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가 비선실세-336화 (336/341)

〈 336화 〉 외전 4. 식사하세요

* * *

“흐음.”

클로디아와 정원을 산책한 후.

거울앞에 선 클라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 아빠! ­

­ 응. 클로디아. 왜 그러니? ­

­ 아빠 살 찐 거 같아요! ­

­ 어? ­

­ 저번보다 팔뚝이 조금 두꺼워지셨어요! ­

­ …진짜로? ­

­ 진짜로! ­

남자고 여자고 성별을 막론하고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그 말.

살이 쪘단다. 심지어 아이가 보기에도 그 변화가 한 번에 보일 정도로!

클라우스는 침음을 흘리고서는 다시 한 번 거울을 살폈다.

예리한 눈길로 최대한 살펴보니 확실히 아주 살짝이나마 몸에 살이 붙긴 했다.

사실 이전과 비교해서 조금 살이 붙었다는 건 자각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몸으로 뛰는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책상에서의 업무들이었기에.

괜히 바깥 활동을 하다가 율리아가 자꾸만 신경을 쓸까 마왕가에만 머무르기도 했다.

해서 유일한 방법으로 얼마 전부터 먹는 양을 많이 줄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 클로디아의 말까지 들으니 확실히 움직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영웅이라던 놈이 이제는 뒤로 물러나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먹고 뒹굴고만 있으니… 뭐, 몸에 살이 붙어도 이상할 게 없겠지.’

막 굴러다닐 정도로 둥글둥글해졌다는 건 아니다.

이전의 자신이 약간 마른 체형이었음을 생각하면 지금이 더 좋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색이 전쟁 영웅인데, 방에서 뒹굴거리다가 살이 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좀 그렇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대련으로 실컷 땀 좀 빼는 건데….’

이전에는 율리아나 카엘라와 함께 대련을 하곤 했었다.

그 때는 자신이 계속해서 일선에서 머물면서 많은 업무를 담당했기에 가능한 일들.

그러나 이후 자신이 물러나고 율리아와 카엘라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업무를 맡으면서.

자연스레 그 둘과 실력을 겨룰 시간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둘을 제외한다면 자신과 겨우 겨뤄볼 수 있는 인물은 나타샤나 세실리 정도인데.

나타샤는 당연하게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요정들 영토에 있고.

세실리는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가서 가주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대련은 불가능하겠군.’

그렇다면 남은 건 스킬을 일체 쓰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

다만 이건 걱정인 게 이미 육체가 한계의 한계까지 단련된 터라 보통 운동량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부분이 있었다.

회차를 진행하면서 살이 쪄서 고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런 문제도 생길 수 있음을 알게 된 클라우스였다.

“클라우스님. 플랑슈입니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플랑슈가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온 상태였다.

“시녀들에게 들으니 점심 식사를 거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식사를 거르시면 좋은 게 없습니다. 간단하게 요기라도 때우시죠.”

“아냐. 괜찮아. 요즘 들어서 살이 좀 찐 것 같아서 식사량 좀 줄일까 하거든.”

클라우스의 말에 플랑슈는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최근 들어 식사를 잘 하지 않는 이유가 아무래도 그것 때문인 모양.

잠시 클라우스를 바라보던 플랑슈는 일단 가지고 온 것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연신 거울 앞에서 제 몸을 살피던 남자의 뒤로 다가갔다.

“…제가 보기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클로디아가 그러더라고.”

“왕녀 마마께서 말씀이십니까?”

제 부모의 강점을 전부 물려받은, 벌써부터 강자의 기운을 폴폴 풍기는 꼬마 소녀.

상대를 보는 눈도 무척이나 날카로웠는데 그녀가 보기에 살이 쪘다고 말한다면.

그건 괜한 장난이 아니라 미세한 변화를 눈치챘다고 보는 게 맞았다.

다른 이가 그랬다면 웃으면서 넘어가도 되었을 일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클라우스의 딸, 마왕가의 왕녀이니 그냥 허투루 넘기기도 좀 그렇다.

해서 플랑슈는 다시 한 번 거울 앞에 선 남자를 슥 둘러보았다.

“이렇게 보니 전보다 조금 건장해지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살이 좀 쪘다는 소리랑 비슷한 거 아니야?”

“제 개인적인 의견은 아무런 이상도 없다, 이지만… 이미 클라우스님께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시겠다고 결심을 하신 모양이군요.”

남녀불문 나이불문 살이 쪘다는 평가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해서 클라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플랑슈가 슬쩍 뒤로 물러선다.

“허면 클라우스님. 제가 상대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상대를 한다고? 네가?”

