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화 〉 외전 5. 잘못했으면 혼나야지
* * *
클라우스는 곧장 레블랑 가문으로 나아갔다.
마법을 쓴 건 클로디아이지만 그 마법을 가르쳐준 건 세실리다.
100퍼센트 책임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닌 셈.
‘세실리가 애도 아니고, 그 마법의 위험성을 몰랐을 리 없어. 클로디아가 가르쳐달라고 하니 마지못해 가르쳐준 것 같은데… 좀 약하게 가르쳐줬어야지 그걸 또 제대로 전부 다 가르치면 어쩌자는 거야.’
원래라면 최대한 마법을 약화시켜서 가르쳐주는 게 맞다.
아직 애이고, 애이지만 강대한 마력을 지녔기에 더더욱 그리 해야만 했다.
하지만 세실리는 그 점을 망각했고 그 결과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 했다.
해서 이번에는 비공식적인 방문이 아닌 ‘공식적’ 방문이다.
여전히 변변한 직책 하나 없는, 그저 마왕의 반려가 레블랑 가주를 만나러 왔다.
언뜻 보면 클라우스 쪽이 많이 부족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실리 레블랑이 율리아 곁에서 큰 공을 세운 후 마족들 사이에서 그 위상이 올라갔으니까.
원래도 그 가문 자체가 컸는데 거기에 그런 부분이 겹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나 지금 정세가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제아무리 그 레블랑 가문의 가주라고 해도.
세실리가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해도 클라우스에 견줄 수는 없다는 걸 알 것이다.
“어서 오십쇼, 클라우스님.”
다행히 레블랑 가문은 이전부터 클라우스와 잘 알고 지내던 이들.
해서 클라우스가 방문하자 상대가 인간임에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그들은 왜 레블랑 가문을 방문했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상대방이 거물임을 잘 알고 있기에, 이유는 오직 하나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가주님은 현재 집무실에 계십니다.”
안내를 받아 바로 세실리의 집무실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 안에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남자가 앉아있음을 발견했다.
“…클라우스.”
레블랑의 전대 가주, 세실리의 아버지.
그가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것을 접어두고 드디어 바깥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이전 1차 대륙 전쟁에서 몇 번 마주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하여 클라우스는 먼저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었다.
“죽을 때까지 마왕 폐하를 인정하지 않을 듯 하더니. 생각이 바뀐 건가?”
“…혹 내가 너무 쉽게 변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헛소리. 쉽게? 세실리가, 네 딸이 당신을 설득하겠다고 무던히도 노력했겠지. 가문을 위해서라면 처리하겠다고도 했지만 어디 부모와 자식의 연이 그리 쉽게 끊어질까.”
그렇기에 율리아도 굳이 이 남자를 살려둔 것이 아니었는가.
세실리는 가문의 종속을 위해 제 아버지를 눈물을 머금고 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율리아는 차마 그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그를 유폐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클라우스 역시 이 남자가 율리아의 숙부인 아우펜에게 충성을 다 하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수를 하겠다거나 혼란을 야기할 인물이 아님도 알고 있었다.
길이 다를 뿐, 결국 마족들을 위한다는 그 결론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마왕 폐하를 알현하러 갈 생각이었다.”
“갈 거면 얼른 가. 폐하께서 분명 반갑게 맞이해주실 터이니.”
“물론 정계로의 복귀는 하지 않을 거다. 괜한 혼란만 줄 거야.”
“세실리가 아주 잘 해내고 있으니까. 당신도 나처럼 뒤에 앉아서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 우리의 마왕이 어떻게 통치하는지 지켜보기나 해.”
그렇게 말한 클라우스는 고개를 돌려 가주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한창 서류 작업을 하던 세실리가 클라우스의 방문에 꽤나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클라우스님?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급한 볼일이 생겨서.”
“급한 볼일이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 전에.”
클라우스가 슬쩍 눈치를 준다.
개인적인 이야기이니 제 3자는 좀 빠져달라는 뜻.
다행히도 레블랑의 전대 가주, 세실리의 아버지는 그걸 바로 알아차렸다.
자신은 이만 가볼 터이니 나중에 마왕성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그는 작별을 고하고 가주의 집무실에서 사라졌다.
“…결국 설득을 하는 데에 성공한 모양이구나.”
“네. 마왕 폐하께서 지난 몇 년 간 이룬 일들을 다 지켜보셨거든요. 그리고 인정하셨죠. 결국 아우펜, 그 남자는 틀렸다. 결과가 말해주지 않는가. 저런 대단한 분을 적대시했던 남자라면 그 한계가 명확한 것이 아니냐, 라는 것으로요.”
“장담하는데 그 마족 새끼는 아무리 잘해봤자 서쪽만 더욱 굳건히 단합시켜주는 게 전부야. 대륙 통일? 그런 놈이 100명이 합쳐져도 못 할 것이었지.”
혀를 차면서 클라우스는 천천히 세실리 앞으로 다가갔다.
상당히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폴폴 풍기면서 말이다.
