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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81화 (281/341)

〈 281화 〉 27장 - 분열하고, 갈라져라

1차 대륙 전쟁 당시 자신을 모함하거나 함부로 대했던 귀족 무리들.

클라우스는 그 놈들의 얼굴들을 하나, 하나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억 각인이라는 스킬까지 써서 그 어떤 경우에도 잊지 않도록 조치까지 해두었다.

전쟁 영웅이라는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은 그저 지혜롭고 용감하며 냉혹하면서도 때로는 자비로운 사령관이라고 알고 있을 테지만.

사실 클라우스라는 이의 속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모조리 갚아주고 싶은 복수귀, 조금 더 나쁘게 말하자면 속이 무척 비좁은 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 당신!”

병사들은 오늘도 고생을 해가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도저히 전시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호화스러운 음식을 처먹고 있는 한 귀족.

이놈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저 별명으로만 불러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자신이 돼지 새끼라고 부르던 귀족의 앞에 다다른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대로 놈이 들고 있던 포크를 집어 들어서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꺼흑! 꺽!!”

“돼지 새끼. 하도 살집이 두툼해서 그 두꺼운 지방층 때문에 칼이 안 들어가면 어쩌나 싶었는데 어마나 물컹한 살인지 칼은 고사하고 포크로도 뚫리는군.”

꾸우욱-. 퍼억!-

천천히 포크를 안으로 밀어 넣다가 손바닥으로 쳐서 완전히 쑤셔 박는다.

아무래도 내장을 건드린 것인지, 남자는 끄흑! 하고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 한 채 바닥에 엎어져서 온몸을 떨고 있는 중이었다.

“기억하나? 내가 군량을 요청하자 그쪽 병사들 먹일 것도 없다고 하면서 거부한 거.”

“꺼윽! 그, 그건 어쩔 수 없었던 일…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돼지. 좆같은 소리 듣자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내가 모를 줄 아나? 군량이라고 내어주라는 걸 야금야금 떼어먹어서 정작 전선까지 온 게 얼마 없다는 걸. 전쟁이 끝나자마자 식량 값이 치솟았는데 어떻게 된 게 너희 귀족들 중 다수가 그 식량으로 돈을 번 것일까.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남부가 멀쩡했다고 하지만 경작을 할 이들이 없는데 도대체 그 식량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 아니다. 아니야! 그, 그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번엔 나이프를 든다.

그리고는 부들거리고 있던 손등 위에 그걸 그대로 꽂아준다.

“으아아악! 아아악!!”

“너는 그래도 비명 지를 힘이라도 남아서 이렇게 요란스럽게 죽겠지. 돼지 새끼가 멱 따이는 것처럼. 하지만 1차 대륙 전쟁에서 내 병사들은, 그 식량이 없어서 웅크려 굶어 죽어갔다. 힘이 없어서 숨넘어가는 소리조차 못 내고 죽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혹시라도 내 귀에 거슬리는 비명이 들린다면 주둥이부터 찢어준다.”

손등에서 나이프를 뽑아낸 채 귀족의 볼을 툭툭 건드리는 클라우스.

그에 귀족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질문 하나 한다. 당시 군량을 떼어먹은 놈들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잠깐, 잠깐만. 기억을, 기억을 할 시간이….”

“아무래도 우리가 대화가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야.”

푸욱!-

“끄아아악!!”

“내가 말했잖아.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둥이는 답을 들어야하니 참고 있다지만 나머지는 상관없으니 몇 번이고 찔러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양 손등에서 시뻘건 핏물이 줄줄 새어나온다.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에 흐느끼던 귀족은 결국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불기 시작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귀족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슬슬 치솟기 시작했단다.

그 끔찍한 전쟁의 와중에 평민들만 고생을 하면서 저항을 했고 귀족들은 대부분은 도망을 쳤던 자들이다.

그런 귀족들이 다시 돌아와서 예전의 권위를 지니기는 힘들 것이다.

시기가 더욱 혼란할 텐데 평민들을 꽉 잡아두지 않는다면 위험한 시간이 될 거다.

