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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306화 (306/341)

〈 306화 〉 30장 - 다가오고 있는 것은

세실리에게 요정들이 쳐둔 마법진 해제를 명령하고, 나타샤에게는 항복한 이들 사이에 숨어있는 역겨운 첩자 놈을 색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클라우스가 향한 곳은 포로수용소, 그 중에서도 왕국에서 도망쳐서는 이 먼 곳까지 온 왕국의 귀족들이 잡혀있는 곳이었다.

살겠다고, 그 잘난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쳐서 닿은 곳.

자신들을 가장 고귀하고 강한 종족이라 부르면서 간악한 마족들에게서 왕국을 다시금 되찾아주겠다는 요정들을 진심으로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어떻게든 살길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이제 그들은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왕국으로 귀환해서 다시금 권력을 잡는 것도, 하다못해 그냥 살아남는 것조차도.

왕국에서, 아니 세상에서 가장 자신들을 증오할 인물이 바로 앞에 있으니까 말이다.

“한심들 하네. 결국 도망치고 도망쳐서 닿을 곳이 감방이 되었는데, 어떠십니까? 귀족님들.”

“….”

요제프 대공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몇몇 귀족들 역시 말조차 섞고 싶지 않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나마 그들 중 여전히 살고 싶다는 유혹에 강렬히 빠져있는 몇몇 귀족들이 무릎걸음으로 기어와서는 제발 살려달라고, 다 뺏어도 좋으니 제발 목숨만 구해달라고 빌고 있었다.

몇 달 전까지 귀족이라고 아주 떵떵거리며 살았을 자들이다.

그런 놈들이 이제는 볼품없는 꼴이 되어서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장면이라니.

클라우스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말했다.

“살려달라고 빈다면, 정말 살려줄 수도 있습니다. 귀족님들. 그래도 명색이 왕국을 맡던 귀족들인데 그런 자들의 목을 가지치기 하듯 쑹덩쑹덩 잘라버린다면 민심을 휘어잡기에 조금은 무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자 여태까지 살려달라고 빌던 귀족들에 이어서,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다른 귀족들까지 두 눈을 번뜩 뜨고서는 다급히 클라우스의 앞으로 기어왔다.

그 말이 사실이냐고, 사실이라면 제발 이렇게 빌 터이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왕국에 두고 온 모든 것을 포기할 터이니 그것만 보장해달라고 말이다.

거의 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애달프게 짖어대는 귀족들이다.

클라우스는 그런 인간들의 꼴불견을 마음껏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요제프 대공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요제프 대공님. 귀족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것, 물론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그 명예라는 것도 결국 살아야 빛을 발하는 걸 보든 말든 하는 거 아닙니까?”

“….”

“살려달라, 그 말 한 마디면 살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이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차 대륙 전쟁을 같이 이겨낸 전우이기도 하니 한 번 정도는 봐줄 수 있어요.”

“헛소리 마라, 클라우스. 내가 네놈을 모를 것 같은가? 죽는 순간까지, 우리들의 목이 매달리는 그 순간까지 이렇게 장난을 치고, 또 비웃기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냐.”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한 번 빌어보세요. 요제프 대공. 살려달라고, 최대한 비굴한 모습으로 한 번 빌어보란 말입니다.”

“….”

이래서 눈치가 빠른 놈은 참 재미가 없는데 말이야.

속으로 쩝, 하고 입맛을 다신 클라우스는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냐는 식으로 나섰다.

“요제프 대공의 입에서 살려달라, 라는 말이 나오면 고려해보죠. 하지만 그가 침묵할 시 여기 갇혀있는 귀족 분들은 모두가 당장 내일 아침에 사지를 하나씩 잘라낸 후 몸통만 남은 채로 교수대에 걸려서 대롱대롱 목이 매달릴 겁니다.”

“허윽!”

“아, 안 돼! 사, 살려주시게! 살려줘! 살려주세요, 클라우스!”

“그러니까 조건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제프 대공의 입에서 살려달라, 그 한 마디면 된다고. 여태까지 당신들의 위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노인네인데 당신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존심 한 번 굽히고 희생해라, 그렇게 말하란 겁니다.”

클라우스는 그렇게 말한 후 지금부터 딱 5분을 줄 터이니 요제프 대공을 설득하라고 했다.

하지만 5분이면 설득은커녕 말 몇 마디 제대로 하는 것조차 힘든 시간이다.

해서 귀족들은 클라우스의 입에서 시작, 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험악한 표정과 목소리로 돌변해서는 요제프 대공에게로 다가갔다.

“요제프 대공! 얼른, 얼른 나서지 않고 뭐하시는 겁니까! 살려달라고 하세요!”

“멍청한 것들. 이미 죽은 목숨인데 뭘 살려달라고 빈단 말이냐. 속지들 마시오! 저 빌어먹을 왕국의 배신자는 우리들을 살려줄 마음이 결코 없어! 그냥 우리들을 죽는 순간까지 모욕하려고 이러는 것이란 말이오!”

“4분 남았습니다, 귀족 여러분.”

“이 빌어먹을 노친네야! 그건 네 생각이잖아. 여태껏 네 생각대로 움직였다가 우리가 이 꼴이 났는데 아직도 당신이 옳다, 이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난 살고 싶어. 살고 싶다고! 말해, 말하라고. 시발, 말하란 말이야! 살려달라고, 한 번만 빌어. 그리고 당신은 그냥 뒈지던지 해. 나는 살 거야. 살 거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그냥 다 같이 이렇게 죽자.”

그런 와중에 클라우스는 참으로 얄밉게도 ‘3분 남았습니다. 이야, 죽음까지 3분이라, 거 참 두근거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군요.’ 라고 중얼거렸다.

