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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68화 (268/341)

〈 268화 〉 26장 - 들불

서부 연합이 나름 준비는 했었다, 다만 그 준비가 클라우스 입장에서는 나뭇가지 하나 부러트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을 뿐이다.

말했다시피 병사들이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지휘부의 무능은 채울 수 없는 약점이다.

사자가 지휘하는 양 떼가 양이 지휘하는 사자 무리보다 강하다고 했다.

하물며 이곳은 그나마 준비가 되어 있는 남부나 중앙 지역도 아니고, 비교적 관심이 덜한 북부,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후방 지역들이다.

동부 마족들이 이곳을 공격할 거라고는 미처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대삼림을 돌파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고, 바로 근처에 수인들과 요정들의 지원군이 도착할 수도 있으니 조금만 삐끗해도 뒤로는 대삼림 앞으로는 적을 두고 싸워야 한다.

자칫 전멸을 할 수도 있기에 서부 연합 측도, 그리고 동부 측도 대삼림을 단순히 방벽으로 생각했기 침투로나 진입로로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확실히 나도 처음에는 자살 행위라고 생각했지. 처음에는 완전 대실패였고.’

후방을 휘젓기 위해서는 기동력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그 기동력을 가장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전력은 단연코 기병들이다.

하지만 그 기병들도 아무 때나 원한다고 막 써먹을 수 있는 전력은 절대 아니다.

보병들은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극한의 환경에서도 제법 잘 버틸 수가 있다.

비전투 손실은 절대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군량이 없는 순간에도 주변의 모든 것을 이용하여 버티고 버텨서 끝내 생존하거나 전투를 치를 수도 있다.

발은 느리지만 말들이 오고 다니기 부적합한 곳도 약간의 고생을 하면서 갈 수도 있다.

그에 반해서 기병들, 특히 군마들은 아무렇게나 막 끌고 다니는 게 아니다.

몇몇 문외한들이 큰 착각을 하는 것 중에 말먹이 부분이 있다.

대충 들판에 풀어놓으면 알아서 풀을 뜯어먹고 힘을 낼 거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그건 이쪽 기준으로 보자면 들판에 던져두고 밀가루도 아닌 밀들을 그냥 던져두고서 알아서 먹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 아무 풀이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런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군마들이 풀을 아예 못 먹는 건 아니지. 하지만 미리 준비된 마초는 훨씬 더 소화가 용이하고 그럼으로 인해 말들이 더 잘 달리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무엇보다 그걸 먹고 자라난 말들은 풀을 먹기를 거부하고 때에 따라서는 땅을 뒤집고 풀뿌리를 찾는 것도 버거워 해.’

말 먹이가 없으면 말들은 금방 지치고, 말이 지치면 기병들도 전력이 급감한다.

그 이후로는 그냥 짐 덩이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오고 가는,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

심지어 대삼림을 돌파할 때는 마초로 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고 길도 좁으며 몬스터들로 인해 말들이 전투를 하기도 전에 지친다거나 상할 위험성이 너무 높다.

그런 부분들을 동, 서가 모두 잘 알고 있기에 대삼림을 돌파하는 것, 그리고 그곳을 지나칠 때 기병을 이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그 일을 해냈다. 고이고 고여 썩기 직전인 내가 이 정도도 못 해낼까.’

대삼림에서 길을 찾아내는 것은 그야말로 머리통이 깨지는 수준의 경험.

거기에 기어코 얻어낸 스킬들을 합쳐 완벽하게 방법을 취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기병 부분 역시, 정확히는 군마에 대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동부의 끝자락에 체구는 다른 군마들보다 체구는 조금 작지만 척박한 지역에서 알아서 살아가던 말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다른 군마들과는 다르게 며칠을 굶어도 이동이 가능하고 먹이 투정을 부리지도 않고.

무엇보다 척박한 곳에서 자란지 겁이 많지 않았다.

엘세 가문의 페르디난트와 팔라티나트의 에슐리를 모두 끌어들인 것도 그 이유가 작용했는데 그 지역의 마족 귀족들이 엘세 가문, 팔라티나트 가문과 친분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반란을 제압하자마자 바로 그들을 이용하여 서부로 밀고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혹은 마왕의 명을 통해서 특별히 군마들과 기수들을 징집해냈다.

