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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309화 (309/341)

〈 309화 〉 30장 - 다가오고 있는 것은

다른 일은 몰라도 저항 세력을 급하게 몰아쳐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천천히, 조금씩, 아주 느리게 말려 죽여가면서 저항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음을 각인시킨다.

조금 서두른다면 페르디난트와 에슐리의 군대가 요정 저항 세력들을 순식간에 일소시켰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 두 남녀에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모든 걸 처리할 걸 주문했다.

‘율리아가 이곳에 오고 공식적으로 대륙 통일의 마무리를 알린 후 돌아올 일이 거의 없다. 마왕의 밑에 무릎을 꿇기는 하지만 이곳은 어느 곳보다도 더 자치적인 행정 구역으로 남게 될 거야. 그렇기에 더더욱 반할 목적을 띤 놈들을 남겨서는 안 돼.’

잔혹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미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그 싹까지 뿌리 뽑고 남겨진 씨앗이 있다면 땅을 다 파헤쳐서라도 전부 파낸다.

어떤 놈이 어떤 방식으로 이상한 꿍꿍이를 가지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남은 건 그놈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죄를 뒤집어씌워서 처리하느냐, 그 뿐이다.

무작정 제거하면 기껏 항복한 요정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

해서 그들을 제거하는 이유는 ‘마족’ 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항복한 ‘요정’ 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포장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클라우스는 저들이 후퇴하면서 남겨둔 마법진의 정체를 바로 퍼트렸다.

남은 동족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건드리면 바로 화염계 마법이 발현되어 일대 모든 숲을 불태우고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들은 항복한 너희들을 동족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클라우스는 그런 인식을 항복해온 요정들에게 계속 심어주었다.

동시에 저들이 걱정하는 부분, 예를 들어서 과도하게 마족들이 개입한다든지.

그런 부분들은 행여나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게 최대한 피했다.

마왕이 원하는 건 충성을 바치며 마왕가에 무릎을 꿇는 것일 뿐.

이곳 땅을 전부 지배하고 요정들은 사방으로 흐트러트려 그들의 고향을 빼앗겠다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음을 알려주어야 했다.

“끝까지 망상을 못 버리고 떠난 자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요정 사회의 새로운 기둥이 될 가문을 선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집중해주세요.”

그 와중에 나타샤는 무척이나 영민하게 움직였다.

마족들에게, 마왕에게 결코 고개를 숙일 수 없다면서 숲의 가장 안쪽까지 숨어든 자들 중에는 요정 사회에서도 알아주던 가문들이 속해있었다.

나타샤는 요정 사회의 대표로서 그 가문들을 모조리 방출하겠다 말하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가문들을 넣고자 하니 자격이 된다 생각하는 이들은 의견을 내놓으라고 했다.

덕분에 항복한 요정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차기 유력 가문을 누가 차지하느냐.

새로운 권력 구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문은 어디냐, 하는 것에 쏠렸다.

대부분이 그저 그런 가문 출신이거나 애당초 권력과는 거리가 멀던 평범한 요정들.

그런 요정들이 이번에 마족들이 들어오면서 역으로 보다 더 위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덕분에 과거 동족이었던 자들이 토벌을 당하든 말든.

그들은 연신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면서 어떤 가문이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더 좋겠냐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었다.

“카엘라는.”

“어제 소식이 들어왔어요. 그녀에게 도전했던 부족장 셋과 전사 열다섯을 전부 쓰러트렸다고 합니다. 이후 더는 결투 소식이 없는 걸 보아하니….”

“수인들도 이제는 이견 없이 카엘라를 자신들의 강자라고 인정하기로 했나보군.”

참고로 카엘라는 여전히 율리아의 전사장 직위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수인들의 모든 인정을 받은 가장 강한 전사가 마왕의 곁에서 신하를 자처한다.