덕분에 더욱 눈이 돌아간 귀족들은 급기야 온몸이 결박당해있음에도 기어코 몸을 움직여서는 요제프 대공을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말로는 안 되니 바로 폭력이 휘둘러지는, 왕국의 귀족으로서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중이었다.

“살려달라고 말해! 젠장, 말하라고! 우리를 살려달라고!!”

“노친네, 우리를 다 죽일 생각이야?! 살려준다는데 왜 그러냔 말이야!”

저들에게 클라우스가 정말로 약속을 지키느냐, 따위의 문제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유일한 살길을 지금의 이 지옥 한복판으로 밀어넣은 장본인인 요제프 대공이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 역시 그의 뜻에 따라 말하고 행동했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로.

그저 책임을 전가하고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고 싶어서 온갖 난리를 치고 있었다.

“1분.”

“으아아아악!!”

급기야 귀족들이 몰려들어서는 요제프 대공을 집단 구타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꽂히는 발길질들, 그럼에도 요제프 대공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만약 두 손까지 자유로웠다면 저들은 두 눈을 찌르거나 목을 조르면서까지 요제프 대공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을 뽑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30초 남았군요. 자, 여러분 포기하지 마세요. 요제프 대공의 마음이 약해졌을 지도 모르잖습니까. 얼른 더 설득해보세요. 살 수 있는 마지막 길인데 이대로 포기할 겁니까? 정말로 목이 매달려서는 요정들과 마족들 사이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싶어요?”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이나 다름이 없었다.

클라우스의 그 말에 귀족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더욱 사납게 요제프 대공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끝내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시간이 다 되어버렸다.

“5초, 4초, 3초, 2초, 1초. 자, 끝. 아쉽군요. 여러분. 5분의 시간을 드렸음에도 끝내 요제프 대공을 설득하지 못 했으니, 이제 남은 길은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어흑! 끄흐으으윽!!”

“제발, 제발 살려주시게. 클라우스. 죽일 거면 저 빌어먹을 노친네를 죽이고! 우리들은 살려주시게. 살려만 준다면 하라고 하는 모든 걸 다 하겠어! 그러니까 제발….”

“유감이지만 기회는 이미 떠나갔습니다. 그러니까 탓하려거든 저기 개가 맞듯 처맞고서 엎어져 있는 노인네를 마음껏 욕하세요. 그러다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밤, 편안하게. 아주 편안하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내일 교수대에서 보죠.”

그 말 이후 클라우스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에서 괴성과 함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든 말든 이제는 신경 쓸 것 하나 없었다.

그보다 오늘 밤 사이에 과연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 저주의 말들을 요제프 대공에게 쏟아낼지,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얼마 전까지는 귀족파의 수장이라고 하여 귀족들에게 떠받들어지던 남자일 텐데.

이제는 그들에게 온갖 욕을 들어먹으면서 폭행도 당하고 원망도 좀 받고, 그 외에 참 즐거운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요제프 대공이 살려달라고 비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클라우스가 원하는 것은 그 잘난 귀족들이 서로 욕하고, 물어뜯고, 깎아내리다가 끝내 울며불며 사라지는 것이었다.

저들이 무슨 폼 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 따위, 절대 줄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노인네는 내일 뒈지면 이 치욕도 다 끝이라고 생각하겠지.’

끝이 날 것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절대 그렇게 순순히 끝내줄 생각은 없다.

귀족들의 대가리로서 온갖 수많은 실책과 병신 같은 짓을 한 미친 노인네인데.

클라우스가 뭐 좋다고 깔끔한 죽음을 선사하겠는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내일이 되어서 그래도 더는 치욕을 당하지 않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할 터.

클라우스는 바로 그 생각을 잔혹하게, 아주 잔인하게 짓밟을 생각이었다.

죽음은 가장 자비로운 처사이니 그 전까지 최대한 많은 고통을 남겨줄 것이다.

그게 여태껏 자신을 그렇게도 괴롭힌 귀족들의 대가리로서 책임져야 할 값이리라.

‘내일이 참 기대되네.’

포로수용소를 벗어나면서 클라우스는 계속 웃음을 흘렸다.

벌써부터 밑바닥의 끝을 보여주는 귀족들인데, 과연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낼지.

요제프 대공을 거의 반쯤 죽이려고 하는 자와 이제는 다 포기하고서 그냥 받아들이자는 이들로 나뉠 터인데 그들끼리 또 알아서 싸우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 잘난 주둥아리로 왕국을 완벽한 도탄에 빠트렸으니.

이제 자신들의 인생까지 나락으로 내던질 일만 남았다.

그렇게 절망하면서, 그렇게 후회하면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기를 간절히 바란다.

“클라우스님. 방금 전 제국 국경 근처에 전사장님과 휘하 군대가 도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동시에 에슐리 팔라티나트님까지 함께 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쪽의 일이 끝났음을 파악한 이들이 전부 이쪽으로 오려는 모양이었다.

응당 그리 하는 게 맞기에 클라우스는 자신에게 보고를 해준 마족 병사에게 알겠다는 대답을 한 후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율리아가 자신에게 내어준 전서구에 보낼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다 끝났습니다. -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고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빠르게.

거의 어이가 없을 정도로 끝나버린 일들이지만 클라우스로서는 비로소,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여기까지 오는 걸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너무 흥분해서 과하게 내달리지는 마세요. 홀몸이 아니라는 것 좀 신경 쓰고…. -

뭔가 상당히 구구절절한 내용까지 아주 꼼꼼하게 작성하는 클라우스.

율리아의 성격 상 요정들과 수인들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경우 바로 그곳의 정리를 위해서 엄청난 속도로 내달릴 것이 분명했다.

어미와 아비를 닮아서인지 뱃속의 아이가 무척이나 튼튼해서 별 탈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제발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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