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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77화 (277/341)

〈 277화 〉 27장 - 분열하고, 갈라져라

연합군의 패배 소식은 빠르게 왕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믿었던 요정과 수인 연합군이 패배했다는 것에, 심지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고 물러선 수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멸’ 당했다는 부분은 모든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특히나 그들이 율리아와 클라우스를 제거해줄거라고 믿고 있던 귀족들.

그리고 전방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던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았다.

이후 한 가지 이상한 소식이 들어왔는데, 마왕 측이 포로로 붙잡은 요정들을 갑자기 풀어줬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

원래는 포로를 내보내기 전 협상을 한다든가 몸값이라도 요구해야 정상이다.

그들 하나, 하나가 강력한 전사이니 당연히 자신들도 그들을 풀어주는 만큼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왕은 그런 것 하나 없이, 언질 하나 없이 요정 포로 중 일부를 조건 없이 풀어줬다.

그들마저도 얼떨떨해 했다는데 고향으로 잘들 돌아가라며 말까지 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기만 압수했을 뿐이지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돌려보내 준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포로들에게 과연 그런 대접을 했는가? 절대 아니다.

일단 마왕은 투항을 해놓고도 오만불손하다는 이유로 수인 중 일부를 그대로 처형했다.

또한 항복한 요정들 중 몇몇이 다른 인원들을 협박하며 절대 입을 열라고 하지 말자 그들 역시 손수 팔다리를 끊어주면서 확실히 알려주었다.

지금 너희들이 누구 앞에 서있는지, 누구에게 항복했는지.

그 부분을 잘 알고 그 대단하다는 종족답게 잘 처신하라고 말이다.

* * * * * * * * * *

“….”

“나타샤님. 이제 어쩝니까? 벨라루스 가문으로서는 입장이 매우 난처합니다.”

“그러겠죠. 우리 요정들만 풀려났다니까.”

“다른 가문들에서 정확하게 해명을 하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주님은요?”

“그 일 때문에 무척 심기가 불편하시답니다.”

한 요정의 말을 들으면서 나타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에서의 평원 전투에서 요정 측이 보낸 병사들의 거의 전멸 수준에 이르렀다.

모두가 하나 같이 대단한 자들이었기에 충격은 더더욱 컸고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희소식인 것 같으면서 또 난감한 일이 벌어졌는데.

다름 아닌 마왕 율리아가 요정 측 인원들 중 몇몇을 아무 조건 없이 석방한 것이다.

아무나 뽑아서 자비를 베풀겠다고 하며 보내준 것이라면 차라리 낫겠다.

허나 마왕은 그런 것이 아니라, ‘벨라루스’ 의 요정들만 골라내서 그 어떤 신체적 위해도 가하지 않고 정보를 묻거나 하는 일도 하지 않은 채, 심지어 말까지 돌려주고 약간의 식량까지 들려주면서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라 말한 것이다.

그 소식이 전해지면서 요정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제 부모, 형제, 친구가 전장에서 차디찬 시체가 된 것도 문제이지만.

그들 중 몇몇이 그저 벨라루스의 요정이라는 이유로 조건 없이 풀려났다.

이런 식이면 벨라루스 가문과 마왕 사이에 뭔가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현재 벨라루스에서 꽤나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는 나타샤 벨라루스는 아카데미에서 마왕과 꽤나 친분을 쌓았다는 사실까지 있다.

- 어떻게 된 것이냐! 설마 요정이 마족과 손이라도 잡은 거냐! -

- 벨라루스만 콕 집어서 돌려보냈다,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

- 설마 이전 전투에서도 벨라루스 쪽 요정들은 제대로 싸우지 않은 게 아닌가! -

별의별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고 순식간에 여론이 이상하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나타샤가 마왕과 친분이 있다는 건 이전부터 제기되고 있던 문제.

