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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341화 (341/341)

〈 341화 〉 외전 完 . 그렇게 그렇게

* * *

마왕성의 정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조그마한 소녀.

어두운 남보랏빛 머리에 붉은 눈까지, 율리아와 똑 닮은 귀여운 아이였다.

제 아빠의 유전자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생각이 들다가도.

저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클라우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부우­.

가만히 앉아있던 클로디아아 갑자기 양 볼을 잔뜩 부풀린다.

신경질적으로 작은 발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안 되겠다는 듯 의자를 탁! 치고 일어선다.

“안 되겠어!”

“왕녀님?”

옆에 가만히 서있던 마족 여인이 고개를 살짝 들고서는 입을 연다.

왕녀를 모시는 시녀, 리리의 눈에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클로디아가 저리 생각에 잠겨 있다가 율리아를 따라하면서 일어날 때면.

항상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곤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그런 클로디아를 말려야 할 테지만.

자신은 그냥 일개 시녀에 불과할 뿐이었다.

심지어 출생도 비천하기 그지없다, 그저 제 언니 덕분에 이 자리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못 해도 플랑슈 시종장이나 카엘라 전사장 정도는 와야 클로디아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두 여인에게 몰래 알리는 것이 원래는 맞을 터였다.

하지만 리리도 이제 겨우 소녀티를 좀 벗은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아이와 어른,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것.

덕분에 그녀는 클로디아의 속삭임에 자꾸만 넘어가곤 했다.

“왕녀님! 또 뭐 하시려고요!”

“동생이 필요해!”

“예?”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열심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나온 결론이, 갑자기 동생 타령이라고?

“리리!”

“네, 왕녀님.”

“리리는 동생이잖아!”

“그, 그렇습니다만?”

“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언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질문에 리리가 내놓을 대답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의 언니인 리르는 아직 모르고 있을 테지만.

이미 자신은 제 언니가 예전부터 왜 그리도 고생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제 동생은 자신과 같은 힘겹고 비참한 삶을 살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부모조차 다 포기하고 도망갔음에도 제 언니는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힘겨운 그림자 생활을 하면서도 버티고 또 버틴 것이었고.

이후 마왕에게 용서를 구하고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었으며.

대륙 통일이 다 끝난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 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습니다, 왕녀님.”

“왜?”

“언니가 세상에서 저를 가장 아껴주니까요.”

“자세히 말해줘.”

“언니는 저를 위해서 본인을 희생했어요. 아주 예전부터 지금까지. 제가 이렇게 왕녀님 곁에서 시녀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언니 덕분이에요. 언니가 아니었다면….”

“아닐 텐데?”

갑작스레 리리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클로디아다.

그게 아니라는 왕녀의 말에 리리는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언니가 다 이루어준 것인데 그게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빠가 해준 거야. 너를 시녀 자리에 허락한 것도. 네 언니를 살려준 것도.”

“아… 저, 정말인가요? 죄, 죄송해요. 저는 그것까지는 미처….”

“아빠가 그랬어. 리르는 참 동생에게 헌신적인 마족이라고. 그래서 여태껏 본인의 삶을 살지 못 하다가 이제야 겨우 본인의 삶을 살고 있대. 아빠 말씀을 정확히 이해는 못 하겠지만 일단 좋은 일인 것 같아.”

클로디아의 말에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신도 왕녀의 시녀로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리르도 더는 동생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리리는 언니를 무척 좋아한다는 거잖아.”

“네, 맞습니다.”

“그 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또 동생을 위하는 언니라서.”

“왕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나도 그런 언니가! 누나가 되고 싶은 거야!”

“…에?”

“나도 그런 멋진 언니가! 누나가! 될 수 있단 말이야! 그런데! 엄마랑 아빠는! 싫대! 왜 싫은 건데! 나 잘할 수 있는데!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데!!”

