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 외전 2. 호랑이를 조심해
* * *
부스스.
거의 널브러진 채 잠들어있던 카엘라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원래라면 영 좋지 않은, 아무리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은 그런 불쾌함이 들어야 할 테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하고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으응….”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아주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이렇게 몸이 가벼울 수가 있다니, 본인 스스로도 참 놀라웠다.
몸 곳곳에 활기가 돋고 그냥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새롭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엘라는 아아, 하고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다급히 이불을 거둬보니 그 옆에 누워서 카엘라 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크, 클라우스님!”
“뭘 그렇게 놀란 척을 해.”
“네, 네?”
“기억 안 나냐? 너 어제 오후부터 오늘 새벽까지 계속 나랑 섹스했는데.”
“으, 느으에? 뭐, 뭐라고 하셨죠?”
“어제 오후부터 오늘 새벽까지, 거의 하루를 꼬박 짝짓기에 퍼부었다고.”
두 눈을 껌뻑이던 카엘라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물든다.
발정기 때 으레 겪곤 했던 짝짓기에 대한 욕구를 단 하룻밤만에 모조리 풀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개운하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가 없다.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카엘라는 갑자기 으앗! 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클라우스가 손을 확 잡아당긴 것이었다.
덕분에 제 수컷의 품에 안기게 된 암컷은 눈치만 보면서 가만히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싫냐?”
“…네?”
“싫냐고. 지금 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거.”
그렇게 말한 클라우스는 제 손으로 카엘라의 하복부를 살살 쓰다듬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린 여인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든다.
“만약 자신이 없다거나 싫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할 수는 있을 거다.”
“없던 일로 하신다는 말씀이라면….”
“아이가 자리를 잡기 전에 지울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를 지운다, 제 안에 가득한 이 아기씨를 전부 없애버리겠다.
그 말에 카엘라는 화들짝 놀라서는 클라우스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어떤 경우에도 본인이 먼저 클라우스와 거리를 두려고 했던 적이 없는 카엘라다.
그런 자신이 제 주인을 상대로 여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본인이 거리를 벌려두고 또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카엘라였다.
“아, 저. 그러니까… 사, 사령관님. 이건….”
“그 사령관님 호칭은 십 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쉽게 잊지를 못 하는구나.”
“아아. 죄, 죄송합니다. 주의한다고 하는데 이게 자꾸만….”
“아니. 나쁘지 않아. 오히려 그 때가 생각나서 좋은 것 같아.”
그 말에 카엘라가 멍한 표정으로 ‘예?’ 하고 약간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카엘라의 그 모습이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클라우스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하고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자신에게로 잡아끌었다.
“둘만 있을 때는 그 호칭, 나쁘지 않아.”
“아….”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소수의 이들 중에서도 너만큼 자세하게 아는 이는 아마 없을 거야. 그렇지, 카엘라 부관?”
부관, 오직 카엘라 자신만 들을 수 있는 호칭.
아무리 율리아가 클라우스의 반려라고 해도.
다른 여인들이 저마다의 매력과 노력으로 제 위치를 공고히 다진다고 해도.
그녀들은 절대 닿을 수 없는 공간을 카엘라는 분명히 지니고 있었다.
과거 클라우스가 남부의 영웅으로 활약하던 순간.
카엘라는 그의 부관으로서 가장 힘겹고 길었던 시기를 함께 했다.
그 부분은 율리아도 감히 관여할 수 없었던 때이다.
가끔 가다가 카엘라와 클라우스가 그 때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쓸 정도이지 않았던가.
“다시 묻겠다, 카엘라. 자신 없어? 율리아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게 싫은 거냐?”
“….”
“싫다면 얼마든지 없던 일로 할 수 있어. 아이만 가지지 않는 것이지 너와 나의 관계는 변할 일이 없다는 거다. 네가 손해를 보거나 위험을 감수해야 할 부분은 하나도 없어.”
“저는….”
“네 대답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 그러니까 말해, 카엘라.”
어제 이 질문을 했다면 이 여인은 무조건 아이를 택했을 것이다.
발정기, 거기에 한창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있으니 이성이 남아있을 수가 없다.
