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31장 - 귀환
“어떠냐.”
“뭐… 그럭저럭 쓸 만하네. 우리 쪽에서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겠어.”
당연히 그럴 것이다.
율리아가 친위대로 지명한 수인들의 명단을 대충 던져준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어떤 녀석의 실력이 쓸 만하고 어떤 놈의 실력이 허수인지, 율리아는 바로 파악해냈다.
해서 카엘라에게 넘어간 인원들은 전원이 평균 이상의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카엘라 입장에서는 수인임에도 은근히 욕심이 날 정도의 인원들이었고 말이다.
“이것으로 끝인 건가?”
“그래. 이제 남은 건 이들을 데리고서 마왕성으로 가는 것이겠지.”
“수인들이 정말 이걸 받아들일까, 클라우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뭐 어쩌려고. 이제 와서 싸우기라도 할까? 최상위 포식자가 앞에 와있는데 싸움을 건다고? 수인들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네 말대로 수인들이 정말 멍청하지 않다면 말이야. 그렇게 따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에슐리의 질문에 클라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야 충분히 있다, 실제로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걱정을 했었다.
대놓고 수인 사회에서 유력한 이들을 빼가서는 이쪽의 조력자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과연 수인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 당연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들도 나름 생각하는 게 있어.”
“생각하는 게 있다고? 혹시 뭐 반란을 일으킨다거나 뭐 그런 건….”
“내가 요정보다는 수인들을 조금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에슐리가 두 눈을 껌뻑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당연히 알 리가 없기에 다오는 당연한 반응.
그에 클라우스는 짧은 웃음을 흘리고는 대답을 마저 해주었다.
“힘의 논리를 잘 알기 때문이야. 뭐 자존심이니 고귀함이니 이딴 거 말고. 물론 자신들이 잘났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요정들 마냥 뭐가 고귀하다느니 아름답다느니 이딴 건 신경도 안 쓰는 자들이야.”
“그건 나도 인정해. 확실히 요정들보다 복종하는 느낌이 훨씬 들어.”
“자신들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생각 따위 품지 않는다. 다른 놈들처럼 등 뒤에 칼을 박는 게 아니라 앞에서 승부를 가리려고 하지. 더 강해지고 싶어 하고, 더 위에 있고 싶어 해.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강한 자 옆에서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어…잠깐만. 그러면 혹시 내가 생각하는 이게 그 이유인 건가?”
“그래. 이번에 친위대 결정에 순순히 따를 거라고 내가 확신하는 이유지. 아마 최강자라는 마왕의 곁에서 친위대로 활동하면서 그 최강자에게서 뭔가 하나라도 얻어 봐라, 이런 거겠지.”
“마왕께서 언제 알려주신다고 하셨나?”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래서 어깨 너머로, 멀리서 지켜보면서 배우라는 거다.”
이것은 거래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모르는 척 받아들이는 거래.
마족 쪽은 수인 사회의 유력자들을 받아서는 자신들의 조력자로 만들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수인들은 조력자인 척 하면서 어떻게든 자신들이 더 강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을 거다.
둘 중 하나는 제 뜻을 이룰 테고 다른 하나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 하는 것.
이게 바로 세상사 돌아가는 당연한 이치이고 순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 수인들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 하면 오히려 우리가 손해겠네.”
“그렇지. 그래도 명색이 마왕 전하의 친위대인데 약해서 쓰나. 당연히 많은 관리를 받을 테고 더 강해지기 위한 길도 잡아줄 거다. 수인들은 바로 그걸 원하고 있는 거고.”
클라우스는 그렇게 말을 끝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군 준비도 끝났고 수인 측에 인원들을 전해주었다.
늦어도 이틀 후면 이제 모두가 왔던 곳으로, 혹은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클라우스님. 마왕께서 찾으십니다.”
집무실에서 나와 잠시 정원에 나와 있는데, 마족 병사가 찾아와서 그리 전한다.
휴식 시간에는 되도록 자신을 찾지 않는 게 율리아인데.
