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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314화 (314/341)

〈 314화 〉 30장 - 다가오고 있는 것은

다시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 전.

율리아는 어젯밤 클라우스와 나누었던 향후 일의 행방에 대해 신하들에게 통보했다.

이곳에 따로 관리자나 병력이 상주하지 않을 것이며 요정은 자신들의 숲에서, 그리고 수인들은 본인들의 땅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중 수인 측에서 특별히 가려 뽑은 전사들을 마왕 친위대 형식으로 임명할 것이다.

수인들의 최고 전사라는 카엘라가 마왕가의 충실한 수족인 전사장인데.

그 밑의 수인 전사들도 응당 카엘라와 함께 의무를 다 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게 이유였다.

언뜻 보면 수인들을 상당히 우대해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율리아가 그렇게 좋은 의도로만 내놓은 결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전사들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했다.

해서 율리아는 마왕성으로 부르는 전사 전원을 수인 부족장들의 자제들로 결정했다.

유일한 왕의 호위를 맡는 친위대라는 명예와 함께.

수인들이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한다면 바로 목이 날아가는 인질도 같이 되는 것.

동시에 실력이 출중하고 혈통도 좋은 이들이 마왕성에서 머물면서 마족들에게 동화된다면.

수인 입장에서는 자신들 종족의 미래를 책임질 이들이 자칫 적이 될 수도 있음이었다.

“전하.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수인들에게 단순히 마왕성의 경비가 아니라 아예 친위대 자리를 내주시겠다니요.”

당장 군사 부분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페르디난트와 에슐리가 이견을 냈다.

친위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친위대를 늘릴 생각이라면 마족 측에서 더 충성스러운 자들도 많을 텐데 왜 수인들을 쓰냐, 이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 외에 다른 마족들도 딱히 율리아의 의견을 반기는 표정은 아니었다.

친위대라 함은 단순히 호위병 따위가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를 지니게 된다.

친위대 출신이라는 부분만으로도 마족 사회에서는 분명 대단한 영광일 터.

그런데 그 자리에 마족도, 인간도 아니고 수인들을 넣겠다니 당연한 일이었다.

“흐음.”

마족 신하들의 소극적인 반발에 율리아는 기대었던 몸을 살짝 떼었다.

그러자 페르디난트와 에슐리, 그리고 다른 이들이 움찔 떨며 움츠러든다.

일단 자신들의 뜻을 내보이기는 했는데, 다른 이도 아니고 자그마치 마왕의 뜻에 반한 것.

언제든지 왕가를 능멸하는 것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금은 자칫 왕권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자들을 치워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최대한 바짝 몸을 사려야 함이 옳은 때다.

그럼에도 그걸 잠시 잊고 나서고 만 이유는 자칫 수인들을 너무 챙겨주는 그림이 그려져 요정들이나 인간들이 반발하고, 거기에 마족들까지 섭섭한 마음을 지닐까봐.

적어도 페르디난트와 에슐리는 그런 이유 때문에 굳이 입을 연 것이었다.

“그대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은가?”

“…전하.”

“다 알고 있어. 거기 있는 그대들이 무엇을 걱정하기에. 해서 내게 충언을 하는 이유를.”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역시 그 부분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리 결행하는 이유가 있다고 해두지. 혹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하다면 해줄 수도 있어.”

율리아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빛을 띠는 페르디난트와 에슐리.

하지만 곧 두 마족 남녀는 그럴 필요는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 반응에 자리에 앉아있던 마왕이 흐음, 하고 탄식을 흘리자 페르디난트가 입을 열었다.

“마왕 전하께서 다 인지하고 계심에도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다고 하신다면 신들도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궁금하다는 듯,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더니. 왜 그러지?”

“전하께서 다른 뜻이 있음을 확실히 인지한 바, 더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역시나 클라우스가 말한 대로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율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충분히 이유를 물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두 남녀는 그 이유가 있다고 하니 바로 수긍했다.

이제 남은 건 어제 들은대로 저들의 의문을 완벽하게 지워주면 되는 것.

그리고 마족 신하들에게 확신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수인들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그건 요정들도 마찬가지이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전하? 그 무슨 말씀이신지….”

“당황스러운가? 믿지 않는다고 이리 말하면서 친위대라는 자리를 맡긴다는 게.”

그 질문에 잠시 두 눈을 껌뻑이던 두 남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위대가 반란을 일으키면 열에 아홉은 왕이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 정도로 친위대는 왕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손을 뻗으면 바로 잡혀야 할 창이자 방패다.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또 신뢰할 수 있는 이들로 채우는 것이 당연한 부분인데.

지금 율리아는 대놓고 수인들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 수인들로 친위대를 새로 하나 조직하겠다고 말하던 마왕이 말이다!

“잘들 생각해보라. 친위대를 선별하는 건 그들이 아니라 나다. 이 마왕이 인원 하나, 하나를 전부 가려 뽑는단 말이다. 허면 그대들에게 묻겠다. 내가 수인들을 선발할 때 과연 어떤 부분을 보겠는가. 실력은 당연한 것이니 뒤로 제쳐두고, 그 다음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바로 대답을 하지 못 하고 낑낑대는 에슐리.

그에 율리아가 고개를 돌려 페르디난트를 바라보니 그는 대충 눈치를 챘다는 표정이었다.

“그대가 말해보라, 페르디난트.”

