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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76화 (276/341)

〈 276화 〉 26장 - 들불

카엘라는 이를 악물고서 요정 기병들을 모조리 쳐죽이고 있었다.

동부에서부터 따라온 마족 기병들은 물론 훌륭한 전사들이다.

수인 측에서도 강자에 속하는 카엘라 역시 그 부분을 인정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들에게 맞서는 요정 측 기병들 역시 강자들이라는 부분이었다.

콰앙! 쾅!- 히이잉!!-

말과 말이 부딪치고, 기수가 들고 있던 병장기들이 깨지고 부서진다.

시퍼런 예기가 한 번 번뜩일 때마다 마족이 스러지고 요정이 피를 토했다.

얼마나 강한 마족이든, 얼마나 고귀한 요정이든 전장에서는 모두가 공평했다.

적보다 강하면 이기고, 적보다 약하면 그저 전장의 시체로 남을 뿐이다.

“몰아붙여라! 놈들을 전장에서 완전히 이탈하게 만들어야 한다!!”

클라우스가 자신에게 내놓은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카엘라는 피를 토하듯 외쳤다.

제 사령관이 자신에게 내린 명은 아군이 먼저 지치기 전에 적들 기병을 모조리 섬멸하여 격퇴한 후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 뒤를 포위하는 것.

듣기만 하면 무척이나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해도 단순히 계획이 어그러지는 수준이 아니라 대패를 당할 수도 있다.

당장 카엘라가 제때 도착하지 못 한다면 키엔마이어 후작령의 병사들은 그 사나운 수인 전사들과 날렵한 요정 병사들에게 떼죽음을 당할 것이다.

반대로 카엘라가 제때 도착한다고 해도 그 전에 아군 진형이 붕괴되면 마족 기병들로서는 단단히 무장을 갖추고 있는 보병 진형으로 뛰어드는 꼴이 된다.

무엇이 되었든 치명적인 패배로 이어지는 지름길들이다.

모든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만 클라우스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다른 이들이라면 걱정을 했겠지만, 나는 다르다.’

클라우스와 함께 전장을 뒹군 것만 수 년이다.

그동안 그의 옆에서 부관으로 지내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전략까지 기어코 성공시키고야 마는 제 사령관을 눈에 담은 카엘라다.

이번에도 모든 것이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조건 적들을 섬멸하고 전장으로 돌아와 적들을 도륙하는 것이다.

“크아아아아!!”

카엘라는 더는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그대로 말 위에서 튀어올랐다.

그리고 한창 기병들을 지휘하고 있는 요정 측 기병 지휘관에게 달려들었고, 곧 그가 타고 있던 말의 두 앞다리를 일격에 잘라버렸다.

푸확!! 히잉!!-

말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요정 측 기병지휘관 역시 바닥에 처박혔다.

그나마 요정이기에 낙마하기 직전 어떻게 몸을 날려 가벼운 찰과상만 입는 수준에 그쳤다.

인간이었다면 열에 아홉은 그대로 목이 꺾여 그 자리에서 절명했을 것이 확실했다.

“크윽!”

하지만 그것이 요정 측 지휘관의 마지막 행운이었다.

말 위에서 끌어내려진 상태로 카엘라에게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머지않아서 요정 지휘관의 목을 베어내는 데에 성공한 카엘라는 다시금 제 말에 올라서 그 머리통을 흔들면서 괴성을 질러댔다.

“너희들의 지휘관 목이 여기 있다! 너희들도 모조리 목없는 귀신을 만들어주마!!”

제 지휘관의 전사 소식은 자연스레 사기의 저하로.

반대로 적장의 죽음은 아군에게는 엄청난 사기 진작을 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수적 열세에서 불구하고 나름 잘 버티던 요정 기병들은 제 지휘관이 맥도 못 추리고 목이 잘린 귀신이 되었다는 소식에 슬슬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일단 한 번 포위되면 달아날 수가 없는 보병들과는 다르게.

그래도 기병들은 마지막 한 번 정도의 기회는 더 잡을 수 있다.

