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화 〉 외전 2. 호랑이를 조심해
* * *
어떤 이들은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싸움을 보고 짐승들이 싸우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예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완전히 맞다고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짐승이라고 해서 매번 그러지는 않는다.
생사결을 걸고 싸운다면 이긴다고 해도 큰 상처를 입고 죽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정말 피할 수 없는 싸움일 때만 서로가 격해지는 게 짐승들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은, 수인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서로의 수준을 확인하고,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물러난다.
반대로 상대도 안 되는 애송이의 경우 위협만 좀 해서 내쫓는다.
그런 부분들을 볼 때, 지금 카엘라와 한 수인 남성의 결투는 딱 그런 수준이었다.
말도 안 되게 강한 자에게 말도 안 되게 약한 놈이 싸우자고 덤비는 꼴.
‘희한한 새끼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강자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기척을 숨긴 채 클라우스는 대충 나무 위에 앉아서 구경에 들어갔다.
본능을 매우 따르는 수인이기에, 그만큼 감각이 매우 좋은 종족이다.
그 감각으로 보자면 감히 말조차 붙이는 게 어려운 여인일 터인데.
도대체 뭘 저리 믿고 까부는 것인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
카엘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 수인 남성을 바라보았다.
짜증이 잔뜩 서린 눈동자, 그리고 귀찮다는 기색도 역력했다.
평소였다면 최대한 좋게 물러나라고 경고라도 했을 카엘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때도 아니고 발정기.
욕구를 풀어내지 못 한 터라 짜증이 극에 달했을 시기다.
제 수컷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에게 온갖 적의를 발산할 시기인데.
아무래도 저 수인 남성은 카엘라가 내뿜는 암컷의 향기에 헤까닥 해버린 모양.
“꺼져.”
마침내 카엘라가 입을 열었다.
좋게 말할 때 제발 좀 물러서라는 희미한 경고.
허나 갓 성체가 된 저 수인 남성은 농밀한 암컷의 향기에 완전히 맛이 가버린 듯 했다.
계속해서 자신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떼를 쓴다.
비록 패배한다고 해도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다고 외친다.
다른 여성 수인들이 들었다면 제법 용기는 있다고 칭찬이라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카엘라는 이미 품은 상대방이 있고, 그 외에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
“꺼지라고.”
“아직 짝을 이루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게도 자격을 주세요! 분명 카엘라 티거님이 생각하시는 수컷보다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수인 남성이 그 말을 하는 순간.
클라우스는 저도 모르게 ‘아이고.’ 라고 탄식을 토해내고 말았다.
방금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드렸다.
본인에 대한 모욕까지는 참는다고 쳐도 카엘라가 절대 참지 못 하는 것.
클라우스와 관련해서 그보다 못 한 자가 헛소리를 하는 순간.
그리고 그 헛소리가 클라우스에게로 향하는 그 순간을 그녀는 절대 참지 못 했다.
“…죽어.”
본인에게 요만큼의 위협도 될 수 없음을 이미 카엘라는 알고 있다.
허나 제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짜증을 더는 억제하기 힘들었고.
거기에 웬 천둥벌거숭이가 감히 비교해서는 안 될 존재에게 자신을 들이댔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죽일 이유는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었다.
푸화악!!
수인 남성은 물론이고 그 주변에 있던 다른 수인들도 뭐가 뭔지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지금 이 공간에서 카엘라의 공격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클라우스 한 명뿐.
“끄륵, 끅!”
심장이 한 번 고동칠 때마다 목에서 붉은 선혈을 내뿜으면서.
만용을 부리던 수인 애송이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뜨거운 피가 솟구치고 몸이 점차 차갑게 식어간다.
“…에휴.”
클라우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웬 미친 새끼가 되도 않는 만용을 부렸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원래 수인 사회에서 저런 일이 흔하지 않게 일어나니 원래라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거기에 카엘라는 수인들의 최고 전사이기도 하니, 그녀에게 도전을 한다는 건 제 목숨을 건다는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죽음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하지만 카엘라는 그냥 수인 측 전사만이 아니다.
동시에 마왕가의 전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니 이번 일은 조금 골치가 아플 수도 있다.
무엇보다 발정기라고는 해도 결국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 하고 동족 하나를 참살했다.
그 부분이 나중에 카엘라를 혹시라도 괴롭게 할까, 클라우스는 그게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참게만 했던 모양이야.’
전부 자신과 율리아의 실수임을 자책하면서.
클라우스는 가볍게 나무에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카엘라가 휴가를 얻으면 항상 가서 처박히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 * * * * * * * * *
“…짜증나.”
제 집으로 돌아온 카엘라는 몸에 묻은 동족의 피를 닦아낼 틈도 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발정기만 되면 항상 겪는 불쾌함, 긴장, 초조, 그리고 아쉬움.