이것만으로도 수인들 입장에서는 마왕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힘의 논리에서 수인들보다 마족이 더 우위에 있음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으니 그걸 깨트릴 만한 짓은 하지 않겠지만.

“왕국은 어떠했냐. 네가 거기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을 텐데.”

“마왕 전하께서 토지 개혁 이후 각종 세금 감면 및 철폐 조치를 단행하셨습니다.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된 게 아니다보니 복구에 필요한 예산이 생각보다 적었던 게 큰 이유였다고 해요.”

“그렇겠지. 거기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떼먹을 귀족들은 싹 다 뒈졌으니까.”

“처음에는 많은 왕국민들이 경계를 했다고 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안정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정말로 세금이 확 줄어든 부분이나 언제 어떻게 귀족들에게 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결정적이었어요.”

붉은 독거미의 안젤리카와 함께 왕국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리르.

그녀 역시 현재는 클라우스 곁으로 와서는 여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것 외에 다른 건?”

“다넬 키엔마이어와 다른 항복한 귀족들이 빠르게 왕국민들을 안정시켰습니다. 그리고 피난민들 모두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서는 아무런 걱정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말까지 해두었더군요. 전후 복구 작업은 인간 측 인원들과 동부의 마족들이 모여서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듣기로 왕명이었다고 하더군요.”

빠르게 서로에 대한 거리감을 줄인다.

이제는 같은 왕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웃 사이라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켜둔다.

율리아는 자칫 일어날 수도 있는 내분을 경계하여 그런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부분들이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라는 걸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을 테지만.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통하기에 여태껏 많은 권력자들이 써먹기도 했었다.

“효과가 좀 있어보였나?”

“음….”

클라우스의 질문에 리르가 그녀답지 않게 말끝을 흐린다.

아무래도 그가 원하는 대답과 자신이 하려는 대답이 다른 걸 본능적으로 감지해서.

해서 과연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까, 라고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괜한 걱정 말고 솔직하게 말해, 리르. 난 지금 듣기 좋은 번지르르한 말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보고를 원하고 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또….”

클라우스가 조금만 엄하게 나가도 이 마족은 바로 잔뜩 움츠러든다.

세실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세실리는 그 압박감에서 쾌락을 느끼는 부류이고.

반대로 리르는 불안감을 느끼다가 그걸 해소시켜주면 환희를 얻는 쪽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흠.”

다른 여인들에 비해서 리르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타샤나 카엘라, 세실리 같은 경우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율리아는… 아이를 낳고서는 클라우스마저 뛰어넘는 괴물이 된다.

그에 반해 리르는 여기까지가 한계, 클라우스와 몸을 섞어도 이 이상은 성장치 못 한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리르를 버린다거나 내치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도 자신의 것이 되었고, 나름 힘든 일도 잘 해냈으며 무엇보다 정보를 수집하고 불필요한 것과 필요한 것을 구별해내는 능력이 꽤나 쓸 만 했다.

“리르. 올라와.”

“네?”

“책상 위로 올라오라고.”

클라우스의 말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마족 여인이 아! 하고 탄식을 흘리고는 다급한 기색을 띤 채 남자가 시키는 대로 책상 위에 올라앉는다.

그러자 클라우스는 여인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마왕 전하가 내놓은 방안, 거기에 대한 효과는 어때 보였지?”

“네, 네! 아직은 크게… 여전히 마족들과 인간들이 서로를 불편해하는 기색이… 흐잇!”

남자의 손길이 그저 허벅지 안쪽에서 노닐 뿐인데도.

리르는 벌써부터 몸을 덜덜 떨면서 흥분되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하의를 벗겨보면, 속옷의 중심 부근에 물기가 가득 맺혀있을 지도 모르겠다.

“허면 네 생각은 마왕 전하의 방안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아, 아니요! 저는, 하앗! 그, 그저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는 말씀을! 흑! 드리고 싶어요!”

주먹을 꼭 쥔 채 애써 본성을 참는 여인의 모습이 꽤나 재미있다.

