갑자기 다가온건...정말로 엄청 섹스하고 싶어서 눈앞에 보이는 남자를 꼬신 것, 그리고...내게 피해가 갈 만한 일은 할 수 없다. 아, 나와 있었던 일은 비밀.”
“네에….”
이 정도면 괜찮겠지. 만약 래피드나 애쉬와 대화하다가 나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해도...그럴일은 없겠지만 정말 만약에라도 나오게 되어도 괜찮을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은...솔직히 말해 소문을 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그레이프의 팬들이 내 배에 칼을 꽂을 것이다.
그레이프 팬들이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는 모형검에 찔려 죽고 싶지는 않다.
혹시라도 그레이프가 말실수를 할까 봐 생각나는 최면을 전부 걸어두고 나니 더는 걸 최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일단 입막음은 된 것 같고….
그대로 그레이프를 보내려던 나는...문득 방금 전 했던 섹스가 떠올라 그레이프의 몸을 살펴봤다.
조금 너무 거칠어서 무섭기도 하지만...보지는 진짜 엄청 굉장하다.
...최면어플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해 보기에도 좋을 것 같고.
정기적으로 만날 수 없나….
나는 그레이프에게 최면어플을 내밀며 한가지 최면을 더 걸었다.
“...오늘 나와의 섹스를 잊지 못하고 매일 한 번...아니, 세 시간...마다 생각난다. 그리고 자위로는 더 이상 절정하지 못한다. 아, 그리고...날 이상형으로 느낀다. 그리고…음.”
너무 많은 최면을 걸었는지 그레이프의 머리 위쪽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다. 우우우웅 하고 퍼지는 빛이 어느새 심장박동처럼 두근거리고 서서히 잦아들며 초점이 돌아온다.
“어?”
“왜요?”
“아, 아니...어? 어...그, 그게….”
정신을 차린 그레이프는 확실히 태도가 변해있었다. 멍하니 내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는...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모습.
재미있다.
“그, 그럼...그, 죄송해요 오늘은….”
“빨리 가요, 누구한테 들키지 말고.”
“네, 네에...그, 그게...읏...하아….”
뭔가 망설이며 주뼛거린다. 이대로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나는 더는 자지가 서지도 않을 것 같고...내 나름대로 생각할 게 많아 바쁘다.
나는 그레이프를 매몰차게 쫓아냈다.
“어차피 전 그레이프씨한테 하룻밤 딜도밖에 안 되잖아요? 그냥 가세요 더 맘 긁지 말고.”
“아, 아니…! 그, 그건…!”
“그건 뭐? 갑자기 사인해달라는 팬 꼬셔서 침대 망가트릴 정도로 허리 흔들어 놓고 더 할 말이 있어요? 남들한테 비밀이라면서? 가라고요, 기분 좋았던 거 나빠질 것 같으니까.”
“네, 네에….”
그레이프는 아까 전까지 나한테 하던 말이 있어서 그런지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인상을 쓰고 있는 내 눈치를 보며 조심히 문을 닫고 나갔다.
곧바로 나는 뻐근한 걸 넘어서 안쪽이 욱신거리는 허리에 손을 짚으며 다시 방 안으로 걸어갔다.
“아이고...허리 박살나겠다….”
기분은 좋지만...너무 강하다.
변신 안 했는데 저 정도면 변신하면 대체 어떤 보지가 되는 걸까….
궁금하다.
내 생각대로만 된다면...아마 그레이프는 며칠 되지 않아 다시 내 방으로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동안 집에서 쉬면서 그레이프의 보지를 써주며 최면어플에 대해 조금 알아보는 시간이나 가져볼까….
그레이프의 말을 듣고 생각한거지만...남자 마법소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그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남자가 마법소녀에게 마법 같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방위군이 정밀검사를 하고 싶어질 만한 얘기라는 건 확실했다.
최면어플을 써서 최면을 거는 거긴 해도...확실히 이게 특수한 힘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법소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어플이라니....
내 머리로는 이 어플의 정체를 아무리 생각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사용법만큼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화면을 보여주고 최면에 저항하기 전에 명령. 끝.
그레이프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을 때는 긴장했지만...이렇게 되면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최면어플에 궁금한 것들이 제법 있었으니 이참에 그레이프로 실험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최면을 걸어서 나랑 섹스했던 걸 잊지 못하게 만들었으니...아마도 일주일 정도면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이참에 최면어플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침대로 가 누웠다.
그러자 곧바로 침대가 끼이이이이익…! 쿵! 하는 소리를 내며 프레임이 휘어지고, 완전히 V자로 꺾여버렸다.
...바닥에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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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프와 섹스했다는 사실은 무척 기분이 좋으면서도 정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일이었다.
하룻밤 환상같이 느껴지는 일이기도 했고...그 모습을 전혀 촬영하지 않고 기록해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후회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래피드와 섹스하는 영상을 찍은 최면어플의 본래 주인이 왜 영상을 찍었는지도 알 것 같다.
마법소녀가 섹스하는 모습은 영상으로 남기지 않는 게 오히려 잘못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극적이다. 물론 섹스하느라 바빠 영상만 찍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아쉽게 느껴진다.
래피드의 섹스영상도 자극적이었지만 역시 직접 한 섹스만큼 자극적이지는 않다.