조금은 강압적인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동부의 운명이 걸린 전쟁이다.

더해서 전공을 세울 수 있다는 건 마족들 입장에서 가장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단하네. 이런 자들이 있었음을 왜 몰랐을까.”

이번에 새로이 합류한 동부 끄트머리의 기병들을 바라보면서.

마왕 율리아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듯 한 자세를 보였다.

명색이 동부를 지배하는 왕인데 그 안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몰랐다는 게 무척이나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곳이 자신이 원래 살던 세상마냥 과학 기술이 극한으로 발달한 곳도 아니고.

여전히 지방은 왕의 힘보다는 귀족들의 입김이 아직 강한 수준이다.

그런 세계에서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왕이 알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전하. 그런 걱정은 이 다음 전투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러네. 주의하도록 하지, 클라우스.”

북쪽에서 순식간에 밀고 내려온 클라우스와 율리아, 카엘라와 세실리, 플랑슈.

그리고 휘하의 기병들은 미친 듯이 왕국의 후방을 휘저으면서 남하했다.

특히 계속 전선으로 향하고 있던 보급 부대를 털어먹었는데 입수한 보급품이 어찌나 많았는지 다 약탈을 하지 못 해 나머지는 전부 태워야 할 정도였다.

꼭 이길 필요는 없다, 단순히 보급로만 불안정하게 만들어도 충분하다.

보급대가 몇 번 크게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서부 연합은 더 많은 호위부대를 붙여서 이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식이면 당연히 속도가 늦어지게 된다.

그리고 보급대의 지체는 당연히 전방 부대에게는 극도의 불안감과 분노로 직결되게 된다.

원래라면 내부로 휘젓고 들어오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병력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왕국의 귀족들 중 후방에 남아있는 자들은 대부분이 1차 대륙 전쟁 때 그 어떤 경험도 없는, 말 그대로 떨거지들과 다름이 없는 자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어쩌면 유일하게 적들을 막아설 수 있는 시간에 자신들의 아름다운 성과 귀중한 물건들이 당하기라도 할까 유일하게 남은 병력들을 방어에 전념시켰다.

“분명 우리 성들을 약탈할 것이다! 성벽을 나서지 말고 더욱 굳건히 지켜라!”

“이래서는 안 됩니다! 적들은 지금 사치품을 노리고 들어온 도적들이 아닙니다. 전방 부대를 뒤흔들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란 말입니다! 이대로 한 곳에 들어앉아서 방어만 하면 적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입니다!!”

그나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이들, 귀족들 밑에서 복무하던 중간급 지휘관들이 간곡하게 요격을 요청했으나 모두 묵살되었다.

아마 이전에 먼저 클라우스를 잡아 죽이겠다고 나섰던 몇몇 귀족과 그 군대들이 말 그대로 모조리 휩쓸려 한꺼번에 피의 제물로 바쳐졌던 부분이 크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멍청한 소리들 말고 성이나 제대로 지키란 말이다! 어차피 적들은 우리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다면 결국 제풀에 지쳐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 하느냔 말이다!!”

어찌 보면 귀족들의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지구전 전법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적들을 자국이라는 망망대해에 가둬두고 실컷 날뛰게 하면서도 결국 저들 스스로 조금씩 말라 죽어가는 것을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클라우스가 말한 대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족속들.

창조주의 운명대로 그저 자신들이 망하는 지옥행 급행열차에 탑승한 자들다웠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그 전법이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 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전법은 아국으로 들어온 적들이 그 어떤 보급이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때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저들을 보십쇼. 우리 보급대를 모조리 박살내면서 물품이 넘쳐나 일부는 탈취하고 또 일부는 아예 불태우고 있습니다. 저 보급품들이 당장 전방에서 버티고 있는 군에 들어가야 한단 말입니다! 대문 앞에 적들이 몰려와서 문을 두들기고 있는데 안에서 날뛰고 있는 도적떼를 놓아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참지 못 한 일부 세력들은 독단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나섰다.

그리고 서로가 연합하여 어떻게든 후방으로 침입한 적들을 막아내려고 애썼다.