아무래도 그럴 만한 사정이 생겼음을 알아차린 클라우스는 율리아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입니다, 율리아.”
“아아. 어서 들어와, 클라우스.”
둘만이 있는 자리라면 원래 하던 대로 존대를 썼을 터인데.
저렇게 하대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방 안에 누군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미 문고리를 잡는 순간부터 누가 안제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기에.
클라우스는 ‘이런 거 은근 악취미인데.’ 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여유로운 기색으로 앉아서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머금는 율리아와.
그 옆에 앉아서 조금은 난감하다는 기색을 보이고 있는 나타샤가 눈에 들어왔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벨라루스의 가주인 나타샤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그대도 들었으면 해서.”
“무슨 내용의 이야기였는지 여쭤도 되는 겁니까?”
“당연하지. 대륙 통일을 공표하려는 자리에 요정들을 초대하고 싶은데 나중에 부르면 늦을 것 같거든. 해서 이번에 갈 때 나타샤와 같이 가려고 했어.”
율리아의 말을 듣는 순간 클라우스는 직감했다.
이건 왕으로서 이제는 신하가 된 나타샤를 시험하는 것과 동시에.
그리고 한 남자의 여인으로서 그 남자에게 연심을 품은 또 다른 여인에게 보이는 심술.
이것조차 감당할 수 없다면 그냥 포기하고, 깔끔하게 접고 얌전히 지내라는 뜻.
이제 겨우 벨라루스의 아래에, 그리고 나타샤의 손에 들어온 요정 사회다.
그 와중에 그 나타샤가 자리를 뜨게 되면 당연히 빈틈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기껏 확보해둔 요정 사회 내부의 지지층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부분을 율리아가 모를 리가 없다, 분명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다.
대륙 통일을 이룬 이 상황에서 이런 심술을 부리는 이유는 단순히 질투가 아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종족은 수인도, 인간도 아닌 요정.
그 요정들을 바로 나타샤, 당신이 다루어야 하는데 한 달 정도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도 흔들릴 것이라면 나는 요정들을 영원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인들은 카엘라 전사장을 자신들의 강자라고 인정했지, 그리고 그녀가 그곳을 떠나있어도 아마 그게 잘 유지가 될 거야. 인간들이야 뭐… 다들 알다시피 귀족이란 것들이 하도 거하게 해둬서 내게 아주 좋은 영향을 주었고. 하지만 요정들은 여전히 모호해. 확신이 안 선단 말이야.”
“마왕이시여. 이미 저희는 마왕께 충성을 맹세했고, 그 증거로 적의를 품고 있는 자들을 전부 지워냈습니다. 또한….”
“그러니까 대륙 통일을 공표하는 행사에 오라는 게 아닐까 싶은데.”
“저… 그게….”
나타샤도 분명 이곳을 떠나 다시금 클라우스의 곁으로 올 생각은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조금 더 요정 사회를 단단하게 만들어둔 후,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그 어떤 이상한 낌새도 보이지 않다고 확신이 들었을 때.
바로 그때 비로소 마음 편히 자리를 비울 수가 있음이었다.
헌데 지금 바로 이곳을 떠나 율리아와 함께 간다고 하면.
지금은 잠잠한 동족들이 또 언제 이상한 소리를 하고 또 뭔가를 꾸밀 지도 모른다.
고귀하다느니 순결하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면서 뒤에서 가장 많은 술수를 꾸미는 종족들.
그게 바로 요정임을 그 종족에 속하는 나타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타샤. 그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잖아.”
“일단은 그렇습니다.”
“허면 이제 남은 건 그대들 동족들이 잘 하기를 빌면서 그대의 삶을 보내는 것 아닌가?”
“그 또한 맞습니다. 하지만 혹여나 마왕께 불쾌한 일이 생길까….”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안타깝게도 다른 요정들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거야. 그래도 자네는 클라우스와 연이 있다고 하니 특별히 살려두겠지만.”
그래, 저게 바로 율리아가 보내는 심술이라는 것이다.
내 남자에게 자꾸만 다가오는 여자에게, 차마 내쫓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신경을 살살 긁어서는 자신에게 약점을 보이게 만드는 것.
