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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324화 (324/341)

〈 324화 〉 외전 1. 잠깐 들렸다

* * *

누군가가 최근 들어서 가장 가슴이 두근거리는 때를 묻는다면.

나타샤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을 했을 것이다.

몰래 요정들의 숲을 빠져나가 클라우스와 만났을 때도.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밀회를 즐겼을 때도 이 정도로 심장이 뛰지는 않았다.

쉬잇!­

파공음이 들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나타샤는 살짝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녀의 목이 위치했던 곳으로 클라우스의 창날이 지나간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피분수를 뿜어내며 그대로 절명했을 지도 모르는 공격이었다.

자신이, 그리고 클라우스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진짜 창이다.

무슨 애들이 장난이라도 치듯 휘두르는 나무 봉이 아니다.

정통으로 맞지 않아도, 스치기만 해도 최소한 중상에 이를 것이다.

그 정도로 서로의 실력이 강하다는 건 역시나 서로가 알고 있다.

‘위험!’

다시 한 번 날아오는 클라우스의 창날.

본능적으로 그 창날을 피하려던 나타샤는 왜인지 모르게 이질감이 들었다.

그것은 강자로서의 본능, 그리고 감각이 보내는 경고였다.

그리고 나타샤는 그 본능과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우웅!­

분명 바로 직전까지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오던 창이었는데.

옆으로 살짝 비켜나니 어느새 자신의 다리를 노리고 있는 클라우스다.

만약 본능이 하라는 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악, 하악….”

자신은 강하다, 하지만 저 남자는 그보다 강하다.

그 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강자들 사이에서는 그 한 뼘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때문에 나타샤는 이렇게 휘둘리기만 해서는 결코 우세하게 상황을 이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클라우스가 창을 거두면서 잠시 숨을 고르려고 한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나타샤는 매섭게 날아들었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몰아붙여서, 그래서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클라우스를 이긴다는 건 몇 번 부딪쳐본 결과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무승부로 끝난다거나, 혹은 패배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자신이 강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었다.

찌르고, 튕기고, 휘젓는 듯 하다가, 다시 후려친다.

창이란 본디 점으로 공격하는 듯 하면서도 면을 장악하는 병기.

찌르기에만 집중할 필요 없이 창대로 후리고 창끝으로 견제하며 온갖 다양한 변칙 공격으로 적을 쉴 틈 없이 몰아칠 수 있다.

이래서 나타샤는 창을 특히 좋아했다.

바보 같이 우직할 필요도 없고 암기들 마냥 끝까지 빈틈을 노릴 필요도 없다.

소유자가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서 그냥 초심자에게 가장 쉬운 병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강자의 살기 가득한 무기로도 되는 것이니까.

휘청!­.

손목을 견제하듯 툭툭 찌르다가 순식간에 발목을 쳐내는 순간.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클라우스의 크 탄탄한 균형에 살짝 금이 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잠깐 스텝이 꼬인 수준에 불과했지만.

나타샤에게는 그렇게도 고대하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스텝이 꼬이면 팔도 같이 꼬이고, 몸은 더더욱 심하게 휘청거린다.

저런 때에 자세를 바로 할 시간을,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

고수들 간의 싸움은 아주 찰나의 실수가 승패를 가르는 법이니 당연한 일이다.

슛! 슈욱! 파파팟!!­

마치 빛을 꽂아 넣듯이 나타샤의 창이 섬광처럼 날아든다.

찰나 만들어진 빈틈을 더 크게 벌리고자 하는 요정의 일격.

그 속에서 클라우스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것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뚫리느냐, 아니면 막히느냐, 그것들 두고서 한 쌍의 남녀는 대련인지 아니면 춤인지 모를 비무를 계속해서 펼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래도 승리의 여신은 나타샤 손을 들어주려는 듯 했다.

‘됐어!’

클라우스의 허리가 크게 돌아가면서 방어가 더는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몸을 원래대로 돌린다고 해도 이미 자신의 창날은 가슴에 위치하고 있을 터.

여태껏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던 남자를 비로소 이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가.”

“…?”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하지.”

갑작스러운 말과 거의 동시에, 나타샤는 볼 수 있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클라우스의 창대를.

그리고 정확하게 그게 자신의 배를 향하고 있음을 말이다.

‘어,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든 것과 복부에 찌르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느껴진 건 동시에 벌어진 일.

커헉! 하는 비명과 함께 나타샤는 배를 움켜쥔 채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그녀가 그리도 원하던 자세가 무너진 쪽은, 이제 클라우스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어떻게든 반격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방어라도 해야 한다.

나타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번 무너진 균형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적중 당한 순간 정신이 다 나가버리는 격통이 찾아왔고.

무엇보다 클라우스가 한 번 잡은 승기를 놓아줄 정도로 마음이 여리지도 않았다.