합리적인 방안, 그들로서는 취할 수 있는 최선 중의 최선이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전황이 충분히 뒤집어질 수 있었겠지만, 하필이면 상대방이 클라우스였다.

서부, 그것도 특히 왕국 쪽은 손바닥을 보듯 훤히 알고 있다.

더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벌어지는 것까지 꿰고 있다.

왕국군이 아무리 매복을 하고, 병력을 모으고, 혹은 분산시켜서 막아내려고 해도.

마왕의 군대가 한 번 몰아치면 모든 게 그대로 휩쓸려나갔다.

슈우우우웅!!-

한창 마왕의 군대로 돌격하던 왕국군의 머리 위로 시퍼런 마력들이 줄기줄기 떨어져 내린다.

다급히 군에 소속되어 있던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전개했으나 그들이 펼친 마법들 중 절반 이상이 파훼되면서 오히려 그들까지 피해를 입고 말았다.

푸히이이힝!!-

“아아악!!”

하늘에서 시퍼런 마력들이 번쩍일 때마다 달려들던 기사들이 모조리 떨어져 내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세실리가 마력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자 다음으로 나서는 것은 카엘라와 한 무리의 기병들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든 그들은 이미 전열이 무너진 왕국군을 순식간에 몰아붙이기 시작했는데 특히 카엘라 주변으로 피바람이 몰아쳤다.

“꺽!”

“끄륵!”

왕국이 자랑하던 기사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돌격력도 잃은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그 자리에서 싸우다가 하나씩 하나씩 맹수에게 사냥 당하는 미래가 전부였다.

“크윽!”

자신의 주인인 귀족마저 버리고 이곳까지 내달린 왕국의 실력자, 크렘은 이를 악물었다.

이곳만 어떻게 사수한다면 희망이 있었는데, 분명 내일 중으로 지원군이 올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전날에 적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감행되었고 결국 그걸 버텨내지 못 했다.

이건 자신들의 패배다, 패배도 보통 수준이 아니라 끔찍할 정도의 대패다.

과연 여기서 몇이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 학살의 장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스러져나갈까.

‘내가 죽더라도 저 년만큼은 죽이고 가겠다.’

멀리서 날뛰고 있는 카엘라를 바라보면서 크렘은 창을 고쳐 잡았다.

어차피 여기서 살아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중을 위해서 그리고 아군을 위해서 적들에게 출혈을 강요해둘 필요가 있었다.

적들도 전투를 계속하면서 아주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전력이 깎여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걸 여기서 더 크게 만들어둔다면 왕국에도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크렘이 막 속도를 올려서 카엘라의 뒤를 노리려던 찰나.

문득 등 뒤로 전해지는 싸늘하고도 소름 끼치는 감각에 급히 기수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저기서 날뛰고 있는 카엘라보다도 더 거대한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놈! 클라우스!”

“크렘. 오랜만에 보는군.”

“닥쳐라! 배신자! 그 입에 내 이름을 담지 마라!”

“서운하네. 그래도 대륙 전쟁 때 같이 고생한 사이인데.”

저 남자는 대륙 전쟁 시기에 나름 활약한 이들 중 하나다.

다만 그 태생이 귀족 가문의 기사, 역시나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 하는 부류였다.

재능이나 능력은 조금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생을 해가며 거둘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네놈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 왕국을 위해서!”

“왕국이 아니라 네 가문과 귀족들을 위해서겠지.”

“그게 그거 아니더냐! 이 왕국의 근간을 이루고 떠받치고 있는 자들이 바로 귀족인데 그들을 키지는 것이 곧 왕국을 지키는 것이다!”

“그게 유언이라면 잘 들었다.”

클라우스가 말의 속도를 높여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확인한 크렘은 이를 악물고 창을 꼬나 쥐었다.

이길 생각은 없다, 최소한 큰 부상이라도 입히면 될 것이다.

다른 귀족들은 클라우스를 천하게 보나 자신은 그의 전력을 알고 있다.

제대로 싸운다면 그의 승리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팔 하나는 가져가야만 한다!

“으아아아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고함을 지르면서 맞서던 크렘.

하지만 그가 본 마지막 장면은, 흔들림 없는 클라우스의 모습과 반대로 목 없는 몸뚱이가 되어버린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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