덕분에 처음에는 반갑게 그를 맞이하던 세실리도 응? 하고 탄식을 토하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크, 클라우스님?”
조심스레 이름을 불러보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앞으로 다가오니 세실리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클라우스가 한 발자국 더 다가오면 그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곧 벽에 가로막히게 된 세실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클라우스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세실리 레블랑.”
“네.”
“몸 돌려.”
“네?”
“벽 짚고 엉덩이 내 쪽으로 내밀라고.”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건지 설명을….”
“내가 너한테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인물이던가?”
으스스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자 세실리가 흡! 하고 몸을 떤다.
두 눈을 껌뻑이던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서는 벽을 짚고 섰다.
그리고 그 직후, 갑자기 화끈한 고통이 둔부에서부터 화악! 하고 번지기 시작했다.
짜악!!
“히윽?!”
오랜만에, 너무 오랜만에 맞이하는 강렬한 고통 그리고 쾌감.
세실리는 저도 모르게 바르르 몸을 떨면서 신음을 흘려야 할지.
아니면 쾌락에 겨운 교성을 내질러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해야만 했다.
“너, 클로디아한테 마법을 가르쳤다고.”
“와, 왕녀 마마께서 가르쳐달라고 하셔서….”
짜악!
“아흣!”
“내 딸이 어지간한 실력자보다도 더 응축된 마력을 지닌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최소한으로 줄인 마법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했는데?”
“왕녀 마마께서 무조건 크고 화려한 것으로 해달라고 하셔서….”
“속였어야지. 네 수준이면 어렵지 않았을 텐데.”
“그게… 크, 클라우스님께 자랑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래서….”
짜악!
또 한 번 엉덩이를 때리니 세실리가 응흣! 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
아파서 저러는 것일까, 아니면 미소가 피어오르는 제 얼굴을 숨기려고 저러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세실리에게 있어서 고통은 곧 쾌락이고, 쾌락은 곧 고통이니까.
“그러니까 숨겨진 속뜻을 보자면, 네가 클로디아를 가르쳐서 그 마법으로 나를 놀라게 하면 자연스레 네 가치도 올라가는 일이니 결국 본래의 마법을 가르쳐주었다는 말 같은데.”
“죄, 죄송해요. 대륙이 통일되고 온갖 가문들이 몰리다보니 혹 레블랑 가문이 뒤쳐질까….”
“네가 있는데 뭐가 뒤쳐진다는 거야. 너, 그것도 핑계에 불과한 거 다 알고 있어.”
“무슨 말씀을….”
짜아악!!
“아흣! 아, 아파! 아파요!”
“네가 머리가 나쁘다면 또 모를까. 마법으로는 율리아 바로 밑이라고 할 정도의 인재다. 그런 여자가 클로디아의 재능을 몰랐을 리도 만무하고, 내 딸의 마력과 네 마법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전부 알고 있었을 거야.”
짜악!
“아흥! 으으흥!”
“다 알고 있었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그건….”
짜악! 짜악! 짝!
“클로디아가 다른 이 앞에서 그 마법을 보여줄 리는 만무하다. 무조건 내 앞에서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위험하기는 하지만 분명 내가 그걸 막아줄 것이다. 때문에 어디가 좀 부서지고 무너지기는 해도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겠지.”
“하으으…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일을 왜 벌였을까. 조금만 잘못해도 왕녀 시해죄로 몰아갈 수도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클로디아한테 그런 마법을 가르쳐준 것일까.”
나오는 답은, 도출되는 결론은 단 하나다.
“혼나고 싶다는 거지. 요즘 네가 일을 너무 잘 해서. 레블랑 가문을 잘 이끌고, 율리아의 명령도 잘 이행하고, 다른 마족들도 전부 너를 인정해서. 그래서 나한테 혼날 건수가 없었던 거야. 내 말이 틀린가? 세실리 레블랑?”
“흐읏….”
짜악!
다시 한 번 엉덩이를 때리자 바르르 몸을 떨던 세실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시, 실수하고 싶은데. 혼나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 너, 너무 잘해버렸어요. 이런 상황에서 실수하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해서… 이상해서….”
“그 타이밍에 때마침 클로디아가 네게 달라붙었고 실수를 할 절호의 기회를 주었지. 넌 그걸 놓치지 않았고 영리하게 사건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일을 벌였어.”
“아으으으….”
“때에 따라서는 반역죄로까지 몰릴 수도 있었다. 레블랑 가문을 네가 지울 뻔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그, 그럴 생각까지는….”
“하지만 말이야. 내 딸이 자기 잘못이 크다고. 울면서 네 무죄를 탄원했기에. 그래서 반역죄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잘못에, 단순한 체벌로 끝내주는 거야.”
그렇게 말한 클라우스는 슬쩍 손을 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바지랑 속옷 전부 내려. 잘못을 했으니 맞아야겠지?”
순간 클라우스는 보고 말았다.
엉덩이를 까라는 말에 미소를 짓던 세실리를.
‘저 진성 변태.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