여태까지 애써 잘 버텨왔고 잘 참아왔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갓 성체가 된 애송이까지 그대로 죽여 없애버렸다.
원래의 자신이었다면 대충 두들겨 패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라고 했을 터인데.
‘그 멍청한 자식은 왜 사령관님을… 클라우스님을 들먹여서는.’
그 애송이도 사실 아주 조금은 억울할 것이다.
카엘라 본인이 마음에 품은 수컷이 있다고 미처 상상도 못 했을 테고.
본인은 그저 자신의 포부를 그런 식으로 밝힌 것뿐인데.
돌아온 것은 목에 혈선이 그려지면서 그대로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후회를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카엘라는 ‘전혀.’ 라고 고개를 내저을 생각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머저리 같은 놈이, 약골 그 자체가 클라우스와 자신을 비교한단 말인가.
몰랐다고 해서 무죄가 되지 않는다.
수인들의 세상에서 본인이 내뱉은 말은 본인의 몸으로 책임을 지는 법이다.
도전을 했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놈은 짝이 되고 싶다면서 승부를 요청했고 거기에서 패배해 죽은 것뿐이다.
수인들도 이미 그 천둥벌거숭이가 사달이 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전사도 아니고 부족장들과 다른 전사들이 인정한 최고의 전사 앞에서.
감히 그런 만용을 부렸으니 오히려 살아남았다면 그게 더 말이 많았을 거다.
‘다만, 이번 일로 괜히 클라우스님이나 율리아가 난감해할까. 그것이 걱정일 뿐.’
하아아, 다시 한 번 한숨.
여태 몇 번이고 겪었던 시기이고 잘만 넘겼었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도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
왜 이러는 걸까, 자꾸만 스스로에게 실망을 한다.
클라우스가 이후로 자신을 본체 만 체 한 것도 아니고.
여유가 되고 율리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때면 몇 번이고 안아주었다.
자신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마왕의 신하로서, 그리고 옛 사령관의 부관으로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거면 충분했다.
다만 그게 발정기 때 들어서면 전부 사라지고 아이를 배고 싶다는 본능만 들어서.
아무리 노력을 하고 또 해도 이 시기에는 그게 전부일 뿐이다.
‘클로디아, 나의 작은 주인.’
클라우스의 율리아의 피를 이어 받은 차기 마왕.
여전히 조그마한 소녀이지만 때로는 그 둘을 합친 것보다도 무서운 꼬마 아가씨.
그 아이를 볼 때면 흐뭇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아팠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 모두가 똑같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두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박.
“…?”
갑자기 문 너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자리에 주저앉아있던 카엘라는 그 소리에 바로 일어섰다.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이 상대가 결코 만만한 이가 아님을.
자신의 오감이 경고를 보낼 정도로 엄청나게 강한 실력자라는 걸.
‘…잠깐만. 그런데 이런 실력을 지닌 분은….’
수인 중에 이런 자가 있었다면 진작 나타났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여태 그 어떤 소식도 없던 이 땅에서 갑자기 엄청난 실력을 지닌 이가 나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거기에 더해서 카엘라는 세상에서 딱 둘만이 자신을 압도할 수 있다고 여겼다.
율리아는 현재 바쁜 일상을 보낼 터이니 당연히 제외.
그렇다면, 정마로 자신의 예측이 맞다고 한다면….
“…사령관님?”
“알았으면 얼른 문이나 열어.”
그냥 혹시나 해서 한 번 속삭여본 건데.
정말로 문 너머에서 클라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노란 카엘라는 허둥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문을 아주 세게 당기고 말았다.
덕분에 문이 열리다 못 해 경첩이 덜렁거렸고, 문고리가 쑥 빠져서는 바닥에 뒹굴었다.
“…본인 집 문한테까지 화풀이 할 이유는 없지 않나?”
“크, 클라우스님!”
“휴가 받았다는 소식은 들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휴가야. 너와의 차이점은 넌 공식적인 거고 난 비공식적이라는 거지.”
그리 말한 클라우스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는다.
카엘라의 집은 특별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정말 가끔 가다가 와서 휴식을 취하기 위한, 딱 그런 공간.
차라리 전쟁 중에 치곤 했던 천막이 더 집 같아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침대는 있네. 하도 안 써서 저게 침대인지 아닌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머, 멀쩡해요. 여기 관리하는 녀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 그보다 여기는 왜….”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확인 차 물어보는 거야?”
“네?”
“네 휴가 때, 비공식적으로 휴가를 얻은 내가 찾아왔다. 어느 시기에? 네가 딱 앙앙거리면서 무조건 달라붙으려고 하는 시기에. 지금도 봐라. 야한 냄새가 아주 코를 찌르네.”
클라우스의 핀잔에 카엘라는 비로소 자신이 열심히 가랑이를 비비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탄식을 흘리면서 급히 제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찰나.
다음 이어진 말은 그녀의 이성을 시작부터 반 넘게 끊어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되고싶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