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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311화 (311/341)

〈 311화 〉 30장 - 다가오고 있는 것은

마족 측이 수인들과 요정들을 제압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왕이 그들이 있는 서부의 끝자락에 당도하게 되었다.

대륙을 통일한 마왕치고는 상당히 단출한 행렬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여유가 율리아를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요정들이나 수인들에게 자신의 강력함을 각인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으로 도망을 쳤던 인간 귀족들보다도 더 단출한 행렬이라니.

너희들을 숙적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니,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던 자신에게는 그 어떤 미미한 일도 없을 것이니 지켜보라는 듯이.

‘반대가 좀 있었을 텐데도 잘 따라줬군.’

물론 그 부분은 다름 아닌 클라우스가 강력하게 추천한 것이었다.

다른 마족들이나 이번에 새로 고개를 숙인 인간 측 인원들은 반대를 했을 게 분명하다.

왕의 위엄을 이번 기회에 만천하에 공개해야 하는데 너무 간소한 게 아니냐고.

율리아 역시 그들의 의견이 나름 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녀가 또 언제 여기까지 올 일이 있겠는가, 아마도 근 시일 내에는 없을 것이다.

당장 요정들과 수인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대하고 있는 것도 그 부분을 생각해서이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지 세력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두 종족은 여타할 내부 분열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잡아두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데에 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

여기까지만 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의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렇기에 그리 해서는 안 된다고 율리아에게 설명했다.

인간 평민들은 그 외적인 화려함에 어느 정도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여태까지 자신들을 각각 최고라고 여기던 요정들이나 수인들에게는 그만큼의 충격을 줄 수 없다고, 외적인 화려함이나 위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그러면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죠, 클라우스?’

‘오히려 그들이 생각지도 못 한 방향으로. 아주 간소하게, 단출하게.’

‘…그런 식으로 정말 돋보일 수 있겠어요? 오히려 자신들을 신경도 쓰지 않는, 상당히 오만한 왕으로 비쳐지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 같은데요.’

‘장담하는데 그러지 못 할 겁니다. 그들 모두가 그저 화려함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나타나는 왕의 모습이 더 효과적일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율리아는 결국 그리 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녀를 따라온 플랑슈와 마왕가의 호위병들을 제외하면.

그리 대단하다고 볼 수 없는 규모의 인원들이 도착하게 되었다.

“마왕 전하를 뵙습니다.”

수천에 이르는 병사들부터 페르디난트와 에슐리 같은 사령관 급 인물들까지.

딱히 대단한 것 같지 않은 행렬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서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 뒤를 따라서 요정들을 데리고 나온 나탸사가 지극히 공손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이고.

카엘라와 함께 온 수인 부족장들, 그리고 전사들이 납작 엎드리며 충성을 다짐한다.

서로가 종족은 다르나 이제는 모든 이들이 단 한 명의 왕을 모시게 되었다.

살아가는 사회는 여전히 다를 것임에도 이제는 하나의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마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 클라우스 역시 머리를 조아렸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서로 존대를 하는 부부 관계라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런 것 없이 왕과 신하로서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인다.

그래야만 왕으로서의 위엄이, 신하로서의 자세가 다른 이들에게도 강조된다.

탁-.

마차 위에서 내린 율리아의 모습은, 왕국을 떠날 때와 비교해서 꽤나 많이 달라졌다.

조금은 남아있던 소녀스러움은 이제 전부 사라지고, 거기에는 완연한 여인의 느낌이.

거기에 더해서 현숙한 어미의 모습까지 더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과는 다르게 배가 부풀어서 이제는 옷으로 겨우 가릴 수 있을 정도.

다들 저 아이의 아비가 누구인지, 왕의 반려가 누구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그저 자신들의 왕이 때가 왔다고 판단하여 그녀의 입으로 말해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

잠시 일대를 둘러보던 율리아는, 가장 먼저 자신을 위해 싸워준 이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부푼 배 때문에 거동이 은근히 불편할 터인데도 기어코 몸을 숙여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페르디난트와 에슐리를 일으켜 세운다.

“고생들 많았다. 아주 고생들 많았어.”

“전하.”

“이 먼 곳까지 와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피를 흘리고, 그렇게 해서 영광을 가져다주었으니 그대들이 나의 영웅이다. 고맙다. 고맙다는 말로도 다 부족하구나. 내 절대 잊지 않겠다.”

“그저 영광일 뿐입니다.”

“뒤에 있는 나의 병사들이여. 그대들 역시 마찬가지다. 고향 땅에서 이렇게나 머나먼 곳까지 떠나와서는 내게 이런 선물을 주는구나. 너희들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것이고, 그 활약상은 길이 빛날 것이니, 나는 그대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삶을 주려고 한다. 돌아가는 즉시 그대들이 세운 공로를 치하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주기를 바라마.”

왕이 약속하는 보상, 그 말에 병사들 모두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반은 자의로, 반은 타의로 인해 동부와 정 반대까지 오게 되었다.

여러 전투를 치르면서 누구는 다치고 또 누구는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신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보상이었다.