팡팡팡!­

무척이나 분하다는 듯 열심히 테이블을 두드리는 클로디아.

덕분에 리리는 두 눈을 껌뻑이면서 난감한 기색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클로디아는 모르고 있는 듯 하지만, 그녀를 모시는 시녀인 자신은 알고 있다.

마왕 폐하나 그 분의 반려께서 왜 다른 왕녀님이나 왕자님 계획이 없는지.

자신도 아직 그 권력이라는 세계를 잘 모르지만 대충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 내 아이들끼리 싸움이 나는 건 보고 싶지 않아요. ­

리리 자신은 그러지 않았지만, 그리고 자신의 언니도 그러지 않았지만.

다른 형제자매들은 싸우는 일이 최소한 한 번, 혹은 매일 같이 싸운다고도 했다.

아닌 이들도 있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왕가의 형제자매들이 싸우는 것이 단순하게 장난 때문이 아닌.

지금 마왕 폐하의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것이라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저, 왕녀님. 그… 폐하께서는 혹 왕녀님과 동생 분이 싸우실까 걱정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야! 잘 해줄 거야! 엄청 귀여울 텐데! 내가 왜 싸워!”

“그게… 매일 같이 귀여운 게 아니니까요? 결국 다 자라잖아요.”

“나한테는 영원한 동생이야! 나보다 어리고! 작고! 귀여운 동생!”

아마도 클로디아가 저렇게나 방방 뛰는 이유는.

얼마 전 봤던 아주 조그마한 아이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인간 측의 키엔마이어 가문과 마족 측의 엘세 가문 사이에 맺어진 혼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얼마 전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아이가 태어났다.

그 조그마하고 따스하며 사랑스러운 생명이 마왕가로 찾아온 날.

클로디아가 그 어린 것과 처음 마주했을 때.

리리는 자신이 모시는 왕녀의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미 이전부터 잊을 만하면 동생 타령을 하던 클로디아였는데.

아무래도 그 조그마한 아이를 보면서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이러시면 안 되는데. 아기가 언제까지고 아기일 수는 없잖아.’

부모야 자식이 노인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아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형제자매 사이에서는 그런 법칙이 통용될 리가 없다.

때때로 원수보다도 더 원수 같은 것이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이라고 했는데.

리리는 혹여나 자신이 모시는 이 소중한 왕녀가 상처라도 입을까 걱정스러웠다.

“저, 왕녀님. 그래도….”

“가자, 리리.”

“네?”

“엄마한테!”

“폐, 폐하께요?”

“응. 조금 전 아빠랑 같이 계셨어! 가자! 안내해! 아니다! 따라와!!”

환장할 노릇이다, 이건 정말 환장할 일이다!

동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겨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마왕에게 간다고?!

율리아가 얼마나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하는지 리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당장 제 딸과 같이 있고 싶어도 이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왕이기에 시간이 남을 수가 없다.

그런 마왕이 겨우 지닌 휴식 시간에 갑자기 동생을 요구하는 왕녀의 난입이라니.

“와, 왕녀님! 그, 그러시면!”

말리고 싶었지만, 동시에 말릴 수가 없었다.

제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는 클로디아다.

그럼에도 동생을 원한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간절하게 소망한다는 것.

‘외로우실 거야.’

클로디아 다음으로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마왕성에서는 자신이다.

그런 자신조차도 몇 년 만 지나면 성인식을 치른다.

혼자서 외롭다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으면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을 리리는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해서 그녀는 결국 제 주인을 말리지 못 하고 그냥 뒤를 따르기만 했다.

“엄마!”

“…클로디아?”

저 멀리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제 엄마를 향해.

조그마한 소녀가 도도도도! 하고 열심히 뛰어간다.

저러다 혹 넘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 전에 마중을 나온 클라우스가 재빠르게 왕녀를 안아서는 율리아 곁으로 데리고 다가갔다.

