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화 〉 외전 5. 잘못했으면 혼나야지
* * *
마왕가에 새로이 마련된 엄청난 넓이의 연무장.
기존의 연무장보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이곳은.
마왕가의 왕녀인 클로디아만을 위한 곳이기도 했다.
“아빠랑 마법 대련 말이니?”
“네!”
그 연무장에서, 클로디아는 한 남자에게 칭얼거리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처럼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치고 박는 대련을 하자고 조르고 있는 중이었다.
“…클로디아?”
덕분에 클라우스는 제 딸을 붙잡고서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대련이 무슨 소꿉놀이도 아니고, 애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우리 공주님? 다른 건 몰라도 대련만큼은 아빠가 봐주는 법이 없단다.”
“하고 싶어요! 저 잘할 수 있어요! 해요! 대련! 해주세요!”
율리아가 꼬마 소녀로 돌아간다면 저런 모습일까.
머리칼과 눈동자까지 제 엄마를 빼닮은 딸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 자신과 율리아가 서로 포개어져 태어난 아이일 텐데.
자신의 유전자는 어디로 가고 죄다 제 엄마의 것만 가져간 딸아이다.
‘원래 첫째 딸은 아빠를 더 많이 닮는다고 하지 않았나?’
클라우스는 자꾸만 자신을 데리고 가려는 클로디아에게 순순히 끌려가주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이지만 클로디아 안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은 아이의 것이 아니다.
제 엄마와 제 아빠의 강점을 모조리 싹싹 긁어모아 가져간 천재, 혹은 괴물.
그런 아이인데 너무 붙잡아두는 건 좋지 않은 생각 같았다.
‘그래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남자의 감각이 소리치고 있다.
애가 해달라고 해서 다 해주었다가 분명 아내한테 잔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그러지 않아도 너무 오냐오냐 해준다고, 조금은 엄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밤마다 자신을 껴안은 채 그렇게 투덜거리는 율리아였다.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미리 알려주어야 나중이 편안할 것이다.
그리 속삭이는 마왕의 말에 클라우스도 어느 정도는 수긍했다.
실제로 그래도 엄하게 나서는 율리아나,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딱 자르는 카엘라.
하다못해 클로디아의 시녀이자 리르의 동생인 리리도 이건 절대 안 돼요! 라고 클로디아를 말리곤 했었다.
하지만 클라우스 본인은 제 딸아이한테 도저히 엄하게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잘못해도 결국 자식 편을 들어주는 것이 부모라고 했다.
세상 전부가 돌아서도 끝까지 내 편인 이가 필요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클로디아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막 혼을 내기가 힘들었다.
“아빠! 뭐해요! 얼른요!!”
안 되는데, 이거 끌려가면 진짜 안 되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결국 정신을 차려보니 연무장 한가운데에 서서 클로디아와 마주하고 있었다.
에휴, 한숨을 내뱉으며 얼른 놀아주고 빠르게 도망가자는 생각을 하는 클라우스였다.
“좋아, 우리공주님. 딱 세 번이야. 세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 거로 하는 거야. 알겠지?”
“네!”
“저번처럼 더 하자고 떼쓰기 없어.”
“안 써요! 그랬다가 아빠가 엄마한테 혼나잖아요!”
이미 이걸로 충분히 혼날 이유는 생겼어. 라는 말이 입에서 간질거린다.
하지만 아빠가 혼날 걸 걱정해주는 딸이라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이래서 아이가 싫다는 이들도 제 아이가 생기면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거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클라우스가 먼저 해보라 막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아빠 먼저 하세요!”
“응? 아빠가?”
“네! 원래 고수가 하수한테 선공을 양보하는 거라고 했어요!”
“…누가 그래?”
“카엘라 전사장이요! 그게 강자의 권리래요!”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수와 하수의 싸움에서 고수가 먼저 선빵을 치면 그게 무슨 대련이겠는가.
그냥 양학 수준의 싸움 밖에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해서 고수가 하수한테 수를 양보하고, 하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공격을 한다!
…가 원래 맞는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뭔가 잘못되었다.
“저, 클로디아? 그러니까 아빠가 하수… 라는 거니?”
“엄마한테 매일 혼나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엄마를 막아드리고요!”
“그래서?”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 최약체라는 거예요!”
“…최약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니?”
“카엘라 전사장이요!”
아니, 애한테 도대체 뭘 가르친 거야.
이마를 턱 짚으면서 클라우스는 한숨을 내뱉어야만 했다.
그보다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최약체가 되어버린 것일까.
물론 지금 율리아와 붙으면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는 게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패한다면 율리아도 사지가 멀쩡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러니까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하다 따위의 문제는 확신하기 참 모호하다는 것.
헌데 다섯 살 먹은 딸한테 약자 취급을 받다니.
이건 다른 걸 다 떠나서 남자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클로디아? 그러니까 그건….”
