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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95화 (295/341)

〈 295화 〉 28장 - 체하지 않도록

요정들의 전투력은 원거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각종 공격들에 기인한다.

당장 나타냐가 마법이나 활을 다루는 실력에서 다른 요정들보다 떨어진다는 걸 이유로 가문에서 문제아 취급까지 받은 걸 보면, 그런 부분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왕국이나 제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숲과 언덕이 많은 요정들의 땅이다.

당연히 평지에서 쓸 법한 전투 방법으로는 이득을 볼 수 없다.

아니, 그런 방식은 오히려 극악의 손해만 보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샤샤샤샷!!-

“빌어먹을.”

요정 측 영토에 들어서자마자 마족 병사들을 맞이한 것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수도 없이 날아오는 요정들의 화살이었다.

이쪽이라고 해서 요정들의 그런 공격에 대비가 되지 않은 건 절대 아니다.

다음 전투 대상이 요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화살을 막아내는 훈련도 했고, 마법이 날아올 것을 대비해서 대마법 전술까지 많은 준비를 했다.

하지만 훈련과 실전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지금 요정들은 ‘살상’을 위해서 화살을 쏘아 보내는 게 아니라 ‘견제’ 와 ‘피로 중첩’을 위해서 마족 병사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몰아대는 중이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병사들이라고 해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화살 아래에서 평소와 같이 평온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방패 사이를 파고 들어와서 동료의 팔이나 어깨에 화살이 박힌다면.

혹은 자신의 몸뚱이에 화살이 박힌다면 절로 더욱 모여들면서 이를 악물게 된다.

자연스레 마족군의 대열은 중앙으로 모였다가, 화살이 덜 쏟아지는 곳으로 이동하기를 반복.

이대로 돌파를 하자니 상대는 낮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라 그마저 힘들었다.

“페르디난트님. 이대로는 진격이 불가능합니다. 아직 적의 마법 공격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리 휘둘린다면 이후부터는 더….”

“일단 병력을 뒤로 물려라. 아무래도 오늘은 열 발자국 내딛는 것조차 힘들겠군.”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 전투 자체가 성립되지도 않았으니 패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숙영지로 돌아온 병사들은 대패라도 당한 것처럼 풀이 죽어있었다.

그런 병사들을 돌아보면서 페르디난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요정들은 이쪽의 약점을 아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시간이 아직까지는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 지금 시간에 채이는 건 이쪽이라는 것.

왕국을 완전히 흡수하고 뒤를 이어서 제국까지 완전히 손아귀에 넣는다면.

이제부터는 인적, 물적 자원 부분에서 더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후방의 안전까지 확실해지는 것이니 이제 마왕은 본격적으로 요정들과 수인들을 향해서 창칼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 당장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아무리 귀족들이 도망치고 또 누구는 항복을 했다고 하지만, 결국 서부와 동부는 저번에 이어서 이번에도 전투를 치른 것이고 그 사이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감정의 골은 생각보다도 깊고, 그 갈등은 어딘가에서 튀어오른지도 모를 불꽃에 의해 거대한 산불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마왕도 그걸 알기에 본인이 직접 왕성에 남아서 안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번에 흡수한 제국 역시 왕국과 비슷한 안정을 시켜두기 위해서 병력 일부와 에슐리 팔라티나트가 남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요정 놈들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거다. 초장기적으로 보면 자신들의 패배가 확실하지만, 적당한 시간을 두고 보자면 오히려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과 같은 저항으로 이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전방에 일선 병력들이 집중되어 있으면 자연스레 후방이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만에 하나 왕국에서 마족들을 따를 수 없다고 누구 하나가 들고 일어선다면 마족 입장에서는 앞뒤로 적들과 싸워야 하는.

전장에서 가장 피해야 한다는 양면 전선을 형성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이곳의 병력을 빼서 점령한 지역의 안정을 도모할까.

아니면 내부가 흔들리더라도 어떻게든 요정들과 수인들을 밀어내려고 할까.

페르디난트는 장담하건데 전자를 택할 거라고, 요정들이 그렇게 예측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렇기에 저렇게 시간을 끌면서 자신들의 저항 의지와 무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들도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항을 한다면 장담하건데 너희 마족들도 큰 피해를 강요받을 것이며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우리들을 인정하고 병력들을 뒤로 물려서 왕국과 제국에 만족해라.

우리도 마족들과의 적대 관계를 끝내고 하하호호 웃는 수준은 아니어도 억지 미소를 지을 정도로 관계를 개선할 수는 있다, 이렇게 말할 생각으로 말이다.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이군.”

지휘 막사에는 이미 클라우스가 먼저 와서 앉아있는 상태였다.

그를 보자 페르디난트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도움을 청할 뻔 했다.

요정들의 생각대로, 현재 급한 건 적들보다는 아군이다.

어떻게든 빠르게 요정과 수인들을 무릎 꿇리고 복구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장기전을 펼치면 극심한 소모를 겪는 건 양측 모두 마찬가지이겠지만, 결국 더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어쩔 수 없이 공격하는 쪽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가면 역으로 마족이 더 유리할 지도 모른다.

왕국의 자원을 사용하게 되고 인간들이 마족들과 손을 잡아 대륙 통일에 나서는 그 순간.

그 때가 된다면 아무리 백발백중의 요정이라고 해도, 일당백의 수인 전사라고 해도.

결국에는 힘에 부친 싸움을 하다가 패배를 깨닫고 마왕의 앞에 고개를 조아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먼 나중의 이야기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 역으로 왕국 내에서 커다란 사건이 터질 지도 모른다.