“우리 공주님, 엄마가 쉬는 동안에는 괴롭히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 아빠도! 협조하세요!”

“으응?”

협조하라는,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과는 거리가 무척 먼 단어.

덕분에 율리아와 클라우스는 서로를 마주보면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통통통 달려와서는 한다는 말이 협조를 하라니.

귀엽고, 사랑스럽고, 너무 앙증맞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클로디아는요! 동생이 필요해요! 지금 당장!!”

“아이고, 또 동생 타령이구나.”

“타령 아니에요!”

“클로디아. 엄마가 말했지? 그런 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제 마음대로 못 해요! 알아요! 하지만 엄마랑 아빠는 할 수 있어요!”

“…응?”

순간 율리아와 클라우스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서렸다.

덤으로 리리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는 으어어어?! 하고 탄식을 흘렸고.

“엄마랑 아빠랑 사랑을 나누면 동생이 나온다고 했어요!”

“으아아아아!! 와, 왕녀님!!”

“우, 우리 공주님?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은 거니?”

“레블랑 가주… 아, 아니! 있어요! 책에서 봤어요!”

오호라, 세실리 네가 또 사고를 쳤구나.

한껏 괴롭혀준 지 반 년도 채 안 지나서 또 이런 일을 꾸미다니.

아무래도 이번에는 원하는 대로 혼내주는 게 아니라 살살 약을 올려야 할 듯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우스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클로디아에게 입을 열려는 찰나.

“…정말 동생이 가지고 싶니, 우리 딸?”

갑자기 율리아가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을 한 채,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

덕분에 리리는 물론이고 클라우스마저 ‘어?’ 하고 벙찐 얼굴이 되어버린다.

“마, 마왕이시여?”

“율리아?”

“대답하렴. 정말로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네!”

팟팟팟!!­

아주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클로디아.

덕분에 뭐 더는 말리기도 모호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율리아는 손짓으로 제 딸을 자신의 품으로 불렀다.

“클로디아, 내 사랑스러운 딸. 좋지만은 않을 거란다. 때로는 미울 수도 있고, 혼자이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도 정말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니?”

“…네. 저 잘 해줄 수 있어요.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은 것도 둘이서면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구나. 우리 딸, 참 착하고, 또 대견하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엄마가 져주마. 우리 딸, 원하는 대로 해줄게.”

클로디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던 율리아는 리리에게로 제 딸을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곧 카엘라에게서 무술 훈련을 받을 시간이니 준비시키라 말했다.

고개를 숙인 리리는 연신 끼햐아아!! 하고 좋아라 방방 뛰는 클로디아를 데리고서 먼저 사라졌다.

“…율리아?”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그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하고 있는 클라우스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렇게 쉽게 둘째 계획을 지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그 어떤 균열의 징조도 없이 고스란히 왕좌를 클로디아에게 주려고 했었던 율리아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어어?”

“다른 여인들 안으면서, 핑계로 삼았을 거 아니에요. 클로디아의 동생 타령.”

“어, 어어. 그게….”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아들로 해요.”

“무슨….”

“둘째는 아들로 하자고요. 이번에는 부디 당신을 닮은 아들로요.”

그게 누구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그걸 왜 정하는 건데.

라는 말이 입 바로 안에서 맴도는 클라우스였다.

“저, 율리아. 우리 이미 다 계획을 세워둔 게 있지 않았나 싶은데.”

“알고 있어요. 나도 나지만, 당신도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풀려가는 걸 좋아하죠. 그런데, 가끔 가다가는 그냥 다른 거 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마음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율리아의 말에 잠깐 침묵하던 클라우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그렇게 잠깐씩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큰길을 벗어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으니까.

솔직히 지금도 큰길 하나는 확실하게 정해둔 채 율리아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같이 흐르다가, 또 다시 엇갈리는 순간이 오면 처음 만났던 그 순간으로.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같이 흐르고 흘러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옆에 있게 된다면.

그 때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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