점점 아군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자 결국 이탈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전장에서는 병사 하나의 돌발 행동도 전체로 번질 수 있음이다.

하물며 그 고귀하다는 요정 기병들이 꽁무니를 빼니 자연스레 다른 이들 역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대충 추격을 하다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식이면 적들 역시 재집결을 하여 복귀할 확률이 매우 높다.

기껏 뒤를 때리고 있는데 반대로 적 기병들이 다시 뒤를 잡는다면 역으로 마족 기병들은 포위될 수 있었다.

해서 카엘라는 모든 기병들에게 추격을 명했다.

전멸을 시킬 수는 없어도 최대한 먼 곳까지, 전속력으로 도망치게 만들어서 말과 기병 모두가 함께 싸울 수 없도록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아군들의 체력 분배도 중요하니만큼 이것 역시 무척 중요한 부분이었다.

“후퇴! 후퇴!!”

요정 기병들이 조그마한 냇가까지 건너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난다.

그제야 카엘라는 그 자리에 정지한 후 다시금 기수를 돌릴 것을 명했다.

이제 다시금 전속력으로 복귀하여 한창 후방이 노출된 적 본대를 찌른다.

중심을 돌파하기 위해 한가운데에 힘을 집중한 그들로서는 후방이 비교적 약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서 측면에서부터 공격을 퍼붓는다면 자연스레 군대 전체가 안으로 몰리게 된다.

공간이 없는 진형은 그냥 짐덩이들로 가득 찬 창고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카엘라는 더욱 더 속도를 내면서 아군 기병들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와 마족 기병들이 전장으로 복귀했을 때.

때마침 클라우스의 고참병들은 측면을 완전히 밀어붙이면서 적들을 가운데에 몰아넣는 것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뒤, 뒤! 뒤에서 온다!”

“뒤부터 막아! 뒤부터 막으란 말이야!”

“이런 빌어먹을!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자리 없어!”

2만이 넘어가는 병력이 좁은 공간에 말 그대로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창을 찌르고 칼을 휘두르며 방패를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여전히 수인들은 중앙을 노리려고 하고, 요정들은 측면과 후방에 방어선을 쌓으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연합군 진형이 더욱 엉망이 되었다.

바로 그 때만을 노렸던 클라우스는 또 다른 수인 전사 하나를 베어 넘긴 후 진군을 명했다.

그러자 여태껏 버티기에만 집중하던 중앙의 키엔마이어 병사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수인 전사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크윽! 으으윽!”

“밀리지 마! 밀리지 마라! 다리에 힘주고 버텨! 명예로운 전사로서 인간들에게 질 수는 없는 노릇이란 말이다!!”

육체적인 능력은 당연히 수인들과 요정 측이 인간 측을 앞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로가 ‘동일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처럼 사방에서 모여 들어 비좁은 틈 사이로 겨우 상체만 움직이는 연합군과.

반대로 무척이나 자유로운 상태로 병장기까지 쉽게 휘두르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가는 인간들.

이들 중에 과연 누가 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결국 왕국의 마지막 희망이자 서부 연합의 자랑이었던 요정 및 수인 연합군은 왕국의 평원 위에서 아주 멋지게 포위되고 말았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최후를 직감한 그들은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많은 공격을 가하여 활로를 모색한다거나, 그게 아니더라고 최소한 더 많은 피해를 입히고 죽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클라우스 쪽으로서는 그런 소모전을 받아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여유가 있는 건 이쪽이고 포위를 한 것도 이쪽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나씩 확실하게 죽여나가면서 진입하면 그만이다.

“끄륵! 끄흑! 꺼헉!!”

“크아악! 사, 살려줘! 살려줘!!”

앙 측면은 1차 대륙 전쟁의 고참병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두들기고.

후방에는 이미 위치에서부터 이길 수 없는 기병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전방에는 창과 검을 휘두르면서 병사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클라우스가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이제는 이길 수 없다, 살아 돌아갈 방법이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연합군들은 오히려 담담하게 최후를 받아들였다.

물론 손에서 무기를 놓고 투항한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제 앞에 있는 전사가 싸우다가 죽으면 다른 요정이 그 자리를 채웠고.