여태까지는 그녀가 자금을 이용해서 여기저기로 손을 뻗고, 알게 모르게 벨라루스 내부를 반 이상 장악했기에 모두가 쉬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고 모두가 민감해진 지금, 이런 부분은 이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결국 나타샤는 벨라루스의 가주 앞으로까지 불려가서 추궁을 당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냐. 왜 마왕, 그 년이 우리 가문 요정들만 풀어준 거냐.”

“그저 손을 한 번 내미는 거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손을 잡는다면 기회를 주겠다고.”

“멍청한 소리! 요정이 마족과 손을 잡는다? 심지어 그게 손을 잡으라는 말이겠느냐? 고개를 숙이고 제 발에 입술이라도 맞추라는 것이겠지!”

“우리 가문의 요정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해도 입히지 않고 풀어줬어요. 그걸로 된 거 아닌가요? 가주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 고마워해도 될 것 같은데요.”

“어리석은 소리 마라! 그러면 다른 가문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느냐! 당장 우리에게 배신자라고 온갖 오명을 뒤집어씌울 것이 분명한데!”

예전에는 마법조차 제대로 쓰지 못 해서 가문의 수치라고도 여겨졌던 나타샤 벨라루스.

그런 요정이 갑자기 실력이 껑충 뛰었고 거기에 어마무시한 자금력까지 지니게 되었다.

나타샤의 권력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하면서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게 벨라루스에도 이득이 되었던 터라 여태까지는 가주인 요정 여인은 침묵하고 또 침묵했다.

‘오판이었어! 그냥 저 녀석은 바로 잘라내야 했거늘!’

마력을 쓰지 못 한다는 것부터 불길한 아이였다.

벨라루스의 피를 이은 녀석이라 일단은 가문에 들였고 또 그 이름을 쓰는 걸 허락했지만.

아카데미를 다니고 나서부터 완전히 다른 요정이 되어버렸다.

마치 뭔가 자신은 알지 못 하는 묘한 이상향을 품고 있는 자의 눈빛.

나타샤 벨라루스의 눈동자는 그렇게 기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주님의 말씀은,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무섭다는 거군요.”

“당연한 말이다! 이 세상은 우리 가문만 있는 게 아니야! 당장 다른 가문들이 연합해서 우리들을 압박한다면 그 때는….”

“죄송합니다만, 그런 일은 없을 거랍니다.”

짝짝-.

나타샤가 가볍게 박수를 치자, 거칠게 가주실의 문이 열리고 요정들이 뛰어 들어온다.

모두가 완전 무장을 한 채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을 하고 있는데.

그 눈빛이 향하는 곳은 나타샤가 아닌 바로 벨라루스의 가주를 향하고 있었다.

“무, 무슨 짓이냐. 나타샤 벨라루스!”

“뭐겠어요. 가주 자리를 계승 중입니다.”

“무슨?!”

“마왕께서, 그리고 그 분께서 우리 가문에게만 특별히 자비를 내리시고, 언제든 손만 잡는다면 다른 가문들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번영을 누리게 해주겠다는데. 그까짓 시선 좀 받는 게 무서워서 그 길을 포기하려는 자가, 어찌 가주라는 직함을 달 수 있겠어요.”

“이런 미친 것이! 밖에 아무도 없느냐! 당장 이 미친년을 잡아다가….”

“소용없어. 너도 알잖아? 이 벨라루스 가문에서 나를 능가할 수 있는 무력을 지닌 자는 단 하나도 없다는 걸.”

덥석!-

순식간에 가주의 멱살을 잡아챈 나타샤가 그녀를 허공으로 들어올린다.

켁켁거리며 거세게 저항해보는 가주였지만, 이미 나타샤의 힘은 가주조차 함부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큭! 켁! 머, 멍청한 것. 당장 벨라루스의 여러 요정들이, 케헥! 너를 받아들일 것 같으냐.”

“생각해 봐. 네 명령으로 전쟁에 동원된 우리 가문의 요정들. 그 중 생존자가 멀쩡히 돌아오고 있대. 마왕의 자비로 인해서. 그게 다른 요정들 눈에는 아주 마음에 안 들겠지. 하지만 그들의 가족, 친구들은 오히려 좋아할걸?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나를 지지하지 않을까?”