모든 것을 독식하고 싶은 여인이자 왕으로서 보이는, 약간은 못된 심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왕이시여. 내부를 조금만 더 돌아보고 바로 따라가면 안 되는 것인지요.”
“난 너와 함께 가고 싶은데. 지금은 부탁이지만 언제든지 명령이 될 수도 있고.”
난처하다는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나타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율리아.
그리고는 당장이라도 성화를 낼 듯 굳어있던 기운을 거두고서는 그녀의 손을 붙잡는다.
“아직도 불안한 건가? 네 동족들이 멋모르고 또 날뛰어서 내가 분노할까봐.”
“….”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 너는 네 동족들을 버리고 내 곁에 남는, 동족을 배신했다는 오명까지 감내하면서 살아남으려고 할까봐 말이야.”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같이 가자고 하는 거야. 나타샤. 길어야 두 달. 그동안에 무슨 일을 꾸미고 결행한다고 해도 네가 포섭해둔 이들이 있잖아. 그들이 충분히 막아낼 거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난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너와 클라우스가 고심해서 살려야 할 자들과 죽여야 할 자들을 골라낸 건데. 거기에 빈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렇게 말한 율리아가 클라우스를 흘끗 바라본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라고 중얼거리듯 자신을 바라보는 왕의 눈길.
클라우스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답한 후 마왕의 허락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뭡니까. 이런 장면 보여주려고 부른 거예요?”
“나타샤가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어서. 모든 일들이 착착 돌아가는데 혹여나 요정들이 거기에 초를 치면 내 분노가 얼마나 무서울지 알고 있으니까.”
“…나타샤. 내가 분명 말했잖아. 제거해야 할 놈들은 다 제거했다고.”
“물론 그렇기는 한데, 속내를 감추는 건 동족들 특기에요. 만에 하나 놓친 게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몰래 다른 이들의 뒤를 조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뭐 나온 거라도 있어?”
율리아의 반문에 나타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아무 것도 없는데 혼자서 끙끙거리며 걱정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율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서 한숨을 내뱉었다.
“아카데미에 있을 때는 일단 창을 모조리 찔러버릴 것 같이 날카롭더니 갑자기 이상해졌네.”
“그때는 아무 것도 아니었기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율리아.”
“…자꾸 나타샤 편만 들 건 아니죠? 저 바보한테 뭐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나중에 따로 불러서 혼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보다 하대인지 존대인지 하나만 하시죠. 듣는 저로서는 상당히 헛갈립니다.”
“내 마음이에요. 신하로 부리고 싶을 때는 하대고 내 아이의 아비로 볼 때는 존대겠죠, 뭐.”
아닌 척 하지만 알게 모르게 심통이 나있는 건 확실하다.
자신 앞에서 다른 여자를 조금이라도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 으레 저러곤 했다.
대놓고 그 여자를 적대하거나 저주하는 건 아니지만, 바가지는 살살 긁을 줄도 안다.
“아무튼 나타샤, 너도 이번에 동행이야. 이곳의 일은 이제 네 동족들에게 맡겨. 그 이상 네가 해주었고 두 번째 기회를 줬으면 할 거 다 한 거야. 그래도 희망이 없다면 그냥 포기해. 포기하고 내 옆에 있어. 그렇게 있다 보면 클라우스가 위로해줄 수도 있잖아.”
“…조, 조금 혹하기는 하지만… 저는 동족들도 나름 중요하게 여겨요. 가능하다면 그들을 이대로 계속 살아가게 해주고 싶어요. 자신보다 대단한 존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고.”
그러자 율리아는 ‘네 마음대로 해라. 아무튼 같이 가는 건 변함없어.’ 라고 못을 박았다.
이후 나타샤가 물러나자 그녀는 탁자를 두드리더니 클라우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 거죠?”
“없습니다. 있었으면 내가 이러고 있을 리도 없겠죠.”
“같은 요정조차 동족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니. 참 웃기네요, 클라우스.”
“그래서 스스로 자빠진 게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