그 요정마저 죽으면 다시금 다른 이가 그 자리를 채우며 싸우고 또 싸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후, 그나마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왕국의 평원은.

요정들과 수인들이 흘린 피로 아주 붉게 물든 상태가 되었다.

사방에 시체가 넘쳐났고 요정 및 수인 연합은 쉽사리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여태껏 공을 들여 키운 전력이 단 한 번의 전투로 증발한 것이다.

무엇보다 포위 및 섬멸전에 들어가는데 있어 그 어떤 실수도 없었다.

포위망은 완벽했고, 적들은 도망칠 곳이 없었으며 가능한 일은 오직 싸우다가 죽거나 항복하는 것 외에 없었다.

수많은 요정들과 수인들이 그 자리에서 피의 제물로 한꺼번에 사라졌다.

흘러내린 피로 미끄러워 발을 디디기 어려웠고 시체가 야트막한 언덕을 이루어 때 아닌 고지전이 벌어지기도 할 정도였다.

“투, 투항하겠습니다.”

그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분명히 있다.

합하여 약 2천에 달하는 포로가 발생했는데, 이 포로들을 어찌 하느냐가 문제였다.

죽이자니 그건 조금 거슬리는 짓이고, 데리고 다니자니 당장 2천이 넘는 자들을 먹이고 재우는 부분이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놓아주자니 이들 모두가 다시 적이 되어 돌아올 터인데, 함부로 그럴 수도 없다.

도대체 어찌 해야 하나 갈등하던 율리아는, 지휘부 안으로 클라우스가 들어서자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왔군요, 클라우스. 몸은 좀 괜찮아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아무 이상 없어요.”

그리 말한 클라우스는 최대한 멀끔해진 상태로 율리아의 앞에 살짝 무릎을 꿇었다.

이후 제 여인의 배를 조심스레 쓰다듬다가 입술을 맞춰주며 자신이 돌아왔음을, 자신의 아이에게 손수 알려주었다.

“…아직 듣지도 못 하는 아이에요.”

“사랑은 아주 조그마한 씨앗에도 전해지는 법이랍니다. 그보다 뭔가 굉장히 급한 부분이 있는 모양인데. 역시 포로에 관한 문제겠죠?”

“…네. 이번에 잡은 그 포로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에요. 풀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 끌고 다닐 수도 없고.”

“최고의 방법은 역시나 한 번에 다 죽이는 겁니다만 그건 별로겠죠.”

“포로들을 학살하면 그 반발 작용이 너무 심할 거예요. 나중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오로 고스란히 돌아올 게 뻔해요.”

“흐음.”

그 부분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던 클라우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을 튕긴다.

“율리아, 내게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요?”

“네. 큰 반발심을 사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적의 전력을 일부 되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만 하면 역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입니다.”

“그게 도대체 뭔데 그런 말을 하는 건데요!”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클라우스의 곁으로 와락 붙는 율리아.

그에 클라우스는 킥킥 웃음을 흘리면서 마왕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지금 즉시 병사들에게 일러서 포로들을 나누라고 하세요.”

“포로들을 나누라고요?”

“네. 요정은 요정끼리, 수인은 수인끼리. 그리고 이후 요정 포로들은 다시 가문 별로 또 나누세요. 특히나 벨라루스, 그쪽 가문 출신의 요정들은 하나라도 빼트리지 말고요.”

“…아하.”

클라우스의 말을 듣자마자 율리아는 그가 무슨 꿍꿍이를 지녔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요정과 수인 포로를 나누고, 또 요정에서는 벨라루스를 직접 언급하는지.

그 부분을 생각해보면 그가 노리고 있는 부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수인과 요정 연합군을 박살낸 마왕 측이 전투에서 붙잡은 포로 일부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냥 풀어주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마왕이 그런 짓을 벌였는가, 그 부분은 아직 확실한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왕에 의해 풀려난 포로들의 공통점이 다름 아닌 요정이라는 것.

그리고 그 요정 전부가 벨라루스라는 유력한 가문에 속해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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