“크흑! 큭!”

이미 벨라루스의 반 이상을 손아귀에 넣은 자신이다.

다른 가문들의 요정들은 전사하거나 포로로 붙잡혀 있는 마당에.

백에 달하는 벨라루스 가문의 요정들만 돌아온다면 전력상에서도 오히려 우위다.

벨라루스의 가주를 내팽겨 친 나타샤는 본격적으로 벨라루스를 손에 넣기 시작했다.

가주를 감금하고 대신 그 자리에 앉아 다른 가문들의 험한 말들에 이렇게 대응했다.

- 불만 있다면 가서 빌어라. 너희 가문 요정들도 살려달라고. -

당장 가문끼리의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었다.

그 대답에 광분한 요정들도 생겨났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 정말 내전을 벌인다면 오히려 마족들에게만 좋은 일이다.

연합군이 박살난 이후 다시 한 번 군을 정비하려면 시간과 돈, 그리고 인력이 필요한데.

그걸 내부 분열에 다 써버린다면 그 때는 정말 희망이 없었다.

해서 요정들은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가기로 했다.

벨라루스가 여전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그냥 지금처럼 서로가 힘을 합쳐서 다시 한 번 마왕에게 대항하자고 뜻을 전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요정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부수는 것.

최대한 좋게 풀이한다고 해도 이 정도가 한계인 수준이었다.

- 개 같은 소리 말고, 이제부터 우리 벨라루스는 독자 노선을 걷는다. 따를 자는 따르고, 반발할 자는 덤비도록. -

새로이 가주 자리에 오른 나타샤 벨라루스는 내부 정리를 끝낸 후.

자신들은 더는 요정 측의 의견을 따르는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의논하고 결정해서 움직이겠다고 그 뜻을 밝혔다.

당연히 온갖 가문에서 게거품을 물었지만, 실력으로서 이제는 요정 사회에서도 손에 꼽힐 수준의 강자가 된 나타샤이다.

거기에 자금력으로 여태껏 이곳저곳에 손을 써두었기에 제 목줄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잘 아는 이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해버렸다.

분열이 또 다른 분열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조각난 이들끼리 또 싸우는 상황.

최악의 패전을 당한 이후 율리아가 보인 자비로운 것 같은 행보로 인해서.

오히려 요정 사회는 갈라지고 또 갈라지는, 여태껏 각 가문의 균형이 맞춰졌기에 가능했던 부분들이 천천히 무너져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분열은 단순히 요정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절대 아니었다.

가장 크게 요동을 치는 곳은 역시나 인간 왕국.

여태껏 믿고 있었던 연합군이 전멸을 당했으니 이제 믿을 곳이 아무데도 없다.

이미 키엔마이어 후작령과 그 인근의 다른 귀족들은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보급선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그나마 남은 후방 병력들은 공포에 떨면서 제 성벽 너머로 나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분명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이전 전쟁에서도 지금과 비슷하게 남부를 틀어막고 중앙에서 교전만 벌인다면.

결국 마족들은 또 다시 제풀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후, 후방에서. 후방에서 적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헛소문이다. 믿지 마라. 흔들리면 안 된다.”

“하지만….”

“어리석기는! 우리가 흔들리면 빌어먹을 낮은 것들까지 동요한단 말이다! 흔들려도 티를 내지 마라. 알려서 좋을 게 있고 좋지 않은 게 있는 걸 모르나!!”

각 요새의 지휘관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흉흉한 소문들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급이 적어서 병사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 가는데 그렇게 기다리라고 했던 원군이 처참하게 무너졌다는 소식까지 접한다면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이 방어선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무너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나마 남부의 마족들이 대대적인 공세를 아직 퍼붓고 있지 않아서.

동시에 중앙 지역의 마족들이 잠시 진격을 멈춰서 버티고는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상황이 점점 더 최악으로 번져갈 무렵.

마침내 남부 방어선의 귀퉁이가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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