이렇게 부드럽게 대해주면 리르는 다른 여인들보다도 더 참지 못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아무래도 유일한 안식처이자 피난처인 곳이 바로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든 모양.

“제국 쪽은.”

“흐으읏….”

“리르.”

“아, 네! 그쪽으로는 현재 붉은 독거미 측의 간부, 제니가 파견되었습니다. 아직, 하앗! 저, 정보 수집 쪽이 불안정해서 그곳으로 단원들을 계속 보내고 있다고 해요. 제가 오는 길에 알아낸 것으로는, 앙! 흣! 딱히 저항이나 불만 없이 마족들의 지배에 순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럴 거다. 애당초 뭘 지키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던 자들이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들. 제국에 대해서는 2순위로 두어도 괜찮아. 자잘한 일 외에는 큰일이 벌어지려야 벌어질 수가 없는 곳이다.”

제국이라는 이름조차 아깝기 그지없었던 곳.

조만간 율리아에 의해 그 명칭을 빼앗기고 그냥 지역으로만 불릴 것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귀족들도, 제국민들도 전부 무언가와 싸운다거나 지킨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자들이었다.

1차 대륙 전쟁에서는 왕국이 방패가 되어주었던 터라 아무런 일도 없었고.

그 전에는 괜한 마찰로 서부가 엉망이 될까 수인과 요정, 그리고 왕국 측이 암묵적으로 제국 쪽을 일종의 비무장지대로 설정했기에 그런 기류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괜한 싸움보다는 그냥 평화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유하기를 기원하는 자들.

그렇기에 그들이 문제가 될 여지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리르에게서 받을 보고를 전부 받자 클라우스는 한창 여인을 유혹하듯 허벅지를 부드럽게 쓸어주던 손길을 거두었다.

그러자 책상 위에 앉아있던 리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아아아….’ 하고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물론 제 실수를 깨닫고서는 급히 두 손을 입을 틀어막기는 했지만.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 그냥 그 반응을 보고 싶어서 장난 좀 친 거다.”

“아… 장난….”

듣기에는 조금 서운할 수도 있지만, 리르 입장에서는 클라우스가 자신에게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내심 희망적인 부분인 모양이다.

아무리 자신을 부하로 대하고 있어도 결국 그 시작은 그의 여인인 율리아를 해하고자 하는 때에 마주쳤던 때이고 다른 여인들과는 다르게 리르 본인은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

해서 언제든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내쳐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장난까지 칠 관계라면 이제는 그런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두어도 괜찮을 듯 싶었다.

“다른 이들은 네 공로를 많이 알지 못 할 테지만, 나와 마왕 전하는 확실히 알고 있지. 그에 대한 포상이 분명 있을 거다. 일단 네 여동생부터. 원한다면 계속 마왕 전하의 시녀로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삶을 택할 수도 있을 거다.”

“시녀로 계속 남을 수 있다면… 가능할까요?”

시녀와 하녀는 엄연히 다른 존재.

왕의 시녀라고 하면 대단히 명예로운 자리로 인식된다.

하물며 곧 대륙을 석권한 마왕의 시녀 자리에는 당장 많은 경쟁자들이 몰릴 텐데 리르와 같이 아무 것도 아닌 마족의 여동생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가능하지. 원한다면 내가 마왕 전하께 말해볼 수도 있어.”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아무래도 동생은 그곳에 있는 게 가장 좋을 듯 싶습니다.”

마왕 율리아에게 유일하게 제안을 하고 수락을 받을 수 있는 인물.

그렇기에 리르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동생을 부탁했다.

“너는 어떠냐, 리르. 네가 받고 싶은 포상도 있을 텐데.”

“저는 이대로 계속, 여태 지내던 것처럼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클라우스님의 명령에 따라 계속 이곳저곳을 돌면서… 가끔은 이렇게 당신 앞에서 보고를 드릴 수 있는 지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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