그 상황에서 정상적인 대답을 할 리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욕구를 밤새 채웠기에 이성이 조금 돌아왔다.
어떤 대답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본인이 그대로 감내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클라우스는 그녀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자 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저로 인해 혹 클라우스님이나 마왕께서 불편한 관계가 되는 건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고 해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니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카엘라의 걱정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클라우스의 반려인 율리아가 1, 2년 전까지만 해도 독점욕과 질투심이 극에 달했었으니까.
그 시기에는 모든 여인들이 납작 엎드려서는 클라우스와 말을 섞는 것은 물론이고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조심하던 때였다.
그 시기에 율리아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게 다름 아닌 카엘라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의 가장 가까운 곳을 지켜야 하는 이도 그녀다.
카엘라 입장에서는 만에 하나 자신 때문에 옛 주군과 지금의 주군이 다투기라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충 중의 불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
“하지만 그것도 네가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 거다.”
“무슨 말씀이신지….”
“클로디아가 제 엄마랑 엄청 다투는 것처럼 보여도, 또 막상 제 엄마 설득하는 것만큼 대단한 녀석도 바로 클로디아거든.”
“허나 클라우스님. 그래도….”
“다음 발정기 때는 내가 휴가를 못 받을 수도 있어. 그 다음에도 그렇고, 그 다다음에도 그럴 수 있지. 어쩌면 네게는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읏….”
“정말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지금 네 안에 있는 그것들을, 미래의 네 아이들을 포기할 수 있겠냐고.”
강한 어조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곤조곤한 어조로.
고민에 빠진 여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천천히 설득한다.
수인이라고 해서 영원히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세월이 더 흐르면 카엘라도 아이를 가지는 것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될 것이다.
여태 고생만 하던 부관에게 이제는 가장 큰 보상을 하고 싶었다.
자신과 제 수컷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고, 보다 더 강한 자식으로 키워내는 것.
그게 암컷 수인들의 가장 큰 소원이자 바램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가지고 싶습니다.”
마침내 호랑이 여인의 입에서, 결심한 듯 강한 어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 가지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령관님 아이. 클로디아님도 분명 사랑스러우신 분. 하지만 그만큼이나 사랑스럽고 강한 아이를 제 새끼로 두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 내가 허락할 테니까.”
카엘라의 배를 연신 부드럽고 따스하게 쓰다듬어주면서 그리 속삭인다.
남자의 말에 품에 안긴 여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미소를 짓는다.
“사령관님께서 허락하신 겁니다? 상관께서 그러셨으니 더 위에서 오는 압박이 있다면 당신께서 막아주셔야 합니다. 새끼를 배고 낳는 것은 암컷의 일이지만, 그 새끼를 지키는 데에는 수컷도 함께 하는 법이니까요.”
“걱정 마.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 여기저기 시선이 분산되어서 신경도 안 쓸 거야.”
거기까지 하자 카엘라는 그대로 클라우스의 폼에 쏙 안겨들었다.
평소에는 위엄 돋는, 보고만 있어도 절로 으스스한 기운이 드는 호랑이였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그냥 무늬만 호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제 주인의 품에 안겨서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고양이일 뿐이다.
“그르릉, 그르릉….”
듣는 이도 무척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골골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클라우스는 계속해서 카엘라의 배와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말이죠, 사령관님.”
“음?”
“저… 클로디아님이 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러면… 하나보다는 둘이 더 낫고, 둘보다는 셋이 더 나을 거예요. 그렇죠?”
“…야, 너. 잠깐만. 설마 아니지?”
지금 와서 또 한다고 애를 더 많이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터인데.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라는 걸 다른 이도 아니고 수인인 카엘라가 더 잘 알 텐데.
그럼에도 카엘라는 묘한 미소를 짓고서는 살금살금 클라우스에게로 파고들었다.
“보니까 오늘 돌아가실 건 아닌 듯 한데.”
“….”
“더 해요. 오늘은 아침부터 다음날까지, 하루 종일 해요. 사령관님.”
샛노란 안광을 번뜩이면서 점점 더 다가오는 한 마리 암컷 호랑이.
그 모습을 보면서 클라우스는 끄응, 하고 침음을 흘려야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