슈앗!­

클라우스의 창이 나타샤의 상의를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물론 말로만 ‘살짝’ 스치고 지나간 것이지, 실상은 상의가 쭉 찢어지는 공격이었다.

그대로 상의가 쩍 벌어지면서 나타샤의 뽀얀 살결이 그대로 드러난다.

허나 나타샤는 그것을 미처 자각하지 못 한 채 사정없이 밀리고 있는 지금의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애쓸 뿐이었다.

“하악, 하악!”

“꿈 깨. 어디서 이길 생각을 하고 있어.”

괜스레 얄미운 미소를 지으면서, 그리고 배는 더 얄미운 목소리를 내면서.

재차 창을 휘두르는 클라우스였고 그걸 또 한 번 맞고야 마는 나타샤였다.

촤악!­

이번에는 하의가 뭉텅하고 잘려나간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아마 붉은 실선이 그려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을 것이다.

나타샤가 잘 피한 것인지, 아니면 클라우스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어느 순간 대련을 하고 있던 나타샤는 비로소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렸다.

“어… 어어?”

뭐지, 지금 이 상황은? 설마 일부러 그러는 건가?

보는 이도 없고, 바로 앞에 있는 상대는 자신과 몇 번이나 몸을 섞었던 남자.

이미 볼 거 다 봤고 할 거 다 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타샤는 왠지 모르게 무척이나 부끄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읏!”

그런 잡생각이 드니 당연히 움직임이 바로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경직된다.

여전히 두 손으로 창을 쥐고는 있지만 공격이나 방어를 준비하기 보다는.

그냥 뚝뚝 잘려나가 거의 헐벗은 형태나 다름없어진 제 몸을 가리는 모양새였다.

“움직임이 좀 둔해진 것 같다?”

“아, 아니에요! 그런….”

대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한껏 힘을 내고 있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연무장에서, 바깥에서 이렇게 제 살결을 다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남은 건 그냥 부끄럽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렇게 굼뜬 행동 하다가는 더 당할 텐데.”

클라우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타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저 미소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표정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아, 아아. 아아아. 그렇구나.’

맨 처음 자신을 그렇게나 놀려먹을 때.

아무 것도 모르고 남자를 유혹하겠다고 자신만만해하던 요정 여인을 잔뜩 놀려줄 때.

바로 그 때 짓고 있던 표정과 무척이나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고 만 나타샤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이제 대련이 아닌, 그의 유쾌한 장난.

그리고 자신은 과거와는 다르게 그 장난에 어울리고 싶은.

덤으로 한동안 하지 못 해서 무척이나 고픈, 조금은 색욕에 찌든 여인이었다.

“훗.”

뜻 모를 미소를 지은 나타샤는 슬쩍 앞으로 몸을 내질렀다.

동시에 클라우스가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는 듯 창을 휘둘렀다.

둘의 위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다시 한 번 나타샤의 옷이 치워진다.

이번에는 겨우 걸치고 있던 상의의 나머지 부분이 전부 떨어져 나갔다.

이후로도 둘은 마치 춤을 추듯 어울렸다.

한쪽은 계속해서 들어가고, 한쪽은 그런 여인을 말리듯 창끝으로 견제를 하고.

그럴 때마다 창날이 반짝이면서 여인의 옷들을 하나씩, 하나씩 치워냈다.

“앗.”

나타샤가 일부러 등을 보이고, 마침내 클라우스의 창날이 가슴을 가리고 있던 속옷까지 치워내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두 남녀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춰섰다.

숨을 고르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클라우스와 나타샤.

그 침묵을 깬 쪽은 한쪽 팔로 제 가슴을 가리고 있던 요정 여인이었다.

“밑에는… 잘라내기가 좀 그러시려나요?”

“그렇지.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어쩌려고. 그 예쁜 몸에 내 손으로 상처를 내면 상당히 마음이 아플 것 같네.”

입에 발린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좋고 나쁘다고 하던데.

그걸 직접 몸으로 느끼면서, 나타샤는 저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직접 치워내는 수밖에.”

이곳이 밖이라는 것도 이제는 더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몇 번의 움직임이 지나가자 나타샤의 팬티가 한쪽 허벅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린다.

그리고는 제 몸을 가리고 있던 두 팔을 떼어내고서는.

은근한 눈빛과 목소리로, 아주 야릇한 몸짓으로 살랑거린다.

“항복할게요. 클라우스님. 무조건 항복이요.”

“항복하면 승자가 패자를 어찌 할 줄 알고?”

“그러게요. 승자가 패자를 어찌 할 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항복이요.”

클라우스는 잠시 나타샤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짓고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항복을 했으니, 혹 위험한 물건이 없나 몸 구석구석을 조사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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