“…아무래도 수인 사회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혹은 미래에 그 역할을 할 전사들을 뽑으실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유력한 부족장의 자제라던지요.”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처음에는 전하께서 친위대를 뽑는 게 그저 수인들을 달래기 위함인 줄 알았습니다. 요정들에게는 당근을 제시했는데 수인들은 그저 복종하고 있는 것뿐이니 따로 당근을 주시지 않으셨으니까 말이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페르디난트가 그렇게 대답하자 율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어제 클라우스와 나눈 이야기들, 그 중에서도 향후 그녀 곁의 이들을 어떤 곳에 어떻게 쓸 것이냐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거기서 클라우스는 내적인 부분은 페르디난트에게, 외적인 부분은 에슐리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확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었다.

그리고 현재, 그가 그렇게 확신을 한 이유를 율리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인질인 것입니까?”

“인질로 그칠 것이었다면 친위대가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추려냈을 것이다.”

“허면….”

“지금이야 복종으로 묶여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만으로 유지될 수는 없지. 무엇보다 나는 단순히 힘의 논리로만 적용되는 복종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복종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어.”

“….”

“고생해서 아래에서부터 바꿔나갈 필요는 없다. 위의 몇 놈만 확실하게 설득해서 충실한 자들로 만든다면 나머지는 그들이 돌아가서는 알아서 해줄 것이다.”

그러자 ‘역시 그러셨군요.’ 라고 중얼거리는 페르디난트.

덕분에 에슐리 혼자만 이해가 안 되었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였다.

당장이라도 페르디난트를 붙잡고 그게 뭔 소리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율리아가, 마왕이 있는 터라 그런 질문을 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이미 어떤 수인 전사들을 친위대로 임명할지는 다 추려두었다. 에슐리 팔라티나트.”

“에, 옛. 마왕 전하!”

“클라우스와 함께 이번 일을 마무리해라. 심성 부분은 클라우스가 맡을 것이고 그 외의 외적인 부분. 특히 실력 부분은 그대가 보고서 최종 합격을 판단하면 될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왕께서 직접 택하신 자들이라고 했는데….”

기껏 왕이 골라둔 인원들인데 신하가 떨어트리는 건 조금 이상한 상황.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에슐리의 질문에 율리아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아.’ 하고 조금은 멍한 느낌의 탄식을 흘렸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에슐리 팔라티나트.”

“경청하겠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거기서 다 거기였다. 차이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크게 모르겠더군. 그냥 전부 낮아서 굳이 돌아보고 싶지가 않았어.”

“….”

한 마디로 자신은 너무 강하고 그 전사들은 너무 약해서.

그들마다 개개인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오만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에슐리는 예전에 율리아가 클라우스와 대련을 하는 걸 본 경험이 있다.

자신도 무력으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에슐리는 오만했던 건 자신이었음을, 강자라는 호칭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허면 클라우스와 상의해서 마왕께서 추려낸 수인 전사들을 세세하게 둘러보고 친위대로 기용할 수 있는지 확인토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도록 하지. 그리고 페르디난트. 그대는 슬슬 철군 준비를 하도록. 말했다시피 이곳에 남는 병사는 없다. 신뢰를 보여주기로 했다면 한 번에 확 보여주는 편이 나아.”

“명심하겠습니다. 이미 준비를 시작했으니 앞으로 늦어도 사흘에서 닷새면 철군 준비가 끝이 날 것입니다.”

“좋아. 얼른 모두 집으로 돌아 가야하지 않겠나. 모두가 승자이고 영웅인데, 집에 돌아가서 그 일들에 대한 자랑들을 늘어놓는 게 좋을 것 같군.”

그것으로 회의가 끝나자 에슐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클라우스부터 찾았다.

철군까지 아무리 늦어도 닷새가 남았다면 지금부터 얼른 일을 끝내야만 했다.

“클라우스!”

“뭐냐, 에슐리. 뭔데 그렇게 급한 얼굴이야.”

“마왕 전하의 명령은 너도 이미 전해 들었을 것 같은데? 수인 측에서 친위대를 뽑기로 한 거 말이야.”

당연히 들었지. 어제 내가 이야기 한 부분인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클라우스는 알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바로 임무에 들어가자고 말하면서 집무실로 향하던 에슐리.

그러다가 말고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는 듯 몸을 돌린다.

“뭐 하나 물어도 될까?”

“뭐든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성심성의껏.”

클라우스의 대답에 에슐리는 페르디난트와 율리아가 나누었던 부분에 대해서 말했다.

분명 뭔가를 노리고서 수인 측 인원들을 골라내서 뽑은 것 같은데.

자신으로서는 인질 이상의 다른 효용성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고.

그런 에슐리의 질문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짓고서는 입을 열었다.

“동조자로 만들 셈인 거다.”

“동조자?”

“그래. 은근히 많이 써먹는 방법이지. 상대방의 유력층들을 데리고 가서 아국 쪽의 공고한 협력자로 만든 후 돌려보내는 형식이다. 누구를 죽이거나 어디를 쳐들어가는 것이 아님에도 확실한 조력자를 얻는 아주 좋은 수단이라고 할까.”

“아… 그러면 마왕께서는 그런 부분까지 생각해서는 우리들에게 이번 일을….”

뭐, 그렇다면 그런 거고. 실상은 어제 이미 자신과 율리아 사이에 결정 난 일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부분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클라우스는 에슐리와 함께 수인 측 동조자를 만들기 위한 한 발자국을 떼었다.

“아, 클라우스. 하나만 더 물어도 될까?”

“뭔데.”

“…너지? 마왕 전하의 그… 음….”

무엇을 물어보려고 하는지 훤히 예상이 가는 질문.

그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짓고는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에슐리 팔라티나트.”

“응?”

“일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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