나는 밤마다 그레이프의 비밀계정에 들어가 모자이크가 된 채 내 자지에 입을 대고 있는 사진을 보며 그날 밤의 섹스를 떠올리며 자위했고, 그 후 부족하면 래피드의 섹스 영상을 보며 다시 자위했다.
그럴때마다...래피드도 따먹고 싶어진다.
최면어플이 진짜인 데다 에스더에게도, 래피드, 그레이프에게도 전부 통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남은 건 어떻게 최면을 걸어 따먹을지 뿐이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라도 따먹고 싶다. 어플에는 래피드와 애쉬의 위치가 계속해서 추적되고 있었고...따로 찾아다닐 것도 없이 이 지도만 따라가도 래피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최면을 걸어 덮치기에는 역시 애쉬가 마음에 걸린다.
눈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봐 버렸다 보니 그런 두려움은 더욱 크다. 래피드와 그레이프가 고전하던 에스더를 1초도 안 되어서 처리해버리고...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공간 자체를’ 지워버리는 공격….
그런 거에 걸렸다간 나도 분명 그때 베어진 촉수처럼 인간 앵거 육즙주스 행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래피드의 동선뿐만이 아닌, 애쉬의 동선도 체크해두고 있었다.
그런데...이렇게 동선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확실히 둘의 차이가 보인다.
래피드는 맛있는 디저트를 먹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서점에 갔다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애쉬는 대부분 안전구역의 바깥, 그러니까...이미 괴수에게 점령당한 지역에 가 쉴 새 없이 싸우고 있다.
“...멋있네.”
래피드의 상냥함도 매력적이지만...역시 애쉬가 1위인 이유는 이런 모습 때문이다.
쉬질 않는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조금 냉정해 보이고 예민하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 때문에 그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나조차도 그런 차갑고 무서운 모습을 봤는데도 애쉬를 무서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건 단순한 공포보다는 경외심에 가깝다. 무척 강하고 무섭지만...아름답다.
래피드가 푹신푹신하게 사람들을 구조하는 안전장치나 쿠션 같은 거라면, 달래주는 자상한 강아지 같은 마법소녀라면….
애쉬는 늑대다.
뭔가 위험해 보이는 게 있다는 걸 알기도 전에 다 사냥해서 물어 죽이고 있다.
무섭지만...솔직히 말하면 피해 다녀야 하는 마음보다도 더….
래피드와 애쉬를 한 번에 따먹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그레이프와 섹스하고 나니 더욱 그렇다.
늠름하고 당당한...그리고 회사원들에게는 높은 공감대를 보이면서도 책임감이 강해 보였던 철벽과 같은 마법소녀, 그레이프.
결국, 음란하게 허리를 흔들며 야한 말을 할 때마다 애액을 뿜어대는 변태 같은 마법소녀였다.
애쉬도...그 고고한 모습으로 대체 어떻게 울어댈지 궁금해진다.
그런 애쉬도 가끔은 안전구역 안을 돌아다닌다.
래피드와 함께 어딘가를 거닐 때도 있고...혼자서 뭔가 사러 가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애쉬가 혼자 다니는 모습이 무척 궁금해서 두 번 정도 찾아가 봤지만, 생각보다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낮에는 햇빛을 단 하나도 받지 않으려는 것처럼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에 후드티에 청바지라는...정말 의외인 패션에 양산까지 쓰고 있고….
밤에는 또 노출이 조금 생긴다. 정말 신기한 건...얼굴을 전혀 가리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얼굴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인식이 안 된다.
나도 추적 지도를 통해 계속해서 확인해서 애쉬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것뿐, 아무리 봐도 애쉬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었다.
래피드와는 또 다른 마법을 사용하고 다니는 것 같다.
애쉬가 외출하는 목적은 주로 음악 레코드판 구매와 꽃구경이었다.
이 시대에 레코드판을 찾아다닌다는 게 무척이나 의외였다. 취미인 건가?
그리고...조금 무서운 거지만, 세 번 이상 같은 장소에 있으면 나를 확실히 노려본다. 노려보지는 않지만 그런 무서운 시야가 느껴진다.
뭔가를 경계하듯 쫓아내는 것 같았고, 애쉬는 그런 점이 오싹해서 더는 쫓아다니지 않았다.
역시, 애쉬는 무섭다. 최면도 통하지 않는 것 같고….
그레이프는 쉽게 따먹었지만...시간이 지날수록 애쉬의 무서움을 느끼게 되며 래피드를 건드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 된다.
그레이프는 혼자 다니는 마법소녀지만, 애쉬와 래피드는 둘이 같이 다니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듣기로는 방위군 기지 안에서도 둘이 같이 있는 경우가 많고...거처도 같이 쓰기도 하는 것 같다. 래피드도 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매번 애쉬에게 줄 걸 따로 사가기도 했고.
둘이 사이가 좋은 만큼 더 조심해야 한다. 래피드에게 최면을 잘못 걸었다가 어색한 점을 들키기라도 하면 난 그대로 애쉬에게 앵과 거로 분리당할게 분명하다.
어떤 식으로 만나고 어떤 식으로 최면을 걸고 어떤 식으로 대화하는 게 좋을까….
어떡하면 애쉬에게 들키지 않고 래피드를 따먹을 수 있을까….
철저하게 계획을 짜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비밀 사이트에서 좀 더 정보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에 포인트를 벌기 위해 글을 올렸다.
[마법소녀랑 섹스 후기]
제목은 최대한 자극적이게.
이래야 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