그런 생각에 귀족들은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위험한 부분을 틀어쥐기로 했다.

군량을 일부 탈취하여 그걸 보관했다가 전쟁 이후 무기로 삼은 것이다.

물적 자원은 물론이고 인적 자원까지 극심하게 소모된 터라 전쟁이 끝나자 오히려 곳곳에서 극심한 물자 부족이 이어졌다.

특히나 식량 부분이 심각했는데, 귀족들은 바로 그 타이밍에 식량을 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평민들을 구제하는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는 방식으로.

“개새끼들. 제 목숨들이 위험할 때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쳐놓고, 너희가 푸짐하게 싸놓은 똥을 왕국의 평민들이 간신히 처리하니 이제는 너희 똥구멍까지 닦게 만들었다. 이거잖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민들이 우리들을….”

“차라리 평민들 손에 의해 끌어내려져서 좀 아프게 두들겨 맞다가 풀려나는 것이 나았을 거다.”

“무, 무슨….”

“너희가 그렇게 생각하고, 또 행동했기에. 지금의 나를 만난 거야.”

그 말과 함께 클라우스의 손에 들려있던 나이프가 귀족의 입 안으로 들어온다.

서늘한 날 부분이 입 안쪽에 닿는 게 느껴지자 직후 벌어질 일을 예상이라도 한 것인 듯 돼지가 절대 안 된다며 이리저리 몸을 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너희 자신들을 원망하도록. 나라는 악마를 만나게 해준 건 과거의 너희니까.”

촤악!-

사람의 입이 양옆으로 쫙 갈라지면서 또 한 번 붉은 핏물이 흘러나온다.

도저히 사람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 괴성이 방안에 가득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의 비명을 듣고도 이곳으로 달려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병사들은 기절했고, 기사들은 이미 모조리 그 자리에서 살해당한 후였다.

“그동안 참 많이도 처먹었지. 욕심을 부리다가 주둥이가 찢어졌다고 생각해. 그러면 뒈지는 길에 조금은 덜 억울할 거야.”

손들고 있던 나이프를 아무 곳에나 대충 내던진 클라우스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것으로 거슬리던 귀족 하나를 또 잡아 죽였다.

벌써 10명이 훨씬 넘어가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또 부족할 뿐이다.

마족들과의 전쟁에서도 버텨낸 왕국이 흔들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에 쓰레기들이, 도둑놈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다 치워내지 않는다면 설사 율리아가 통일을 한다고 해도 불안 요소를 안고 가는 셈이다.

왜 클라우스가 그 온갖 모욕들과 불합리함을 안고서 버텨왔을까.

그건 바로 쓰레기들과 그냥 평범한 돌덩이, 그리고 옥석(玉石) 들을 가려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키엔마이어 후작을 택한 것이고, 그 옆에 있는 프리몬트 백작을 또한 택한 것이다.

반대로 지금 바로 앞에서 꿈틀거리는 돼지나 다른 귀족들을 하나씩, 하나씩 쳐죽이는 것이고.

“후으읍.”

밖으로 나온 클라우스는 깊은 밤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누군가는 복수가 그저 허망한 것이라고, 본인만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딴 개소리 들어줄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

복수가 괴롭다고? 나를 힘들게 할 뿐이라고? 그러면 복수를 한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복수를 못 한 놈이나 그딴 정신 승리 같은 소리를 지껄일 뿐이다.

진정한 복수를 하고 난다면,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아주 철저하게 파멸시키고.

그 대상이 그렇게나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빼앗고 부서트린 다음.

마침내 하나뿐인 목숨까지 가장 비참한 수준으로 빼앗는다면.

아마도 살면서 가장 기쁘고 쾌감이 넘치는 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복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다.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느니,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느니 그딴 개소리들을 클라우스는 단 하나도 믿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 많은 귀족들을 죽여 없앨 것이다,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척들과 가신들까지 모조리 잡아 죽여서 목을 자르고 창대에 꿰어 한나절을 들고 다녀줄 것이다.