플랑슈의 말에 클라우스는 잠시 두 눈을 좁히고 플랑슈를 쳐다보았다.

전체적인 전투 능력을 보자면 플랑슈는 분명 다른 이들과 비교가 안 되는 강자가 맞다.

지금이야 시종장으로, 그 전에는 메이드로 일해서 그걸 몰랐을 뿐.

괜히 클라우스가 사상 최강의 메이드라고 불러주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클라우스가 자신보다도 더 강하다고 평가하는 율리아나.

바로 그 밑의 수준인 나타샤나 세실리, 그리고 카엘라와 비교하자면 조금 부족하다.

각자가 강력한 한 방이 있는 것과는 다르게 플랑슈는 재빠르면서도 절제된 움직임이 특기.

당장 청소를 목적으로 적들을 암살하던 이가 그녀이지 않았던가.

‘이게 암살이라면 또 모를까. 대련 부분에서는 부족할 터인데.’

기습은 어디까지나 기습이라는 걸 적에게 들키지 않아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플랑슈와 싸운다면 또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 이 둘은 서로 대놓고 싸울 것임을 서로에게 알리고 싸우는 것이다.

당장 플랑슈가 기습을 할 것이라는 점을 자신이 뻔히 알고 있을 터인데.

그렇기에 본인이 대비를 하고서 기감을 확장하여 플랑슈의 움직임을 읽을 텐데.

그녀의 강점이 제대로 발현될 리가 무척이나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정말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플랑슈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클라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그녀의 특기는 은밀함과 정교함에서 오는 날카로움이다.

기습이나 암살에는 최고로 유용하지만, 이렇게 정면 힘 싸움에서는 강점이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저리 당당하게 나오니 이걸 거절하기는 또 무척 모호해졌다.

“…좋아.”

“허락하시는 겁니까?”

“네가 하자고 하니 네가 뭐 거절할 이유가 있냐. 나도 좀 제대로 몸을 놀려야 하니 너 정도는 된다면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지. 그러면 바로 가자.”

“알겠습니다. 허면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율리아는 지금도 업무로 한창 바쁠 시간이다.

그리고 카엘라는 휴가에서 복귀하여 현재 수인 측 친위대를 데리고 외부 훈련을 나갔다.

자연스레 마왕가의 연무장이 비었을 터이니 제대로 날뛸 수 있을 것이다.

“…야, 플랑슈?”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진 장면은 클라우스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연무장으로 가서 한 번 제대로 날뛰어 보겠다고 하는 거 아니었나?

왜 갑자기 저 여자가 옷을 훌러덩 벗더니 갑자기 확 들이닥치는 것이란 말인가.

풀썩!­

“야, 너 뭐하는….”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제가 상대해드리겠다고.”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그거 대련 말하는 거 아니었어?”

“대련이요?”

“그래. 격하게 움직이는 데에 대련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격하게 움직이는 데에… 연무장에서의 대련도 좋지만, 침대 위에서의 대련도 충분히 격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력 소모량도 생각보다 많고요.”

“플랑슈, 너….”

“마왕 폐하께서 클라우스님의 식사량이 줄어든 이유를 알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그 해결 방안을 같이 모색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플랑슈의 대답에 클라우스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지금 이 짓을 다른 이도 아니고 율리아가 허락을 했다는 소리인가?

다른 곳도 아니고 마왕가인데, 율리아의 안방과 다름없는 곳인데?

“다른 여인 분들께 이미 다 해주시고 온 거 아닙니까.”

“플랑슈, 그건….”

“안심하시길. 이건 그 무엇도 아닌 클라우스님의 활동량을 증가시켜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걱정도 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저 저와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들이대는 이유가 참 이상한데, 또 묘하게 논리적이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플랑슈는 새하얗고 매끈한 피부를 유감없이 드러낸 채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클라우스를 침대 곁으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봐. 이거 정말 나를 위한 것 맞아?”

“물론입니다. 이 모든 것은 클라우스님을 위한 것입니다.”

“정말로 솔직히, 다시 말해봐. 여기에 네 욕심이나 다른 뭔가가 하나도 없어?”

그러자 클라우스의 상의를 풀어내던 플랑슈의 손이 아주 잠깐이나마 움찔 떨렸다.

허나 그것은 아주 잠깐, 지극히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완벽하게 클라우스를 점한 플랑슈는 능숙하게 클라우스의 상의를 벗겨내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그저 클라우스님을 위해서 이러는 것일 뿐입니다.”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그렇게 말하는 플랑슈.

덕분에 클라우스는 어이가 없는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답하는 여인의 손길이 무척 다급하고 또 애가 타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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