“먼저 하세요!”
“….”
아빠 말은 들을 생각도 없구나.
한숨을 내뱉으면서 클라우스는 천천히 마력을 응집시켰다.
일단 대련이니까, 그리고 꼬마이긴 하지만 어지간한 성인보다 더 강하니까.
적당하게 해줘서 적당하게 놀아주는 편이 가장 이로울 듯 했다.
간단하게 마력으로 만들어진 구체를 날려 보낸다.
위력이 매우 강하기는 하지만 속임수도 없고 지극히 정직한 공격.
당연하게도 클로디아가 야앗! 하고 방어막을 치자 굉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막았어요!”
“그래, 대단하다. 우리 딸. 역시 아빠보다 강한 것 같아.”
“아빠보다 강한 거 맞다니까요?!”
“음, 그러면 아빠가 항복! 하면 받아주는 거니? 강자의 자비로 말이야.”
“싫어요!”
“…싫어?”
“아빠만 공격하고 저는 공격 못 했잖아요! 때리고 도망가다니! 비겁해요!”
때려서 안 되니까 항복하는 게 맞지 않나?
우리 딸이 참 이상한 부분에서 또 고집을 피우네.
어쩜 그런 부분까지 제 엄마랑 똑 닮은 걸까.
그리고 내 유전자는 도대체 어디로 팔아먹은 걸까.
“제 차례에요! 갈게요!”
“…그래, 얼른 오렴.”
대충 하고 애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클라우스였다.
이러다가 율리아가 보면 애 데리고 뭐하냐고 분명 뭐라고 할 게 분명하다.
‘이 정도 마력이면 충분하겠지.’
클로디아가 분명 또래 아이답지 않게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실전 경험도 없고 아직 제 마력을 다루는 것도 많이 허술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딱 적당하게, 자신이 그 어떤 해도 입지 않으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방어박이 부서질 수준으로 마력을 조절했다.
“이이익…!!”
“…?”
클로디아의 양 손에서 모여든 마력이 괴기스러운 빛을 발하면서.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마법으로 변하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어떻게 클로디아가 저런 마법을 쓰는 거지…?’
저건 율리아도, 그리고 자신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클로디아의 고사리 같은 양손에서 섬뜩한 기운의 마법이 튕겨져 나갔다.
쿠구구구구구!!
자신에게로 들이닥치는 거대한 불길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 딸, 천재네.”
콰아아아아!!
* * * * * * * * * *
“그러니까, 지금 애랑 마법 대련을 했다는 거예요?”
“…응.”
“아니, 무슨… 하아….”
할 말은 많은데, 뭐 어떻게 말을 할지 모르겠다는 듯.
율리아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은 채 주변을 살폈다.
클로디아의 생일을 맞아 기껏 선물해준 새로운 연무장이었는데.
지금 그 연무장이 아주 깔끔하게 ‘완파’ 되었다.
심지어 마왕성 일부가 무너지기까지 했다.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는 것이 기적이라고 봐야 할 정도.
“…클로디아?”
“히익!”
율리아의 부름에 다급히 클라우스의 다리에 매달리는 클로디아.
본인도 잘못했다는 인지를 하고는 있는지 무척 겁을 먹은 모양새였다.
“너 그런 위험한 마법을 다른 이도 아니고 아빠한테 쓴 거니?”
“그, 그게!”
“엄마랑 조금 있다가 진지하게 이야기 좀 나누자꾸나.”
“자, 잘못했어요!”
“이미 늦었단다.”
회의를 하고 있다가 굉음을 듣고 달려 나온 터라 다시금 회의실로 향하는 율리아였다.
굉장히 싸늘해 보이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클로디아는 ‘히잉!’ 하고 울상을 지었다.
“…클로디아.”
율리아가 사라진 후 클라우스는 제 딸을 붙잡았다.
그러자 클로디아가 화들짝 놀라서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본인도 굉장히 놀란 듯 했기에 일단 아이부터 진정시켜본다.
“우리 공주님? 혼내려는 게 아니야.”
“지, 진짜요?”
“그럼. 그래서 그런데 아빠가 뭐 하나만 물어도 될까?”
“뭔데요?”
“방금 전 아빠한테 쓴 마법 있잖아. 아빠는 가르쳐준 기억이 없고, 엄마도 그런 거 가르쳐주지 않았을 텐데 그거 혹시 다른 누가 가르쳐준 거니?”
“…네.”
“그게 누굴까?”
“…마, 말해야 돼요?”
“말해야지. 안 그러면 아빠도 화 낼 거야.”
그러자 화들짝 놀란 클로디아가 우물쭈물하다가 마침내 입을 연다.
“레, 레블랑 가주….”
“레블랑 가주?”
“네. 세실리 레블랑님이 가르쳐주신 건데….”
…애한테 도대체 뭘 가르친 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