‘내 분노는 이제야 겨우 시작이다. 전방으로 끌려나온 떨거지들을 전부 제거한 후. 중앙에 틀어박혀 제 성이나 지키고 있을 귀족 회의 놈들도 모조리 죽여주마.’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한 번 요새의 벽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아직 율리아와 약속한 시간에서 여유가 제법 있으니 열 놈은 더 죽여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편, 클라우스가 요새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지휘부는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학살하자 자연스레 요새가 통째로 무너지기 시작한 곳이 생겨났다.

아무리 감추려고 한다고 해도 수만이 전사한 거대한 싸움을 다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왕국을 돕기 위해 급하게 온 수인들과 요정들이 전멸했다는 소문이 점점 퍼져나갔다.

원래는 요제프 대공이 보낸 전령들이 어차피 또 다른 지원이 도착할 것이고, 장기전으로 끌고 가야 우리도 유리하니 조금만 더 버티라는 소식들을 곳곳에 전했다.

하지만 그 모든 소식들을 전해야 할 전령들은 이미 죄다 시체가 되었다.

누구는 플랑슈에게, 또 다른 누구는 리르에게, 그리고 나머지 전령들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족 정찰병들이나 붉은 독거미 측의 이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단 한 명도 자신들의 목표 지점까지 향하지 못 했고, 그 어떤 공식 명령도 전해지지 못 했다.

“정말로, 정말로 후방은 물론이고 중앙 지역까지 죄다 넘어간 거 아닙니까?”

“조용! 조용들 하란 말이다!!”

클라우스가 친히 방문한 요새는 지휘부가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가 모든 요새를 일일이 돈 것은 아니니 당연히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곳도 있다.

그리고 그 요새를 지키고 있는 귀족들과 기사들은 초조함에 절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지금의 이 모든 전략은 후방에서 보급이 잘 전해지고, 원군이 제때에 맞춰 도착한다는 전제 조건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적이 후방을 기습하여 모든 보급이 끊어지고 그렇게나 믿고 있던 연합이 대패하여 생존자조차 거의 없다는 그런 비극을 맞이하는 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미 남부의 요새들이 속속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또 다른 소문에 의하면 중앙 지역의 마족들이 움직이자 순식간에 왕성 바로 근처까지 모든 방어가 뚫렸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 모든 지원이 끊어지고 남부만 남게 된다면 우리로서는 앞뒤에서 동시에 적들을 막아내야 합니다. 이럴 바에 차라리 요새를 버리고 최대한 후방으로 이동하는 게….”

그들의 회의는 오래 가지 못 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무척이나 급박한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크, 큰일! 큰일 났습니다!! 지, 지금 요새 바깥에 배신자 클라우스가 나타났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그 자는 현재 키엔마이어 후작령 근처에 있다고 했다. 그 어떤 병력의 움직임도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게 말이 되냐!”

“아닙니다. 군대를 이끌고 온 게 아닙니다. 혼자, 혼자 찾아왔는데… 아군 병사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 끝난 전쟁이니 애꿎은 목슴을 버리지 말고 투항하라면서….”

“뭐라고?!”

이런 아슬아슬한 시기에 병사들의 마음이 흔들려서는 절대 안 된다.

조그마한 바람도 순식간에 거대한 태풍이 되어서 자신들에게 휘몰아칠 수 있다.

바깥에 있는 자가 정말 클라우스이든, 아니면 그냥 사기꾼이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들의 형세가 불리하다 못 해 최악이라는 것.

그리고 여태 자신들이 병사들을 함부로 대해왔다는 것이었다.

다급한 발걸음으로 지휘부 인사들이 막 바깥으로 나선 순간.

그들은 뭔가 잘못 돌아가도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

“….”

분명 귀족과 기사들이 자신들 앞에 나타났는데도 병사들이 그 어떤 예도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지도,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선 채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거기에서 뭔가 싸늘한 것이 느껴진 지휘부 인사들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이렇게 살 순 없지. 그리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지.”

그 말을 시작으로, 병사들의 창칼이 마족이 아닌 귀족들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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