현재 동부 측의 주력이란 주력은 거의 다 이곳으로 와 있는 상태다.

그 말인 즉, 왕국의 현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건 율리아 휘하의 근위병들.

그리고 항복한 인간 측 병사들이 전부라는 말이었다.

“쉽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힘들군.”

“그렇겠지. 이미 썩을 대로 썩어서 조금만 힘을 줘도 툭 부러질 수준이었던 왕국이나. 애당초 제국이라는 이름조차 어울리지 않던 제국과는 다르니까.”

“훈련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요정들의 화살은 그 위력부터 정확도까지 매우 위협적이야. 해서 방패를 다루고 그걸 두드리는 화살 앞에서도 겁을 먹지 않도록 준비했는데….”

“준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면 그건 전쟁이 아니라 훈련인 거다, 페르디난트.”

그도 아니면 그 역시 수십 번을 회귀하는 인물이라던가.

클라우스의 말에 페르디난트는 한숨을 내뱉고는 자리에 앉아서 지도를 살폈다.

현재 이 지역은 정찰병들에게 보고를 받아 회의에 회의를 거쳐 내놓은 최선의 진입로였다.

남은 곳들은 언덕들이 더 많거나, 아니면 울창한 숲이 가로막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강이 흐르고 있어서 그 자체로 방어물이 되는 곳들이었다.

그나마 조금 전 돌파하려고 했던 지형이 낮은 언덕을 하나만 끼고 있고 그 뒤로 평탄한 지형이 있다고 해서 대규모의 병력이 들어가기 좋은 곳.

당연히 요정들도 그 사실을 예측하고 있을 게 뻔하기에 전투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요정들의 견제 공격이 강했고, 얼마 진군하지도 못 하고 결국 숙영지로 돌아오고 만 동부군이었다.

“현재 피해는 어떠냐. 심각한 수준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애당초 요정 놈들도 우리와 전면전으로 붙기에는 부담이 있을 거다. 수인들도 없고 이전 전투에서 최정예들을 잃었으니 약간은 두렵기도 하겠지. 무엇보다 시간을 끌면서 왕국 내부에서 무슨 일이 터지기를 기다리려는 속셈을 지니고 있다면 이렇게 지연전을 펼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거야.”

“정리하자면 정공법으로는 돌파는커녕 진입조차 힘들다는 말이군.”

클라우스의 간단한 정리에 페르디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전장을 돌면서 많은 전투를 치른 그이지만, 이렇게 급했던 적이 몇 번 있는가 싶다.

얼른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고 왕국의 상황이 언제까지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수인들과의 전투도 생각한다면 더 많은 피해를 입어서 좋을 게 없다.

무엇보다 아군 측 손해가 커지면 아무리 대륙 통일을 한다고 해도 그걸 유지할 병력이 없는 것이니 겉만 화려하지 실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페르디난트. 이 군의 총사령관은 너야. 당연히 파훼할 방법도 알고 있어야 할 터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적들이 싸워준다면 또 모를까, 이런 식이면 아무리 전투에 잔뼈가 굵은 나라고 해도 방법이 없어. 제대로 붙을 생각이 없는 놈들을 무슨 식으로 끌어들이냔 말이야. 심지어 저쪽은 우리보다 원거리 화력에서 훨씬 앞선다.”

이럴 때 레블랑 가주인 세실리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가 보여준 대마법이 정말 엄청났다고 하던데, 그녀가 곁에 있었다면 최소한 마법 공격에 대해서는 걱정이 좀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세실리 레블랑은 카엘라 전사장과 함께 왕국의 남은 저항 세력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즉 이쪽으로 달려와서 지원을 할 형편도, 시간도 되지 않는다는 것.

‘이러면 결국 결론은 하나겠군.’

페르디난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클라우스를 쳐다보았다.

혼자 다른 곳에 온 것처럼 무척이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남자.

그를 바라보면서 페르디난트는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훌륭한 지휘관은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야하기도 하지만 말이야.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변의 의견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하지.”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거 참 거창하게도 하는군.”

클라우스는 작은 웃음을 터트린 후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페르디난트.”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그래. 현재 요정들은 자신들보다 우리 쪽이 더 다급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거지. 팔자 좋게 화살을 쏘고, 마법 준비하고. 급한 건 자기들이 아니라는 것이야. 하지만 그 반대라면 어떻게 되려나?”

“…무슨 소리지?”

“급한 쪽이 우리가 아니라 반대로 그놈들이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한 번의 전투로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자칫 자신들이 큰 난처함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화살 쏘아 보낼 시간에 공격을 하던 야습을 하던 뭘 하려고 할 거다.”

페르디난트는 클라우스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저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큰 오류가 있다.

현재 요정들 입장에서는 급할 것이 단 하나도 없고, 반대로 아군은 더더욱 급해진다.

큰 피해를 주고 싶은 건 아군이지 적들이 아니란 말이다.

“내 말은 이거다. 굳이 안으로 들어가서 파낼 이유가 없어. 바깥쪽부터 차근차근 갉아먹다 보면 결국 속살이 다 드러난 쪽이 급해져서 튀어나온다는 거지.”

그렇게 말한 클라우스는 서신 한 장을 페르디난트 앞에 내놓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주는 두루마리.

그걸 바라보던 페르디난트는 이게 뭐냐는 눈치로 클라우스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짐승들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와서 말이야.”

“…설마?”

“요정이 문제면, 다른 쪽부터 쳐서 제압하면 그만이거든. 혼자 남은 자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실수를 하게 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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