이후 율리아는 전사한 자들과 부상을 당한 자들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언급을 하고 넘어갔다.

그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전사자들에 대한 보상은 그 유족들에게.

부상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확실하게 돌볼 것이라고.

왕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고 하니 자리에 없는 이들도 아마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눈에 익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섞여있군.”

그렇게 말한 율리아는 먼저 나타샤 앞으로 다가갔다.

그 때까지 얌전히 침묵하고 있던 나타샤는 율리아가 앞으로 다가오자 바로 입을 열었다.

“마왕 전하의 뒤를 따르고 싶습니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 한 자들은 직접 저희들의 손으로 처단했으니, 부디 충성의 증표로 삼아주시고 저희들을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대들은 일찍부터 우리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사이가 아니었던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헌데 이런 식이면 우리도, 그대들도 조금은. 아니, 꽤나 많이 불편하겠지.”

“그 또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나타샤의 대답에 율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마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다.

“미리 말해두겠다. 난 그대들에게서 뭔가를 빼앗고 싶지 않아. 복종의 의미로 받고 싶은 건 오직 충성된 마음, 그 하나뿐이다. 그들의 터전, 숲, 고향, 모두 그대들 곁에 남을 것이니 괜한 걱정들 말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내 간절히 기원하겠다.”

반란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강제로 이주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들.

내심 요정들이 지니고 있었던 그 부분들, 그걸 한 번에 지워주는 율리아였다.

너희에게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을 요구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그런 게 없어도 나는 계속해서 강력한 군주일 것이니, 너희가 바칠 건 오직 충심뿐이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너희 자신들을 위해서, 그리 해주기를 바란다.

율리아는 무릎을 꿇고 있는 요정들에게 그렇게 분명하게 제 의사를 전달했다.

이미 마족들에게 적의를 지니고 있던 요정들은 전부 솎아진 후다.

남은 이들은 전쟁에 지치고 이유 없는 적의와 혐오에 또 지쳐버린 자들이다.

거기에 이미 율리아가 클라우스와 함께 마족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잡아두었다.

벨라루스의 요정들을 살려 보낸 것이 그러하고, 이후 포로로 잡혔던 이들 중에도 마족 측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들은 포로라기보다는 거의 손님 대접을 해주면서 마음을 잡았다.

이제 적의와 혐오를 이용하여 원동력으로 삼아가던 시대는 지났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 아래 뭉치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 너머를 볼 차례였다.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잘라내야 할 것은 또한 과감히 잘라내야만 했다.

“우리들을 꽤나 골치 썩게 했던 강인한 전사들이군.”

다음으로 수인들 앞에 선 율리아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카엘라 뒤에 부복해있던 부족장들과 전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그렇습니다! 라고 답했다.

“힘들이 넘치는군. 당장이라도 그대들과 같이 멋진 전사들과 한 판 해보고 싶을 정도야.”

그냥 툭 던져본 장난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세를 슬쩍 흘려보내는 율리아.

상대방의 무력을 감지하는 데에 있어서는 특히 대단한 재능을 보이는 수인들답게.

그들은 방금 율리아가 한 말이 그저 장난으로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것을.

품에 아이를 배고 있으면서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모인 전사들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강자라면 응당 그 강자에 대한 예의를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강자라는 걸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는 언젠가는 뛰어넘어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따라야 하는 지도자이자 자신들을 보호할 대장으로 섬기게 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대들 명예로운 전사들과 한 번 땀을 흘리고 싶은데.”

“그저 영광입니다. 강자의 뜻을 따를 뿐이니 원하신다면 언제든 그러시길.”

“그 말 기억해두지. 강자의 뜻을 따른다. 그런데 어쩌나? 난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더 강해지고, 더 높아질 거다. 그러니까, 영원히 그 충심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겠다.”

과도하다 못 해 거의 광오하다고 할 정도의 말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여인이기에, 그럴 만한 강자이기에.

“무척 기쁜 날이군. 마침내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세상을 두고 할 수 있게 되었어.”

“감축드립니다, 마왕 전하.”

동부와 서부가 나뉜 이래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던가.

종족도 다르고 생활하는 방식도 달랐던 이들이 한 왕의 이름 아래 모여들었다.

그리고 충성을 맹세하면서, 그 길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자, 그리고….”

모든 이들을 둘러본 마왕이 이윽고 한 남자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를 일으켜 세운다.

여기까지는 여태 했던 것과 다름이 없는 일들.

하지만 그 다음은 오직 클라우스만이 알고 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 내 곁에 왔구나.”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디도 갈 필요가 없겠어. 계속 곁에 있어라. 클라우스.”

자신의 것을 와락 끌어안으며, 자신의 안에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아이의 위로 그 아비의 손을 가져대 대곤.

율리아는 입가 가득 만연한 미소를 지은 채 그렇게 속삭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클라우스는 그녀의 배를 조심스레 쓰다듬고 머리를 만져주면서.

“다녀왔어요, 나의 왕이여.”

그렇게 나긋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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